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수의 우울증 클리닉]

좋아하는 일을 하고 놀 때는 증상이 없다가 책임이 주어지면 무기력증이 도지는 경우가 있다. 이를 두고 일본 정신과 의사 오카다 다카시는 그의 책 ‘선생님, 저 우울증인가요?’에서 ‘신종 우울증’이라고 명명했다. 이와 유사한 사례를 일본에서는 ‘도피형 우울’ ‘현대형 우울증’ ‘미숙형 우울증’이라 부르기도 한다. 청년층에서 이런 사례가 흔하다.
대학에 입학한 후 학교 수업만 간신히 듣고 나머지 시간엔 자기 방에서 나오지 않으려고 하는 아들 때문에 걱정이라는 어머니가 진료실을 찾아왔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정작 와야 할 아들 대신 온 것이었다. 어머니는 “도대체 우리 아들은 어떤 심리 상태인가요?”라고 물었다. 당사자가 하는 말을 간접적으로라도 듣고 싶어서 “아들은 자신의 상황에 대해 어떻게 설명하던가요?”라고 어머니에게 되물었다.
“기운이 없어 꼼짝을 못 하겠다. 의욕이 생겨야 움직일 거 아니냐!”라며 아들이 짜증을 내니까 말을 걸기도 겁이 난다고 했다. 방에서 게임하고, 노트북으로 영화 보면서 낄낄 댈 때는 멀쩡해 보인다고 했다. 집중이 안 돼 책을 읽을 수가 없다고 하면서 스마트폰으로 동영상만 보고 있다고도 했다. “방도 좀 정리하고, 집안일도 도와줘”라고 하면 아들은 “의욕이 없어서 괴로운데 왜 더 힘들게 하냐!”며 화를 냈다고 한다. “방 안에만 있지 말고, 밖에 나가서 운동 좀 해라”고 하면 침울한 표정을 지으며 “힘이 없어서 할 수가 없다”고 하니 더 이상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비슷한 증상을 겪는 직장인들도 있다. 주말에 취미 생활을 즐기거나 친한 친구들과 어울릴 때는 활기가 넘치지만, 평일이 되면 집중이 되지 않고 업무를 수행하기 어렵다고 호소한다. 쉬면 좋아져야 하는데 그렇지도 않다. 병가를 내고 며칠 쉬면서 회복되는가 싶었는데, 막상 출근하면 바로 다시 무기력해진다.
신종 우울증은 공식 진단이 아니고, 연구를 통해 그 실체가 규명된 질환도 아니다. 그렇지만 위에서 기술한 양상을 보이는 환자가 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정신건강 전문가라면 누구나 실감하고 있을 것이다.
겉으로 드러난 양상을 관찰하면 신종 우울증 환자는 그리 심해 보이지 않는데도 “집중이 안 돼서 공부를 못 하겠다” “머리가 멍해서 일을 할 수 없다”며 괴로워한다. 심한 우울증 환자처럼 표정이 굳고 행동이 느려지지 않았는데도 “무기력해서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한다. 막연하게 “피곤하다” “집중이 안 된다” “생각이 잘 안 된다”라고 흔히 호소한다. 감정은 슬프기보다는 ‘흐릿한’ 느낌에 더 가깝다.
전형적인 우울증 환자는 밤에 잠이 오지 않아 힘들다고 하는데 신종 우울증 환자는 스마트폰을 보면서 잠을 자지 않으려고 한다. 전형적인 우울증에서는 아침에 일찍 눈이 떠지고 이내 불안감이 치밀어 오르는 반면 신종 우울증 환자는 잠에서 깨어나도 침대에 멍하니 누워 있다. 식욕은 떨어지지 않고, 밤에 고칼로리 음식을 한꺼번에 먹기도 한다.
원인은 다양하고 복잡하다. 주요 우울장애 진단을 충족시키는 정도의 증상이 있는지를 확인하는 게 먼저다. 주요 우울장애라면 그에 합당한 치료가 우선돼야 한다.
약제에 대한 치료 반응이 주요 우울장애와는 다르게 나타난다. 과다 수면과 체중 증가가 특징이라 비정형 우울증과도 유사한 측면이 있고, 그래서 이런 양상의 우울증에 효과적인 약제를 쓰기도 한다. “약이라도 먹고 좋아지고 싶어요”라고 했던 환자에게 막상 항우울제를 처방해줘도 제대로 챙겨 먹지 않고, 진료 예약을 지켰다, 안 지켰다 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심리적 상처도 들여다봐야 한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지만 취업 시험에 번번이 낙방하다보니 “아무리 애써도 달라질 게 없다”는 부정적인 믿음에 사로잡히기 쉽다. 자꾸 좌절하다 보니 “더 이상 상처받고 싶지 않다”는 회피 심리가 작동할 때도 많다. 아무리 공부해도 성적이 오르지 않는 학생이나, 열심히 일했는데 제대로 인정 못 받는 직장인도 비슷한 상태에 빠지기 쉽다.
