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Report:증후군 홍수시대_①

'증후군'이라는 단어는 다양한 상황에서 쓰인다. 사회학적 현상을 반영할 때도, 의학적으로 뚜렷한 원인은 없지만 공통점을 보이는 증상을 묶을 때도 쓰인다. 이런 광범위한 의미의 증후군은 손으로 셀 수 없을 정도로 종류가 많다. 'XXX증후군'이라는 단어에 담긴 뜻을 해석하는 것만으로도 논문 몇 편을 쓸 수 있을 정도다. 증후군은 왜 하루가 다르게 늘어나는 것일까.


증후군에 대해 얼마나 아십니까

최근 ‘피노키오증후군’과 관련된 재미있는 일화가 있었다. SBS TV 드라마 <피노키오>의 소재는 피노키오증후군으로, 주인공은 거짓말을 하면 자율신경계 이상으로 딸꾹질을 한다. 드라마가 인기를 끌면서 피노키오증후군과 그 증상이 실재하는 의학적 질병인 것처럼 여기는 사람이 많아지자, 드라마 제작진은 ‘피노키오증후군은 제작진이 만들어 낸 허구의 병’이라는 메시지를 홈페이지에 게시했다. 각종 언론 매체는 그것을 뉴스로 여겨 .피노키오증후군은 허구’라는 내용의 기사를 수십 개 쏟아냈다. 많은 사람이 ‘증후군’이 붙은 용어가 의학적으로 통용되는 질병인지, 아니면 그저 유행처럼 쓰는 단어인지 제대로 구분하지 못한다는 증거다.


‘증후군 홍수시대’에 휘말리지 않으려면

증후군의 종류는 수시로 생긴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온라인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에 처음 보는 증후군과 증상이 2~3일에 한 번 꼴로 오른다. ‘손오공증후군’, ‘시체증후군’, ‘아수라백작증후군’ 등 이름도 다양하다. 개인 홈페이지에는 출처가 불명확한 각종 증후군의 자가진단법이 올라온다. 하지만 수만 가지 증후군 중 진짜 존재하는 것은 무엇이며, 의학적으로 유의미한 개념인지 불분명하다. 증후군을 흥미로운 심리 테스트처럼 가볍게 넘기고 말아야 할까, 하나하나 의미를 부여해서 주의 깊게 바라봐야 할까. ‘나도 증후군인 것 같다'고 생각될 때, 정신건강의학과나 심리상담센터 등의 전문 치료를 고려해야 할까, 말아야 할까.

다양한 이름의 증후군이 유행하고 있다. 하지만 이름의 유래도, 증상이나 뜻도 불분명한 경우가 많다.
다양한 이름의 증후군이 유행하고 있다. 하지만 이름의 유래도, 증상이나 뜻도 불분명한 경우가 많다.


PART 1. 증후군에 대한 다양한 해석

의학적 관점
원인은 불분명, 공통적인 정신적·육체적 증상 있어


의학적으로 증후군은 ‘질병의 증상이 단일하지 않고 그 원인이 불분명할 때’ 쓴다. 대표적인 예가 .대사증후군’이다. 대사증후군은 대사 이상으로 인한 증상(비만, 내당능 장애, 고혈압, 고지혈증, 심혈관계 이상)을 묶어 말하는 것이다. 대사증후군이 왜 생기는지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이런 점에서 증후군은 간염, 폐렴, 방광염 등 원인과 결과가 명확하게 밝혀져 있는 질병과는 다르다. 예를 들어 폐렴은 박테리아나 바이러스에 의해 폐에 염증이 생긴다는 분명한 작용 원리가 있다. 증후군은 특히 정신건강의학과 분야에 많다. 정신건강의학과 증상은 대부분 사람마다 원인이 달라서 뚜렷한 원인을 정의하기 어렵다. 원인은 각양각색이지만, 결국 몸에 나타나는 증상은 비슷하다. 예를 들면 어릴 때 부모와 떨어져 살던 사람과 아내와 멀리 떨어져 지내는 기러기 남편이 겪는 불안 증상이 있다.


사회학적 관점
사회.문화적 현상이 널리 퍼진 것

증후군의 사회학적 의미는 ‘어떤 것을 좋아하는 현상이 전염병처럼 전체를 휩쓸게 되는 현상’이다. 이때의 증후군은 우리나라 고유의 사회 문화적 현상을 반영하기 때문에 우리나라에만 있고 외국에서는 통용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명절이 가까워 올 때 주부들이 받는 스트레스를 ‘명절증후군’으로,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앞둔 수험생이 겪는 마음의 부담과 불안을 ‘고3증후군’으로 명명한 게 그 예다. 최근 인기리에 종영한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에 열광하는 현상을 가리켜 ‘별그대증후군’, ‘전지현증후군’, ‘김수현증후군’ 등으로 부르기도 했다.

