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 더 많은 쾌감 원하게 돼

회사원 박모(34)씨는 지난해 금연을 선언했다. 하지만 연말 잦은 술자리에 참여하면서 담배를 다시 피우게 돼, 한 달 넘게 유지하던 금연 계획이 실패로 돌아갔다. 박 씨는 “술을 한두 잔 마시면 담배를 피우고 싶은 유혹을 참기 힘들다”고 말했다.
술만 마시면 담배 생각이 난다는 사람들이 많다. 실제 박 씨처럼 한동안 금연을 해오던 사람도 술자리에서 쉽게 무너지곤 한다. 흡연자들도 술자리에서는 평소보다 더 많은 양의 담배를 피우는 경향이 있다. 이유가 무엇일까? 다사랑중앙병원 이무형 원장(정신건강의학과)은 “술과 담배는 마약처럼 중독성이 강한 물질로 뇌의 보상회로를 자극하는 작용이 유사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담배를 피웠을 때, 담배 속 니코틴이 체내에 흡수되어 혈관을 타고 뇌까지 도달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수십 초에 불과하다. 이때 니코틴은 뇌의 보상회로를 자극해 신경전달물질 도파민을 분비시켜 쾌감이나 긍정적인 기분을 선사한다. 술의 주성분인 알코올 역시 같은 과정을 겪는다. 문제는 이렇게 술·담배 등의 외부 요인에 의해 자주 도파민이 분비될 경우, 뇌는 어떻게 하면 쾌감을 얻을 수 있는지 알고 반복해서 찾게 된다는 것이다. 이무형 원장은 "술과 담배를 함께 했다면 보상회로를 자극하는 힘은 더 커지고, 뇌는 더 많은 쾌감을 원하게 된다"며 "자연히 술은 담배를. 담배는 술을 부르는 습관이 만들어진다"고 말했다.
더불어 한 가지 습관성 중독을 일으키는 물질에 의존하면 다른 중독 물질에도 의존하기 쉽다. 이무형 원장은 "다사랑중앙병원에 입원한 알코올 의존증 환자 2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80%가 흡연자였다는 사실을 미루어보면, 음주가 흡연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 음주가 금연을 방해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미국의 한 연구에 따르면 니코틴이 알코올의 쾌감을 높이는 한편 각성 역할을 해 졸음을 막으면서 알코올 섭취량을 늘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남성 흡연자 22명을 대상으로 실험한 결과, 알코올이 니코틴 분해를 촉진해 담배 끊기를 어렵게 만든다는 사실이 밝혀졌다는 보고도 있다.
이 원장은 “최근 담뱃값 인상, 금연구역 지정 등 정부의 적극적인 금연 정책으로 담배를 끊는 이들이 늘고 있지만 정작 음주 문제는 간과하는 경향이 많다”며 “금연에 성공하고 싶다면 금주를 병행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자신의 의지만으로 음주나 흡연을 그만두지 못한다면 지역의 중독관리지원센터나 전문병원의 도움을 받는 것이 효과적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