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 년 개최되는 ‘고잉 온 콘서트’를 지휘하며, 여러분에게 ‘희망’을 몸소 보여주는 산증인이 되고자 합니다.”
지난 20일,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암 경험자와 가족을 위한 맞춤형 음악회 ‘고잉 온 콘서트’에 다녀왔습니다. 암 발병 후에도 암 경험자들의 아름다운 삶은 계속된다는 의미의 행사입니다. 심포니온 오케스트라, 피아니스트 김정원, 소프라노 서선영 등이 무대에 올라 클래식과 오페라 곡들을 연주했습니다. 올해로 12회를 맞은 고잉 온 콘서트의 지휘를 맡은 서희태 지휘자 역시 설암을 극복한 암 경험자입니다. 설암 치료를 받는 중에도 묵묵히 음악 활동을 이어오며, 암 환우를 위한 오케스트라 ‘고잉 온 콘서트’에 매해 참여해 꾸준히 지휘하고 있습니다.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두 달간 사라지지 않던 혓바늘… 설암의 증상
서희태(59·서울시 서초구)씨가 처음 암 진단을 받은 건 2020년 7월입니다. 서씨는 혓바늘로 두 달간 고생했습니다. 평소보다 혓바늘 증상이 오래 지속됐지만, 그 외의 증상이 없었고, 병원 갈 시간을 내는 것도 어려워 대수롭지 않게 여겼습니다. 그러던 중 우연히 방문한 치과에서 심상치 않다는 소견을 들었습니다. 정밀 검사 결과, 설암 1기였습니다. 혀 좌측에 1cm 크기의 종양이 있었습니다.
설암은 혀에 발생하는 암으로, 구강암의 약 30%를 차지합니다. 주로 40세 이후에 발생하고 60대에 가장 많으며, 유전적 요인보다 환경적 요인이 크게 작용합니다. 특히 흡연과 음주를 모두 하면 구강암 위험이 약 15배로 높아진다는 보고가 있습니다. 설암의 5년 생존율은 초기의 경우 80~90%로 높은 편이지만, 3기가 되면 40%, 4기가 되면 20%로 생존율이 점차 낮아집니다. 치료는 암의 진행 정도에 따라 다르지만, 일반적으로 수술 절제와 방사선 치료가 주된 방법입니다.
암 진단을 받은 지 2주 만인 2020년 7월말, 로봇 수술로 혀 부분 절제술을 받았습니다. 종양이 발생한 부위를 중심으로 1.5cm가량의 일부를 절제해 혀의 기능을 최대한 보존하면서 설암을 효과적으로 치료하는 표준 치료법입니다. 수술이 끝나고 재활 과정을 거쳐 한 달 만에 일상에 복귀했습니다.
재발과 전이
열심히 일하며 행복한 2년을 보냈습니다. 그러던 2022년 4월, 서희태씨는 또 한 번 암을 진단받습니다. 같은 부위에 재발한 상태였습니다. 암종의 크기나 병기마다 다르지만, 설암 재발의 90% 이상이 통상 치료 후 2년 내에 발생합니다. 서씨는 또 한 번의 암에 마음이 잠시 흔들렸지만 “나를 믿고 따라와 달라”는 주치의 말에 용기를 얻어 다시 치료 의지를 다졌습니다. 2022년 5월, 또 한 번의 부분 절제술을 받으며 치료는 성공적으로 끝났습니다.
그러나 끝이 아니었습니다. 2023년 12월말, 림프절에 1cm 크기의 전이가 생겼습니다. 설암은 임파선 전이가 많아 목 상부에 있는 임파선까지 예방적으로 제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서희태씨는 그 당시를 떠올리며 “수술 후 1년쯤 지나며 몸 상태가 좋아져 술을 한두 잔 정도 마시기 시작했고, 이내 곧 예전처럼 지낸 게 재발과 전이의 원인인 것 같다”며 “잠깐의 방심도 절대 용납될 수 없는 게 암인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2024년 1월, 임파선 절제술을 받았습니다. 수술이 끝난 뒤 재발 방지를 위해 2주 간격으로 면역항암제 옵디보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힘든 순간을 이겨내게 해준 ‘음악’
서희태씨는 일평생 음악의 길을 걸어온, 관객들 앞에서 오케스트라 공연을 하는 지휘자입니다. 음악을 좋아하시는 교육자 아버지를 따라 시작한 바이올린을 통해 알게 된 음악은 성악과를 거쳐 지휘자라는 꿈을 안겨줬습니다. 음악을 통해 삶을 채워나가는 게 서씨의 행복이자 삶의 이유였습니다. 음악은 힘든 순간들을 이겨낼 수 있던 ‘원동력’이자 ‘의미 있는 도전’이기도 했습니다. 설암 재발로 인한 두려움, 임파선 전이로 병행해야 했던 항암 치료 모두 음악의 힘으로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서씨는 그 당시를 떠올리며 “음악을 통해 제 삶을 채워나가는 것이 자연스럽게 저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힘이 됐다”며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무대만큼은 계속 이어 나가고 싶었다”고 말합니다. 서씨는 우울하고 힘든 투병 생활을 하는 암 환자들에게 음악의 힘을 알려주며 일상의 활력을 선물하고 싶었습니다. 세 번째 수술 이후 극심한 체력 저하로 무대에 오르는 걸 모두가 말리며 공연 중 팔이 떨릴 정도로 힘이 들었을 때에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끝까지 최선을 다해 ‘고잉 온 콘서트’ 무대에 올랐습니다.
