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로 있어야 같이도 좋다. 도도한 싱글라이프로 부부금슬 지키기

부부는 무슨 일이 있어도 한 이불을 덮고 자야 한다는 옛말이 있다. 그래야 부부 사이가 좋아진다고들 했다. 하지만 일본에는 많은 부부가 침대나 침실을 따로 쓰고 있다.

특히 남편의 정년퇴직을 기점으로 이런 경향은 더욱 강하다. 정년 이전에는 31.4% 부부만이 다른 침대를 썼다면, 정년 이후에는 44.3%로 그 비율이 늘어난다는 통계가 있다.

둘 사이의 애틋함이 사라진 나이 든 부부에게 당연한 현상 아니냐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흥미로운 점이 있다. 이른바 ‘각방’을 쓰는 이들 부부의 사이가 절대 나쁘지 않다는 점이다.

by 유사라
by 유사라

‘Single Mix’ 혹은 ‘Mingle Life’

일본의 한 리서치센터에서 시니어의 라이프스타일을 조사한 결과,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시니어층의 외출시간이 의외로 잦았는데, 대부분 부부가 전혀 다른 동선이었다는 점이다. 집 안의 동선을 살펴봐도 부부가 만나는 곳은 아침과 저녁 시간의 식탁뿐이었다. 자녀가 쓰던 빈 방을 남편의 서재나 아내의 취미 공간으로 개조하고, 침실도 분리했기 때문에 한집에 살고 있어도 식탁 외에는 부부의 교차점이 없었다.

이처럼 부부가 함께 살고 있지만 두 명의 각기 다른 삶이 섞여 있는 시니어 부부의 라이프스타일을 ‘싱글믹스 라이프’ 혹은 ‘밍글 라이프’라고 부른다. ‘믹스(Mix·섞다)’와 ‘싱글(Single·혼자)’의 조합어인 동시에 ‘어울리다’는 뜻의 밍글(Mingle)에서 유래한 말이다.

가장 자유로운 시기를 자유롭게 즐기기

시니어야말로 현대인 가운데 가장 자유로운 세대다. 회사나 학교, 육아나 살림과 같은 의무적인 생활에서 벗어나 모든 일상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행동할 수 있다는 점에서 삶의 질이 가장 높아지는 시기다.

가볍게 동네를 한 바퀴 돌다가 기분이 내키면 멀리 교외로 드라이브를 나갈 수도 있고, 회사원들은 좀처럼 시간을 내기 힘든 10월에 독일로 떠나 보름 내내 맥주축제(옥토버페스트)를 즐길 수도 있다.

다만 한국의 은퇴한 남편들은 자유에 심취한 나머지 종종 놓치는 사실이 하나 있다. 내가 자유롭게 느낀다고 아내도 자유로울 것이라고 착각한다는 점이다. 일본의 한 조사에 따르면, 60세 이상 부부 가운데 ‘아내(남편)에게 말을 하지 않아도 나를 이해해 준다’고 응답한 비율은 남성이 81.2%인 데 반해, 여성은 58.3%에 불과해 부부간 이해도에도 남녀간에 큰 차이가 있음을 알수 있다.

남편에게는 전쟁과 같던 일터에서 싸우다 드디어 돌아온 나의 집이지만, 그 시간만큼 아내도 집 안에서 전쟁을 하며 나만의 영역을 만들어 왔다. 그런 나만의 공간 속에 어느 날 찾아든 남편은 이불이라도 좀 널어 보려고 하면 자꾸만 등산을 가자고 보채서, 어쩔 수 없이 함께 갔다 오고 나니 저녁밥을 할 시간이 되어 버려 좀처럼 휴식 시간을 가질 수 없다. 그런데도 다정한 남편이라고 뿌듯해하니 뒤돌아서 한숨만 내쉴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수십 년을 함께해 온 부부지만, 돌이켜 보면 각기 다른 공간에서 각자의 삶을 살다가 저녁에야 마주치던 독립적인 관계이다. 내가 편안함을 찾는 만큼, 상대방도 편안함을 찾을 나이가 되었다는 것을 이해하고, 서로가 원하는 것을 존중하며 서서히 함께 자유로운 시간을 즐길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혼자여서 외롭다는 생각을 버려라

이른 아침 커피숍에서 혼자 샌드위치를 먹고 있는 한 남자가 있다. ‘집에서 밥도 못 얻어먹는 불쌍한 남편’으로 보이는가? 한번 그 사람의 마음속으로 들어가 보자. 이 남자는 일찌감치 집에서 나와 회사에 들어가기 전, 여유롭게 아침을 먹으며 자신의 하루를 그려 보는 이 순간이 무척 즐겁고 설렌다.

특히 나이가 많을수록 ‘혼자’라는 말을 ‘고독’이나 ‘외로움’과 같은 부정적인 말로 연결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매 순간 구성하는 시간(Time), 장소(Place), 상황(Occasion)에 생활심리(Psychology)를 더해 보면 마음가짐에 따라 일상생활이 전혀 다른 시각으로 보일 수 있다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

요즘은 작은 카페나 식당, 서점 등 ‘나홀로족’을 위한 작은 문화공간이 늘어나는 추세다. 마음먹기에 따라 영화 속에서 보던 카페 테라스에 앉아 책을 읽는 멋진 로맨스 그레이가 바로 당신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혼자’는 오래 함께 할 수 있는 비결

혼자 있는 시간을 즐기라는 것은 달리 말하면 독립적인 생각을 가지고 나만을 위한 시간을 보내라는 것이다. 나를 위해 시작한 스포츠 동호회나 자원봉사, 자주 찾던 카페나 술집에서 만난 모든 사람들, 혹은 오랜만에 놀러 온 자녀와 손자들도 모두 각자의 싱글 라이프가 만나 이루어진 하나의 특별한 일상이다. 부부 역시 서로 다른 일상을 즐길수록 두 사람의 저녁 식사는 더욱 즐겁고 풍성해질 것이다.

시니어 부부는 긴 시간 속에서 나름의 철학을 얻은 두 남녀의 조합이다. 서로 가정 안팎에서 쌓아 올린 경험과 영역을 이해하고, 각자의 독립적인 시간을 존중하는 것이야말로 부부가 20~30년 넘는 오랜 시간 동안 행복하게 함께하기 위한 장수(Sustainable Aging) 비결이다. 당신도 이제 혼자 커피를 마시며 책을 즐기는 도도한 싱글 라이프를 즐겨라.

“나이들면 부부밖에 없다는 말이 있다. 그렇다고, 언제든 부부가 함께 붙어 있으려고 하면 오히려 둘의 관계를 해칠 수 있다. 은퇴후 부부일수록 도도하고 당당한 홀로서기 연습이 필요하다.“


최성환
최성환
최성환

고려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펜실베이니아대학에서 경제학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한국은행, 조선일보, 한화생명 경제연구원을 거쳤다. 올바른 은퇴 설계를 돕기 위해 강연이나 방송무대를 종횡무진하고 있다. 현재 한화생명 은퇴연구소장과 보험연구소장을 맡으면서 각종 은퇴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보급하고 있다. 고려대 국제대학원 겸임교수로도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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