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귀질환, 약 있으면 다행?…"있어도 불행"

입력 2018.05.23 11:22

희귀질환관리법 불구 여전히 소외받는 희귀질환자들

떨리는 손
후종인대골화증이 있으면 손이 떨리고 저리다. 수술이 유일한 치료법이지만 희귀질환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어, 지원이 열악한 상황이다. /사진=헬스조선DB

서울 광진구에 사는 오모씨(42·남)씨는 5년 전 ‘화농성한선염’을 진단받던 순간을 기억한다. 처음 엉덩이에 종기가 생겼던 게 20대 중반, 군대를 제대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여겼으나 비슷한 부위에 농양으로 인한 종기가 반복되고, 생길 때마다 증상은 심해졌다. 여러 병원을 전전했으나 어느 곳에서도 속 시원히 원인을 말해주지 않았다. 그렇게 10년 넘게 이름 모를 질병에 고통 받던 오씨가 처음으로 자신의 질환명을 알게 된 것이 5년 전이었던 것이다. 원인을 알았으니 곧 치료할 수 있을 거고 확신했다.

그러나 희망은 곧 물거품이 됐다. 마땅한 치료제가 없어 염증이 심해질 때마다 스테로이드 주사와 항생제로 급한 불만 껐다. 약을 먹으면 좀 가라앉다가 안 먹으면 또 발병했다. 엉덩이 종기 구멍이 깊어져 내부가 동굴처럼 고름과 피로 가득 차 젓가락 길이의 거즈를 상처에 쑤셔 넣을 때마다 극심한 고통이 찾아왔다. 통증으로 앉지도 눕지도 제대로 걷지도 못하고 내내 서서 지내기도 했다. 2~3년에 한 번은 응급실을 방문할 정도로 증상이 심했다. 한 번은 염증에 의한 감염으로 생명이 위험한 순간도 있었다.

그러던 중 질환의 원인이 되는 면역계 이상을 치료할 수 있는 생물학적제제가 나왔다. 증상은 종전보다 훨씬 개선됐다. 그러나 그가 앓는 화농선한선염은 산정특례 대상이 아니다. 약값의 60%인 100만원가량을 매달 오씨가 부담해야 한다. 이마저도 보험급여 적용 기간이 9개월(36주)로 제한돼, 오는 7월부터는 투약을 그만둬야 할 처지다.

◇국내 7000명 화농성한선염, 같은 희귀질환임에도 소외받는 이유는?

화농성한선염은 주로 겨드랑이·사타구니·항문 주위·유방 아래 등 피부가 접히는 부위에 반복적으로 염증성 결절 및 농양이 생기는 피부 면역질환이다. 종기가 터지고 곪는 과정이 반복되면서 심각한 흉터를 남긴다. 특히 외적으로 민감한 사춘기 시절에 주로 발병하기 시작한다. 농양으로 인한 통증뿐 아니라 외부로 드러나는 흉터와 고름, 이로 인한 냄새 때문에 대인관계나 사회생활에 큰 어려움을 겪는다. 병변의 부위가 민감하다보니 주위에 쉽게 알리지 못하고 정신적인 고통을 수반하는 경우가 많다.

화농성한선염은 국내에 7000여명이 앓는 것으로 추정된다. 기존에는 마땅한 치료제가 없이 스테로이드 주사와 항생제로 염증만 완화하는 치료를 받았다. 항생제를 바르거나 복용하는데도 증상이 나아지지 않으면 수술로 문제 부위를 절제하는 시도를 한다. 그러나 수술 후 재발률이 50%나 되는 점이 문제다. 중등도 이상의 환자에게 염증 반응이 일어나는 경로를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생물학적제제(항TNF제제)를 사용할 수도 있다.

