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아 재활은 '티끌모아 태산'… 장기전으로 생각해야" [헬스조선 명의]

입력 2023.05.15 09:00

'헬스조선 명의톡톡' 명의 인터뷰
'소아 재활치료 명의' 인하대병원 재활의학과 김명옥 교수

 
소아청소년과 존립이 위태로운 요즘. 유난히 더 치료받기 어려운 어린이 환자들이 있다. 바로 ‘재활치료’가 필요한 아이들이다. 특히 비수도권 지역에 사는 뇌성마비 아이의 부모들은 아이를 데리고 수도권까지 올라와서 치료받는 경우가 많다. 생소한 분야라 정보를 얻을 곳도 마땅치 않다. 그러나 소아 재활치료는 ‘일찍’ ‘​꾸준히’ 하는 것이 답이다. 7살 이후부터는 기능 회복 속도가 더뎌지기 때문이다. 아이가 어떤 증상을 보일 때, 어떤 재활치료를 받아야 하는지, 대한소아재활·발달의학회 회장인 인하대병원 재활의학과 김명옥 교수에게 물었다. 

인하대병원 김명옥 교수
인하대병원 재활의학과 김명옥 교수./사진=신지호 기자
- 재활치료가 필요한 소아들은 어떤 증상을 보이나?
재활치료가 필요한 아이들은 다양하다. 보통은 움직임이 자유롭지 않거나 신체·정신·언어 발달상 문제가 있어 내원한다. 크게 ▲뇌성마비·뇌종양·뇌수막염 등 뇌 질환 ▲근디스트로피·척추측만증·평발·사경 등 근골격계 질환 환자가 많다. 건강 이상이 있는 건 아니지만, 인지 발달이나 언어 상호작용 기능이 떨어지는 아이들도 재활치료 대상이다. 단일 질환을 기준으로 보자면 뇌성마비 환자의 비율이 높다. 뇌성마비는 출산 시 아이에게 뇌출혈이 생기거나, 미숙아로 태어나 호흡에 문제가 생기면 발생한다. 뇌를 다친 것이다 보니 신체 마비뿐 아니라 시각, 청각, 언어 등 다양한 영역에 문제가 발생한다. 이에 재활치료도 다양한 영역에서 진행된다.

재활은 초기 치료가 중요하다. 예컨대, 사경이 있는 아이들은 한쪽 목의 흉쇄유돌근이 딱딱하고 짧은 상태라, 고개가 모로 약간 틀어져 있다. 태아 시절 머리가 골반을 향하지 않고 자궁 위쪽을 향하는 ‘역아’ 상태였거나, 출산 시 아이를 밖으로 끄집어내는 과정에서 목 근육이 손상됐을 때 사경이 잘 생긴다. 재활 치료로 짧아진 흉쇄유돌근을 늘려 주면, 보통은 6개월 내로 고개가 제자리를 찾는다. 그러나 이 시기를 놓치면 틀어진 고개가 성인기까지 유지될 수 있다.

- 태어났을 땐 괜찮았지만, 자라면서 재활치료가 필요해지는 아이들도 있나?
어릴 땐 괜찮다가 신체가 급성장하는 초등학교 5~6학년 시기에 척추측만증이 생기는 사례가 많다. 최대한 빨리 척추보조기를 착용해서 척추가 더 휘어지지 않게 해야 한다. 성장이 끝난 후부터는 척추가 더 휘어지지 않으니 척추뼈가 성장을 마치는 15세 무렵까지만 착용하면 된다. 보조기는 씻는 시간을 제외하고 23시간 착용하는 것이 원칙이다. 착용하면 일상생활이 불편하기 때문에 보조기를 착용하는 대신 도수치료나 전기자극치료를 받으면 안 되느냐는 아이들이 많다. 그러나 도수치료와 전기자극치료는 측만증 진행을 지연시키는 효과가 척추보조기만큼 크지 않다. 아이들을 설득해서 보조기를 최대한 오랫동안 차게 하는 게 최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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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에서 만든 대운동 발달표./사진=세계보건기구(WHO)
- 아이가 어떤 증상을 보일 때 재활의학과를 방문해야 하나?
아이들이 자라가며 자연스레 달성하는 발달 단계가 있다. 3개월쯤 목을 가누고, 6개월쯤 혼자 앉거나 몸을 스스로 뒤집을 수 있고, 한 돌 무렵엔 단어 하나를 스스로 구사할 수 있고, 두 돌 이내에는 두 단어를 연결해 문장을 만드는 것이다. 물론 개인차에 따른 오차범위가 있기 때문에 이 시기보다 약간 늦는대서 꼭 치료가 필요하진 않다.

