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길영민 JK필름 대표
영화 국제시장이 파란을 일으키던 5년 전 겨울, JK필름 길영민(51) 대표는 서울 강남의 사무실 근처 이자카야에서 밤을 넘겨가며 요리 중이었다. 생선회, 채끝 샐러드, 오뎅탕, 대구탕, 함박스테이크 등등. 가끔은 스시도 잡았다. 사무실 일은 이른 오후에 마감했다. 걸출한 영화 제작자의 기묘한 행보, 그 연원은 다시 몇 년을 거스른다.
포스트 이벤트 블루(post-event blues)라고들 한다. 큰일을 겪은 뒤엔 우울과 허무가 온다. 길 대표도 그랬다. 2009년 해운대의 대흥행 후 길 대표의 마음은 정처를 잃었다. 사무실 근처를 산책하다 발견한 나카무라 아카데미 간판. 일본 요리라…. 6개월 초급에 6개월 상급 과정을 보태 생식·조림·구이·튀김·찜의 노하우를 전수받았다. 학원을 옮겨 이탈리아 요리에 6개월, 일본 가정식에 다시 6개월을 투자했다. 허무와 모종의 열망 끝에서 초보 요리사로 변신한 영화 제작자를 나중, 이자카야의 좁은 주방까지 내몬 것은 국제시장 개봉 직후 찾아온 또 한번의 허탈이었다.
크리에이티브의 시대에 제작자는 가리워진다. 작가들의 뒤에서 편집자가 잊히듯, 감독과 배우 뒤에서 영화 제작자는 잊힌다. 잊혀야 하는지도 모른다. 흥행과 참패 사이에서 널뛰는 감정에, 망각에 대한 불안이 가세하면 제작자들은 곧잘 길을 잃는다. 길 대표는 그렇게 끊긴 길들을 요리와 미식으로 이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