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차례상은 생각만 해도 풍성하고 입에 침이 고인다. 하지만 이는 건강한 사람 얘기다. 요즘처럼 만성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이 많은 때에 이런 상차림은 잘 관리하던 식습관을 깨뜨리는 일탈과 같다. 당뇨병 환자에겐 추석상 위의 송편, 식혜, 쌀밥, 강정 등이 금기식품이다. 고혈압 환자에겐 산적, 전 등 기름진 음식이 독(毒)과 같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기존 명절 상차림을 고집하는 것은 전통을 지키기 위해서다. 제사 상차림을 가가례(家家禮)라고 부를 정도로 집안마다 제사상에 꼭 올라야하는 재료가 있기 때문이다. 사실상 이는 그 누구도 깰 수 없는 집안의 표준예법과 같다. 하지만 건강을 생각한다면 예법의 틀을 깨지 않는 선에서 조금씩 바꿔볼 필요가 있다. 건강하고 맛있는 음식으로 한가위를 보낼 수 있는 새로운 경향의 상차림법이 있으니 참고해보자.
(사진=신지호 기자)
약선음식을 활용한 추석 상차림
약선요리의 사전적 의미는 ‘약이 되는 음식’이다. 동양의학은 약과 음식의 근본이 같기 때문에 음식을 약으로 이용하기도 한다. 약선요리가 이론으로 정립된 것은 중국 진나라에서 당나라에 이르기는 시대였다. 동진(東晉)의 의학서적인 《주후비급방》은 배즙으로 기침을 치료하고, 돼지 이자로 당뇨병을 치료하는 등 식품으로 질병을 치료하는 방법을 서술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대표 한의학서인 《동의보감》도 약선음식을 소개한다. 생활에 응용할 수 있는 조리법이 제시돼 있다. 예를 들면 ‘검은콩을 삶을 때 소금을 넣으라’한다. 이런식으로 조리하면 몸을 보호할 수 있다고 기록돼 있다. 임점희 교수는 “추석 명절상을 차릴 때 약선음식 재료를 간단히 곁들이기만 해도 전통을 흐트러뜨리지 않으면서 건강에 이로운 명절상을 차릴 수 있다”고 말했다.
약선음식 조리 서적
"건강하기 위해 전통을 거슬러 상차림을 바꾸라는 것이 아니다. 전통을 유지하면서 한두 가지 약선 재료를 추가하는 것만으로도 건강에 도움이 되는 맛있는 상차림이 완성된다"
《동의보감》에 보면 검은콩 삶을 때 소금을 넣으면 몸을 보호하는 효과가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어떤 재료를 추가하느냐에 따라 음식은 건강에 도움이 되는 약이 될 수 있다.(사진=신지호 기자)
① 토란탕 + 맥문동 설날에는 떡국, 추석에는 토란탕이다. 토란탕은 위와 장의 운동을 원활하게 하는 데 도움을 주는 좋은 약선음식이다. 여기에 맥문동을 더해 보자. 건조한 가을 날씨 탓에 상하기 쉬운 폐를 보호하는 효과까지 얻을 수 있다. 토란탕을 끓일 때 맥문을 우려낸 물로 끓이기만 하면 된다.
② 갈비찜 + 산사·마 명절상에 빠지지 않는 갈비찜은 만성질환자가 먹기에 부담스럽다. 하지만 달콤짭짜름하고 부드러운 갈비살을 흰쌀밥 위에 얹어 먹는 유혹을 거부하기란 힘들다. 그렇다면 갈비찜에 소화를 돕고 어혈(뭉친 피)을 풀어 주는 산사를 넣자. 산사는 지방분해에 효과가 있으며, 소화를 촉진해 복부팽만감이나 복통에 효과적이다. 마를 넣어도 좋다. 마는 고혈압·당뇨병·비만 등에 효과 있으며 항노화작용도 한다. 마의 끈적한 성분은 장내 유해균을 없애고 소화를 촉진해, 소화불량을 예방할 수 있다.
③ 산적 + 계핏가루 산적용 쇠고기를 양념할 때 계핏가루를 넣어 보자. 계피는 따뜻한 성질의 한방약재다. 말초혈액순환을 개선하고 뼈를 튼튼하게 하는 효과가 있어 허리나 무릎 통증이 있는 사람에게 좋다. 계피 산적 구이를 만드는 방법은 간단하다. 쇠고기를 칼등으로 두드린 후, 계핏가루와 생강즙, 다진 파, 소금을 넣고 주물러서 구워 주면 된다.
