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는 약이 아닌, 전자약으로 질병을 치료하는 시대가 열리고 있다. 전자약은 의약품처럼 인체 내에서 생화학적인 작용으로 증상 완화를 유도하는 것이 아니라, 전기·자기장·초음파 등 에너지를 뇌·신경에 작용을 하도록 해 새로운 치료 효과를 내는 의료기기를 말한다. 미국에서는 악성뇌종양인 교모세포종을 치료하는 전자약 회사 노보큐어가 연매출 약 5000억을 기록할 정도로 시장에 성공적으로 자리잡았다. 국내에서는 와이브레인이 2021년 우울증 치료 전자약 시판 허가를 받았고, 지난해 6월에는 비급여 수가를 받아 현재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우울증 환자들에게 전자약을 처방해주고 있다. 전자약은 새로운 의료 기술임에도 식품의약품안전처 인허가 이후 의료계에 빨리 자리잡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와이브레인 이기원 대표를 만났다.
와이브레인 이기원 대표/와이브레인 제공
-세계 최초의 우울증 전자약을 개발했다? 와이브레인은 2021년 4월 세계 최초로 우울증 치료 전자약 ‘마인드스팀’을 개발,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국내 시판 허가를 받았다. 우울증 개선에 단독으로 쓸 수 있는 적응증을 받았고, 재택 치료가 가능하며, 전자 처방 플랫폼 ‘마인드’를 통해 환자가 치료를 잘 따라오는지 관리할 수 있다. 식약처 허가를 위해 서울성모병원, 분당서울대병원 등 주요 대학병원에서 경증·중등증 우울증 환자 65명을 대상으로 우울증 전자약 마인드스팀을 통한 우울 증상 개선 효과에 대해 평가했다. 6주 적용 후 전자약 처방 준수 군에서 관해율(우울 증상이 사라진 비율)이 62.8%로 나타났다. 항우울제의 경우는 관해율이 평균 50%로, 항우울제보다 높은 우울 증상 개선 효능을 검증했다.
-항우울제 보다 효과가 좋은 건가? 항우울제는 우울증 치료에 필수적인 약이지만, 미국국립정신건강연구소(NIMH)에 따르면 1차 치료 반응률이 50%가 채 안된다. 2차 치료 반응률은 더 떨어져 30%가 안 되고, 3차 치료 반응률이 20%가 안 된다. 또한 부작용으로 성기능장애, 체중 증가, 소화기능장애 등이 있다. 이런 한계 때문에 항우울제 처방 4주차에 절반의 환자가 약 복용을 중단한다. 우울증 전자약은 약 복용에 대한 거부감이 없고, 의사 처방을 매일 잘 따르는지 플랫폼을 통해 확인이 가능하기 때문에 관해율이 높은 것 같다.
-전자약이 어떻게 효과를 보이는 것인가? 뇌에 미량의 전류를 흘려주면 뇌 세포가 활성화되고 뇌 신경전달물질이 변하면서 뇌의 기능이 좋아진다. 우울증 환자에서 관찰되는 특징 중에 하나가 전두엽의 활동이 저하돼 있다는 점이다. 전두엽은 상황을 인지하고 판단하는 것을 담당하는 것과 함께, 감정 중추인 편도체의 과활성화를 억제한다. 전두엽이 제 기능을 못하면 감정 조절을 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우울증 전자약은 전기 자극을 통해서 전두엽의 자발적 활동을 증가시킨다. 일례로 해당 영역에 뇌 가소성(뇌세포의 일부분이 죽더라도 그 기능을 다른 뇌세포에서 대신하는 것)을 증가시키는 작용을 해 전두엽이 활성화 될 수 있도록 한다.
-우울증 전자약을 개발하게 된 계기는? 2013년 당시 공동 창업자였던 동료는 전기 자극을 통해 감정을 조절하는 연구를 하고 있었고, 나는 스마트폰을 포함해 전자기기를 아주 얇게 만드는 기술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었다. 이 두 기술이 합쳐진 것이 우울증 전자약 마인드스팀의 시초다. 마음에 상처가 났을 때 ‘전기 반창고’를 붙여주는 기술을 만들게 된 것이다.
-전자약 시장이 세계적으로 어떻게 성장하고 있나? 전자약은 현재 글로벌에서 20조 정도 되는 시장이 형성돼 있다. 향후 10년 내에 60조까지 성장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전자약에는 다양한 제품군이 있는데, 수술을 통해 체내 삽입하는 의료기기가 가장 시장이 크다. 예를 들면 파킨슨병이나 손이 떨리는 수전증은 약으로 잘 치료가 안된다. 이 경우 두개골을 열어서 전기 자극기를 삽입하면 바로 증상이 좋아진다. 최근에는 수술을 하지 않고 치료를 하는 전자약들이 주목을 받고 있다. 우울증, 불면증, 치매, 편두통 등 신경정신계 질환들을 치료하는 전자약들이다. 노보큐어의 전자약도 수술 없이 뇌종양을 치료한다. 노보큐어는 전세계 전자약 시장에서 가장 성공한 회사로 평가받고 있으며, 나스닥에 상장돼 있고 시가총액이 10조 정도 된다.
