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갈이로 턱이 아픈 사람들은 한 번쯤 ‘이갈이 방지 마우스피스(스플린트)’를 검색해 봤을 것이다. 따뜻한 물에 담가 말랑해진 상태서 이에 물면, 내 치아 모양에 꼭 맞는 마우스피스가 된다는데…. 그렇다면 치과에 가지 않아도 저렴한 자가 치료가 가능한 걸까?
◇‘셀프’의 한계, 완벽한 맞춤형 장치 제작 불가
신촌세브란스병원 구강내과 김성택 교수는 “사람의 치아는 벽에 박힌 못처럼 고정된 게 아니어서 시간이나 상황에 따라 약간씩 이동하므로 완벽한 맞춤형 마우스피스를 만들려면 위아래 치아 본을 떠야 한다”고 말했다. 치아에 정확히 들어맞지 않는 장치를 계속 사용하는 경우 이가 마우스피스 모양을 따라 이동해, 원래 교합이 정상이던 사람도 부정교합이 생길 수 있다. 김성택 교수는 “치과에서 정확히 제작한 마우스피스가 아닌 기성 마우스피스를 사용할 경우 상황에 따라 잠깐 이동한 치아가 그 자리에 굳어버릴 가능성이 크다”며 “장기적으로 사용할 경우 교합이 영구적으로 변해 수년간 수백만 원을 들여 교정치료를 해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의료기기 사용 후 발생한 부작용을 망라한 미국 식약처(FDA)의 ‘제조사 및 사용자 기기 경험(Manufacturer & User Facility Device Experience, MAUDE)’에 따르면, 기성품 마우스피스를 착용한 경험이 있는 소비자와 제품 제작사로부터 ▲턱관절 장애 ▲부정교합 ▲턱 통증 등의 피해가 보고됐다.
◇‘셀프 본뜨기’후, 업체에 보내 주문 제작하는 장치도 권장 안 해
치아 본뜨기 키트를 우편으로 받은 소비자가 스스로 본을 떠 업체로 보낸다. 그러면 업체에서 그 본뜬 모형을 바탕으로 마우스피스를 제작해 소비자에게 재발송한다. 모 의료기기 제작업체에서 소위 ‘맞춤형 마우스피스’를 제작·판매하는 방식이다. 제작 단계부터 소비자 맞춤이라, 완성품을 셀프로 성형하는 기성 마우스피스보다 더 정교하단 차별점을 내세운 것이다. 하지만 비전문가인 소비자가 스스로 치아 본을 뜨는 게 과연 안전할까?
영국치의학저널(British Dental Journal)에 2014년 게시된 논문 ‘온라인에서 처방 없이 살 수 있는 이갈이 스플린트(Over-the-counter bruxism splints available on the Internet)’에 따르면, 비전문가가 스스로 치아 본을 뜰 경우 모든 치아를 인상재(치아 본을 뜰 때 입안에 넣는 무른 물질)안에 제대로 넣지 못해 일부 치아가 누락될 수 있다. 이 경우 제작된 맞춤 장치가 치아 일부만 덮게 돼, 장치에 덮이지 않은 치아는 바깥으로 밀리고 장치 내의 치아는 치아를 감싼 뼈인 치조골 쪽으로 파고들며 치열이 변형될 소지가 있다. 논문 저자들은 “자신의 치아 본을 스스로 완벽하게 뜨는 것은 치과 의사에게도 어려운 일”라고 지적했다. 김성택 교수 역시 “셀프 인상채득을 통해 제작한 마우스피스도 기성 마우스피스와 같은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며 “전문의로서 추천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치과 전문의 아닌 일반인이 치아를 본뜨는 건 현행법상 불법이기도 하다. 김성택 교수는 “사람 입에서 본을 뜨는 행위는 의료법상 치과의사 및 치과 위생사만 가능하고 일반의사·한의사·간호사도 할 수 없는 의료영역”이라며 “치아 본을 뜨는 재료는 치과 재료로 분류돼 이 재료를 일반인이 의료 목적으로 구매·사용하는 것 역시 불법이다”라고 말했다.
◇올바른 이갈이 치료는 치과에서 전문가에게
김성택 교수는 이갈이 마우스피스를 맞추고자 하는 경우 반드시 치과의사와 상의할 것을 권했다. 치아 위아래 본을 정확하게 떠서 단단한 소재로 제작한 마우스피스가 가장 안전하기 때문이다. 몇몇 기성품 마우스피스는 말랑말랑한 소재로 만들어 이물감이 적다고 홍보하지만, 김성택 교수에 따르면 말랑말랑한 소재의 장치는 치아의 영구적인 교합변화를 발생시킬 수 있다.
한편, 이갈이가 심하지만 사정상 병원에 방문하기 어려운 경우 ▲소염진통제 복용 ▲온찜질 ▲부드러운 음식만 먹기 등을 임시방편으로 시도할 수 있으나 최대한 빨리 치과를 방문하는 게 안전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