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부터 영화나 책을 통해 접했던 친숙한 안데르센의 동화 ’인어공주’. 이 이야기에서 인어공주는 사랑을 위해 목소리를 버렸다. 그렇다면 인간도 목소리를 버리는 것이 가능할까?
신체기관에 문제가 생기면 목소리를 잃을 수 있다. 성대에 암이 생기거나 혹은 후두를 다치거나 제거하면 목소리를 잃는다. 모든 기관이 정상적으로 기능할 경우, 말을 안 할 수는 있지만 인어공주처럼 의도적으로 목소리를 버릴 수는 없다는 뜻이다. 하지만 간혹 의학적으로 모든 신체적인 구조는 정상인데 갑자기 목소리를 잃게 되는 사람들이 있다.
첫 번째로 청각장애인을 들 수 있다. 인간은 청각 기능이 소실되면 말하는 데 장애가 생긴다. 말로 표현하기 위해서는 먼저 생각을 해야 하는데, 대뇌에서 보낸 신호는 뇌간(腦幹)이라는 통합조절센터를 거친다. 여기서 감정과 기억, 청각, 후각, 미각 및 오감의 정보가 통합되어 대뇌에서 내려온 신호를 제어하고 조절해 발성기관의 근육들로 내려 보낸다. 이 신호들에 의해 발성기관의 400여 개 근육들은 가장 적절한 압력과 강도, 속도로 조절된다. 그러면 폐에서 공기를 올려 보내 성대를 진동시키고 이 진동이 인두를 통과하면서 공명을 만든다. 공명된 소리는 다시 구간과 입술을 통과하면서 조음을 형성하고 마침내 우리가 듣는 목소리가 된다.
그런데 청각을 잃으면 이러한 과정에서 문제가 생긴다. 스스로 자기가 내는 소리를 확인할 수 없기 때문에 목소리를 만드는 근육을 조절하는 강도와 방향, 속도를 알 수 없고, 결국에는 소리 자체를 만들 수 없게 된다. 마치 눈을 가리고 운전하는 것처럼 차가 어느 방향으로 어떤 속도로 가고 있는지를 확인할 수 없어 운전을 포기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두 번째로는 실어증(Aphasia)이 있다. 실어증은 청각 기능과 발성기관은 모두 정상이지만 이를 통제하는 뇌에서 신호를 보내지 못해 나타나는 언어장애다. 실어증은 1861년 폴 브로카(Dr. Paul Broca) 박사에 의해 발견되었는데 그는 말을 잘 못하다가 패혈증으로 죽은 시체를 부검하면서 대뇌의 세 번째 큰 주름에 이상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 대뇌에서 언어 영역을 다루는 부위를 정확히 찾아낸 최초의 발견이었고, 이 부위는 ‘브로카의 영역(Broca’s area)이라 명명됐다.
브로카 영역에 이상이 생기는 실어증을 ‘브로카 실어증’ 또는 ‘운동성 실어증’이라고 한다. 이 환자들은 몇 개의 단어로 더듬거리면서 말을 자연스럽게 이어가지 못한다. 문법적인 구성이 어렵고 힘들어 단어만 나열할 뿐이다. 하지만 남의 말을 듣고 이해하는 것은 정상이다.
인어공주가 사랑을 위해 버렸던 목소리는 현대의학적 관점에서 ‘운동성 실어증’의 비유적 표현으로 볼 수 있다. 남의 말과 언어는 모두 이해하지만 말을 할 수 없는 상태가 바로 인어공주의 목소리 장애였던 것이다. 간혹 연인과 헤어진 뒤 정신적·심리적인 충격 때문에 실어증이 나타나는 사람들도 있다. 어쩌면 이들의 사랑 역시 인어공주만큼 애절한 것은 아니었을까?
/기고자 : 예송이비인후과 김형태 원장
외모보다 더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는 목소리의 모든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