④ 약선 재료 넣은 오색송편 당뇨병 환자는 떡을 조심해야 한다. 탄수화물의 밀도가 높아 두세 개만 집어먹어도 혈당이 금방 올라간다. 그러나 송편 반죽에 약선 재료를 넣으면 혈당부담을 덜 수 있다. 구기자(대추), 백합(백하수오), 호박(좁쌀), 쑥(시금치), 석이버섯(흑미)가루를 넣으면 안성맞춤이다. 다섯 가지 재료로 예쁜 오색송편을 빚을 수 있고, 건강에도 좋기 때문이다. 오색 중 ‘화(火)’에 속하는 적색은 심장을 보호하며, ‘금(金)’에 속하는 백색은 폐를, ‘토(土)’에 속하는 황색은 비장을, ‘목(木)’에 대항다는 청색은 간을, ‘수(水)’에 해당하는 검은색은 신장을 보호한다.
⑤ 우엉 넣은 잡채 명절 음식에 빠지지 않는 잡채도 만성질환이 있는 사람에겐 경계 대상에 속 한다. 당면이 탄수화물 덩어리인데다 기름지고 달기 때문이다. 당면잡채 대신 우엉잡채를 차례상에 올리자. 당면양을 줄이고, 우엉채를 많이 섞어서 잡채를 만들면 된다. 우엉은 혈액순환을 활발하게 해주고 섬유질이 풍부해 변비해소에 도움을 준다. 마, 당근, 청·홍 고추, 목이버섯, 양파를 넣으면 색과 식감이 잘 어우러지는 추석 상차림이 완성된다.
⑥ 건강가루로 부친 전 전은 차례상에 빠뜨릴 수 없는 메뉴다. 밀가루 대신 메밀가루나 산약가루, 연근가루로 전을 부쳐 보자. 메밀은 루틴 함량이 많아 혈관벽의 저항력을 향상시키고, 산약은 온몸의 기를 원활하게 하며, 연근은 설사를 멎게 하는 등 소화기를 보호한다. 밀가루를 안 쓰면 글루텐이 부족해 부침옷이 잘 엉기지 않는다. 달걀을 함께 쓰면 이런 문제가 해결된다. 복령이나 녹두로 전을 부쳐도 좋다.복령은 혈당 수치를 내리고 면역기능을 강화해 준다. 항암 및 궤양 예방 효과도 있다. 녹두는 노폐물 해독 효능이 있어 혈관의 노폐물을 빨리 제거시킨다. 복령가루 풀어 둔 물과 녹두를 함께 갈아 전을 부치면 된다.
⑦ 닭요리 + 마늘 대신 생강 밥이 아닌 닭으로 제사 지내는 집안도 있다. 이때 닭요리 특유의 누린내를 없애기 위해 마늘을 쓴다. 하지만 마늘보다 생강이 낫다. 중국 한나라 의학 서적 《금궤요략》에 보면 “마늘과 닭고기는 서로 상충되기 때문에 양념으로 사용하는 것이 좋지 않다”고 기록돼 있다. 마늘의 열성은 기운을 밖으로 발산하게 하는데, 닭고기를 먹어서 몸을 보호하려는 작용을 방해할 수 있다는 말이다. 생강으로 잡냄새가 깨끗하게 없어지지 않는다면 엄나무를 한 토막 넣으면 된다.
⑧ 커피 대신 국화차 기름진 추석 음식에는 식후 커피보다 국화차를 마시자. 혈중 콜레스테롤과 지질의 수치를 낮추는 데 도움을 준다. 상엽 20g, 구기자 30g, 대추 20g, 참깨 3.5g, 국화 1g, 물 2000cc를 넣고 끓여 마시면 된다.
⑨ 식혜 대신 진피차 식혜는 쌀과 당분이 들어 있어 비만, 당뇨병 환자에게 나쁘다. 말린 진피를 활용하면 식혜 못지 않은 향긋한 차를 타서 건강하게 마실 수 있다. 한의학에서 진피는 뭉친 것을 흩어지게 하는 효능이 있다. 맛있는 음식이 많아 체하기 쉬운 추석 때 식사를 마치고 한 잔씩 마셔보자. 주전자에 진피 10g과 물 10컵을 넣고 약한 불로 30분간 끓여 마시면 된다. 시원하게 마시면 더욱 좋다.
(사진=신지호 기자)
약선 요리 배워 보세요
약선요리를 전문적으로 가르쳐 주는 곳이 있다. 약선 이론과 다양한 질환에 좋은 약선음식 등을 배울수 있으며, 새로운 약선 레시피도 개발해 볼 수 있다. 사진은 국제조리전문학교의 모습. 국제조리전문학교에서는 현장 경험이 풍부한 교수진이 약선요리를 가르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