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아래 같은 발효, 같은 장은 없다

입력 2020.05.20 06:45

[내 인생의 소울푸드] 정명준 쎌바이오텍 대표

30년간 프로바이오틱스 개발 매진
전국 돌아다니며 전통 발효음식 찾아
"살아 숨 쉬는 음식, 生으로 즐겨야죠"

신지호 헬스조선 기자

한 사람의 삶이 온통 장(腸)에 집중돼 있는 광경을 얼마 전에 봤다. 생소하고 기이한 자리였다. 5월 초 서울 서초동 ㈜쎌바이오텍 회의실에서 만난 정명준(62) 대표의 관심과 정열은 오로지 사람의 장을 향했다. 소소하게, 좋아하는 음식 얘기나 들어봐야겠다 청한 자리에서 정 대표는 한국의 된장에 대해, 사실은 된장에 대해서만 한 시간 넘게 얘기했다. 나지막하고 느긋하게, 전국에 포진한 된장에 대해, 된장을 포함한 전통 발효식품의 효능에 대해 설명하고 자랑했다. 삼십년 가까운 그의 프로바이오틱스(probiotics) 관련 업력(業力)은, 단순하다할 만큼 강렬한 그의 된장 사랑으로부터 유추 가능했다.

신지호 헬스조선 기자

정 대표는 꽤 오래 전부터 3박 4일의 일정으로 전국을 돌곤 한다. 각지의 구석진 식당에서, 조그만 가내 수공업의 현장에서 새로운 된장을 발견하고 사오는 게 큰 즐거움이다. 새로운 된장? 무엇이 그리 새로운가. 그는 되묻는다. 남도(전라도)와 강원도와 경상도 된장의 차이를 기자는 아시는가.

남도의 된장은 노랗다. 강원도의 된장은 까맣다. 경상도의 된장은 짙은 밤색이다. 그게 지역에 따른 일반적 차이인지, 콩과 물과 공기와 제조 과정이 협업해 만들어낸 조화인지 알 수 없으나 '발효'에 유독 민감한 그의 눈과 혀에 똑같은 된장이란 없다. 비슷한 된장도 이 세상엔 없다.

신지호 헬스조선 기자

그렇게 발품으로 얻어온 천차만별의 식재료를 그는 한 줌이라도 허투루 소비하기 싫다. 귀한 것이니만큼 우선은 주위 사람들과 나눈다. 남겨진 된장은? 쌈 싸먹는다. 된장찌개나 된장국을, 그는 멀리 한다. 그 좋은 발효의 결과물을 왜 끓여 먹나. 농밀한 장(醬) 속에서 건강하게 살아 숨 쉬는 미생물들을 왜 죽이나.

면역세포의 70~80%가 우리 장에 집중돼 있다고 정 대표는 강조했다. 그가 신앙처럼 전도해 온 프로바이오틱스는 장 속에서 면역력을 강화하고, 장 질환을 억제한다. 프로바이오틱스의 대표 주자인 유산균은 그러나, 생명공학자인 정 대표의 눈엔 '트리거(trigger, 방아쇠)'에 그친다. 좋은 균들이 장 속으로 풍부하게 공급돼야 프로바이오틱스가 제 역할을 한다. 된장, 고추장, 김치, 가자미식해 속에는 온갖 미생물들이 살아서 숨을 쉬고 있다. 모두 정 대표가 틈만 나면 전국 각지를 돌아야 할 만큼 구애(求愛)하는 전통의 발효음식들이다.

신지호 헬스조선 기자

그는 그렇게 장(腸)과 장(醬) 사이, 어디엔가 놓여 있을 건강의 열쇠를 발견하고 나누기 위해 열심히 여행하고 사업했다. 그리고 오랜 여정의 끝에서 새로운 길을 모색 중이다. 요즘, 프로바이오틱스를 활용한 항암치료제의 개발에 진력하고 있다. 아직은 전임상단계일 뿐, 치료제 개발까지 가는 길은 멀지만 그는 서두르지 않고도 확신에 차 있다. 확신의 원천은 물론, 장(腸·醬)에 대한 그간의 연구와 애정이다.

의료계 뉴스 헬스케어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