“HIV 감염인, 제때 치료하면 ‘소확행’ 얼마든지 누립니다”

입력 2019.07.17 09:12

HIV 바로알기 <上>

​HIV(인체면역결핍바이러스)는 체내에 들어오면 면역체계를 파괴하며, 에이즈를 유발한다. 과거 HIV 감염은 ‘불치’란 인식이 강했다. 그러나 HIV 감염인도 적절히 치료하면 큰 문제 없이 살 수 있다. 헬스조선은 HIV와 관련된 건강 정보를 독자들에게 전달하기 위해 ‘소소하고 확실한 행복(소확행)’을 누리면서 살고 있는 HIV 감염인과, 의료현장에서 HIV를 치료하는 의료진의 솔직한 이야기를 취재, 상·하로 나누어 연재한다. 첫 번째는 HIV 감염인의 이야기다.

플래시몹으로 표현한 붉은 리본
HIV 상징인 '붉은 리본'/조선일보DB

화창한 7월 중순, 국내 한 종합병원 감염내과 진료실에서 김모씨(40대)를 만났다. 주치의와 먼저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도중 진료실 문을 열고 들어온 김씨와 눈이 마주쳤다. 편안한 표정에 건강해 보이는 김씨를 보고 다른 의사 선생님이냐 물었지만, 인터뷰할 환자라는 대답을 들었다. 훤칠한 외모의 김씨는 멋쩍게 웃으며 “긴장되지만 다른 많은 감염인에게 도움이 되기 위해 나왔다”고 말했다.​

Q. 언제, 어떻게 처음 HIV 감염을 알게 됐나요?

A. 5년 전이었죠. 갑상선 질환이 있었는데, 차도가 없었습니다. 약을 한 알에서 세 알까지 늘려도 변화가 없어 수술을 결심했죠. 수술 전 큰 병원에 가서 혈액 검사를 했습니다. 다음날 바로 병원에서 전화가 오더라고요. ‘HIV 감염이 의심되니 재검사가 필요하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재검사 후, HIV 감염 진단을 받았습니다. 의사 선생님이 ‘에이즈’라고 하던 게 아직도 기억납니다. 갑상선 수술이 먼저가 아니라 HIV부터 어떻게 해야겠다고 생각했죠.

Q. 당시 기분이 어땠고, 병원에는 어떻게 가게 됐나요?

A. 차를 병원 어디에 뒀는지 잊어버린 상태로 하염 없이 걸어 다녔습니다. 눈물이 쉴 새 없이 흘렀지요. 무서웠어요. 한강을 바라보며 나쁜 생각도 했지요.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휴대전화로 HIV를 검색했습니다. 검색으로 찾은 곳이 명동에 있는 종교단체에서 하는 HIV 상담센터였어요. 센터에서 처음 들은 말은 ‘죽는 병이 아닙니다’란 말이었죠. 그래도 불안했어요. 센터를 통해 지금의 주치의 선생님과 연결됐습니다.

병원에 간 저는 선생님 바짓가랑이를 잡고 '살려달라'고 했어요. 선생님은 괜찮다고, 약만 잘 먹으면 건강하게 살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다음 주에 약을 처방하겠다고 하셔서, 당장 오늘부터 약을 달라고 했죠. 전문가나 의료진이 죽는 병이 아니라고 말하지 않았다면 절망감에 나쁜 선택을 했을지도 몰라요. 실제로 일반인들에게 HIV 감염에 대한 정보가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고 생각해요. 저만 해도 그랬고요. 감염인도 치료만 잘 하면 된다는 사실을 많은 사람에게 알리고 싶어요.

Q. HIV 감염인은 치료를 거부하기도 하는데, 병원을 다른 환자보다 자주 왔다고 들었습니다.

A. 병원을 오지 않는 건 감염 증상을 악화시키는 지름길이죠. 보통 3~4개월에 한 번 병원을 찾지만, 저는 일부러 한 달에 한 번씩 갔어요. 주치의를 믿고, 약간의 건강 변화라도 무조건 알렸습니다.

상담을 받기 위해서도 자주 왔습니다. HIV 감염인에게는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필요해요. 아무리 친한 친구라도 내 건강 상태에 대해 고백할 수 없거든요. 신분 노출을 극도로 꺼리는 것도 있습니다. 내 병을 이미 알고 있고, 치료해주는 의료진이라면 이야기가 다릅니다. 의사 선생님과 상담 간호사 선생님이 저에게는 좋은 상담처가 되어 주셨습니다.