그러나 오차범위를 벗어났다면 재활치료 대상이다. ▲9개월이 지났는데도 혼자 앉지 못한다 ▲12개월쯤 걷는 게 보통인데 18개월 차에도 걷지 못한다 ▲두 돌이 다 됐는데도 단어 하나를 말하지 못한다 ▲세 돌이 됐는데 문장을 못 만든다 등이 그 예다. 이럴 땐 발달 지연이 의심되므로 재활의학과를 방문해야 한다.

- 재활치료로 신체·언어 기능을 어디까지 끌어올릴 수 있나?  
중증 뇌성마비 환자라든지, 지적 장애가 심하다든지, 자폐성 장애와 발달 장애가 동시에 있다면 사실 재활치료를 받아도 ‘일반인 수준’의 완치를 기대하긴 어렵다. 그러나 완치할 수 없을지언정 재활치료가 아이들의 삶을 훨씬 편하게 만들어주는 건 분명하다. 가령, 몸이 뻣뻣하게 경직된 뇌성마비 소아는 종아리 근육 긴장도가 심해 발뒤꿈치가 들릴 수 있다. 그러면 소위 말하는 ‘까치발’ 상태로 비틀비틀 걸어 다니게 된다. 이럴 때 종아리에 보툴리늄 톡신(보톡스) 주사를 놓아 근육의 긴장도를 낮춰주면 아이가 훨씬 안정적으로 걸을 수 있다. 재활치료는 100% 완치보단 ‘당장의 작은 개선’을 목표로 삼는 게 좋다. 물론 장기적 효과가 없는 건 아니다. 단기적 개선이 누적되다 보면 장기적으로 아이들의 기능 회복에도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발
뇌성마비 환자의 변형된 발./사진=김명옥 교수 제공
- 재활의학과를 찾은 소아들은 어떤 검사를 받게 되나?
재활의학과를 찾아오는 아이들은 신체적 발달 지연이 있거나 인지·언어 등 정신적 발달 지연이 있다. 전자의 경우 우선 아이의 출생력을 꼼꼼히 확인하고, 아이의 움직임과 자세가 어떤지 관찰해 원인이 뇌질환인지, 근육질환인지, 신경질환인지 감별한다. 근육 긴장도가 지나치게 높은 곳은 없는지, 비정상적인 반사가 남아있진 않는지도 확인한다. 뇌손상이 있으면 아주 어릴 때 잠깐 있다가 생후 6개월쯤 없어져야 하는 ‘원시 반사’가 남아있곤 해서다. 이외에도 ▲대운동 기능평가 ▲베일리영유아발달평가 등 아이들의 발달 단계를 진단할 수 있는 검사를 통해 발달이 어느 정도 지연됐는지, 어떤 영역에서 특히 지연이 심한지 확인한다. 모든 과가 그렇지만 재활의학과는 특히 정확한 진단이 중요하다. 뇌성마비와 증상이 비슷해 자주 혼동되는 세가와병의 경우, 환자에게 도파민을 투여하면 상태가 극적으로 호전된다. 세가와병 소아 환자가 내원했는데 뇌성마비로 오진할 경우 환자는 치료할 수 있음에도 치료하지 못하는 것이다. 

