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훈의 이것도 심리학

“싸늘하다. 가슴에 비수가 날아와 꽂힌다. 하지만 걱정하지 마라. 손은 눈보다 빠르니까.”
허영만 화백의 만화를 원작으로 2006년에 개봉된 영화 ‘타짜’ 속 대사다. 최근에는 ‘묻고 더블로 가!’에 좀 밀리는 감이 있지만, 그래도 여전히 전 국민이 알고 있는 명대사. 심지어 ‘손은 눈보다 빠르다’는 표현은 관용어로 사용되고 있는 수준이다. 그런데 정말 손이 눈보다 빠를 수 있을까?
눈은 정말로 빠르다. 일단 물리적인 움직임이 빠르다. 우리 눈은 도약안구운동(saccade)이라는 눈 운동을 수시로 하는데, 이때 도약안구운동이 이뤄지는 시간은 길어봤자 0.2초도 걸리지 않는다. 심지어 눈으로 입력되는 것은 빛이다. 1초에 지구를 7바퀴 반 돈다는 그 빛보다 손이 빠르다고? 그게 가능해?
사실 손은 눈보다 빠를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이 표현을 쉽게 받아들이는 이유는 경험적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눈으로는 손의 움직임을 정확하게 보지 못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손이 눈보다 빠르다’는 말은 정확한 표현은 아니다. ‘손의 움직임’이 눈으로 보는 행위, 즉 ‘시지각(visual perception)’으로는 탐지될 수 없다는 것이 더 명확한 표현이 된다. 그런데 이 두 가지 행위는 동일 차원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손의 움직임은 우리가 살고 있는 물리적 세상의 차원에서 발생된다. 하지만 눈으로 보는 행위는 물리적 차원에서 이뤄지는 일이 아니다. 본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보통 보는 행위의 시작은 빛이 눈에 들어오면서 시작된다고 한다. 빛 에너지가 망막에 들어와 맺히면 망막에 있는 광수용기(photoreceptor)가 빛 에너지를 신경계(nervous system)에서 사용 가능한 전기화학적 신호로 변환시키고, 이후 복잡한 처리 절차를 거쳐 뇌에서 보는 행위가 완성된다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본다’는 것은 외부의 물리적 세계를 눈을 통해 내 안으로 끌어들여 뇌에서 그 정보를 해석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과정을 심리학에서는 ‘지각(perception) 과정’이라고 한다. 그래서 손은 물리적 차원에서 움직이고 눈은 지각적 차원에서 보는 셈이다.
손의 움직임과 눈의 봄(seeing)이 다른 차원에서 발생하는 것이 무슨 문제가 될까? 문제의 핵심은 물리적 차원의 세상과 지각적 차원의 세상이 일치하지 않는 것에 있다. 시지각 과정의 시작점이라고 할 수 있는 망막에서부터 물리적 세상의 정보는 정확하게 입력되지 않는다. 물리적 세상은 3차원 구조임에 반해, 망막에서는 이 물리적 세상이 2차원 구조로 변환되어 입력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눈을 통해 본 세상, 즉 지각적 차원에서 만들어지는 세상은 실제 물리적 세상과는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허영만 화백의 만화를 원작으로 2006년에 개봉된 영화 ‘타짜’ 속 대사다. 최근에는 ‘묻고 더블로 가!’에 좀 밀리는 감이 있지만, 그래도 여전히 전 국민이 알고 있는 명대사. 심지어 ‘손은 눈보다 빠르다’는 표현은 관용어로 사용되고 있는 수준이다. 그런데 정말 손이 눈보다 빠를 수 있을까?
눈은 정말로 빠르다. 일단 물리적인 움직임이 빠르다. 우리 눈은 도약안구운동(saccade)이라는 눈 운동을 수시로 하는데, 이때 도약안구운동이 이뤄지는 시간은 길어봤자 0.2초도 걸리지 않는다. 심지어 눈으로 입력되는 것은 빛이다. 1초에 지구를 7바퀴 반 돈다는 그 빛보다 손이 빠르다고? 그게 가능해?
