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 학대, 최근 1년새 급증… 자녀 등 가족에 의한 경우가 대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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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국내 노인학대 판정 건수(신고 중 실제 학대행위로 판정된 사례)가 전년 대비 20%가량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매년 건수가 늘고 있는 가운데, 작년의 경우 코로나19로 인한 스트레스, 가족갈등으로 인해 증가 폭이 더욱 컸던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피해자들이 대부분 신체적·정신적으로 쇠약한 상태임에도 학대 사실을 드러내지 않으려는 성향이 강한 만큼, 주변 가족과 이웃, 기관 등의 관심이 절실하다고 강조한다.
◇신고 건수만 1만6000건 이상… 코로나19로 피해 급증
최근 보건복지부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34개소 노인보호전문기관에 접수된 노인학대 신고 건수는 총 1만6973건으로 2019년(1만6071건) 대비 5.6% 증가했다. 이 중 실제 학대 판정 건수는 2019년(5243건)보다 19.4% 증가한 6259건으로 확인된다. 최근 5년간 증가 폭이 8~10%, 적게는 1%에 머물렀던 것에 반해 지난해는 건수가 1000건 이상 급증했다. 복지부는 “코로나19로 인한 우울장애와 스트레스, 가족갈등 등으로 불가피하게 노인학대가 증가했다”며 “가정 내 체류시간이 길어지고 제한된 공간에서 함께 생활하면서 갈등이 확산되고 학대가 증가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실제 지난해 노인학대로 판정된 신고 중 가정 내 학대가 5505건으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했다. 고려대 구로병원 정신건강의학과 한창수 교수는 “과거에 비해 ‘부모’라는 존재에 대한 존중 의식이 낮아진 반면 불만은 높아졌다”며 “지난해의 경우 코로나19로 경제적인 어려움에 부딪히며 부모·자식 간 충돌이 늘고 학대 사례가 증가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같은 듯 다른 노인학대, 드러나지 않아 판별 어려워
노인학대는 크게 ▲신체적 학대 ▲정서적 학대 ▲성(性)적 학대 ▲경제적 학대(착취) 등으로 구분된다. 이밖에 부양의무자에 의한 ‘방임’과 노인 스스로 자기보호를 포기하는 ‘자기 방임’, 보호자 또는 부양의무자가 노인을 의도적·강제적으로 분리시키는 ‘유기’도 노인학대에 포함된다. 정서적 학대(42.7%, 지난해 기준)와 신체적 학대(40.0%)가 압도적으로 많은 비중을 차지하며, 최근에는 혼자 사는 노인들이 늘면서 스스로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권리를 포기하는 자기방임 역시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노인학대는 여러 측면에서 아동학대나 배우자 학대 등 다른 학대유형과 닮아있다. 기본적으로 가해자가 자신보다 약한 대상에게 폭력을 가하며, 2개 이상 학대가 동시에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피해자 스스로 법적인 권리를 행사할 수 있다는 점, 피해자의 경제적 독립성이 높다는 점, 신체적 학대가 차지하는 비중이 낮다는 점 등에서 차이를 보인다. 이 같은 차이는 다른 학대에 비해 노인학대를 쉽게 판별할 수 없도록 하는 원인이기도 하다.
◇이미 아픈 노인, 건강 악화될 수밖에…
노인학대 또한 다른 학대와 마찬가지로 가해자의 학대 행위가 여러 신체·정신적 문제로 직결된다. 특히 노인학대는 이미 신체·정신적으로 쇠약해진 고령의 피해자에게 학대가 가해지는 만큼 일반 성인보다 피해가 크다. 피해자가 이미 기저질환이나 장애를 앓고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실제 대한의사협회 학대대책분과위원회 조사에 따르면, 학대 피해 노인이 질환을 앓고 있는 것으로 확인된 건수만 3082건에 달한다. 질환별로는 ▲관절염 (691건, 22.4%) ▲고혈압 (517건, 16.8%) ▲당뇨병 (325건, 10.5%)이 절반에 가까운 비중을 차지했고, 신체장애 또는 정신장애가 있는 노인 역시 15%가 넘는 것으로 파악됐다. 한창수 교수는 “학대 피해 노인의 경우 신체적으로 외상을 입는 것은 물론, 우울증, 공황장애, 외상후스트레스장애와 같은 정신적인 문제를 겪을 가능성이 높다”며 “실제 학대 피해 경험이 있는 노인들을 만나보면 우울함, 불안과 같은 증세가 있거나, 이로 인해 신체증상이 나타나는 신경성 신체증상을 보인다”고 설명했다.
◇“내 자식인데…” 아파도 말 못하는 노인들
문제는 이 같은 위험에도 노인학대가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노인학대의 경우 대부분 자녀(아들 34.2%, 딸 8.8%, 2020년 기준), 배우자(31.7%) 등 가족에 의해 학대가 발생하다 보니, 피해자들이 외부로 피해 사실을 알리지 않거나 피해 사실 자체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성향이 강하다. 학대 사실이 발견되더라도 당사자인 노인이 도움을 거부하는 경우 또한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아직까지 다른 학대유형에 비해 사회적 관심이 적고 학대를 가정의 문제로만 여기는 분위기 또한 노인학대가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데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한 교수는 “응급실이나 정형외과 등에서 외상이 확인돼 피해자와 이야기해보면 대부분 피해 사실을 말하려 하지 않는다”라며 “가해자인 가족과 함께 오는 경우도 많은데, 이 경우 더욱 말을 못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본인 스스로 학대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기도 하지만, 가해자의 피해를 우려해 대답을 회피하는 경우도 많다”고 덧붙였다.
이 같은 점들은 노인에 대한 학대가 일회성에 그치지 않고 습관적인 재학대로 이어질 위험이 높다는 점에서 더 큰 문제가 된다. 실제 노인학대 사례 중 재학대 사례는 2016년 이후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으며, 지난해 또한 614건으로 2019년(500건) 대비 약 22.8% 늘었다.
◇주변 도움 없이 해결 불가능… 시스템 개선도 필요
노인학대 예방을 위해 주변의 관심과 신고가 절실한 이유 역시 이 때문이다. 노인 스스로는 피해 사실을 알리지 않거나 포기하려는 성향이 강하며, 알리려 해도 가해자에 의해 저지될 가능서이 높다. 따라서 주변에 거주하는 노인에게 학대 정황이 발견된다면 즉시 관련 기관에 신고해 도움을 받아야 한다. 학대가 의심되는 경우 방치해선 안 되지만 반대로 직접 해결하려 해서도 안 된다. 노인학대를 가정 문제로 생각해 가족 구성원 간 대화·합의로 해결한다면 실질적인 해결이 되지 않는 것은 물론, 오히려 보복성 재학대로 이어질 수 있다.
학대를 당한 피해자 역시 자신에게서 원인을 찾거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려해선 안 된다. 노인학대 원인은 가해자의 내적 문제(정신질환, 중독 등)와 외적 문제(부양에 대한 부담, 가정 불화 등), 경제적 어려움 등 피해자가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대부분이다. 실제 노인학대 가해자 10% 이상이 신체장애 또는 정신장애가 있었으며, 특히 정신장애는 학대피해 노인보다 가해자들의 비율(48.1%, 피해자 20.8%, 대한의사협회)이 높은 것으로 확인된다. 한창수 교수는 “아직까지 아동학대에 비해 노인학대에 대한 관심이 적은 것이 현실”이라며 “관심의 필요성을 일깨워주려는 노력과 함께, 학대 피해 노인이 경제적인 이유로 어쩔 수 없이 가해자와 살아야만 하는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시스템 또한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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