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수유 중에도 항우울제 복용 가능… 엄마의 마음 먼저 치료해야”

입력 2025.03.31 08:34

‘헬스조선 명의톡톡’ 명의 인터뷰
‘주산기우울증 명의’ 예수병원 여성정신건강 클리닉 최말례 과장

설명하는 교수님
예수병원 여성정신건강 클리닉 최말례 과장​/​사진=​예수병원 ​제공
임신·출산은 한 여성의 일상을 뒤바꾸어놓는다. 몸이 내가 알던 것과 달라지고, 기분도 마음대로 통제되지 않는다. ‘아이’라는 존재가 들어오며 엄마로서 맡아야 할 일도 많아진다. 이 과정에서 많은 여성이 단순히 우울감을 느끼는 것을 넘어 우울증에 빠진다. 이렇듯 임신 도중에 겪는 우울증과 임신 후 우울증을 합쳐서 주산기우울증이라 한다. 주산기우울증 환자들은 일반 환자보다 약물 치료에 소극적이다. 이들에게 약물 치료는 불가능한 일인지, 어떤 때에 필요한지 예수병원 여성정신건강클리닉 최말례 과장(대한신경정신의학회 여성가족특임이사)에게 물었다.

-단순 우울을 넘어, 주산기 우울증으로 진단하는 기준은?
“많은 여성이 임신 도중이나 출산 후에 우울감을 경험한다. 특히 출산 후 우울은 산모의 25~85%가 경험한다고 알려졌다. ▲우울 ▲불안 ▲수면곤란 등을 경험하지만 대개 12일 이내에 좋아진다. 그러나 이 시기가 지났는데도 계속 우울하고, 우울 강도가 심해진다면 주산기우울증으로 이어질 수 있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와 상의해 조기에 대처해야 한다. 주산기 우울증은 ▲우울한 기분 ▲의욕의 저하 ▲흥미 저하 ▲수면 곤란 ▲집중력 저하 ▲자살 사고 ▲자살 시도 등의 증상이 최소 2주 이상 지속할 때, 또는 직업·가정·대인관계 등에서 제 역할을 수행할 수 없을 때 진단한다. 주산기우울증 환자는 원래 좋아하던 취미 활동에도 시큰둥해질 수 있다. 친구 만나기를 즐기던 사람이 만남을 꺼리거나, 식사를 제대로 하지 않거나, 무기력함에 잠만 자는 등의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통계적으로 임신·출산을 경험한 10~15%의 여성이 주산기우울증을 겪는다.”

-임신 중인 여성이 우울증 약물 치료를 받을 수 있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와 충분히 상의하면 가능하다. 임신 1기(첫 3개월)는 태아의 장기가 형성·발달하는 시기라서, 외부에서 오는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약·건강기능식품 등을 먹지 않는 것이 원칙이긴 하다. 일단은 ▲개인 상담 ▲인지 행동 치료 ▲대인 관계 치료 등을 통해 정서적 지지 체계를 구축해준다. 그러나 우울증 증상이 너무 심해 알코올을 섭취하거나, 자살 시도를 한다거나, 개인 위생 관리가 어렵다면 입원 치료와 약물 치료를 병행해볼 수 있다. 임산부가 극도로 우울한데도 약물 치료를 하지 않는 것은 아이에게도, 본인에게도 해롭다. 대신 태아에게 미치는 영향이 적은 약물을 최소한으로만 사용한다. 임신 중반기(4~7개월)에는 약물이 태아에게 미치는 영향이 감소한다. 이에, 복용하는 약물 용량을 늘리는 식으로 더 적극적인 치료가 가능하다. 정신건강의학과 약은 임산부 금기 약물이 아니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약물을 안정성에 따라 A·B·C·D·X로 분류한다. A가 가장 안전하고, X로 갈수록 부작용 위험도가 높다.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사용하는 선택적세로토닌재흡수억제제(SSRI) 계열 항우울제는 대부분 B·C등급에 해당해 안전성이 확보됐다. 불가피한 경우 임산부에게도 사용할 수 있다.”

-원래 우울증 치료를 받던 여성이 임신하면, 약물 치료 어떻게 하나?
“그간 별 문제 없이 복용해오던 약을 약을 쓰되, 복용량을 줄이는 쪽으로 접근한다. 임신했다고 약을 바꾸는 것을 오히려 주의해야 한다. 우울증으로 치료받던 사람이 임신했다고 자의로 약을 끊는 것은 권장되지 않는다. 약을 끊었다가, 잘 관리되던 우울증이 재발한 채로 다시 찾아오는 사람이 많다.”

-출산 후 우울증 약물 치료를 받는다면, 모유 수유가 가능한가?
“산모가 복용한 약물이 모유를 통해 태아에게 전달될 수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산모가 복용한 약물 총량의 1~2%만 전달되므로 산모 정신 건강에 꼭 필요하다면 약물 치료를 시행해볼 수 있다. 수유 시 약물 사용 위험도를 L1(가장 안전)~L5(투약 금지)로 세분화한 할(Hale) 등급 분류에 따르면, SSRI 계열 항우울제는 L2(상당히 안전)에 해당한다. 섭취 후 모유로 넘어가는 비율이 낮고, 장기적 부작용 위험이 비교적 낮다고 알려진 ▲파록세틴 ▲세르트랄린 등 약물은 사용해봄 직하다. 엄마가 살아야 아이도 산다. 약도 임산부가 의지할 수 있는 지지 체계라 생각하고, 필요할 땐 잘 활용했으면 한다.”