사실 손은 눈보다 빠를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이 표현을 쉽게 받아들이는 이유는 경험적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눈으로는 손의 움직임을 정확하게 보지 못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손이 눈보다 빠르다’는 말은 정확한 표현은 아니다. ‘손의 움직임’이 눈으로 보는 행위, 즉 ‘시지각(visual perception)’으로는 탐지될 수 없다는 것이 더 명확한 표현이 된다. 그런데 이 두 가지 행위는 동일 차원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손의 움직임은 우리가 살고 있는 물리적 세상의 차원에서 발생된다. 하지만 눈으로 보는 행위는 물리적 차원에서 이뤄지는 일이 아니다. 본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보통 보는 행위의 시작은 빛이 눈에 들어오면서 시작된다고 한다. 빛 에너지가 망막에 들어와 맺히면 망막에 있는 광수용기(photoreceptor)가 빛 에너지를 신경계(nervous system)에서 사용 가능한 전기화학적 신호로 변환시키고, 이후 복잡한 처리 절차를 거쳐 뇌에서 보는 행위가 완성된다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본다’는 것은 외부의 물리적 세계를 눈을 통해 내 안으로 끌어들여 뇌에서 그 정보를 해석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과정을 심리학에서는 ‘지각(perception) 과정’이라고 한다. 그래서 손은 물리적 차원에서 움직이고 눈은 지각적 차원에서 보는 셈이다.
손의 움직임과 눈의 봄(seeing)이 다른 차원에서 발생하는 것이 무슨 문제가 될까? 문제의 핵심은 물리적 차원의 세상과 지각적 차원의 세상이 일치하지 않는 것에 있다. 시지각 과정의 시작점이라고 할 수 있는 망막에서부터 물리적 세상의 정보는 정확하게 입력되지 않는다. 물리적 세상은 3차원 구조임에 반해, 망막에서는 이 물리적 세상이 2차원 구조로 변환되어 입력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눈을 통해 본 세상, 즉 지각적 차원에서 만들어지는 세상은 실제 물리적 세상과는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이 같은 사실을 생생하게 경험하게 해주는 현상이 바로 ‘착시’다. 아래 그림을 잠시 보자. 왼쪽 선분은 오른쪽에 있는 네 개의 선분들 중 한 개와 이어져있다. 어떤 것일까?

아마 대부분 사람들은 2번 선분과 이어져 있다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자를 사용하여 이어보자. 결과는? 그렇다. 왼쪽 선분과 이어져 있는 선분은 3번 선분이다. 휘어져 있는 것도 아닌 일직선을 맞춰보는 수준의 단순한 ‘봄(seeing)’에도 우리는 정확하지 못하다. 그러니 도박사나 마술사가 행하는 손놀림을 정확하게 보지 못하는 것은 어찌 보면 너무나도 당연하다.
이처럼 우리가 보는 것은 물리적 세상이 아니다. 물리적 세상을 우리 마음속에서 다시 재구성한, 지각 차원에서 만들어진 또 다른 세상이다. 지각 심리학자들은 ‘마치 우리 마음에서 만들어진 일종의 가상현실을 보고 있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이 가상현실이 실제 세상과 조금 다르다고 해서 너무 겁먹을 필요는 없다. 가상현실은 착시라고 하는 매우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한다면 실제 세상과 차이를 인식하지도 못할 만큼 정확하다. 오랜 진화의 역사 속에서 우리에게 가장 효율적으로 작동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손은 눈보다 빠르다. 하지만 걱정하지 마라. 봄(seeing)도 충분히 빠르고 훌륭하니까.
이처럼 우리가 보는 것은 물리적 세상이 아니다. 물리적 세상을 우리 마음속에서 다시 재구성한, 지각 차원에서 만들어진 또 다른 세상이다. 지각 심리학자들은 ‘마치 우리 마음에서 만들어진 일종의 가상현실을 보고 있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이 가상현실이 실제 세상과 조금 다르다고 해서 너무 겁먹을 필요는 없다. 가상현실은 착시라고 하는 매우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한다면 실제 세상과 차이를 인식하지도 못할 만큼 정확하다. 오랜 진화의 역사 속에서 우리에게 가장 효율적으로 작동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손은 눈보다 빠르다. 하지만 걱정하지 마라. 봄(seeing)도 충분히 빠르고 훌륭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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