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용 초고성능컴퓨터 활용
난치성 질환·신약 개발 연구까지
유전자 분석 등 의료 성능 뛰어난
KISTI, '슈퍼컴 6호기' 도입 추진


◇슈퍼컴+HPC 동시 활용 코로나 비밀도 밝혀
KISTI는 국내 최고성능의 연구용 슈퍼컴퓨터 '누리온(5호기)'을 보유하고 있다. 초당 25.7페타플롭스(PFLOPS, 초당 2경5700조번 연산)할 수 있는 성능으로 144테라플롭스(TFLOPS, 1초에 144조번 연산)의 브레인보다 약 178배 우수하다. 연구진도 처음엔 누리온으로 데이터를 분석하려고 했다. 그러나 5년 전 도입을 시작한 5호기로는 많은 정보를 동시에 분석하는 '병렬 데이터 처리 능력'이 떨어졌다. 이렇게 되면 계산 능력을 다 활용하지 못해 '유휴자원'이 돼버리므로 비효율적이다.
만약 누리온이 최신형 HPC와 같이 뛰어난 병렬 데이터 처리 능력을 갖추고 있다면 90일가량 소모됐던 분석기간은 30일 이하로 줄어들었을 것이다.
KISTI 연구진이 누리온을 통해 밝혀낸 대표적인 의료분야 성과는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에 대한 감염 저항성 연구가 꼽힌다. 연구진은 사람마다 유전형에 따라 코로나19 감염 저항성이 다른 세포막 구조를 갖는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밝혀내 지난 7월 발표했다. 사람에 따라 코로나 위험성이 달라질 수 있다는 연구결과여서 큰 화제가 됐다. 이 연구 당시엔 UK바이오뱅크에서 공급받은 20만명의 유전형 정보와 사스코로나바이러스(SARS-CoV-2) 결합에너지를 분석했는데, 이때는 누리온과 브레인을 동시에 활용했다. 연구를 주도한 백효정 바이오의료팀 선임연구원은 "처음엔 모든 작업을 누리온으로 진행하려 했으나 브레인을 동시에 활용하는 것이 효율적이라고 판단했다"며 "결국 연구 후반부엔 브레인만 썼다"고 했다. 5호기의 낮은 병렬 데이터 처리 능력을 브레인으로 보완한 것이다.
비슷한 연구 사례는 또 있다. KISTI는 지난 7월 자폐유전변이가 난자와 정자의 수정과정에서 생겨나는 '신생 유전변이' 과정에서 생겨날 수 있다는 새로운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813명의 한국인 자폐 환자와 가족의 전장 유전체 염기서열을 분석한 결과다. 이 연구과정에서도 대용량 데이터 처리를 위해 브레인을 주로 활용했다.

대표적 난치병인 '암' 연구 과정에서도 대용량 연산 능력과 더불어 병렬 데이터 연산 능력이 중요시된다. 암 연구 과정에서도 슈퍼컴퓨터와 HPC가 쓰이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KISTI는 미국 유전체의학연구소 '잭슨 랩(Jackson lab)'과 공동으로 위암 분류 연구 결과를 지난 2월 발표한 바 있다. 암은 종류에 따라 치료 과정이 달라지므로 치료에 앞서 정확한 분류가 필수적이다. 하지만 유전형이 다양해 정확한 구분이 어렵다. 이에 연구진은 수만 개의 유전자 활동 데이터를 분석하기 위해 새로운 알고리듬을 개발하고, 브레인으로 분석했다. 이 결과 치료 효과를 예측할 수 있는 새로운 위암 분류법을 만들어내는데 성공했다.
병렬 데이터 처리 능력은 질병의 분석뿐 아니라 신약 개발 과정에서도 큰 역할을 한다. 이미 개발된 약물의 효과를 분석하고, 새로운 질병에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지를 알아보는 '약물 재창출' 기반 신약 개발, 다양한 신약 후보 물질을 분석하는 '스크리닝' 과정 등에도 이런 기능이 필수적이다.
이에 전문가들은 뛰어난 계산 능력과 데이터 처리 및 저장 능력, 그리고 압도적인 병렬 처리 능력을 동시에 발휘할 수 있는 국가적 컴퓨팅 자원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병렬 데이터 처리 능력은 데이터의 빠른 분석은 물론, 4차산업혁명시대의 핵심기술인 인공지능(AI) 연구에도 필수적이다. AI를 의료에 접목하려는 연구 수요 역시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 KISTI는 이런 단점을 보완한 '슈퍼컴퓨터 6호기'를 도입할 예정이다. 오는 2023년부터 2029년까지 총 6년 동안 2929억원의 사업비를 투입, 600페타플롭스(PFLOPS, 초당 60경번 연산) 수준의 연산능력을 갖춰 세계 5~10위권의 성능이 될 전망이다. 특히 병렬 데이터 처리 능력이 30배 가량 크게 강화될 것으로 기대된다. 계산과 데이터 처리 모두에 강력한 능력을 탑재해 연구 효율도 높일 수 있다. 이식 KISTI 국가슈퍼컴퓨팅센터 본부장은 "누리온 도입 당시에 예측하지 못한 것 중 하나가 이런 'AI 붐'이었기에 현재로서는 아쉬운 점이 있다"면서 "6호기가 도입되면 국내 AI 및 의료분야 연구자들의 귀중한 자산이 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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