언어나 인지 영역의 문제로 내원하는 아이들은 크게 세 부류로 나뉜다. 아이가 말이 늦은 게 걱정돼 재활의학과 검사를 받아보니, ▲정신·인지·신체적 이상은 전혀 없고 오로지 말만 늦은 경우 ▲타인과의 상호작용 능력이나 인지 능력이 떨어져 말이 늦는 경우 ▲주의집중력장애(ADHD) 등 정신과적 문제 탓에 언어 발달이 더딘 경우다. 아이가 어떤 유형인지 판단하기 위해 언어평가, 지능검사, 자폐스펙트럼검사, 사회성숙도검사 등 다양한 검사를 시행한다.

- 소아 재활 치료의 세부 유형은 어떻게 되나?
소아 재활 치료는 ▲물리치료 ▲작업치료 ▲언어치료 ▲인지치료 등 다양한 세부 유형이 있다. 소아 재활에서 물리치료는 주로 운동치료다. 마비된 근육을 전기 자극해 근육이 수축할 수 있게 만들어주거나, 스트레칭으로 근육과 관절의 긴장도를 완화하는 것이다. 물리치료가 큼직큼직한 대운동을 다룬다면, 작업치료에선 손동작처럼 더 섬세하고 일상적인 동작을 훈련한다. 한쪽 팔다리가 약해진 편마비 상태의 뇌성마비 소아는 잘 쓰는 팔을 못 쓰게 장갑이나 붕대로 감아놓기도 한다. 상대적으로 마비 강도가 심해 덜 쓰는 팔을 쓰도록 유도하기 위함이다. 언어치료는 언어발달 속도가 더디거나, 입을 움직여 말소리를 내는 데 이상이 있을 때 언어치료사가 시행한다. 말을 심하게 더듬거나, 구순구개열·청각장애 이상 등으로 말이 늦게 트일 때 반드시 필요하다. 인지치료의 경우 최근 인지 기능을 향상시키는 전산화 인지 재활 프로그램이 개발돼 임상에서 활용되고 있다. 이중 꼭 하나의 치료만 선택해서 해야 하는 건 아니다. 아이의 상태를 정확히 진단하고, 발달이 지연되고 있는 영역이 여러 개라면 가장 필요한 치료를 취사선택해서 종합적으로 진행하게 된다.

- 약물치료나 수술치료를 진행하는 경우도 있나?
앞서 말했듯 몸이 경직된 뇌성마비 아이들에게 보툴리늄 톡신(보톡스)을 사용하기도 한다. 경직이 심한 부위에 보툴리늄 톡신을 주사한 후 운동치료를 적극적으로 하면, 경직된 근육 탓에 아이의 자세가 비틀리는 걸 줄일 수 있다. 손가락이 잘 펴지지 않는 뇌성마비 환자의 경우 손가락을 구부리는 근육에 주사하기도 한다. 근육 긴장이 너무 심하면 보툴리늄 톡신만으로 완화되지 않는다. 이럴 땐 근육의 힘줄을 늘려주는 정형외과적 수술을 시행하기도 한다. 만 4~6세 정도에 시행하는 게 가장 효과적이다. 신경외과적 수술을 진행할 때도 있다. 척수신경절제술을 통해 척수신경근 중에서도 감각신경인 ‘후근’만 절제하면, 근육이 마비되지 않으면서 경직은 완화된다. 단, 수술은 뇌성마비 소아 중에서도 다리 근육 경직도가 심한 유형에게 효과가 좋다. 신체 균형을 잘 잡지 못하는 ‘운동실조형’ 환자와 자신이 조절할 수 없는 움직임이 나타나는 ‘불수의 운동형’ 환자에겐 크게 효과적이지 않다. 