-국내 전자약 시장 상황은? 전자약은 의료기기로 분류되며 보건당국의 인허가를 받아야 하고, 그 다음에는 의료 행위에 대한 급여·비급여 수가를 받아야 한다. 수가를 받았다고 해도 의료계 내에서 이 약을 수용할 것이냐, 환자에게 설득이 될 것이냐 하는 문제가 남는다. 이런 과정이 모두 해결이 돼야 실제로 시장이 열리게 된다. 국내 전자약 시장은 이제 초기 시장이 만들어지고 있다. 와이브레인이 처음으로 보건당국 인허가와 비급여 수가를 받았고, 일부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실제 처방을 하고 있다.
-신약 개발보다 쉽다? 의약품과 비교해 의료기기는 인허가 기간이 짧다. 의약품의 경우 임상 1~3상에 허가까지 받으려면 평균 10년이 걸리며, 임상 성공률은 10%에 불과하다. 그러나 의료기기는 임상·허가를 받고 시장에 진입하기까지 4~5년이면 된다. 임상 성공률은 70%에 달한다. 신약보다 의료기기 개발이 쉬운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의약품은 임상과 허가의 기간이 길었던 만큼 상대적으로 의료계에서 안전성·유효성에 대해 인정을 받기 쉬운 반면, 의료기기는 임상·허가는 빠른 반면 의료계에 진입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전자약과 디지털 치료제의 차이점은? 먼저 둘다 의료기기로 분류가 된다는 점은 같다. 다른 점은 전자약은 약물과 조금 비슷한 기전으로 이해하면 되고, 디지털 치료제는 상담치료 혹은 인지행동치료와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전자약은 뇌의 특정 영역 또는 특정 신경을 타깃팅해서 전기·자기·초음파 등의 외부 에너지를 인가해서 뇌 기능 또는 신경 기능을 조절하는 방식으로 치료 효과를 낸다. 기전 자체는 약물과 조금 유사하다. 화학물질이 아닌 에너지를 이용한다는 것이 차이다.
디지털 치료제는 반복적인 학습, 반복적인 인지, 반복적인 행동 유도를 통해 치료 효과를 도모한다. 쉽게 말하면 전자약은 전두엽을 직접 자극해서 조절하는 방식이고, 디지털 치료제는 생활 습관 학습을 통해 증상이 조절되는, 간접 치료 방식인 것이다. 전자약은 일정 수준의 에너지 자극이 이뤄져야 하기 때문에 과각성 등 위해도가 있는 반면, 디지털 치료제는 위해도는 없지만 환자가 노력을 하지 않으면 효과를 못볼 수 있다.
우울증 전자약 ‘마인드스팀’/와이브레인 제공
-우울증 전자약 출시 후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들의 반응은? 의료계에서는 항우울제 외에 새로운 기술에 대한 요구도가 높았다. 우울증 전자약은 재택 치료가 가능하고 6개월 이상 장기간 치료가 가능하다. 우울증은 장기 재택 치료가 중요한데, 지금까지 장기 재택 치료에 대한 솔루션이 없었다. 전자약 등장으로 이런 미충족 수요가 해결이 됐다. 우울증 전자약은 의료 행위 수가를 받기 전에 대한뇌자극학회 우울증 치료 가이드라인에 권고 내용이 실릴 정도로 우울증 치료 기기로서 인정을 받고 있다. 또한 임신부나 청소년은 항우울제를 쓰지 않겠다는 경우가 있는데, 이들에게도 우울증 전자약이 대안이 되고 있다.
-우울증 전자약의 의사 수용도가 높은 이유는? 뇌 전기 자극 치료는 비교적 오래된 치료다. 병의원에서는 경두개 직류자극기라는 큰 장비를 사용하고 있었다. 치료를 위해서는 꼭 병원에 가야하는 상황이었다. 우리가 개발한 우울증 전자약은 전기 자극기를 소형화 해, 의사가 처방을 하면 환자가 집에서 스스로 사용할 수 있고, 의사는 치료를 잘 하고 있는지 전자약 플랫폼을 통해 모니터링을 할 수 있다. 항우울제만 처방하면 환자 제대로 복용하고 있는지 파악이 안되는 것이 문제였는데, 플랫폼을 통해 환자 관리를 제대로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또한 전자약 남용을 막기 위해 전자 처방을 하면 기기가 하루에 한 번만 작동을 한다. 만약 전자약을 쓰지 않았다면 기록이 남는다. 환자 맞춤형 치료를 제공할 여지가 큰 시스템이다. 임상 데이터가 쌓이면 처방은 더 정교해질 것이다.
