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견서 한 장으로 복직 가능한 제도 개선돼야”

지난 10일 대전 서구의 한 초등학교에서 교사 A(48)씨가 8살 김하늘양을 흉기로 찔러 살해했다. 가해자가 우울증으로 휴직한 뒤, 정상 근무가 가능해 보인다는 의사 소견서를 제출하고 복직했음이 추후 드러났다. 이에 여러 연론이 우울증을 사건의 전면에 내세웠다. ‘우울증 교사가 죄 없는 아이를 죽였다’는 식의 제목을 단 기사도 있었다. 소중한 생명을 잃은 슬픔이 가시기도 전이라 조심스럽지만, 의료계는 이 상황이 또 다른 피해자를 만들어낼까 우려하고 있다.
대한의사협회는 13일 성명서를 통해 “피의자인 교사의 범행 원인과 동기 등 수사가 아직 진행 중인 상황”이라며 “우울증이 이 사건의 원인이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가 소견서를 부실하게 작성해 이번 사건을 사실상 방임했다는 주장은 근거가 없다”고 밝혔다.
◇우울증 아닌 ‘반사회적 인격’이 문제
우울증이 사건 원인이라 보기엔, 우울증과 공격성 사이 직접적 관련성이 없다. 일반적 사람이 그러하듯 우울증 환자라고 모두 타인에게 공격성을 표출하는 게 아니다. 대한의사협회는 13일 성명서에서 “이번 사건은 정신질환으로 인해 촉발된 사건이 아닌 피의자 개인의 문제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며 “우울증에 걸린 사람이 범행을 저질렀으니 우울증이 원인이라는 단편적인 인과 관계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동국대의대 정신건강의학과 사공정규 교수(경상북도 정신건강복지센터장) 역시 “범죄의 주원인은 정신 질환이 아닌, 가해자가 지닌 반사회적 인격”이라고 말했다.
대부분의 우울증 환자는 오히려 위축되고, 숨는 모습을 보인다. 사공정규 교수는 “환자마다 개인차가 있으나 타인에게 공격성을 보이기보다는 무기력해하고, 활동량이 줄어드는 환자가 많다”며 “우울증 환자는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사람이 아니라 자해·자살 위험에서 보호해야 할 사람”이라고 말했다. 고려대안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신철민 교수는 “우울증은 스펙트럼이 굉장히 넓어 사람마다 증상과 그 강도가 다르다”며 “모든 우울증이 범죄의 원인이 된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우울증 악마화하면 환자 숨고, 문제 본질 흐려져”
그럼에도 범죄 사건을 보도할 때 가해자의 정신 질환을 강조하는 경우가 많다. 지난 2023년 대전의 한 고등학교에 침입해, 교사를 흉기로 7차례 찌르고 달아난 A씨에 관한 보도도 그랬다. 많은 언론이 A씨가 주거지 인근 병원에서 조현병과 우울증 진단을 받았다고 밝혔다. 분당 서현역 칼부림 사건으로 무기징역형을 선고받은 최원종 역시 2020년 조현병 진단을 받은 것으로 보도됐다.
그러나 이러한 보도가 오히려 문제에 알맞게 대처하는 것을 불가능하게 한다. 사공정규 교수는 “정신 질환이 범죄 원인으로 지목되면, 법적 책임을 경감받을 여지가 생기니 가해자에게 유리할 수 있다”며 “범죄 예방 시스템을 구축했어야 할 기관이 사건을 질환 탓으로 돌리며 책임을 회피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최원종은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후, 범행 당시 조현병 등 정신 질환으로 인한 심신상실 또는 심신미약 상태였음을 주장하며 항소심에서 감형을 시도했다.
우울증이 악마화되면 환자들은 낙인이 두려워 진단 치료를 꺼릴 수밖에 없다. 우울증 환자 60~70%가 자살을 생각하고, 10~15%가 실제로 시도한다. 그러나 한국 우울증 치료율은 11%에 불과하다. 66%인 미국에 비하면 무척 낮은 수준이다. 신철민 교수는 “반드시 치료받아야 하는 사람이 치료받길 꺼리는 분위기를 만들면 안 된다”고 말했다. 사공정규 교수는 “당뇨병이 없는 사람도 건강 관리 측면에서 혈당 검사를 받아보듯, 정신질환이 있든 없든 정신 건강 상담을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며 “특히 교사처럼 사람을 대하는 일이 많아 정신적 스트레스가 누적되기 쉬운 사람들에게 이런 시스템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제대로 쓴 소견서라도 ‘공격적 행동 없을 것’ 보장 못 해
가해자에게 소견서를 작성해 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에 대한 비난도 이어졌다. 우울증으로 질병 휴직 중이던 가해 교사는 “12월 초까지만 해도 잔여 증상이 심했으나, 이후 증상이 거의 없어져서 정상 근무가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는 내용이 담긴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진단서를 학교에 제출하고 복직했다. 소견서가 잘못된 게 아니냐는 목소리가 있었지만, 대한의사협회는 “정신건강의학과에서는 정신 질환자를 진단하거나 치료할 시 신체적인 증상뿐 아니라 주변 환경이나 대인관계 등 외부적인 요소까지 신중하게 고려하고 있다”며 “소견서 작성 시에도 환자의 증상과 경중을 매우 꼼꼼히 따져 작성한다”고 반박했다.
