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 전 머리가 백발이 다 된 어르신 한 분이 병원에 내원했다. 무려 부산에서 서울까지 기차를 타고 올라오셨다고 한다. 손목과 손가락의 참을 수 없는 통증 때문이었다. 주사 등 보존치료를 여러 번 받았으나 통증이 나아지질 않아 수술을 권유받은 상태였지만 수부 수술은 전신마취를 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망설이고 계시던 중이었다.
어르신은 젊은 시절 맹장 수술을 한 적이 있는데 전신마취 후 잘 깨어나지 못해 매우 고생한 기억이 있어서 수술에 대한 두려움이 크다고 하셨다. 또 신장이 좋지 않아 투석 직전이어서 수술에 대한 부담감이 더 크다고 전신 마취를 하지 않아도 되는 각성 수술에 관심을 보이셨다.
고령이거나 만성질환자, 또는 전신마취에 대한 부담감 등으로 인해 수부 수술을 망설이는 분들이 많다. 손목, 손가락 통증은 참고 생활하기 상당히 어렵다. 일상생활에서 가장 많이 쓰는 부위이기 때문에 불편함이 크다. 대표적인 수부질환으로는 방아쇠수지, 손목 건초염 등이 있다.
방아쇠수지는 손가락 힘줄에 염증이나 결정이 생겨 손가락이 잘 펴지지 않는 질환이다. 손가락을 움직일 때 힘줄이 마찰을 받아 딸깍거리는 소리가 나는 것이 특징이다. 심한 경우 마지막 단계인 ‘잠김’ 상태로 손가락이 굽혀진 채로 전혀 펼 수 없게 되기도 한다. 이런 경우에는 수술이 불가피 하다. 손바닥을 절개한 후 힘줄이 지나가는 통로를 열어주면 된다.
손목 건초염은 건초에 염증이 생긴 것이다. 힘줄을 감싸고 있는 얇은 막을 건초라고 하는데 엄지손가락 기저부에서 흔하게 발생하며 드퀘르뱅질환이라고 한다. 손목을 움직일 때마다 통증이 발생하고 심하면 부어 오르거나 마찰음이 발생하기도 한다. 젓가락을 쥘 수도 없을 정도로 통증이 심해지면 수술적 치료를 고려해볼 수 있다.
대부분의 상지 수술은 전신마취하에 시행된다. 손과 팔의 경우 다리 수술처럼 하반신 마취를 할 수 없다. 또한 수술 시 계속 출혈이 발생하기 때문에 수술 시야 확보를 위해 위쪽 팔에 지혈대를 채워 출혈이 없도록 묶어놓고 수술을 하게 된다. 이때 이 지혈대의 압박 통증은 매우 극심해 대다수의 환자는 그 통증을 견디기 힘들다. 그렇기 때문에 전신 마취 또는 최소한 상환신경총 마취(부위 마취)하에 수술을 진행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앞서 말한 대로 고령이거나 만성질환자, 수술에 대한 부담감이 크다면 전신마취 수술이 어려울 수 있다. 이런 경우 전신 마취가 없이 ‘각성수술’을 시도해볼 수 있다. 말 그대로 깨어 있는 채로, 이른바 ‘각성’ 상태로 수술을 진행하는 것이다. 그렇다. 수부 각성수술(각성 국소 마취 및 무지혈대 수술)은 손 부위 골절 및 인대파열, 방아쇠수지, 손목터널증후군, 듀피트렌구축증 등 대부분의 수부 질환 수술에 적용할 수 있다.
수부 각성 수술은 의사가 직접 주사로 신경을 따라 마취한 후 환자가 깨어 있는 상태에서 진행된다. 마취제와 함께 지혈제 성분을 함께 투여해 따로 지혈대를 할 필요가 없고 통증을 막기 위한 진정제도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오심이나 구토와 같은 부작용 걱정도 없다. 전신마취를 하지 않기 때문에 회복이 빠르고 수술 당일 퇴원도 가능하다.
깨어있는 채로 수술을 받는다는 것에 ‘괜찮을까?’ 하는 생각을 하는 사람도 있다. 수부 각성 수술의 안전성과 효율성은 국내외 여러 연구를 통해 입증돼 왔기 때문에 안심하고 받아도 된다. 최근 국제성형외과학회지에는 각성 수술 그룹이 전신마취 수술 그룹보다 힘줄이전술 후 회복이 더 빠르다는 국내 연구가 발표되기도 했다.
또한 수술 도중 직접 수부를 움직여 보도록 함으로써 문제점을 정확히 파악해 성공적인 수술 결과를 낼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수부 각성 수술은 많은 장점이 있는 선진적 수술법인 만큼 앞으로 환자들을 위한 필수적인 수술로 자리 잡길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