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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나는 왜 아프게 된 거에요? 열심히 치료받으면 집에 갈 수 있어요?” 제 손가락만한 굵기의 혈관줄을 가슴에 매단 채 지윤이는 엄마를 올려다보며 물었다. 조정선씨는 대답 없이 지윤이를 품에 안았다. 미안하다는 말밖에는 떠오르지 않았다. 지윤이의 병이 자신의 탓인 것만 같은 그런 미안함.
세상에 온 지 3년이 조금 넘은 지윤이에게 ‘필라델피아 염색체 음성 급성 림프구성 백혈병’이란 긴 이름의 병은 너무도 버거운 짐이었다. 한국에서 환자가 기껏 200명이 안 되는 이 낯선 병을 치료하기 위해 영문도 모른 채 주삿바늘이 허리로, 목으로, 허벅지로 파고드는 아픔을 견뎌야 했다. 눈물조차 말라 비명 같은 울음을 악을 쓰듯 토해냈다. 그러다가도 정신을 차리면 오히려 엄마를 위로했다. “엄마, 지윤이 아픈 거 보고 마음이 안 좋아서 우는 거예요? 울지 마요. 엄마가 눈물을 흘리면 마음이 아파요.”
말문이 트일 때쯤 시작한 병원생활은 1년이 넘었다. 처음부터 희망은 한 점에 집중돼 있었다. 조혈모세포 이식이다. 이식을 위해서는 두 가지 조건이 필요했다. 혈액 속에 암세포가 거의 없는 상태(완전 관해)에서 조직적합성 항원이 일치하는 기증자를 만나야 했다. 첫 번째 조건인 ‘완전 관해’를 위해서 조그만 몸에 독한 항암제를 꾸역꾸역 넣었다. 지윤이는 ‘주황색 약’이 싫다면서도 대견하게 버텼다. 희망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대로라면 곧 완전 관해 상태에 이르게 돼 6개월 안에 조혈모세포 이식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희망이 한 순간에 절망으로 바뀐 것은 지난여름이었다. 혈액검사에서 다시 암세포가 발견됐다. 더 독한 항암치료가 시작됐다. 그러나 재발 전과 달리 암세포는 쉽게 줄지 않았다. 의학적으로 급성림프구성 백혈병은 1차 치료에서 완전 관해 달성률이 90%가 넘지만, 재발할 경우 17%로 뚝 떨어진다. 남은 방법은 한 가지, 새로 나온 치료제를 써보는 것이었다. 두 달 치 약값이 8000만원에 이르는 고가의 항암제였지만 망설일 틈이 없었다. 다행히 여러 재단과 사회단체에서 절반가량을 지원받았다. 완전 관해에 성공할지 담보할 수 없는 상황. 신약마저 실패하면 더 이상은 방법이 없었기에 조정선씨 부부는 더욱 간절히 기도했다.
기도가 이뤄진 것일까. 치료 2주 만에 기적적으로 지윤이의 몸에서 암세포가 사라졌다. 완전 관해 상태가 되어, 조혈모세포 이식이 가능하게 된 것이다. 더 지체할 것 없이 조혈모세포 이식을 받기로 했다. 지윤이의 두 살 터울 동생 영찬이의 조직적합성 항원이 지윤이와 완전 일치했다. 평소 주사만 보면 기겁을 하던 영찬이도 웬일인지 “누나를 위해서라면 피를 뽑을 수 있어”라고 용감하게 말했다.
오늘(24일)은 영찬이의 조혈모세포가 지윤이에게 이식되는 날이다. 이식은 무사히 마무리됐다. 이제 이식된 조혈모세포가 생성한 혈액에서 암세포가 재발하지 않는지 관찰하는 일만 남았다. 조정선씨 부부가 할 수 있는 일은 또 다시 기도뿐이다. 조씨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말했다. “세상에 태어난 뒤 아픈 날이 더 많았던 아이입니다. 그 안에서도 늘 웃음을 잃지 않고 오히려 부모인 우리에게 힘과 위로를 주며 그 힘든 치료 과정을 견뎌온 사랑스런 딸입니다. 자기와 같이 아픈 사람을 치료해주는 의사가 되고 싶다는 딸의 소원이 이뤄지길, 딸이 살아 숨 쉬는 지금 이순간의 기적 같은 소중함을 오래 나누길 기도합니다.”
조씨는 한 가지를 더 언급했다. “지윤이가 이식이라도 시도할 수 있었던 것은 블리나투모맙이라는 치료제 덕분입니다. 고액의 치료제가 부담이었지만 다행히 혈액암협회 등 여러 곳에서 지원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후원을 해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지윤이 같은 아이가 한 명이라도 더 나은 치료를 받을 수 있길 바랍니다.”
지윤이의 담당 의사인 김혜리 교수는 “지윤이가 사용한 블리나투모맙은 현재 성인에게 사용할 경우에만 보험급여 혜택을 받을 수 있다”며 “소아는 아직 급여가 적용되지 않다 보니 경제적인 부담이 크다”고 말했다. 그는 “의사로서 이런 고가의 치료제를 사용하라고 처음부터 적극적으로 권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라며 “지윤이 같은 어린이가 이 약을 사용할 수 있도록 보험급여를 통해 접근성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본 기사는 권지윤(가명)양의 사례를 토대로 재구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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