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기분이 우울하고 조금만 움직여도 쉽게 지쳐서 건강검진을 받은 주부 최모(55)씨는 "갑상선호르몬은 정상이지만 갑상선자극호르몬 수치가 정상보다 높은 불현성 갑상선기능저하증"이라는 '복잡한 설명'을 들었다. 의사는 "증상이 심하면 심장질환 발병 위험이 커질 수 있지만 현재로선 치료받지 않고 관찰만 하면 된다"고 말했다. 최씨는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도 '그냥 뒀다가 암에 걸리면 어쩌나' 하고 겁이 났다. 우리나라 여성 7명 중 1명은 불현성 갑상선기능저하증을 갖고 있고(삼성서울병원 조사), 상당수는 최씨처럼 불안해 하고 있다.

◆심장병 가능성 높이고 갑상선암도 잘 생겨
불현성 갑상선기능저하증은 갑상선에서 분비하는 갑상선호르몬 수치는 정상인데 뇌에서 갑상선을 자극하는 갑상선자극호르몬이 높은 상태(5~20mIU/L)이다. 진짜 갑상선기능저하증은 두 호르몬이 모두 비정상이다. 삼성서울병원에서 건강검진을 받은 2만7173명을 분석한 결과 여성은 14.1%, 남성은 7.8%가 불현성 갑상선기능저하증이 있었다. 여성의 경우 50대에 크게 늘지만 30대도 10% 이상 이 질병을 가지고 있어서 젊다고 안심할 수 없다. 반면, 반대 질병이라 할 수 있는 불현성 갑상선기능항진증은 드문 편이다.
불현성 갑상선기능저하증은 흔히 무증상 갑상선기능저하증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증상이 아예 없지는 않고 우울 만성피로 기억력감퇴 등 증상이 경미하거나 모호해 잘 느끼지 못할 뿐이다. 정재훈 삼성서울병원 내분비내과 교수는 "이 병은 중년 이후에 많이 생기기 때문에 갱년기나 노화 증상이라고 착각하고 지나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증상은 경미하지만 심혈관질환 우울증 갑상선암 발병 위험을 높인다. 이 병에 걸리면 혈중 콜레스테롤 수치가 10㎎/dL정도 높아져 고혈압이나 당뇨병이 없어도 심혈관질환이 3~4배 많이 생긴다. 따라서 협심증이나 뇌졸중을 경험한 사람은 반드시 갑상선호르몬 검사를 받아서 이 병이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불현성 갑상선기능저하증은 우울증이나 경도인지장애 발병율도 2~3배 높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 교수는 "과거에는 불현성 갑상선기능저하증은 갑상선암과 관계 없다고 생각했는데 최근 2~3년간 갑상선자극호르몬 농도가 높아지면 갑상선암이 잘 생긴다는 국제적인 연구 결과가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갑상선염 동반하면 호르몬제 치료 받아야

갑상선기능저하증에 쓰는 호르몬제를 저용량(하루에 25~100㎍)으로 처방한다. 이와 함께 3~6개월에 한번씩 호르몬 검사를 통해 진짜 갑상선기능저하증으로 악화되는지 살펴본다. 호르몬 치료를 받는다고 이미 망가진 갑상선이 낫는 것은 아니므로 환자 대부분은 일단 치료를 시작하면 평생 계속해야 한다.
이은직 세브란스병원 내분비내과 교수는 "증상이 심하지 않은 사람도 호르몬 치료를 받으면 우울·피로 증상 등이 개선돼 삶의 질이 높아지기 때문에 최근엔 경미한 환자도 적극적으로 치료하는 추세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