Q. 감염 이후 힘들었던 점이 있다면?

A. HIV 감염인에 대한 편견이 힘들었습니다. 맨 처음 상담할 때 국가에서 나오는 보조물품이라고 양말을 줬어요. 서글프더라고요. HIV 감염인이 무조건 경제적으로 어려운 게 아닌데, 나도 사회에서 꽤 잘 나가는 사람인데 하는 생각이 들었죠. ‘몸이 불편할 것’이라는 편견도 있습니다. 복지단체나 보건당국에서 전화가 오면, ‘밖으로 거동은 할 수 있으시냐’고 묻기도 합니다. 이렇게 멀쩡히 잘 다니는 사람에게 말이죠(웃음). 관리만 잘 하면 소소한 행복을 누리면서 건강하게 살 수 있습니다.

Q. 약을 복용한 뒤 어떤 점이 달라졌나요? 복용은 어렵지 않나요?

A. 약 복용 후 갑상선 검사를 했더니 수치가 정상으로 돌아왔습니다. 피곤함도 전보다 덜하고요. 항바이러스 약물이다 보니 바이러스 수치도 낮아졌죠. HIV가 면역 체계에 작용하니 문제가 생겼던 게 아닐까, 하고 추측합니다. 실제로 HIV 감염인은 치아가 많이 빠지거나, 감기에 잘 걸리는 등 여러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들었습니다.

의사 선생님이 건강관리를 잘 해야 한다고 하셔서 살도 빼고, 운동도 했더니 전보다 컨디션이 좋습니다. ‘계속 건강하게 살고 싶다’는 욕구가 생겼죠. 삶을 보는 시선도 긍정적으로 바뀌었습니다. 가족에게도 ‘왜 이렇게 못하냐’ 같은 잔소리를 했는데 이제는 ‘할 수 있다’고 격려하는 식이죠.

약 복용은 어렵지 않습니다. 하루 한 알만 먹으면 됩니다(웃음).

Q. 다른 HIV 감염인을 만난 적 있나요? 국내 HIV 감염인의 문제점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A. 알음알음 알게 됩니다. 사람들에게 여러 이야기를 듣다 보면 국내 HIV 감염 상황은 좋지 않아요.

먼저 감염인이라는 걸 알면서도 약을 먹지 않는 사람이 꽤 있습니다. 바보라서 약을 안 먹는 게 아닙니다. 젊은 사람들은 몇 달 먹다가 증상이 없으니 ‘안 먹어도 괜찮겠지’라고 생각하기도 하고, 의료진에게 자신을 노출하기 싫어서 병원을 찾지 않기도 합니다. 감염인이 될 수 있는 환경에 노출돼 있는데, 설마 하는 생각에 검사를 안 하고 감염된 상태로 방치되기도 합니다.

Q. 최근 국내 감염인들 사이에서 이슈가 되는 내용이 있다면?

A. 10~20대 젊은 HIV 감염인이 급격히 늘고 있다는 게 이슈입니다. 문제는 10~20대는 현실적으로 HIV검사, 치료에 접근하기란 쉽지 않다는 겁니다. 사회적으로 다양한 지원과 인식 개선을 통해 접근을 쉽게 만들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Q. 다른 감염인을 포함해, 사람들에게 이야기하고 싶은 것을 알려주세요.

A. 빨리 치료할수록 건강을 지킬 수 있고, 타인에게 HIV를 전파하는 것도 막을 수 있습니다.

HIV는 불치병이 아닙니다. 당뇨병처럼 평생 잘 관리하면 됩니다. 저는 가끔 ‘1년만 더 일찍 검사를 받았더라면 그만큼 내가 덜 피곤했을텐데’라고 생각합니다. 의심되면 무조건 검사해보세요. 큰 병원이 아닌 보건소에서도 익명, 무료로 검사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신뢰할 수 있는 의료진을 찾아 꾸준히 치료받으세요. 건강하게 꾸준한 ‘소확행’을 누리며 살 수 있습니다. 제가 그렇거든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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