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가 양귀비를 피운 이유는?

입력 2010.11.01 09:01   수정 2010.11.01 10:20
드라마 '성균관스캔들' 방송화면 캡처
KBS 2TV 드라마 ‘성균관 스캔들’에서 주인공들 못지않게 인기를 끄는 인물은 조선 22대 왕 정조다. 드라마 속 정조는 성균관의 청춘들을 아우르는, 인자하면서도 결단력 있는 외유내강의 카리스마를 가진 임금이다.

그런데 드라마에서도 보여주듯이 말년의 정조는 건강 상태가 매우 나빴다. 그는 평소 담배를 많이 피웠으며, 여러 질병을 앓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일례로 지난 드라마 방송에서 정조가 담배를 만들던 중 정약용에게 앵속각(양귀비의 약명)을 피우는 것을 들키게 되면서 ‘얼마 남지 않았다’는 말을 하는 장면이 있었다. 정조는 어떤 질병들을 앓았기에 신병을 비관했던 것이며, 왜 양귀비를 피웠던 것일까?

마약 원료로도 사용되는 양귀비는 오래 전부터 마취·통증완화제로 쓰였으며 민간에서는 열매와 식물체를 분리해 두었다가 응급 질환에 사용했다고 전해진다.

정조가 사망 전 1800년 4월17일에 쓴 비밀편지에서는 “나는 갑자기 눈곱이 불어나고 머리가 부어오르며 목과 폐가 메마른다”고 했으며, 같은 해 6월28일자 편지에서는 “뱃속의 화기(火氣)가 올라가기만 하고 내려가지는 않는다. 여름 들어서는 더욱 심해져 그동안 차가운 약제를 몇 첩이나 먹었는지 모르겠다”며 악화된 병증을 호소했다. 편지에서 알 수 있듯, 정조의 병은 이미 회복 불가능한 단계에 돌입해 양귀비를 피우지 않고는 견디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최우정 광동한방병원 아이앤맘센터 원장은 “양귀비는 만성기침, 만성설사, 통증이 너무 오래되거나 복통이 심한 경우 진통제로 쓰였으며 치료효과도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담배와 함께 피면 마취 상태에 빠져 몽롱함을 느끼고, 습관성으로 중독이 되면 심할 경우 죽음에 이르기도 한다. 물론 현재 양귀비를 약으로 사용하는 경우는 없다.

양귀비와 같은 통증완화제가 없이는 견디기 힘들었던 정조. 그는 어떤 질병을 앓았던 것일까? 기록에 의하면 정조가 앓았던 여러 질병을 중 하나가 ‘화병(火病)’이라고 한다. 정조는 훌륭한 어머니로부터 교육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아버지 사도세자의 비참한 죽음으로 어려서부터 가슴이 답답하고 화가 오르는 화병이 있었다고 한다. 전략가 성격을 지니고 있었던 정조이지만 아버지의 역할부재로 인해 늘 사회로부터 도망치려는 불안증을 앓았다. 또 이상이 다른 어머니와 성격 다른 할아버지(영조), 반대세력으로부터의 암살 위협 등 정신적인 고난과 역경을 겪기도 했다. 

위에서 언급한 비밀편지에 정조는 ‘뱃속의 화기가 올라가기만 한다’고 표현했으며, 지방의관 정윤교와의 대화에서 “두통이 있을 때 등에서 열기가 솟구치니 이는 다 가슴의 화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또 사찰내용에 따르면 정조는 화기를 다스리기 위해 황근(黃連)을 1근 이상 먹었으며, 항상 얼음물을 마시거나 차가운 온돌의 장판에 등을 붙인 채 잠을 이루지 못했다고 한다.

한의학에서 황금, 황련, 황백 등 노란 색의 약재는 열을 다스리는 역할을 하며 요즘에도 열이 많은 환자들에게 이 약들을 처방한다고 한다. 최 원장은 “사람마다 열의 위치가 다르므로 심폐에 열이 많은 사람은 황금, 호흡기․심장에는 황련, 신체 하부의 신장․방광 등에는 황백을 처방해 열이 오르는 부위에 따라 알맞은 치료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조는 심장의 울화 때문에 열이 많은 부위에 종기가 생겼지만 양(陽)의 성질이 강한 인삼이 포함된 경옥고, 감팔물탕 등을 처방받아 증세가 더욱 악화되기도 했다. 아무리 인삼이 명약이지만 화병으로 생긴 그의 종기에는 독약과도 같았을 것이다. 최 원장은 “인삼이 열이 많은 사람 모두에게 안 좋은 것은 아니지만 소음인에게는 매우 위험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경희대동서신의학병원 사상체질과 김달래·김선형 교수팀이 조선왕조실록과 승정원일기 등을 바탕으로 정조의 발병부터 사망까지 재정리한 결과, 정조의 사인은 패혈증과 뇌졸중(중풍)․뇌혈관성 질환 등 기저질환에 있었을 것이라는 의학적 분석을 내 놓은 바 있다.

정조가 감정이 격앙돼 오열하다가 몸을 가누지 못한 경우가 있었는데, 이것은 혈압이 높고 뇌와 심혈관계통의 질환을 앓았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또 사망 하루 전에는 중풍에 의한 급격한 의식불명 상황이 나타난 것으로 연구팀은 보고 있다. 평소 화병과 불면증, 부스럼증이 있었고 담배를 많이 태웠던 그는, 항생제와 수술요법이 발달하지 않은 조선시대 의학으로는 만성질환에 따른 급성감염성질환․패혈증․급성뇌졸중을 치료하기 힘들었을 것이라는 해석이다.

드라마 '성균관스캔들' 방송화면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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