분당차병원 피부과 이희정 교수는 “화농성한선염은 희귀질환으로 지정되지 않았지만 환자 수가 적고, 다른 희귀질환과 비교해도 환자가 겪는 고통이 절대 적지 않다”며 “특히, 왕성하게 학교생활·사회생활을 해야 하는 젊은 환자가 많아 더욱 안타깝다”고 말했다. 그는 “그간 마땅한 치료제가 없었는데, 최근 면역 문제를 잡아줄 수 있는 치료제가 나왔다”며 “하지만 산정특례 적용을 받는 다른 희귀질환과 달리 환자 부담이 높은 것이 치료에 큰 걸림돌”이라고 말했다. 그는 “질환이 잘 알려지지 않았고 피부질환이다 보니 다른 희귀질환보다 정부 지원에서 상대적으로 소외된 것 같다”며 “환자들이 겪는 고통을 생각하면 사회적 관심과 지원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희귀질환 극복의 날…산정특례 대상은 31.4%뿐

5월 23일은 정부가 지정한 ‘희귀질환 극복의 날’이다. 희귀질환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질환의 예방·치료·관리 필요성을 알리기 위해 제정됐다. 질병관리본부 희귀질환센터에 따르면 국내에 등록(환자수 2만 명 이하)된 희귀질환은 1094종이며, 환자는 71만 명에 달한다.

이들을 위해 정부는 2015년 12월부터 희귀질환관리법을 시행하고 있다. 의료비 지원사업, 산정특례 제도 등을 통해 의료비용을 보조한다. 그러나 여전히 사각지대에서 고통 받는 희귀질환자가 많다는 지적이다.

특히 산정특례의 경우 보험 급여 항목에 포함된 범위에만 국한돼 있다는 지적을 받는다. 즉, 필수적인 치료행위나 치료제가 비급여인 경우 실질적인 치료비 지원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이다. 진단코드 자체가 없거나 유병인구가 얼마인지 파악조차 어려운 극희귀질환의 경우 산정특례 대상에서 제외된다. 현재 산정특례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질환은 344종으로, 전체의 31.4%만 지원을 받는다. 여기에 해당하지 않는 극희귀질환자는 고가의 치료비를 고스란히 부담해야 한다. 화농성한선염뿐 아니라 후종인대골화증, 다초점운동신경병증 등의 경우도 치료제가 있지만, 비용 부담으로 대다수 희귀질환자들이 사용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유일한 치료법…매달 200만원 부담해야

후종인대골화증도 희귀질환이지만 산정특례 적용은 받지 못하는 사례에 해당한다. 후종인대골화증은 목뼈의 인대가 딱딱하게 변하면서 신경을 압박하는 병을 말한다. 우리 몸에서 가장 중추가 되는 척추신경을 지탱하는 목뼈에는 뼈를 보호하고 움직임을 원활하게 하는 인대가 붙어 있는데, 목뼈 뒤 척추관 바로 앞에 붙은 인대가 후종인대다. 후종인대가 돌처럼 굳어버리면서 척추신경을 압박하며 생기는 게 후종인대골화증의 주요 증상이다.

증상은 사람마다 조금씩 다르게 나타나는데 손이 떨리고 저리거나, 다리에 힘이 풀리고 옆으로 걷는 게걸음을 걷기도 한다. 손에 힘이 들어가지 않거나 배변 기능에 이상이 생기는 환자도 있다. 증상이 나타나면 수술이 유일한 치료법인데 특별한 증상이 나타나지 않는 경증 환자까지 포함하면 환자 수가 2만명을 넘어 희귀질환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때문에 증상의 경중을 고려한 진단코드 지정 및 중증 환자를 위한 지원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다초점운동신경병증은 면액매개 운동신경병증으로, 일본에서는 10만 명당 0.29명에게 발생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국내에선 실제 유병률이 파악되지 않는다. 이 질환은 후천적으로 운동신경에서 서서히 진행되는 특징적인 다초점 전도 차단이 나타나고, 근력 약화와 위축, 근섬유다발 수축, 근육 경련 등이 주된 증상이다. 통상적으로 면역치료제인 스테로이드나 아자티오프린을 사용하는데, 효과를 보지 못하거나 부작용이 있는 사례가 많다. 유일하게 효과가 있는 치료제는 ‘면역글로불린’인데 의료비 지원을 받지 못해 환자가 매달 200만원가량의 치료비를 부담해야 해 치료하기가 매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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