-과거에 우울증 병력이 있던 사람은 예방적 차원에서 항우울제를 미리 복용하는 것이 좋을까?
“환자에 따라 미리 복용하는 것이 권장되기도 한다. 사실 주산기우울증은 개인 편차가 매우 커서 예측이 어렵다. 정신적으로 건강하던 사람이 임신·출산 후에 우울증을 겪기도 하고, 우울증이 있던 사람이 임신·출산 후에 오히려 안정을 찾기도 한다. 그럼에도 분명한 것이 하나 있다. 임신 전에 우울증 병력이 있었던 사람은 임신·출산 후에 이것이 재발할 위험이 크다는 것이다. 환자가 약을 끊은 후 자살 충동이 얼마나 줄었는지, 가정·학교·직장에서 자신의 역할을 얼마나 수행할 수 있었는지, 입원 병력은 없었는지 잘 살펴야 한다. 이런 점을 종합적으로 고려했을 때 임신·출산 후 우울증 재발 위험이 크다고 평가되면, 예방적 차원에서 항우울제를 미리 복용해볼 수 있다. 특히 첫 임신 때 주산기우울증을 경험했다면, 그 이후 임신에서도 겪을 가능성이 있다. 병력이 있으면서 아이를 더 낳을 계획이 있다면 임신 전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와 상담해 재발 위험을 평가하고 미리 대처하길 권한다.”

-주산기우울증을 방치하면 태아·신생아 발달에 악영향이 가나?
“임신 중 우울증은 태아 성장을 더디게 한다. 아이 머리 둘레가 정상보다 작아질 수 있다. 또 우울함을 이기지 못해 술을 마시거나, 자살 시도를 하거나, 자신을 돌보지 못해 영양 상태가 나빠지면 당연히 태아에게 악영향이 간다. 출산 후 우울증은 산모와 신생아 애착 관계 형성을 방해한다. 아이가 자라며 정서 문제와 행동 장애를 겪고, 정신건강의학과 치료가 필요해질 가능성이 커진다.”

-우울증 완화에 운동이 중요한데, 임산부는 몸을 움직이기가 어렵다. 권장하는 운동은?
“▲가볍게 걷기 ▲임산부 요가 ▲임산부 필라테스 ▲수영 ▲짐볼 운동 등 유산소 운동을 권장한다. 보통은 주 3~5회, 회당 20~30분이 좋지만, 주치의 산부인과 전문의와 적정 운동 강도를 상의하는 게 좋다.”

-임산부가 우울감을 느끼거나, 우울증으로 넘어갔다면, 가족·배우자·친구 등 주변인은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
“임산부가 ‘내가 이러이러해서 힘들다’ 말할 때, 경청하고 ‘그래, 힘들었겠구나’ 고개를 끄덕이라. 주변인이 ‘다들 겪는 거니 별일 아니다’ ‘나가서 산책이라도 해 봐라’ 조언하는 것은 오히려 임산부를 더 우울하게 만든다. 아무도 자기 감정에 공감해주지 않는다는 생각에 고립될 수 있다. 집안일이나 육아를 도와 임산부가 자기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돕는 것도 좋다.”

-참고할만한 환자 사례가 있다면?
“우울증과 공황장애가 있어서 임신 동안에도 약물 치료를 받은 환자가 있다. 지금은 출산 후 복직했다. 이 환자는 남편과 소통이 잘 된다. 남편과 자신 중 누가 육아휴직을 할지 상의한 끝에 남편이 휴직했다. 아내는 출근해야 하니 월~목은 남편이 아이를 데리고 잔다. 평일 육아로 피로한 남편을 위해 금~일은 아내가 아이를 데리고 자는 식으로 역할을 분담하고 있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와 주변인 도움만 있다면, 우울증 환자도 충분히 임신·출산·육아를 잘 해낼 수 있다.”

서 있는 교수님
예수병원 여성정신건강 클리닉 최말례 과장​/사진=예수병원 제공
최말례 과장은…
전북대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전북대 의과대학 정신건강의학과 외래 교수이자 예수대학 정신건강의학과 주임과장이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여성가족특임이사를 맡고 있다. 그간 수많은 임산부의 정신 건강 관리를 도와왔다. 최 과장의 환자 중 한 명은 정신질환으로 약물 치료 중이었는데, 약이 태아에게 해로울까 걱정돼 임신하고 임의로 약을 끊었다. 증상이 심하게 재발해 입원했다. 단약 기간 동안 "아이를 낳고 싶지 않다"고 말할 지경으로 정신 건강이 악화했다. 최말례 과장은 환자와 그 가족을 한자리에 불러모아 상담했다. 약물 치료를 잘 해서 안정을 찾으면, 아이도 잘 출산할 수 있을 것이라 설득했다. 환자는 최 과장의 설득 끝에 약물을 최소 용량으로 사용하면서 입원 치료를 유지했고, 건강한 아이를 낳았다. 지금은 증상이 아주 잘 조절되는 상태다. 병원에 주기적으로 와 치료 받는데, 그 때마다 최 과장에게 아기 사진을 보여주며 행복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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