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신도 경악했다… 韓 ‘4세·7세 고시’ 사교육 열풍, 이대로 괜찮을까

입력 2025.03.27 11:30

“수도권 중심 과도한 사교육, 저출산에 영향”
과도한 학습, 불안·자신감 저하하고 우울증 위험도

아이들
메인사진=클립아트코리아
우리나라 영유아 사교육 실태를 여실히 드러내는 단어 ‘4세 고시’와 ’ 7세 고시’. 외신들도 앞다퉈 국내 학원 문화를 다루고 있다. 이들은 ‘학원(hagwon)’을 한국어 발음 그대로 소개하며 한국의 사교육 과열을 꼬집는다. 영유아 시기부터 시작하는 사교육, 과연 아이들에게 이롭기만 할까.

◇학교 입학도 전에… 학원비만 월 33만 원
사교육 시장은 점점 거대해지고 있다. 지난 13일 교육부가 발표한 ‘2024년 초중고 사교육비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사교육비 총액은 29조 2000억 원으로 전년 27조 1000억 원에서 2조 1000억 원(7.7%) 증가했다. 2007년부터 사교육비를 조사하기 시작한 이래 최고치다. 영유아로 좁히면 지난해 사교육비 총액은 8154억 원이다. 사교육 대상 연령이 점차 낮아지면서 부모들의 사교육비 부담도 나날이 늘고 있다. 지난해 7~9월 6세 미만 영유아를 자녀로 둔 부모 1만3241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전체 사교육 참여율은 47.6%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아이 사교육비로 월 평균 33만2000원을 지출하고 있었다.

지난 16일,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는 “한국의 학문적 경쟁이 6세 미만의 절반을 입시 학원으로 몰아넣고 있다”며 “한국의 부모들도 이러한 사교육 부담에 대한 불만이 크지만 동시에 자신의 자녀가 뒤떨어지는 것은 두려워 사교육을 택한다”고 보도했다. 영국 BBC도 “한국은 4세부터 수학, 영어, 음악, 태권도 등 다양하고 값비싼 과외 활동에 참여한다”며 “수도권을 중심으로 일어나는 과도한 교육 시스템이 저출산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문제 푸는 아이
영국 BBC 보도 내용 중 일부./사진=영국BBC
◇“신체·인지·사회정서 발달 저해”
이러한 사교육 열풍이 아이들에게 미치는 영향은 어떨까. “정작 아동의 학업 성취나 정서 발달에는 유의미한 효과가 없고 되레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7세 이전의 영유아 시절에는 정서적 자극과 사회정서 자극이 주어져야 하는 시기다. 정서적인 경험이 충분히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인지적인 암기 위주의 학습만 하면 뇌에 ‘인지적 과부하’가 온다. 가천대 유아교육과 장유진 교수는 “다양한 오감 활동을 통해 신체, 인지, 사회정서 등의 영역이 골고루 발달돼야 하는 중요한 시기”며 “영유아 시기에 학습에 치중된 교육을 받으면 그때만 기를 수 있는 인성과 가치관 정립이 제대로 안 이뤄질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아이들은 쉽게 짜증을 내고, 불안감이나 자신감 저하로 이어질 위험이 크다”고 말했다.

지나친 사교육은 소아우울증으로도 이어질 수 있다. 어린 나이부터 시작되는 학업 부담이 아이 뇌 발달에 악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서울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유재현 교수는 “난이도 높은 문제와 부모의 압박은 자신 능력에 대한 한계를 느끼게 한다”며 “반복되는 좌절감은 우울감이나 불안에 빠지게 한다”고 말했다. 어릴 적 우울증은 만성적이며, 성인이 된 후에도 재발할 위험이 높다. 하루 네 시간 이하의 사교육을 받은 초등생은 약 10%가, 하루 네 시간이 넘는 사교육을 받은 아이들은 30%가 우울 증상을 보였다는 한림대성심병원 연구 결과가 있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골든타임을 놓치면 해결이 어려워진다. 가천대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배승민 교수는 “영유아는 언어적 발달이 완전히 안 된 상태라 감정 표현에 어려움을 겪는다”며 “어릴 때부터 쌓인 스트레스를 적절히 해소하지 못한 채 사춘기 시기로 접어들면 이미 골든타임을 놓친 상태라서, 공격적인 성향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고시형 교육은 ‘정신적 학대’와 다름 없어
사교육이 아닌 교감에 더 집중해야 할 때다. 영유아 시기에는 주도적이고 자유롭게 놀게 해야 한다. 부모와 함께하는 경험을 통해 성장과 발달을 독려해야 한다. 유재현 교수는 “부모가 아이의 성향, 상황 등을 잘 인식해야 한다”며 “아이의 감정을 이해하고 그에 알맞은 수준의 교육을 해야 학업도 자연스럽게 성공적으로 따라 갈 수 있다”고 말했다. 배승민 교수 역시 “영유아의 고시형 교육은 ‘정신적 학대’와 다름이 없다”며 “영유아의 스트레스 반응을 보다 더 세심하게 관찰하고 편안한 상황을 만들어주려는 부모의 노력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4세·7세 고시
4세 고시는 유치원 입학을 앞둔 4세 아이들이 유아 영어학원, 일명 ‘영어 유치원’에 들어가기 위해 치르는 레벨 테스트를 말한다. 7세 고시는 초등학교 입학 전 유명 영어·수학 학원에 들어갈 자격을 가리기 위해 치르는 시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