목적 의식의 부재도 빼놓을 수 없는 원인 중 하나다. “내가 진짜 좋아하는 걸 찾지 못했어요.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할지 모르겠어요!”라는 한탄을 입에 달고 사는 이에게 의욕이 생길 리 없다. 시키는 공부만 쫓아서 하다가 스스로 결정하고 실행하는 경험을 쌓지 못한 채 성인이 되고 보니 무엇을 향해 살아가야 할지 몰라서 털썩 주저앉아 버리는 것이다.
질환이나 심리 탓이 아닌 단순한 이유도 있다. 밤새도록 스마트폰으로 유튜브 영상을 돌려보는 일상이 반복되면 기운이 빠질 수밖에 없다. 운동을 게을리 하고 체력이 약해진 것도 문제다. 배달 음식으로 끼니를 때우고 밤마다 술 마시고 잠드는 생활습관에 젖어 있으면 활기는 사라진다. 항우울제를 복용해도 자기 관리 노력이 동반되지 않으면 충분한 효과를 못 얻는다. 심리상담을 아무리 열심히 받아도 생활 습관이 나쁘면 상태는 개선되지 않는다.
이 시대를 사는 청년이라면 누구나 겪을 수 밖에 없는 심리적 혼란에 빠진 것은 아닌지도 살펴봐야 한다. 미래는 불확실하고, 현재는 불안정하니 청년은 괴로울 수 밖에 없다. 힘을 내려고 해도 팍팍한 현실에 치이다 보면 희망마저 잃게 된다. 세상이 자신을 받아주지 않고, 자신만 이상한 존재가 되어버린 것 같은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청년의 정체성은 연약해서 부스러지기 쉽다. 근거 없는 자신감과 추락하는 자존감 사이에서 갈팡질팡 하는 것이 이 시기의 심리적 특성이기도 하다.
쉽지 않겠지만, 그래도 “현실에서 도망치지 말고 인생의 목표를 향해 조금만 더 애써보자”라고 스스로를 다독여야 한다. 하루 종일 방 안에 틀어박혀 있기보다는, 아침에 일어나 침대를 정리하고, 가볍게 몸을 풀고, 커튼을 열어 햇빛을 쬐고, 잠옷 대신 편한 외출복으로 갈아입는다. 그리고 조금만 더 힘을 내 신발 신고 문밖으로 한 걸음 내디뎌 본다. 부담을 느끼기 보다는 “5초만 해볼까”라는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해본다. 이렇게 작은 행동들이 쌓이면 결국 변화가 시작되고, 우울에서 벗어날 수 있다.
대학에 입학한 후 학교 수업만 간신히 듣고 나머지 시간엔 자기 방에서 나오지 않으려고 하는 아들 때문에 걱정이라는 어머니가 진료실을 찾아왔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정작 와야 할 아들 대신 온 것이었다. 어머니는 “도대체 우리 아들은 어떤 심리 상태인가요?”라고 물었다. 당사자가 하는 말을 간접적으로라도 듣고 싶어서 “아들은 자신의 상황에 대해 어떻게 설명하던가요?”라고 어머니에게 되물었다.
“기운이 없어 꼼짝을 못 하겠다. 의욕이 생겨야 움직일 거 아니냐!”라며 아들이 짜증을 내니까 말을 걸기도 겁이 난다고 했다. 방에서 게임하고, 노트북으로 영화 보면서 낄낄 댈 때는 멀쩡해 보인다고 했다. 집중이 안 돼 책을 읽을 수가 없다고 하면서 스마트폰으로 동영상만 보고 있다고도 했다. “방도 좀 정리하고, 집안일도 도와줘”라고 하면 아들은 “의욕이 없어서 괴로운데 왜 더 힘들게 하냐!”며 화를 냈다고 한다. “방 안에만 있지 말고, 밖에 나가서 운동 좀 해라”고 하면 침울한 표정을 지으며 “힘이 없어서 할 수가 없다”고 하니 더 이상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비슷한 증상을 겪는 직장인들도 있다. 주말에 취미 생활을 즐기거나 친한 친구들과 어울릴 때는 활기가 넘치지만, 평일이 되면 집중이 되지 않고 업무를 수행하기 어렵다고 호소한다. 쉬면 좋아져야 하는데 그렇지도 않다. 병가를 내고 며칠 쉬면서 회복되는가 싶었는데, 막상 출근하면 바로 다시 무기력해진다.
신종 우울증은 공식 진단이 아니고, 연구를 통해 그 실체가 규명된 질환도 아니다. 그렇지만 위에서 기술한 양상을 보이는 환자가 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정신건강 전문가라면 누구나 실감하고 있을 것이다.