사회·문화적 변화가 질병에 가까운 증상을 여럿 야기할 때도 ‘증후군’을 붙여서 질병 이름으로 사용한다. 수년 전 일본 게임기기 회사 닌텐도에서 나온 게임기가 성행한 탓에 광과민성 발작이 일어나는 경우가 많아지자, 이를 ‘닌텐도증후군’이라고 명명했다. 이후 전문가들은 TV, 컴퓨터, 게임기 같은 현대 전자기기의 불규칙한 빛의 깜빡임으로 인해 생기는 발작을 모두 닌텐도증후군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소문처럼 떠도는 증후군
특정 증상을 신화나 소설의 주인공에 빗대 설명하는 것

‘아도니스증후군’, ‘무드셀라증후군’, ‘리스트컷증후군’처럼 의학 교과서에 나와 있지 않으면서, 딱히 사회·문화적 분위기를 반영하지 않는 것도 있다. 외모에 집착하는 증상, 만성적으로 자해하는 증상 등 이색적인 증상에 그저 이름만 붙인 것이다. 이때 대표적인 증상을 연상시키는 신화나 소설 속 주인공의 이름을 붙여 그럴듯한 ‘XXX증후군’이 탄생하는 것이다. 대부분 외국어로 돼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더욱 흥미롭게 받아들인다. 누가 이름을 붙였으며 어디서 유래한 것인지, 이런 증상이 실재하는지 여부는 명확히 알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닌텐도증후군'은 닌텐도라는 게임기가 성행한 탓에 광과민성 발작이 일어나는 경우가 많아지자 명명된 증후군이다.
'닌텐도증후군'은 닌텐도라는 게임기가 성행한 탓에 광과민성 발작이 일어나는 경우가 많아지자 명명된 증후군이다.


PART 2.  자고나면 새로 생기는 증후군 왜 자꾸 생기나

‘증후군’ 남발하는 사회 탓
심적고통 표현 수단일 수도

증후군의 개수가 갈수록 늘고, 많은 이에게 회자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는 사회 구성원이 그만큼 스트레스와 마음의 부담을 많이 받고 있다는 표현일 수 있다. 늘 바쁘고 복잡한 생활을 하는 현대인은 불안, 외로움, 스트레스 등을 느끼기 쉽다. 일하다 보면 몸과 마음이 소진되는 느낌이 든다. 직장에서 중간 계급이 되면 부하 직원의 도전과 상사의 압박 사이에서 샌드위치처럼 눌릴 수 있다. 크리스마스는 마치 모두가 연인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날처럼 여겨지므로, 연인이 없는 사람은 평소보다 더 큰 외로움과 고립감을 느낄 수 있다.

이렇게 특정 상황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스트레스와 심리 상태를 모두 우울증이나 불안증 같은 정신과 질환으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특정 시기에 특정 증상을 겪는 것은 분명히 맞다. 그래서 이런 애매한 상황에 ‘증후군’이라는 이름을 붙여서 ‘명절증후군’, ‘고3증후군’, ‘소진증후군’, ‘샌드위치증후군’, ‘크리스마스증후군’ 등으로 표현하는 것 같다. 질병 느낌이 나는 그럴싸한 단어로 만들어서 자신의 힘든 점을 알아주기 원하는 마음일 수 있다. 일본에서는 각종 사회현상에 툭하면 증후군 단어를 갖다 붙이는 것을 ‘증후군증후군’이라 부르기도 한다.


“내 상태는 정신병 아닌 증후군일 뿐”
개인들 위안 얻는 수단으로 활용

둘째는 한국사회가 정신건강의학과 질환에 심한 거부반응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우울증’이나 ‘조현병(정신분열병)’이라는 단어는 편견과 거부감이 크다. 그래서 이런 병과 비슷하지만 강도가 약한 증상을 증후군이라 표현함으로써 거부감을 줄이고 싶은지 모른다. 사람들은 심리테스트하듯 여러 증후군에 자신의 마음 증상을 맞춰 보고, ‘아, 나는 정신병보다는 증후군에 걸린 것 뿐이야’하며 위안을 얻는지도 모른다.

실제로 나를 찾아온 몇몇 환자들은 인터넷에서 얻은 정보로 “증후군이 생긴 것 같다”고 말하지만, 의학적으로 볼 때 넓은 의미의 우울증이나 공포증인 경우도 있었다.


"사회 공통의 심리 상태 질병으로 보기엔 애매 
'증후군'단어 붙여 자신의 상황표현"



전진용
전진용

전진용

국립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가톨릭관동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해 명지병원에서 임상 강사로 활동했다. 국제이주기구(IOM) 컨설턴트로 근무했으며 통일부 하나원에서 5년간 북한이탈주민을 진료했다. 현재 국립서울병원에서 우울, 불안, 스트레스, 북한이탈주민의 적응과 관련된 정신건강문제에 대해 진료 및 연구하고 있다.



※ Special Report:증후군 홍수시대
피노키오증후군·무드셀라증후군… ‘증후군’ 홍수시대! 질병일까, 사회 현상일까
Chapter 1. 증후군, 그 정체는 무엇인가
Chapter 2. 증후군 올바로 이해하기
Chapter 3. 다양한 증후군과 치료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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