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께 보내는 편지>
암에 걸리고 환자들이 가장 적응하기 어려워하는 게 뭘까요? 환자복, 환자식, 병원 냄새…. 많은 것이 있겠지만 그 중에서 제일 힘들어하는 게 보호자의 잔소리입니다. “이걸 또 먹으려고요?” “찬물 말고 미지근한 물 마셔요” “커피는 안 돼요” 같은 잔소리를 들으면 환자들은 감옥에 갇힌 것만 같다고 합니다. 심지어 ‘감옥에서는 커피라도 마실 수 있지’라는 생각이 들 정도라고 하니, 그 고통이 오죽할까 싶습니다.
규칙보다 중요한 건 행복
암환자가 가장 먼저 빼앗기는 것은 ‘맛’입니다. 식사에 규칙이 없으면 안 되지만, 규칙보다 먼저 생각해야 하는 것은 행복한 투병 생활입니다. 장기전으로 가야 하는데 처음부터 보호자가 모든 것을 빼앗아버리면 그만큼 적응이 힘들어집니다. 수술하거나 항암치료를 하고 있으면 의사들은 보호자에게 “가급적 찬물을 먹이지 마세요”라고 합니다. 찬물이 몸에 자극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유 없는 열감에 시달리는 환자들은 미지근한 물을 마시는 걸 죽기보다 싫어합니다.

물맛이 가장 좋은 온도는 섭씨 4~14도입니다. 찬물이지요. 반대로 가장 맛없는 물의 온도는 체온과 비슷한 섭씨 30~40도입니다. 환자들에게 마시라고 권하는 미지근하거나 따뜻한 물이 바로 가장 맛이 없는 겁니다. 물은 원래 미량의 미네랄 때문에 특유의 물맛이 납니다. 찬물일 때 그 맛이 강해집니다. 게다가 찬물일 때는 용존산소량도 훨씬 많습니다. 미지근한 물에서는 아무 맛도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런데 미지근한 물이 몸에 좋다고 알려진 이유는 체온과 비슷해서 흡수가 빠르기 때문입니다.
찬물 마시더라도 꼭꼭 씹어 삼켜야
보호자 중에는 찬물은 많이 마시기 어렵기 때문에 미지근한 물을 많이 권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또 체온이 1도 오르면 면역이 증가한다고 알려져 있어 찬물보다는 따뜻한 물이 막연히 몸에 더 좋을 것이라 여깁니다. 이 말은 부분적으로는 맞지만 모든 상황에 적용할 수 있는 말은 아닙니다. 찬물 한 잔으로 체온이 내려가지는 않습니다. 어떤 경우든 찬물을 못 마실 이유는 없습니다. 환자가 그저 시원하고 맛있게 물을 마시는 게 더 중요합니다. 다만 저는 암환자가 찬물을 마실 때면 꼭꼭 씹어 삼키라고 권합니다. 꼭꼭 씹다보면 물이 조금 미지근해지면서 목구멍을 내려갈 때 자극이 덜 하게 됩니다. 침 속 소화효소와 섞이기도 하고요.
커피 한 잔이 삶의 행복 가져다주기도
물과 함께 또 하나의 실랑이로 꼽히는 게 기호식품입니다. 대표적인 게 커피입니다. 환자가 커피를 매일 달고 사는 게 아니라면 보호자는 한 발 양보해도 괜찮습니다. 커피 한 잔의 유혹은 끊기 어렵습니다. 커피를 좋아하는 이들은 향기만 맡아도 행복하다고 합니다. “시원한 아메리카노 한 잔만!” “커피 한 잔만 마시면 소원이 없겠어요” 라며 커피를 호소하는 환자들에게, 저는 들키지 말고 슬쩍 마시라고 한 적도 있습니다. 커피 한 잔일 뿐이지만 환자 입장에서는 그것이 ‘정상적인 생활’과 ‘환자의 생활’을 가르는 벽입니다. ‘암 때문에 커피도 못 마시는구나’라고 울적해하는 것보다 한 잔 맛있게 마시고 투병을 씩씩하게 하는 게 낫지 않을까요? 다만 커피를 마시더라도 너무 자주 마시지는 말고, 1주일에 한두 잔 정도 즐기세요. 약을 먹기 전후 시간에는 피하는 게 좋습니다.
기호식품은 환자 입장에서는 ‘사람답게 산다’는 여유를 느끼게 해줍니다. 맛과 영양도 중요하지만 커피가 내려지는 순간의 기다림, 구수한 향이 가져다주는 희열은 참기 어렵습니다. 커피 한 잔과 아름답고 운치 있는 음악은 투병생활에 오히려 플러스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술·담배는 용납 안 돼
아무리 기호식품이라 할지라도 와인, 맥주, 담배 등은 금지입니다. 끝까지 고집하는 환자가 있지만 이는 커피와는 엄연히 다릅니다. 확실한 발암물질이기 때문입니다. 보호자들은 술과 담배에 대한 요구는 결코 양보하지 마셔야 합니다! 차가운 물도 좋고 시원한 아메리카노도 괜찮습니다. 무더운 여름, 암을 슬기롭게 이겨내세요. 늘 애쓰시는 환자와 보호자들에게 오늘도 사랑과 축복을 보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