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시간 대변, 잦은 변비·설사, 치질 불러 3도 이상이면 수술… 통증·합병증 적어 양형규 원장, '거상 치핵 수술' 세계 첫 고안 치루는 괄약근 보존술식 치료… 변실금 걱정 없어
'은밀하지만 흔한 병'.
몸에 쌓인 대변을 배출하는 통로인 항문에 생기는 질환을 설명하는 말이다. 항문 질환의 다른 이름은 '치질'이다. 장시간 대변을 보는 습관, 항문에 부담을 주는 운동이나 자세, 잦은 변비와 설사, 스트레스, 과음 때문에 발생한다. 치질은 진행되고 나면 결국 수술을 해야 한다. 치질의 70%를 차지하는 치핵 수술은 한국인이 두번째로 많이 하는 수술이다. 치질 수술은 최대한 항문을 살리는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다. 항문 조직은 한번 손상되면 되돌리기 어려우며, 항문은 인간의 기본적 생리활동인 '싸는' 일을 담당하는 중요한 기관이기 때문에 '소중히' 다뤄야 한다. 병변을 너무 많이 절제하면 확실한 치료는 되겠지만, 변실금 등의 고통을 겪어야 할 수 있다.
◇빠져 나온 항문 조직은 정상조직
치핵은 항문 쿠션 조직이 항문관 밖으로 빠져있는 상태를 말한다〈그림〉. 항문 쿠션 조직은 미세한 혈관덩어리로 이뤄졌는데, 과거에는 이 조직을 정맥류(정맥이 늘어나 피가 고여 있는 상태)로 생각하고 비정상적인 조직으로 여겨 완전히 제거하려고 했다. 그러나 1975년 영국 세인트막병원 톰슨 박사가 치핵이 없는 25명의 정상 항문 등을 연구한 결과, 치핵이 없는 사람도 항문의 정맥이 확장돼 있으며, 항문 쿠션 조직이 배변을 할 때 대변 덩어리와 함께 밖으로 밀려 나왔다가 배변이 끝나면 다시 안으로 들어가면서 더이상 대변이 흘러나오지 않도록 막아주는 역할을 하는 정상 조직임을 확인한다. 양병원 양형규 의료원장(외과 전문의)은 "이를 톰슨의 항문 쿠션 하강설이라고 한다"며 "그의 학설은 20년 간 받아들여지지 않다가, 25년 전부터 의사들이 항문 쿠션 조직을 정상 조직으로 보고 최대한 살리는 방향으로 수술을 시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치핵이 저절로 안 들어가면 수술해야
치핵은 항문 조직이 밖으로 빠져나온 정도에 따라 분류한다. 항문 조직이 빠져 나오지 않은 상태를 1도, 배변할 때 빠져나왔다가 저절로 들어가면 2도, 손으로 밀어넣어야 들어가면 3도, 항상 빠져 나와있으면 4도로 분류한다. 1·2도 치핵은 약물 치료와 비수술적 치료로 개선이 가능하다. 치핵이 3도 이상이라면 수술을 해야 한다. 또 출혈이 너무 심해 빈혈이 생길 정도면 수술을 해야 한다. 치핵 환자 중 실제 병원에서 수술하는 경우는 30% 정도 된다.
◇빠진 치핵 올려 붙여주는 '거상 치핵 수술' 고안
양병원은 ‘치질 보존주의 치료 철학'에 따라 가급적 절제를 최소화 하는 방식을 사용해 치핵·치루 등을 수술한다. 수술 후에는 항문 괄약근 등 기능을 최대한 보존할 수 있다 / 신지호 헬스조선 기자
치핵 수술은 빠진 항문 조직을 잘라내는 수술(결찰 절제술)을 주로 했다. 그러나 이 수술은 항문 괄약근을 손상시켜 괄약근 힘이 20% 약해지고, 항문 협착 위험이 있었다. 점막과 치핵 조직을 크게 절개한 만큼 통증도 컸다. 이 수술을 보완한 것이 '점막하 치핵 절제술'로 항문 점막 아래로 접근해 치핵만 도려내는 술기다. 점막을 적게 째 통증이 덜하다는 장점이 있다. 이 수술은 영국에서 처음 고안됐다. 최근에는 이를 더 발전시켜 '거상 치핵 수술'을 시도하고 있다. 점막하 치핵 절제술이 정상 조직인 치핵을 크게 도려낸다는 단점을 개선한 것으로, 항문 밖으로 나온 치핵을 원래 위치로 교정해주는 수술이다. 이 수술은 까다롭지만, 항문 조직을 보존할 수 있고, 항문 협착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통증이 적고 대표적인 합병증인 지연성 항문 출혈 비율이 0.5% 미만이다. 양병원 양형규 의료원장은 점막하 치핵 절제술을 배운 뒤, 이를 발전시켜 거상 치핵 수술을 세계 처음으로 고안했다. 2009년 4월에는 이 술기를 담은 지침서 '치핵'을 발간했고, 국내 대장항문외과 의사로는 처음으로 치핵에 대해 세계적 의과학 출판사 스프링거에서 영문판 'hemorrhoid'을 출간했다.
◇치루, 괄약근 보존술로 변실금 위험 줄여
항문 질환 중에 빠질 수 없는 것이 치루다. 치루는 항문 질환의 15%를 차지한다. 치루는 배변 시 윤활액이 나오는 항문샘에 대변이 들어가 염증이 생기고, 염증이 피부 밖까지 뚫고 나와 '길(누관)'이 생긴 질환이다. 치루는 항생제를 써도 효과가 거의 없다. 누관이 형성되면 염증이 만성화되므로 결국 수술을 해야 한다. 양형규 의료원장은 "치루를 10년 이상 방치하면 암으로 발전할 수 있어 치료가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치루의 가장 보편적인 수술법은 누관을 칼로 절개해 염증이나 상한 조직을 긁어내고 절개한 양쪽 가장자리를 감싸듯이 꿰매는 수술이다. 이 수술법은 재발률이 낮지만 괄약근 손상 위험이 있어 변실금 발생 위험이 30% 정도로 높다.
양병원에서는 괄약근 보존술식을 주로 한다. 대표적인 것이 누관의 중간을 꿰매서 차단하는 '치루관 결찰술'이다. 괄약근 손상이 없어 변실금 걱정을 안해도 되지만 재발률이 20%로 높다. 양형규 의료원장은 "변실금은 환자의 삶의 질을 크게 떨어뜨리는 치명적인 합병증"이라며 "치루관 결찰술을 한 뒤 재발하면 재수술을 하는 게 낫다"고 말했다. 재수술을 할 때는 시톤술을 주로 적용한다. 누관을 고무줄이나 나일론 줄로 묶어 5㎜씩 맨 바깥부터 자르는 방법이다. 양 의료원장은 "이렇게 하면 서서히 병변이 제거가 되고 그 시간에 치유가 된다"며 "괄약근 손상이 개방술식보다 적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