-국내에 얼마나 도입돼 있나? 우울증 전자약 마인드스팀을 비롯해 재택 치료 관리 플랫폼인 마인드, 뇌파 측정 진단 시스템 마인드스캔 등 와이브레인의 시스템을 도입한 병원이 정신건강의학과를 중심으로 330곳이 된다. 정신건강의학과의 22%에 해당하는 수치다. 우울증 전자약 마인드스팀만 보면 현재 75개 병의원에서 처방이 시작됐고, 누적 2만 건 정도 처방이 이뤄지고 있다. 비급여 수가를 받은지 1년이 안 됐는데 빠르게 시장에 정착하고 있다.
-부작용은 없나?
뇌의 자발적인 활동을 증가시키는 것이기 때문에 '각성'이 되는 부작용이 있다. 그래서 너무 늦은 시간에 쓰는 것보다는 낮 시간에 쓰는 걸 권장하고 있다. 그 외에는 전기 자극에 의해 피부가 따갑다든지 붉어진다든지 하는 일시적인 피부 부작용들이 있다.
-비용은? 비급여로 처방하기 때문에 비용은 의료기관에서 자체적으로 정하는데, 보통 한 번에 2~5만 원 정도 든다. 기간, 재택 처방 등 프로그램에 따라 비용이 달라질 수 있다.
-후속 임상을 계속하고 있다?
임산부 우울증의 경우 최근 정부 지원 과제에 선정이 됐고, 중증 우울증도 임상을 진행 중이다.
항우울제의 경우 복용 후 2~4주가 지나야 효과가 나타나는데, 전자약은 즉각적인 효과가 나타나는 편이다. 이에 대해 신경과 분야에서 저명한 미국 NYU 랭곤 병원과 임상 연구를 했다. 어떤 생체 신호 변화를 통해 즉각적인 효과를 내는지 근거를 찾는 임상에 성공을 했다. 치매·인지개선에 대한 재택 치료 임상도 끝나 데이터 분석 중이다. 브레인포그, 편두통에 대한 임상 연구도 하고 있다. 임상 연구 결과에 따라 적응증과 파이프라인을 확대할 수 있을 것 같다.
와이브레인 이기원 대표/와이브레인 제공
-와이브레인의 미래는? 전자약 개발 부분에 있어서는 와이브레인이 가장 앞서 있다고 자부한다. 현재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승인한 전자약 임상의 90%를 와이브레인에서 진행하고 있다. 우울증 외에도 치매, 편두통, 불면증, 이명 등의 전자약으로 파이프라인을 확대할 계획이다. 현재 우울증 전자약은 경증·중등증 우울증 환자에게 주로 처방이 되는데, 중증까지 적응증을 확대하고, 보험 급여도 확대해 많은 환자가 혜택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창업 때 막연하게 생각했던 컨셉처럼 ‘마음의 반창고’ 역할을 하는 전자약을 만들고 싶다. 전자약으로 언제 어디서나 치료가 가능해진, ‘내 손안의 정신과’ 시대를 열어보고 싶다.
-국내외 전자약 시장의 미래는? 의료기기는 약물에 비해 허가가 훨씬 용이하다. 이런 이유로 많은 회사들이 의료기기 개발을 하고자 한다. 그러나 보건당국의 인허가에서 끝이 아니라 의료 행위로서 수가를 받아야 하고 의료계와 환자의 수용도를 이끌어내야 한다. 글로벌에서는 노보큐어라고 하는 회사가 아주 좋은 사례를 만들어내고 있고 국내에서는 와이브레인이 선두에 있다고 생각을 한다. 우울증 전자약 마인드스팀은 의료기기 허가-> 의료 행위 등재-> 의료계 수용-> 환자 수용의 4가지 허들을 잘 넘어가고 있다. 이런 사례가 모델이 돼 다른 전자약 개발에 밑거름이 됐으면 좋겠다.
무엇보다 제도적 지원이 필요하다. 신의료기술평가 유예 제도(안전성·효과성 등 임상적 근거가 부족해 아직 건강보험에 등재되지 않은 기술이지만 임상 현장 활용을 통해 근거를 마련할 수 있도록 신의료기술 신청을 유예하는 제도) 등이 확대 돼 새로운 의료기기의 시장 진입이 용이해져야 한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 연구재단, 한국보건산업진흥원 등에서 전자약 개발 육성 프로그램을 만들어 활성화하는 것도 도움이 될 것 같다.
국내에서 허가를 받고 리얼월드에서 사용한 데이터가 있어야 해외 진출의 가능성이 높다. 우울증 전자약 마인드스팀은 현재 미국FDA에 허가를 신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