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라면 명심하자… "아이의 행복 말고 뭣이 중헌디"

사공정규의 우리 아이 뇌 이야기

학생들
사진=클립아트코리아
지금의 어른 세대라면 1989년에 개봉한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라는 영화를 기억할 것이다. 실제 이 영화는 1986년 성적 스트레스로 인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여중생이 남긴 마지막 문구를 제목으로 삼았다. 성적이 최하위인 고교 2년생 봉구(김보성)는 반에서 성적이 1등이고 얼굴도 예쁜 은주(이미연)를 좋아한다. 늘 공부만 하느라 친구가 많지 않은 은주는 처음에는 봉구의 관심을 외면하지만 봉구의 순수한 열정에 흔들려 마음을 열고 모처럼 야외에서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며 기쁨을 만끽한다. 다시 돌아온 은주는 7등이라는 성적을 받게 되고 부모의 차가운 눈초리에 아파트 옥상에서 투신자살을 하고 만다. 운동장에 은주의 영구차가 있고 텅 빈 은주의 자리에 꽃 한 송이가 놓인다.

이 영화는 당시의 성적지상주의의 교육현실을 제대로 꼬집었다는 호평과 함께 이미연의 미모에 남성 팬(fan) 심이 폭발하며 큰 화제를 모은바 있다. 30년이 지난 오늘의 현실은 어떤가. 여전히 우리는 성적을 비관한 청소년들의 자살 소식을 듣고 있다.

2022년 교육시민단체 '사교육 걱정 없는 세상'이 초중고생 5천여 명을 상대로 한 설문조사에서 학생 2명 중 1명꼴로 학업이나 성적 때문에 불안하거나 우울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고, 성적 스트레스로 자살 생각 을 해본 적이 있다고 답한 학생도 4명 중 1명꼴이었다. 실제로 스스로 목숨을 끊는 초중고생도 늘어가고 있는 추세이다. 여성가족부와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이 발표한 ‘2022 청소년통계’에 따르면, 2010년에는 안전사고가 청소년 사망원인 1위였다. 하지만, 2011년 이후에는 고의적 자해 즉 자살이 계속해서 사망원인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정말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부모들은 머리에서 발끝까지 챙겨주는 청소년 자녀들에게 무슨 스트레스가 있을까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성인보다 청소년에서 평상시 스트레스를 많이 느끼는 사람의 비율인 ‘스트레스 인지율’이 훨씬 높다. 국민건강통계를 살펴보면, 성인들의 스트레스 인지율은 20% 후반인 반면 청소년들의 스트레스 인지율은 35%~46%에 달한다. 2021년 청소년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13~18세의 가장 큰 스트레스는 성적·공부(46.5%)로, 압도적인 1위이다. 2021년 우리나라 아동·청소년 행복지수는 OECD(Organization for Economic Cooperation and Development, 경제협력개발기구)에서 꼴찌이다. 우리나라 아동·청소년의 학업 스트레스는 유엔 발표에 따르면 세계 1위이다.

이제 학부모 독자 여러분께 물어보자. "살아보니 성적과 행복이 비례하던가?" 아니라는 것을 경험했으면서 왜 자녀의 성적에 목숨을 거는가. 우리 아이들이 그 성적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고 그것 때문에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데도 왜 목숨을 거는가. 영화 곡성(哭聲)의 유행어를 인용해 말해본다. “아이의 행복 말고 뭣이 중헌디”

아이는 성적 스트레스로 생사(生死)를 다툴 만큼의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데, 부모가 이 아이에게 다시 성적으로 과도한 압박감을 준다면, 불난 데 휘발유를 뿌리는 격이다.

진료를 하다보면, 어떤 부모는 나에게 와서 "교수님 우리 아이 공부 잘하게 해 주세요" 라고 말한다. 내가 그 아이 공부 잘하게 해줄 수 있을까. 예를 들어 그 아이가 주의력결핍과잉행동 장애(Attention Deficit Hyperactivity Disorder, ADHD)가 있다면 주의력을 높여주는 치료를 해서, 아이가 실제 공부에 집중하게 된다면 성적이 높아질 수 있을 것이다. 축구선수가 다리에 골절을 입어 축구를 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수술과 재활 치료를 통해 다시 선수 생활을 할 수 있게 해 주는 기반을 마련해주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30명 정도 되는 반에서 20 몇 등 하는 아이가 ADHD 치료를 받은 후 3등을 했다. 그래서 내가 "OO아! 잘했어 따봉" 했는데, 그 아이의 어머니가 1등 못했다고 애를 꾸짖는 거다. 내가 애를 잠시 진료실 밖으로 물린 후에 "어머니의 학교 성적은 몇 등이었나요?"라고 물어보니까 대답을 못한다.

어떤 부모는 나에게 와서 "교수님 성적은 필요 없고, 학교만 가게 해 주세요"라고 부탁한다. 가출한 애를 둔 부모는 "교수님 성적 필요 없고, 학교 안가도 괜찮아요. 애가 집에 들어오게만 해 주세요"라고 말한다. 아이가 성적을 비관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경우도 있다. 이런 비극에 비하면 아이의 성적이 좋지 못한 것은 가벼운 일이다. 그런데도 부모들이 이를 수용하지 못하는 것을 종종 목도한다.

왜 자녀에게 ‘성적’으로 상처를 주면 안 되는가? 학교 공부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학교를 졸업한 후, 다양한 일에 도전하고 경험하며 인생을 공부하는 것이다. 성적에 너무 집착하면 자녀의 현재 행복감도 떨어지지만, 후에 더 중요한 인생 공부를 하지 않게 된다. 부모가 자녀의 성장을 가로막는 것이다. 극단적인 경우 목숨을 끊는 선택으로까지 몰고 갈 수 있다. 부모는 ‘자녀에게 중요한 것은 결과로서의 성적이 아니라, 과정을 통한 성장’이라는 철학과 신념을 가져야 한다. 인생은 마라톤이다. 성적이 아니라 자신의 능력을 찾아내고 자신이 잘하는 점을 찾아내 꾸준히 노력하게 하는 자녀의 성장에 목표를 두어야 한다.

성적으로 상처를 주어서는 안 된다. 부모가 자녀에게 성적으로 준 상처는 자녀의 자아 존중감에 상처를 주고, 자녀의 미래와 행복 모두를 앗아간다. 다시 한 번 명심하자. “아이의 행복 말고 뭣이 중헌디”

(*이 칼럼은 동국의대 정신건강의학과 사공정규 교수의 기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