서씨는 공연을 보러 온 분과 음악으로 소통하고 짧은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이, 또 다른 삶의 활력소라고 말합니다. 공연장에서 울리는 15만 헤르츠의 미세한 진동의 주파수는 암 세포를 죽이는 데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음악이 주는 힘을 나눌 수 있는 게 서씨의 큰 보람입니다.
몸과 마음 돌봐준 아내
아내의 존재도 암을 이겨내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암 진단 직후부터 줄곧 아내는 서희태씨 곁을 지켰습니다. 특히 코로나19로 병원 출입이 제약이 있던 그 당시, 아내는 모든 일을 내려놓고 힘든 내색 없이 서씨의 정서적의 힘이 돼줬습니다. 서씨는 그 당시를 떠올리며 “오랜 시간 동안 힘든 환경에서도 저를 간호하며 곁을 지켜줬다”며 “아내가 없었다면 힘든 순간들을 이겨낼 수 없었을 것이다”고 말합니다. 지인들도 큰 힘이 돼줬습니다. ‘결국 내 사람이 가장 큰 힘이 되는 존재’라는 것을 깨달은 서씨는, 이들에게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열심히 챙겨 먹고 운동하며 힘든 시기를 작 극복했습니다.
현재 서희태씨는 진단 후 5년을 앞둔 지금까지 재발, 전이 없이 건강한 상태입니다.
<서희태 지휘자>
-암 진단 후 ‘인간 서희태’에게 생긴 변화가 있다면?
“삶을 대하는 태도는 암 진단 전에도 긍정적인 편이었습니다. 다만, 암을 극복하면서 삶의 중요성을 깊이 깨달으며 ‘나’ 자신에 대한 신념이 더욱 확고해졌습니다. 암 진단 전에는 숨 가쁜 스케줄로 일에 몰두해서 지내는 ‘워커홀릭’이었습니다. 그러나 암을 극복하며 사소한 것들도 감사해하며 현재의 삶에 더 충실해지는 계기가 됐습니다. 덕분에 음악에 온전히 집중하며 더 깊이 빠져들 수 있는 시간이 많아졌습니다. 나 자신을 더 사랑해주며 내가 진심으로 좋아하는 것에 집중하다 보니, 삶이 더 풍요로워졌습니다.”
-투병 과정에서 힘든 건 없었나요?
“항상 긍정적인 마음가짐과 참을성이 크다고 자부하는 사람이지만, 암을 이겨내는 것은 체력적으로나 심리적으로 힘들었습니다. 혀는 입안에 위치해 있어 늘 습한 상태여서 상처가 쉽게 아물지 않아, 회복 과정이 더욱 어려웠던 같습니다. 특히 혀의 근육 조직이 수축되면 말을 할 수 없기에, 이를 방지하기 위해 재활치료를 지속적으로 받았는데요. 근육을 계속해서 늘려주는 과정이 많아, 생각보다 훨씬 고통스러웠습니다. 그래도 치료 덕분에 일반인과 동일하게 말을 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해하며 치료를 열심히 받았습니다.”
-요즘은 어떻게 지내세요?
“KNN방송교향악단의 음악 감독 겸 상임 지휘자로, KG필하모닉오케스트라와 한국오페라단 음악 감독으로 열심히 활동하고 있습니다. 일은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개인적인 삶과 일의 균형을 잘 맞추려고 합니다. 암 환자로서는 대한암협회와 올림푸스한국이 함께 ‘고잉 온 콘서트’를 진행합니다. 암 환우의 고민과 궁금한 점에 성실히 답변해주며 암 경험자로서의 위로와 용기의 말을 전하고 있습니다. 휴식 시간에는 악보를 보거나 아내와 함께 여행을 다니고 있습니다. 아내와 몇 년 전부터 1년에 네 달은 쉬기로 약속했습니다. 소프라노 전공 아내와 서양 음악을 전공한 저로서, 음악 감각을 잃지 않기 위해 유럽 곳곳을 다니며 음악회도 감상하고 있습니다.”
-‘고잉 온 콘서트’를 인상 깊게 봤다. 참여하게 된 계기는?
“감사하게도 올림푸스한국 제안으로 2022년부터 ‘고잉 온 콘서트’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음악을 하는 사람으로, 또 음악을 통해 암을 극복한 사람으로서 고잉 온 콘서트를 통해 암 환자들에게 음악의 힘을 나눌 수 있다는 게 너무 감사했습니다. 암 환자들은 치료를 받으며 여러 가지 요인에 의해 불안하고 우울해지기 쉽습니다. 저 같은 경우는 음악을 통해 제 삶을 채워나가는 것이 저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힘이었습니다. 고잉 온 콘서트와 같은 예술 활동을 듣고 보는 것만으로도 불안함을 해소하고 치료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믿습니다. 앞으로도 고잉 온 콘서트를 통해 암에 대한 인식을 바꾸고 암 환자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 싶습니다.”
-지금 암과 싸우고 계신 분들에게 한 마디.
“암 치료가 끝날 때까지 방심해서는 안 됩니다. 방심하는 순간, 암이 언제든 다시 나타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금주·금연은 물론 건강한 먹고 잘 자는 게 중요합니다. 하지만 너무 불안해하거나 걱정하지 마세요. 저 역시도 암을 이겨내는 순간마다 마음이 매우 불안했고 흔들리기도 했습니다. 그런 마음이 생길수록 주치의를 믿고, 치료에 집중하며 잘 챙겨 드세요. 힘든 생각이 들 때마다 나를 즐겁게 해줄 음악과 같은 활동을 하며 더 열심히 웃고, 긍정적으로 생각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