겉으로 드러난 양상을 관찰하면 신종 우울증 환자는 그리 심해 보이지 않는데도 “집중이 안 돼서 공부를 못 하겠다” “머리가 멍해서 일을 할 수 없다”며 괴로워한다. 심한 우울증 환자처럼 표정이 굳고 행동이 느려지지 않았는데도 “무기력해서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한다. 막연하게 “피곤하다” “집중이 안 된다” “생각이 잘 안 된다”라고 흔히 호소한다. 감정은 슬프기보다는 ‘흐릿한’ 느낌에 더 가깝다.
전형적인 우울증 환자는 밤에 잠이 오지 않아 힘들다고 하는데 신종 우울증 환자는 스마트폰을 보면서 잠을 자지 않으려고 한다. 전형적인 우울증에서는 아침에 일찍 눈이 떠지고 이내 불안감이 치밀어 오르는 반면 신종 우울증 환자는 잠에서 깨어나도 침대에 멍하니 누워 있다. 식욕은 떨어지지 않고, 밤에 고칼로리 음식을 한꺼번에 먹기도 한다.
원인은 다양하고 복잡하다. 주요 우울장애 진단을 충족시키는 정도의 증상이 있는지를 확인하는 게 먼저다. 주요 우울장애라면 그에 합당한 치료가 우선돼야 한다.
약제에 대한 치료 반응이 주요 우울장애와는 다르게 나타난다. 과다 수면과 체중 증가가 특징이라 비정형 우울증과도 유사한 측면이 있고, 그래서 이런 양상의 우울증에 효과적인 약제를 쓰기도 한다. “약이라도 먹고 좋아지고 싶어요”라고 했던 환자에게 막상 항우울제를 처방해줘도 제대로 챙겨 먹지 않고, 진료 예약을 지켰다, 안 지켰다 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심리적 상처도 들여다봐야 한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지만 취업 시험에 번번이 낙방하다보니 “아무리 애써도 달라질 게 없다”는 부정적인 믿음에 사로잡히기 쉽다. 자꾸 좌절하다 보니 “더 이상 상처받고 싶지 않다”는 회피 심리가 작동할 때도 많다. 아무리 공부해도 성적이 오르지 않는 학생이나, 열심히 일했는데 제대로 인정 못 받는 직장인도 비슷한 상태에 빠지기 쉽다.
목적 의식의 부재도 빼놓을 수 없는 원인 중 하나다. “내가 진짜 좋아하는 걸 찾지 못했어요.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할지 모르겠어요!”라는 한탄을 입에 달고 사는 이에게 의욕이 생길 리 없다. 시키는 공부만 쫓아서 하다가 스스로 결정하고 실행하는 경험을 쌓지 못한 채 성인이 되고 보니 무엇을 향해 살아가야 할지 몰라서 털썩 주저앉아 버리는 것이다.
질환이나 심리 탓이 아닌 단순한 이유도 있다. 밤새도록 스마트폰으로 유튜브 영상을 돌려보는 일상이 반복되면 기운이 빠질 수밖에 없다. 운동을 게을리 하고 체력이 약해진 것도 문제다. 배달 음식으로 끼니를 때우고 밤마다 술 마시고 잠드는 생활습관에 젖어 있으면 활기는 사라진다. 항우울제를 복용해도 자기 관리 노력이 동반되지 않으면 충분한 효과를 못 얻는다. 심리상담을 아무리 열심히 받아도 생활 습관이 나쁘면 상태는 개선되지 않는다.
이 시대를 사는 청년이라면 누구나 겪을 수 밖에 없는 심리적 혼란에 빠진 것은 아닌지도 살펴봐야 한다. 미래는 불확실하고, 현재는 불안정하니 청년은 괴로울 수 밖에 없다. 힘을 내려고 해도 팍팍한 현실에 치이다 보면 희망마저 잃게 된다. 세상이 자신을 받아주지 않고, 자신만 이상한 존재가 되어버린 것 같은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청년의 정체성은 연약해서 부스러지기 쉽다. 근거 없는 자신감과 추락하는 자존감 사이에서 갈팡질팡 하는 것이 이 시기의 심리적 특성이기도 하다.
쉽지 않겠지만, 그래도 “현실에서 도망치지 말고 인생의 목표를 향해 조금만 더 애써보자”라고 스스로를 다독여야 한다. 하루 종일 방 안에 틀어박혀 있기보다는, 아침에 일어나 침대를 정리하고, 가볍게 몸을 풀고, 커튼을 열어 햇빛을 쬐고, 잠옷 대신 편한 외출복으로 갈아입는다. 그리고 조금만 더 힘을 내 신발 신고 문밖으로 한 걸음 내디뎌 본다. 부담을 느끼기 보다는 “5초만 해볼까”라는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해본다. 이렇게 작은 행동들이 쌓이면 결국 변화가 시작되고, 우울에서 벗어날 수 있다.
의료계 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