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발만 급속히 늙는다”… 전 세계 ‘50명’ 겪고 있는 희귀질환, 뭘까?

입력 2025.03.28 07:15

[세상에 이런 병이?]

고트론 증후군을 겪는 20대 여성 환자의 손./사진=Archives of Dermatology
세상에는 무수한 병이 있고, 심지어 아직 밝혀지지 않은 미지의 질환들도 있다. 어떤 질환은 전 세계 환자 수가 100명도 안 될 정도로 희귀하다. 헬스조선은 매주 한 편씩 [세상에 이런 병이?]라는 테마를 가지고 우리가 상상하기 어려운, 믿기 힘들지만 실재하는 질환들을 소개한다. (편집자주)

흔히 손등을 보면 그 사람의 나이를 알 수 있다고 말한다. 손등 피부는 얇아서 나이 들수록 주름이 잘 생기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아직 열 살인데도 손등이 노인처럼 나이 든 모습을 보인다. 이들이 겪는 희귀질환인 ‘고트론 증후군(Gottron syndrome)’에 대해 자세히 알아봤다.

고트론 증후군은 주로 사지 말단, 즉 손발의 피부가 비정상적으로 약해 빠른 노화를 보이는 희귀질환이다. 고트론 증후군 환자들은 유아기부터 증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나지만, 대부분 태어났을 때부터 손발의 피부가 건강한 아기보다 약한 모습을 보인다. 이 질환은 1941년 독일 피부과 의사 하인리히 고트론에 의해 처음 발견됐다.

미국 희귀질환기구(NORD)에 따르면 현재까지 고트론 증후군을 진단받은 환자는 전 세계에 50명밖에 없다. 환자 수가 적기 때문에 주요 증상이 정해져 있기보다 환자들이 겪는 증상이 곧바로 연구에 반영되는 편이다. 현재까지 기록된 환자들은 공통적으로 손발 피부가 비정상적으로 얇고 팽팽한 특징을 보인다. 이런 피부 상태는 얼굴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환자들의 손발은 성인이 되어서도 어린이처럼 작은 크기를 유지한다.

고트론 증후군 환자들은 피부 아래 지방인 피하지방이 줄어 피부가 위축한다. 이로 인해 뺨이 움푹 들어가거나 입술이 얇은 모습인 경우가 많다. 피하지방이 감소하면서 피부가 얇은 가슴 부위의 정맥이 두드러지는 환자들도 있다. 쉽게 멍이 들거나 피부가 변색하기도 한다. NORD에 따르면 환자 대부분은 손발톱이 정상이지만, 일부 환자에게는 손발톱이 비정상적으로 두꺼워진 모습이 발견됐다. 머리카락까지 지나치게 가늘어지는 환자도 보고된 적 있다.

골격계 이상을 겪는 환자들도 있다. 주로 뇌를 싸고 있는 두개골의 봉합이 늦어지는 모습을 보인다. 신생아들은 두개골의 뼈들이 서로 붙어있지 않고 떨어져 있다. 그래야 출산할 때 잘 빠져나올 수 있고, 아직 어린 뇌가 발달하면서 커질 공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두개골은 서서히 닫히기 시작해서 생후 18개월쯤에는 완전히 닫히게 된다. 그런데, 고트론 증후군 환자들은 24개월 이후까지도 두개골이 닫히지 않는다. 이외에도 손가락과 발가락이 계속 부러지거나, 뼈조직이 점점 흡수되고 새로 성장하지 않는 증상도 겪을 수 있다.

13살 고트론 증후군 환자의 손발 사진./사진=Journal of Family Medicine and Primary Care
고트론 증후군은 아직 원인이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환자 수가 적어 가족력이 있는지도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전문가들은 LMNA 유전자 변이를 원인으로 지목하고 있다. LMNA 유전자는 라민A 단백질을 생산하는데, 라민A는 세포 사멸과 DNA 복제 등에 중요하다. 라민A 단백질이 제대로 생산되지 않으면 세포의 핵이 불안정해지고, 이로 인해 손발에서 이른 노화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고트론 증후군은 완치법이 없어 환자들은 증상을 완화하는 치료를 진행한다. 환자들은 피부과, 성형외과, 정형외과 등에서 치료를 받는다. 완치법은 없지만, 다행히 현재까지 보고된 환자들은 증상이 악화하는 경향을 보이지 않았다. 따라서 예후는 일반적으로 좋은 편이며, 지능과 수명에도 영향을 받지 않는다.

고트론 증후군은 다른 조로증(정상인보다 일찍 늙어 조기 노화를 보이는 질환)과 증상이 비슷할 때가 있어 환자 개인이 판단하려면 헷갈리기 쉽다. 대표적으로 베르너 증후군이 있다. 베르너 증후군은 느린 성장 속도를 보이며, 일부 환자들은 고트론 증후군 환자처럼 피부 위축이 나타난다. 다만, 베르너 증후군은 사춘기에 증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나 고트론 증후군과 차이가 있다. 정확한 진단을 원한다면 유전자 검사를 받을 것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