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슈퍼 박테리아' 취약국… 알고도 못 막는 이유

입력 2022.09.07 08:00

보험 문제로 대응 항생제 수십종 중 5개만 사용
항생제 과용 삼가고, 의사 처방에 충실히 따라야

박테리아
항생제 내성 문제가 심화되고 있으나 국내에서 사용 가능한 항생제는 제한돼있다. /게티이미지뱅크
우리나라는 코로나19를 겪으며 보건의료 선진국 대열에 올라섰으나 여전히 후진국 수준인 분야가 있다. 바로 항생제 내성 분야다. 항생제 내성이란 복용하는 항생제가 병을 일으킨 세균을 더는 효과적으로 억제하지 못해 생기는 현상을 의미한다.

항생제에 내성이 생긴 슈퍼 박테리아는 새로운 항생제를 사용해야만 치료할 수 있다. 그 때문에 신규 항생제 도입과 사용은 매우 중요한데, 우리나라에서 일차 치료제로 사용할 수 있는 항생제는 제한돼 있다. 항생제 내성균 중 하나인 다제내성 그람양성균의 경우, 개발된 지 15년이 된 신규 항생제가 존재하는데도 우리나라엔 도입되지 못하고 있다. 다제내성균(multi-drug resistant)이란 여러 종류의 항생제에 내성이 있는 균으로, 감염되면 일반적인 항생제는 효과가 없어 가벼운 감염질환마저 치료가 어렵게 된다.

◇매년 수천억 원 손실 유발하는 항생제 내성균
항생제 내성은 암 등 중증질환만큼 심각한 질환이다. 이미 우리나라는 감염 원인균을 알고 있음에도 항생제가 없어 치료를 포기해야 하는 환자가 수만 명이다. 대표적인 항생제 내성균으로는 메티실린내성황색포도알균(MRSA), 반코마이신내 성장알균(VRE), 다제내성 폐렴알균(MDR-SP) 등이 있는데, 우리나라엔 이러한 내성을 가진 환자가 곳곳에 존재한다.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2020년 기준 국내 종합병원과 요양병원의 메티실린내성황색포도알균 내성 환자 비율은 각각 47.4%와 88.8%이다. 지역사회감염의 주요 세균인 폐렴알균의 매크롤라이드 내성률은 2017년에 이미 66%를 넘어섰다. 가장 익숙한 항생제 중 하나인 페니실린 내성률조차 각각 18.7%와 67%에 달한다. 요양병원의 경우, 에리트로마이신 내성률이 88.9%, 테트라사이클린 내성률도 81.3%에 달한다.

이로 인한 경제적 손실은 막대하다. 매년 1만1000건의 메티실린내성황색포도알균 균혈증 환자가 발생하고, 약 3100명이 사망한다. 이로 인한 추가 경제적 손실은 1128억원 이상이다. 반코마이신내 성장알균 균혈증은 연간 1222건이 발생하고, 788억원의 추가 의료비용을 발생시킨다. 항생제 내성을 해결할 약이 국내에 없으니 효과가 크지 않은 다른 이런저런 치료를 하다가, 치료비는 늘고 환자는 죽어간다.

◇ 15년째 항생제 5개로 돌려막는 한국
다제내성균으로 인한 개인·사회적 손실은 막대하지만, 우리나라는 다제내성균 치료를 위한 항생제 신규 도입에 소극적이다. 다제내성 그람양성균에 사용할 수 있는 항생제는 수십개이나, 국내에서 사용 가능한 일차치료 항생제가 반코마이신, 테이코플라닌, 리네졸리드, 타이제사이클린, 답토마이신 5종류뿐이다. 5종류의 항생제가 모든 다제내성균에 효과가 있는 것도 아니다. 감염부위와 중증도에 따라 사용이 불가능한 약제가 많다.

분당서울대병원 감염내과 송경호 교수는 "지난 15년 동안 다제내성 그람양성균 치료에 사용할 수 있도록 새롭게 개발돼 허가까지 받은 약제만 12종류인데 국내엔 타이제사이클린과 답토마이신 2종류만 도입됐다"고 밝혔다. 송 교수는 "그나마도 반코마이신은 MRSA 균혈증 실패율이 30%에 달하고, 리네졸리드는 혈소판감소증 등 골수억제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으며, 답토마이신은 폐렴에 사용할 수 없는 등 한계가 존재해 많은 환자가 어려움을 겪는다"고 말했다.

감염내과 전문의들은 당장 도입이 급한 항생제만 9종류라고 전한다. 세프타롤린, 세프토비프롤, 텔라반신, 달바반신, 오리타반신, 테디졸리드, 델라플록사신, 오마다사이클린, 레파물린 등은 최근 15년 이내에 개발됐으나, 아직까지 국내에 도입되지 못한 대표적인 항생제들이다. 이 약들은 미국, 유럽 등 해외에선 적극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약가 포기 못 하는 제약사, 도입 계획조차 없어
신규 항생제가 국내에 들어오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약가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선 의약품이 원활하게 처방되려면 건강보험에 반드시 등재되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선 약가협상이 필수이다. 그러나 항생제 신약은 고가 의약품으로 분류돼 약가협상이 쉽지 않다. 수익을 챙겨야 하는 제약사는 높은 약가를 포기하지 못하고, 약가협상을 진행하는 건강보험공단은 막대한 건강보험 재정 투입에 부담을 느낀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일부 제약사는 자사의 약이 약가 협상을 거치면 제값을 받기 어렵다고 판단, 국내 허가 계획조차 세우지 않는다. 익명을 요구한 내과 전문의는 "모 제약사의 항생제가 다제내성균에 효과가 좋고, 국내 환자에게 필요성이 높다고 판단돼 여러 차례 알아봤으나 국내 허가 신청 계획조차 없음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그는 "다제내성균은 당장 생사를 결정하진 않다 보니 정부는 항암제만큼의 도입 노력을 하지 않고, 이를 아는 제약사는 국내 진입시도도 하지 않는다"라며 "결국 피해는 국민이 보고 있다"고 했다.

◇항생제 내성 예방이라도 해야… 무리한 처방 요구 안 돼
결국 우리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다제내성균을 극복할 신규 항생제가 들어오기 전까지 항생제 내성이 생기지 않게 노력하는 일뿐이다. 현재 우리나라 상황에서 항생제 내성 예방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항생제 사용량 자체를 줄이는 것이다. 의사는 불필요한 항생제 처방을 줄이고, 환자는 무작정 항생제를 처방해달라고 요청하지 말아야 한다.

항생제 내성 유발의 첫 번째 원인은 과다한 사용량이다. 꼭 항생제가 필요한 질환에만, 적정량을 적절한 기간 사용한다면 항생제 내성 사례가 늘어나는 걸 어느 정도 막을 수 있다.

송경호 교수는 "여전히 의료 현장에선 환자가 항생제 처방을 요구해 어쩔 수 없이 처방이 이뤄지고 있다"고 했다. 송 교수는 "항생제가 필요없는 감기에도 자신은 항생제를 먹어야 낫는다며, 의사에게 항생제 처방을 요구하는 환자가 많다"라며 "처방전에 항생제가 없는 건 전문가인 의사가 항생제가 불필요한 질환이라 판단한 결과임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병을 제대로 치료하고, 항생제 내성도 예방하려면 담당 의사의 의견을 따라달라"고 강조했다. 이어 송 교수는 "필요에 따라 항생제를 처방받았다면, 지시대로만 복용해도 항생제 내성을 예방할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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