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박모(54)씨는 건강검진에서 "협심증이 상당히 진행됐다"는 판정을 받고 깜짝 놀랐다. 평소 심혈관질환을 의심할만한 증상이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심장혈관 조영술을 통해 정밀 검사한 결과 박씨는 '무통성협심증'으로 판명됐다. 관상동맥 3가닥 중 하나의 지름이 4분의 3정도 막혀 있었다. 박씨는 "협심증이 이렇게까지 진행될 동안 아무 증상이 없었다는 것과 검진을 받지 않고 방치했다가 아무도 모르게 쓰러졌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니 끔찍했다"고는 가슴을 쓸어 내렸다.
무통성협심증은 일반 협심증과 달리 혈관이 막혀도 통증이 거의 나타나지 않기 때문에 당뇨병 환자 등 고위험군은 정기적인 검사를 받아 질병을 조기에 발견해야 한다. 강남세브란스병원 제공
전체 협심증의 10~30%는 증상 나타나지 않아
협심증이 위험 수준까지 진행될 때까지 아무런 증상이 없거나 일반적인 협심증과 다른 증상이 나타나 환자가 병을 인식하지 못하는 '무통성협심증'이 적지 않다. 보통 협심증은 심장혈관이 한 가닥이라도 50% 정도 막히면 심한 운동 등을 할 때 가슴이 조이는 듯한 통증을 느끼게 된다. 70%가 막히면 계단을 오르는 등 약한 운동을 해도 통증이 나타나며, 80% 이상 막히면 가만히 있어도 통증이 생긴다. 두 가닥 혹은 세 가닥이 모두 막혔으면 각각의 혈관이 이보다 덜 막혔어도 심한 통증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무통성협심증은 심혈관이 아무리 많이 막혀도 통증 등의 증상이 나타나지 않는다. 대부분의 무통성협심증은 건강검진을 받다가 발견되며, 심한 경우 심혈관이 완전히 막혀 심근경색으로 쓰러질 때까지 모르는 경우도 많다.
이밖에, 일반 협심증과 다른 증상을 나타내는 경우도 있다. 이병권 강남세브란스병원 심장내과 교수는 "이런 환자는 협심증 초기 피로를 쉽게 느끼고 다리가 붓거나 가슴이 약간 답답하다가 심해지면 호흡곤란을 보일 수 있다"며 "소화가 안되는 것처럼 메스꺼움을 호소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런 증상은 보통 15분 이내에 사라진다. 하지만 이런 증상만으로는 자신의 심혈관에 이상이 있다고 생각하기 어려우므로 대부분 협심증을 키우게 된다.
김현중 건국대병원 심장혈관내과 교수는 "서양의 경우 성인의 2.5%, 70세 이상은 전체 인구의 10% 정도가 무통성협심증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심근경색 사망자 중 남성 28%, 여성 35%가 무통성협심증이 원인이었다는 미국 연구 결과도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전체 협심증 환자의 10~30% 정도가 무통성협심증이라고 의료계는 추정한다.
당뇨병 환자는 무통성협심증 특히 주의해야
왜 협심증이 진행되고 있는데도 증상이 발생하지 않는지는 정확히 모른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통증을 느끼는 감각계통에 이상이 생겼을 때 무통성협심증이 나타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기본적으로 엔돌핀의 분비가 많아 통증에 대한 저항성이 높거나(통증을 잘 견디는 사람), 당뇨병이나 신경계통 질환으로 감각신경이 손상된 사람 등은 협심증이 있더라도 통증을 느끼기 힘들다.
특히 당뇨병 환자는 무통성협심증을 주의해야 한다. 당뇨병 환자는 혈액 내 고혈당과 고지혈증 등으로 신경의 기능에 관여하는 혈관이 망가지기 쉬워 통증을 제대로 못 느낀다. 당뇨병 환자가 발에 상처가 나도 환부가 심하게 악화될 때까지 다친 것을 느끼지 못하는 당뇨병성 족부증도 신경이 무뎌졌기 때문이다. 김현중 교수는 "당뇨병 환자는 협심증도 당뇨병성 족부증과 마찬가지로 증상을 느끼지 못할 가능성이 크고, 혈관을 들여다 볼 방법이 없기 때문에 병을 계속 키우게 된다"며 "따라서 당뇨병 판정을 받은 뒤 7~10년이 지났다면 증상이 없어도 협심증 등을 의심하고 한번쯤 검사를 받아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치료 방법은 일반 협심증과 같아
무통성협심증의 치료법은 일반 협심증과 같다. 협심증의 치료는 크게 약물치료와 협착이 심한 혈관을 넓혀주는 시술로 나뉜다. 약물치료는 대개 혈관이 70% 이하로 막혔을 경우 아스피린이나 혈관확장제 등을 사용해 더 이상의 진행을 막아 준다. 혈관이 그 이상 막힌 경우는 스텐트 삽입술을 시행한다. 심혈관조영술로 막힌 부위를 찾아내고 혈관에 가는 관을 집어넣어 작은 풍선과 스텐트라는 철망을 이용해 혈관을 넓혀 준다. 이 방법으로 해결할 수 없거나 재발하는 경우 등에는 손목이나 대퇴부의 혈관을 떼어 관상동맥을 새로 만들어 주는 관상동맥우회술을 받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