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해자도 정신 건강 취약

코로나19가 불러온 또 다른 전염병이 있다. 악플, 혐오, 비난 등 온라인상에서 타인을 악의적으로 깎아내리는 글이 급증했다. 코로나 확산 이후 트위터에 아시아 혐오 발언이 900% 증가했다는 이스라엘의 분석 결과가 있다. 미국과 영국에서도 코로나 사태 이후 온라인 내 혐오 발언이 20% 증가했다는 연구 결과가 보고됐다. 한국도 그렇다. ‘2020 학교폭력 실태 조사’에 따르면 사이버 폭력이 2013년 실태조사가 실시된 이후 가장 큰 폭으로 증가했다. 가천대 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배승민 교수는 "비난글은 합리적인 비판이나 이성적인 생각 도출 과정 없이 표출되는 것"이라며 "비난글이 증가했다는 것은 정신 건강이 취약한 사람이 그만큼 많아졌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비난·혐오글 한 개는 수백의 적(敵)과 같아
한 대상을 정해 쏟아내는 직접적인 비난글이든, 자신과 견해가 다르다는 이유로 행해지는 간접적인 비난글이든 모두 정신적인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 배승민 교수는 "누가 나한테 욕을 하는지 실체를 알 수 없으니, 비난글 하나로도 절대적 다수라고 여기기 쉽다"며 "불특정 다수에 대한 불안감이 높아지면 위협감, 자존감이 낮아지는 등 심리적으로 취약해지며, 반복되면 우울증 등 정신질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삼성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홍진표 교수는 "사이버상에서는 저항도 힘들어서 무기력증, 우울증으로 이어지기 쉽다"고 말했다. 개인의 근본적인 인격을 공격당한 채 저항하지 못한 경험은 트라우마로 이어질 수 있다. 트라우마가 일상생활에 지장을 줄 만한 증상으로 발현된다면 반드시 전문가의 상담을 받아야 한다. 주의해야 할 증상으로는 ▲의욕 및 흥미 저하 ▲수면장애 ▲식욕 저하 ▲체중 변화 ▲주의집중력 저하 ▲부정적 사고 ▲무기력감 ▲불면증 ▲과도한 예민 상태 지속 등이 있다. 특히 이미 우울증 등 정신질환을 앓고 있다면 심각한 충격을 받을 수 있다. 소아·청소년이 사이버 폭력에 노출되면 반드시 진료를 받아야 한다. 어릴 때 이런 경험은 트라우마로 더욱 잘 남아 사람을 못 믿게 되고, 대인관계가 안 좋아지며, 자기 부정적 인지장애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비난·혐오글 쓰는 사람, 인격 장애 심해져
비난글을 쓰는 사람도 정신 건강이 악화될 수 있다. 비난글을 쓴다는 것 자체가 정신 건강이 취약하다는 것을 뜻한다. 배승민 교수는 "비난글을 단다는 것은 분노, 불안, 스트레스 등 여러 정신질환적 요인으로 합리적인 판단을 하는 뇌 고유의 기능이 고장 났거나 작동할 에너지가 고갈됐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연구에 따르면 비난글을 다는 사람들은 평소 현실에서는 반사회적인 성향을 드러내지 않는 사람들인 경우가 많았다. 내적 열등감, 분노 등이 평소에는 나타나지 않다가 아무도 보지 않아 분노 표출을 억제하지 않아도 되는 장소에서 과장되게 폭발하는 것이다.
비난글 쓰기는 중독된다. 홍진표 교수는 "남들 앞에서 자극적인 말로 주목받고 싶고, 칭송받고 싶은 등 평소 충족하지 못했던 욕구가 온라인 상에서 쓴 글을 통해 충족되면서 중독 시스템이 작동된다"며 "반복해 비난글을 달면 정제하지 않고 말하는 것이 허용된다고 여겨져 현실에서도 분노, 충동적 행동 등 성격 장애 증상이 드러나게 된다"고 말했다.
◇악플 즐기는 사람은 반드시 상담 받아야
비난글을 쓰는 사람들은 스스로 고쳐야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자신이 정당한 일을 했다고 믿기 때문이다. 배승민 교수는 "비난글을 쓰는 사람들은 모든 것을 자신이 욕하는 대상의 탓으로 돌린다"며 "비난할만하고, 그 대상이 나쁜 것이기 때문에 정제하지 않고 말하는 것이 정당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비난글을 다는 사람들은 직접 병원을 찾아 진료를 받는 경우가 드물다. 비난글을 쓰고 싶은 충동이 제어되지 않는다면 인격장애로 악화하거나, 주변에 안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반드시 인지하고 상담을 받아야 한다. 홍진표 교수는 "네이버에서 댓글 이력제를 도입하자 악플이 줄었다"며 "비난글을 다는 사람은 스스로 중단하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비난글을 써 얻을 수 있는 쾌감보다 더 큰 손해를 주는 시스템적 개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