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또다시 집단 성폭행 사건이 발생했다. 지난 29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중학생 딸이 집단 성폭행을 당했다며 가해자 엄벌을 호소하는 어머니의 글이 올라왔다. 청원 내용에 따르면 피해자는 정형외과에서 전치 3주, 산부인과에서 전치 2주 진단을 받았다. 그러나 성폭행의 잔혹성은 피해자가 받는 정신적 트라우마에서 나타난다. 실제 2005년 밀양 여중생 집단 성폭행 사건 피해자 중 한 명은 PTSD, 우울증, 공황장애, 범불안장애, 식이장애 등 5가지 정신 질환을 앓으며 심각한 후유증을 겪었다.
재판 과정에서 또다시 상처… 대부분 1년 이상 치료받아
성폭행 피해자가 겪는 가장 대표적인 정신 질환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다. PTSD가 장기화되면 우울증, 불안장애 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일부는 고통을 떨쳐내기 위해 약물중독에 빠지기도 한다. 실제로 국내 연구에 따르면 외상에 노출된 사람 중 20.1%는 PTSD로 이어진다. 특히 성폭행 피해는 신체적·정신적 트라우마를 동시에 겪는 데다가, 대인관계와 직접적인 연관이 커 PTSD로 이어지기 쉽다. 사회적인 편견 때문에 피해를 드러내지 못하고 치료 시기를 놓치거나, 치료 과정에서 2·3차 트라우마를 겪으며 만성화되는 경우도 많아 치료 기간도 길다.
성폭행 트라우마로 나타나는 '급성기 증상'은 3~6개월 정도 치료하면 어느 정도 가라앉는다. 급성기란 ▲성폭행 장면을 계속해서 떠올리거나 ▲떠오르는 장면을 피하고자 특정 행동을 한다거나 ▲과각성 상태에 빠져 하루종일 불안감을 느끼는 등 일상생활이 어려운 심각한 상태를 말한다. 그러나 급성기 증상이 사라졌다고 치료가 끝나는 것은 아니다. 서울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주수현 교수는 "피해자는 사건 때문에 재판을 하거나, 치료를 받고, 주위와 대화하는 과정에서 2·3차 트라우마를 겪는다"며 "이로 인해 성폭행 트라우마 환자들은 1년 이상 치료받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성폭행으로 인한 트라우마 '완치'는 불가능
보통 PTSD 치료는 사건 당시 장면을 다시 떠올려서 인지부조화를 개선할 수 있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그러나 성폭행은 사건 자체를 다시 떠올리는 것을 극도로 괴로워하는 환자가 많기 때문에 1차적으로 약물치료로 급성기 증상을 가라앉히는 치료부터 시작한다. 성폭행 피해자는 특히 '내 잘못으로 성폭행을 당했다'고 생각해 자책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피해자가 비난받을 상황이 아니며, 자책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인지하도록 돕는 치료도 동반된다. 최근에는 'EMDR(안구운동 민감소실 및 재처리요법)' 치료를 하기도 한다. 임의로 안구운동을 시켜 부정적인 생각을 줄여주는 치료법으로, 트라우마 사건을 다시 떠올릴 필요가 없어 성폭행 피해자들에게 자주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성폭행 트라우마에 '완치'는 없다. 주수현 교수는 "강렬한 기억은 망각이 어렵기 때문에 큰 트라우마일수록 완전히 없애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성폭행 트라우마 치료의 목표는 다시 일상생활로 복귀할 수 있을 정도로 회복하고, 대인관계를 원래대로 되돌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여전히 성폭행 당시 생각을 하면 괴롭더라도, 생각이 나는 빈도를 줄이고, 생각이 나도 금세 다시 잊어버리고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는 것을 목표로 한다는 것이다.
가족·지인의 역할이 중요, 제때 치료받도록 도와야
성폭행 트라우마 극복을 위해서는 주변인의 역할이 중요하다. 가족·지인 등은 피해자가 성폭행 사실을 털어놓았을 때 함께 걱정해주고 돕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게 좋다. 너무 놀라 하거나, 피해자보다 더 힘들어하는 태도를 보이는 것은 피한다. 특히 자책하는 피해자에게는 '네 잘못이 아니다'라고 말해주는 게 중요하다. 트라우마로 고통받고 있다면 제때 치료를 받도록 이끌어 주는 것도 중요하다. 주수현 교수는 "가해자 중에서는 어린 시절 성폭력 관련 트라우마가 있는 경우가 다수 있다"며 "어린 시절 올바른 성 인식을 갖도록 교육하고, 특히 피해를 당했을 때 스스로 도움을 요청할 수 있도록 하는 인식을 가르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