의학 전문가들은 소견서 말고, 소견서 한 장으로 복직이 가능한 시스템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환자에 대해 최대한 파악한 후라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가 환자가 공격적인 행동을 하지 않을 것임을 100% 보장할 수는 없다. 사공정규 교수는 “의사가 환자에 대한 최대한의 정보를 종합해 ‘정상적 일상생활 또는 근무가 가능해 보인다’는 결론을 특정 시점에 내렸더라도, 사람의 행동은 상황에 따라 시시각각 바뀐다”며 “이는 우울증 등 정신 질환이 있는 사람뿐 아니라 일반인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정신건강의학과 의사가 환자의 미래 폭력 행동에 대해 완전한 신뢰성을 가지는 예측을 할 수 없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정신 질환 환자의 복직을 판단하는 막중한 책임을 의사 한 명에게 떠넘기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와 교사 등 관련인으로 구성된 공식적 심의 위원회 논의를 거쳐서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위원회가 명목상으로는 있다. 교육부는 교사들이 질병으로 휴직 또는 복직할 때 교육 공무원 질병 휴직 위원회를 두고 휴직 필요성이나 정상 근무 가능 여부를 판단케 한다. 3명 이상을 위원으로 두고, 위원장 외 1명 이상은 의료 전문가(의사)를 포함하도록 했다. 그러나 권고에 그쳤던 탓에 운영은 유명무실했고, 실제 현장에선 의사가 발급한 진단 소견서를 제출하는 것으로 질병 휴직·복직 신청이 이뤄져 왔다.
사공 교수는 “의사에게 ‘정신 질환 증상이 없으니 문제 행동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보증하라는 것은 ‘건강하므로 앞으로도 죽지 않을 것’이라 보증하라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의사 한 명의 견해에 복직이 좌우되게 하지 말고, 심의 위원회에서 여럿이 논의해 판단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한의사협회는 13일 성명서를 통해 “피의자인 교사의 범행 원인과 동기 등 수사가 아직 진행 중인 상황”이라며 “우울증이 이 사건의 원인이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가 소견서를 부실하게 작성해 이번 사건을 사실상 방임했다는 주장은 근거가 없다”고 밝혔다.
◇우울증 아닌 ‘반사회적 인격’이 문제
우울증이 사건 원인이라 보기엔, 우울증과 공격성 사이 직접적 관련성이 없다. 일반적 사람이 그러하듯 우울증 환자라고 모두 타인에게 공격성을 표출하는 게 아니다. 대한의사협회는 13일 성명서에서 “이번 사건은 정신질환으로 인해 촉발된 사건이 아닌 피의자 개인의 문제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며 “우울증에 걸린 사람이 범행을 저질렀으니 우울증이 원인이라는 단편적인 인과 관계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동국대의대 정신건강의학과 사공정규 교수(경상북도 정신건강복지센터장) 역시 “범죄의 주원인은 정신 질환이 아닌, 가해자가 지닌 반사회적 인격”이라고 말했다.
대부분의 우울증 환자는 오히려 위축되고, 숨는 모습을 보인다. 사공정규 교수는 “환자마다 개인차가 있으나 타인에게 공격성을 보이기보다는 무기력해하고, 활동량이 줄어드는 환자가 많다”며 “우울증 환자는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사람이 아니라 자해·자살 위험에서 보호해야 할 사람”이라고 말했다. 고려대안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신철민 교수는 “우울증은 스펙트럼이 굉장히 넓어 사람마다 증상과 그 강도가 다르다”며 “모든 우울증이 범죄의 원인이 된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우울증 악마화하면 환자 숨고, 문제 본질 흐려져”
그럼에도 범죄 사건을 보도할 때 가해자의 정신 질환을 강조하는 경우가 많다. 지난 2023년 대전의 한 고등학교에 침입해, 교사를 흉기로 7차례 찌르고 달아난 A씨에 관한 보도도 그랬다. 많은 언론이 A씨가 주거지 인근 병원에서 조현병과 우울증 진단을 받았다고 밝혔다. 분당 서현역 칼부림 사건으로 무기징역형을 선고받은 최원종 역시 2020년 조현병 진단을 받은 것으로 보도됐다.