인하대병원 김명옥 교수
인하대병원 재활의학과 김명옥 교수./사진=신지호 기자
- 재활치료를 받는 소아 환자들은 언제까지 재활치료를 이어나가야 하나?
재활치료를 받으러 오는 소아 환자 대부분은 ‘완치’가 불가능한 질환이나 장애를 가지고 있다. 살면서 계속 치료받고 몸을 관리해야 한다는 뜻이다. 특히 뇌성마비는 환자의 85% 이상이 40대 이상까지 생존한다고 알려졌다. 그러나 스스로 걸을 수 있는 사람은 전체 환자의 약 58%다. 이러한 신체 움직임 기능은 대부분 7세까지만 학습될 수 있다. 이 시기를 넘길수록 기능을 습득하기가 점점 어려워진다. 아이가 어릴 때 재활의학과 내원치료를 집중적으로 받는 게 좋다.

성인이 돼서는 꼭 재활의학과 내원 치료를 받지 않더라도 집에서 근력 강화 운동을 하는 등 노력을 해야 한다. 나이 들면 근력이 감소하는 건 당연하지만, 뇌성마비 환자들은 일반인보다 그 시기가 더 빠르다. 운동 능력이나 전반적인 운동량 자체가 일반인보다 적을 수밖에 없어서다. 젊을 땐 잘 걷던 환자가 50대가 돼 갑자기 못 걷게 되는 예도 있다. 경제적, 시간적 부담 탓에 재활의학과 내원 치료를 평생 받진 못하더라도, 근력 유지에 도움되는 운동을 집에서 꾸준히 해야 한다.

- 재활 목적의 근육 운동은 강하게 할수록 좋나?
재활 목적으로 근력 운동을 할 땐, 근육의 힘을 최대치로 사용하지 말고 그보다 낮은 강도로 운동해야 한다. 최대 강도로 두세 번 운동하는 것보다 낮은 강도로 수십 번 반복하는 게 근육 지구력 향상에 더 이롭다.

- 재활치료를 받는 소아의 보호자가 꼭 기억해야 할 게 있을까?
가정에서 부모가 해 줄 수 있는 재활운동법을 배워 치료사에게 의존하는 정도를 줄이는 게 좋다. 장기적으로도 이편이 더 이롭다. 아이가 성장하면서 재활의학과 내원 치료 빈도가 줄어들더라도, 가정에서 계속 재활운동을 해야 근력이 잘 유지되기 때문이다.

- 좋은 소아재활센터를 고를 때 꼭 따져야 할 기준이 있나?
전문 인력, 시설, 장비 모두가 제대로 갖춰진 곳을 찾아야 한다. 최근 지역별로 공공어린이재활병원 4곳, 재활센터 9곳이 개원을 준비 중이다. 민간 의료기관 13곳을 어린이 재활의료기관으로 지정해 운영비를 지원해주는 시범사업도 진행되고 있다. 이렇게 공인된 병원이나 센터에서 재활치료를 받길 권한다. 의료기관이 아니고, 재활의학과 전문의가 상주하지 않는데도 ‘재활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양 홍보하는 유사의료기관을 조심해야 한다. 재활센터를 선택할 땐 의료기관인지 재활의학과 전문의가 상주하는지 꼭 확인해보는 게 좋다. 

인하대병원 김명옥 교수
인하대병원 재활의학과 김명옥 교수./사진=신지호 기자
김명옥 교수는…
고려대 의과대학 의학사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재활의학전공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인하대병원 사회공헌지원단장이자 재활의학과 교수로서 아이들의 치료에 힘쓰고 있다. 오케스트라 지휘자가 여러 악기를 조절해 아름다운 음악을 만들듯, 아이들에게 꼭 필요한 치료를 적절히 조합해 상태 호전을 돕는 것에 보람을 느낀다. 2004~2005년 미국 토마스제퍼슨대학병원 척추손상센터 연구자(research fellow)로 근무했을 정도로 학술 활동에 열정적이다. 현재 대한소아재활·발달의학회, 대한발의학회 회장을 지내고 있으며, 이외에도 대한재활의학회, 대한척수학회 등 다양한 학회에서 임원을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