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관 풍선처럼 부푸는 '대동맥류' 파열되면 치료 전 사망하기도 '스텐트 그라프트 삽입술' 가능
1㎝ 절개해 금속 그물망 삽입 고령 환자도 시술받을 수 있어
대동맥은 심장에서 나온 혈액을 신체 곳곳에 공급하는 혈관이다. 우리 몸에서 가장 굵은 혈관으로, 위치에 따라 복부대동맥, 흉부대동맥 등으로 나뉜다. 정상적인 대동맥은 직경이 2∼2.5㎝지만, 노화나 질병 등에 의해 5㎝ 이상까지 늘어나기도 한다. 이처럼 대동맥이 비정상적으로 부푸는 질환을 '대동맥류'라고 한다. 대동맥류는 조기 발견·치료가 매우 중요한 질환이다. 풍선처럼 부풀어 오른 대동맥을 제때 치료하지 않으면 혈관이 파열돼 순식간에 위험한 상황에 빠질 수 있다.
대전을지대병원 심장혈관흉부외과 최진호 교수는 “고혈압 환자나 뇌경색·심근경색·협심증 환자와 같은 대동맥류 고위험군은 꾸준히 검사를 받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사진=헬스조선DB, 그래픽=김남희
대전을지대병원 심장혈관흉부외과 최진호 교수는 "대동맥이 1㎝ 정도만 파열돼도 1분 안에 5리터의 혈액이 빠져나가 생명이 위태로워진다"며 "특히 복부대동맥류의 경우 80∼90%가 사망하므로 파열되기 전에 빠르게 치료해야 한다"고 말했다.
동맥경화가 주요 원인… 증상 없어 더 위험
대동맥류의 가장 큰 위험요인은 동맥경화다. 동맥경화는 혈관 내부에 콜레스테롤이 쌓여 혈관이 좁아지는 질환으로, 혈관이 혈압을 견디지 못하고 늘어나면 대동맥류로 이어진다. 노화, 흡연, 고혈압 등이 원인이며, 흉부대동맥류의 경우 유전되는 경우도 많다. 실제 부모가 흉부대동맥류를 앓았다면 비교적 젊은 나이임에도 대동맥류 고위험군으로 분류된다.
문제는 대동맥류가 있어도 혈관이 파열되기 전까지 이렇다 할 전조 증상이 없다는 점이다. 심한 복통, 멍울 등과 같은 의심 증상도 있지만, 대부분 증상이 없는 상태에서 우연히 건강검진을 통해 발견하거나, 혈관이 파열된 뒤에야 증상이 나타난다. 특히 복부대동맥류는 흉부대동맥류와 달리 엑스레이 검사만으로 관찰이 어려워 발견이 늦는 경우가 많다. 최진호 교수는 "하행대동맥이 파열되면 등에 갑작스럽게 통증을 느끼고, 상행대동맥이 파열되면 앞쪽 가슴에 극심한 통증이 찾아온다"며 "증상이 발생했다면 이미 혈관이 파열됐을 확률이 높다"고 말했다.
스텐트 그라프트 삽입술, 고령 환자도 가능
병원에서는 대동맥 직경이 정상보다 50% 이상 늘어난 경우 대동맥류로 진단한다. 치료법은 크게 약물, 비약물 치료로 구분된다. 대동맥의 직경, 팽창 속도와 환자 연령 등을 고려해 치료법을 결정한다. 대동맥류 직경이 5㎝ 미만으로 파열 가능성이 적다고 판단되면 혈소판제제, 고혈압치료제, 고지혈증치료제 등의 약물 치료를 실시할 수 있지만, 파열 가능성이 높을 경우엔 반드시 수술 또는 시술을 진행해야 한다. ▲흉부대동맥 직경 5.5㎝, 복부대동맥 직경 5㎝ 이상일 경우 ▲6개월 이내에 대동맥류 직경이 0.5㎝ 이상 또는 1년 이내에 대동맥류 직경이 1㎝ 이상 증가한 경우 ▲대동맥류에 의한 증상이 있는 경우 등이 해당된다.
복부 대동맥류에 금속 그물망 모양의 스텐트 그라프트가 삽입된 모습. 혈액이 스텐트 그라프트 안으로만 흐르게 된다. /메드트로닉 제공
대동맥류 비약물 치료는 '인조혈관 치환술'과 '스텐트 그라프트 삽입술'로 나눌 수 있다. 인조혈관 치환술은 말 그대로 전신 마취 후 늘어난 동맥류를 절개하고 인조혈관으로 대체하는 방법이다. 효과는 확실하지만, 절개 부위가 크고 출혈·조직 손상 위험이 상대적으로 높다. 수술 후 회복에도 평균 2∼3개월 소요된다.
스텐트 그라프트 삽입술은 국소마취 후 직물로 둘러싸인 금속 그물망인 '스텐트 그라프트'를 대퇴동맥을 통해 대동맥류로 삽입하는 방법이다. 시술 후에는 혈액이 스텐트 그라프트 안으로만 흐르게 된다. 최소 절개 방식으로 치료하기 때문에 인조혈관 치환술에 비해 출혈·조직 손상 위험이 적다. 고령 환자, 수술에 따른 합병증 발생 위험이 있는 환자도 시술 받을 수 있다. 최 교수는 "스텐트 그라프트 시술은 절개 부위가 1㎝ 정도로 작아 시술 직후 활동이 가능하다"며 "드물게 스텐트 그라프트 삽입 부위 주변 대동맥 상태가 좋지 않은 경우, 먼저 건강한 대동맥을 조성해놓고 시술을 진행하기도 한다"고 했다.
연구 통해 높은 효과·안전성 확인
스텐트 그라프트 삽입술의 효과와 안전성은 여러 연구를 통해 계속해서 입증되고 있다. 인조혈관 치환술 대비 짧은 시술 시간과 중환자실 입원 기간은 물론, 시술 관련 합병증 발생 위험도와 사망률 또한 낮은 것으로 보고된다. 과거에는 삽입 장치의 이탈, 혈류 누출 등의 위험이 확인되기도 했으나, 최근 기술 발전과 함께 이 같은 문제가 크게 줄어들고 적용 가능한 환자 범위도 넓어지고 있다. 최진호 교수는 "스텐트 그라프트 시술을 받은 환자를 10년간 추적 관찰한 메드트로닉의 ENGAGE 연구에 따르면, 94.7%에서 대동맥류 관련 사망 사례가 발생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했다.
대동맥류는 조기 발견과 치료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뚜렷한 증상이 없는 질환인 만큼 주기적인 검사는 필수다. 이미 대동맥류로 인해 치료를 받은 사람 또한 마찬가지다. 스텐트 그라프트를 삽입한 뒤에도 꾸준히 CT 검사를 통해 혈관 상태를 점검해야 한다. 최 교수는 "빨리 치료하면 선택할 수 있는 치료법이 많아지고, 시술·수술 위험도 낮다"며 "검진에서 대동맥 크기나 형태에 이상이 발견됐다면 곧바로 전문의를 만나 상담하고 치료받기를 권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