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전부터 왼쪽 다리가 저리고 아팠던 정모(67·경기 김포시)씨는 이를 지병인 허리디스크 때문이라 여겼다. 허리디스크 치료를 위해 주사를 맞고, 운동치료를 열심히 했지만 왼쪽 다리의 통증은 나아지지 않았다. 그러다가 최근 다리에 난 작은 상처가 잘 낫지 않고 덧나서 병원을 찾았다가 '말초동맥질환' 진단을 받았다. 말초동맥질환은 다리에 뻗어 있는 동맥에 혈전·지방 등이 달라붙어 혈관이 좁아지는 질환이다. 팔에 생기기도 하지만 그 비율은 5% 미만이다. 의사는 "왼쪽 다리의 혈관이 거의 막혀서 걸을 때 다리가 아팠고, 상처도 말초동맥질환 때문에 잘 안 나은 것"이라며 "계속 방치했다면 다리 조직이 괴사할 수도 있었다"고 말했다. 전씨는 좁아진 혈관에 금속망을 넣는 스텐트삽입술을 받았다.
당뇨병·고혈압을 앓거나 10년 이상 담배를 피웠다면 말초동맥질환 검사를 한 번쯤 받아봐야 한다. 손목과 발목의 혈압을 동시에 재는 상완발목혈압검사를 실시한다. /신지호 헬스조선 기자
◇60세 이상 20%가 겪지만, 척추질환으로 오해
말초동맥질환은 어려운 이름과는 달리 중장년층에게 꽤 흔한 병이다. 서울성모병원 순환기내과 장기육 교수는 "국내 60세 이상의 20%가 말초동맥질환을 앓지만, 환자의 70~80%가 자신이 말초동맥질환인 줄 모르다가 혈관이 완전히 막히고 나서야 진단받는다"고 말했다. 건국대병원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60세 이상 중 말초동맥질환에 대해 들어봤다고 답한 사람은 12%에 불과하다. 이 병에 대해 잘 모르는 이유는 초기 증상이 뚜렷하지 않기 때문이다. 병이 꽤 진행되면 가만히 있어도 통증이 느껴지고, 상처가 잘 낫지 않고, 피부 색이 파랗게 변하고, 감각이 마비되고, 피부 조직이 괴사하는 등 증상이 심각하지만 초기에는 그렇지 않다. 걸을 때 다리가 약간 저린 정도다. 그래서 척추 질환으로 오해하기 쉽다. 한양대병원 심장내과 임영효 교수는 "말초동맥질환자의 약 5%가 발·다리 등을 절단한다"며 "당뇨병 합병증인 당뇨발도 말초동맥질환에 포함되므로, 이 질환에 대해 알아둘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당뇨병·고혈압 있거나 10년 이상 흡연했다면 검사를
심혈관질환 위험 인자를 갖고 있다면 말초동맥질환도 잘 걸린다. 임영효 교수는 "말초동맥질환자의 70%가 심혈관질환을 동반하므로, 고위험군이라면 한 번쯤 검사를 받아보면 좋다"며 "반대로, 30% 정도는 다른 혈관에 큰 이상이 없어도 발병할 수 있으므로, 심혈관질환이 없다고 안심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당뇨병·고지혈증·동맥경화·고혈압을 앓는 50세 이상이거나 ▲10년 이상 흡연했거나 ▲70세 이상인 사람이 고위험군이다. 검사는 팔뚝과 발목의 수축기 혈압을 동시에 재서, 다리 혈압을 팔의 혈압으로 나누는 상완발목혈압지수검사를 시행한다. 이 지수가 0.9 이하이면 말초동맥질환이다. 이후에는 혈관 CT(컴퓨터단층촬영)나 MRI(자기공명영상촬영)로 어느 혈관이 얼마나 막혔는지 정확히 찾아내야 한다.
고위험군이 미리 검사를 받아야 하는 이유는 동맥이 완전히 막히기 전에 조치를 취하기 위해서다. 장기육 교수는 "대부분의 환자는 다리 저림이나 통증이 있으면 뼈·근육 문제로 여기고 정형외과에 간다"며 "우연히 허리디스크·척추관협착증 등을 함께 가진 사람은 척추 치료만 받고 끝내기 때문에 말초동맥질환은 발견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심혈관질환 위험 인자를 가진 사람이 척추질환 치료 후에도 여전히 다리가 아프다면 말초동맥질환 검사를 받아야 한다.
◇치료 후 재발 막으려면 금연·저지방식·운동 필수
혈관이 꽉 막히지 않았고 통증이 심하지 않다면 아스피린을 복용하면 된다. 약을 먹으면서 담배를 끊고 꾸준히 운동하며 혈압·혈당을 관리하면 상당수가 증상이 완화된다. 만약 이 방법으로도 호전되지 않으면 스텐트삽입술(금속망을 좁아진 혈관에 넣어서 넓힘), 내막절제술(막힌 혈관의 내막을 긁어내 뚫어줌), 혈관우회술(막힌 동맥 사이에 인조혈관 등을 붙여 새 길을 냄) 등을 실시한다. 하지만 이렇게 치료해도 막혔던 곳의 위치에 따라 최대 70%는 5년 안에 재발하기 때문에, 금연·저지방식·운동 등 올바른 생활습관을 꾸준히 유지하는 것이 필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