그러나 이러한 보도가 오히려 문제에 알맞게 대처하는 것을 불가능하게 한다. 사공정규 교수는 “정신 질환이 범죄 원인으로 지목되면, 법적 책임을 경감받을 여지가 생기니 가해자에게 유리할 수 있다”며 “범죄 예방 시스템을 구축했어야 할 기관이 사건을 질환 탓으로 돌리며 책임을 회피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최원종은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후, 범행 당시 조현병 등 정신 질환으로 인한 심신상실 또는 심신미약 상태였음을 주장하며 항소심에서 감형을 시도했다.
우울증이 악마화되면 환자들은 낙인이 두려워 진단 치료를 꺼릴 수밖에 없다. 우울증 환자 60~70%가 자살을 생각하고, 10~15%가 실제로 시도한다. 그러나 한국 우울증 치료율은 11%에 불과하다. 66%인 미국에 비하면 무척 낮은 수준이다. 신철민 교수는 “반드시 치료받아야 하는 사람이 치료받길 꺼리는 분위기를 만들면 안 된다”고 말했다. 사공정규 교수는 “당뇨병이 없는 사람도 건강 관리 측면에서 혈당 검사를 받아보듯, 정신질환이 있든 없든 정신 건강 상담을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며 “특히 교사처럼 사람을 대하는 일이 많아 정신적 스트레스가 누적되기 쉬운 사람들에게 이런 시스템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제대로 쓴 소견서라도 ‘공격적 행동 없을 것’ 보장 못 해
가해자에게 소견서를 작성해 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에 대한 비난도 이어졌다. 우울증으로 질병 휴직 중이던 가해 교사는 “12월 초까지만 해도 잔여 증상이 심했으나, 이후 증상이 거의 없어져서 정상 근무가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는 내용이 담긴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진단서를 학교에 제출하고 복직했다. 소견서가 잘못된 게 아니냐는 목소리가 있었지만, 대한의사협회는 “정신건강의학과에서는 정신 질환자를 진단하거나 치료할 시 신체적인 증상뿐 아니라 주변 환경이나 대인관계 등 외부적인 요소까지 신중하게 고려하고 있다”며 “소견서 작성 시에도 환자의 증상과 경중을 매우 꼼꼼히 따져 작성한다”고 반박했다.
의학 전문가들은 소견서 말고, 소견서 한 장으로 복직이 가능한 시스템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환자에 대해 최대한 파악한 후라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가 환자가 공격적인 행동을 하지 않을 것임을 100% 보장할 수는 없다. 사공정규 교수는 “의사가 환자에 대한 최대한의 정보를 종합해 ‘정상적 일상생활 또는 근무가 가능해 보인다’는 결론을 특정 시점에 내렸더라도, 사람의 행동은 상황에 따라 시시각각 바뀐다”며 “이는 우울증 등 정신 질환이 있는 사람뿐 아니라 일반인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정신건강의학과 의사가 환자의 미래 폭력 행동에 대해 완전한 신뢰성을 가지는 예측을 할 수 없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정신 질환 환자의 복직을 판단하는 막중한 책임을 의사 한 명에게 떠넘기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와 교사 등 관련인으로 구성된 공식적 심의 위원회 논의를 거쳐서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위원회가 명목상으로는 있다. 교육부는 교사들이 질병으로 휴직 또는 복직할 때 교육 공무원 질병 휴직 위원회를 두고 휴직 필요성이나 정상 근무 가능 여부를 판단케 한다. 3명 이상을 위원으로 두고, 위원장 외 1명 이상은 의료 전문가(의사)를 포함하도록 했다. 그러나 권고에 그쳤던 탓에 운영은 유명무실했고, 실제 현장에선 의사가 발급한 진단 소견서를 제출하는 것으로 질병 휴직·복직 신청이 이뤄져 왔다.
사공 교수는 “의사에게 ‘정신 질환 증상이 없으니 문제 행동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보증하라는 것은 ‘건강하므로 앞으로도 죽지 않을 것’이라 보증하라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의사 한 명의 견해에 복직이 좌우되게 하지 말고, 심의 위원회에서 여럿이 논의해 판단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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