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한 일 없었는데, 뇌에 번개가 번쩍했다고?

무증상뇌졸중의 실체

뇌졸중 증상과 관련해선 마비되거나, 심한 두통을 호소하거나, 실신하거나, 사망하는 장면 등을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번개처럼 내 머릿 속 혈관에 손상을 입혔는데, 나는 아무 증상을 못 느끼는 ‘무증상뇌졸중’도 있다. 그러다 보니 ‘뇌 속 번개’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혹시 내 뇌에도 번개가 친 적은 없었는가? ‘뇌에 번개가 친다’는 것은 무엇인지, 무증상뇌졸중에 대해 알아두자.

사진 신지호 기자

01 방치하면 중증 뇌졸중 발병 위험 10배

발견된 후에야 “그래서 그랬구나~”

자영업자 박경식(63)씨는 1~2년 전부터 손가락 끝이 자주 찌릿했으나 동네 병원에서는 별 이상을 찾지 못했다. 그런데 우연히 뇌 자기공명영상법(MRI) 촬영이 포함된 건강검진을 받은 후 결과를 보고 깜짝 놀랐다. 오른쪽 머리 위 혈관에 뇌졸중이 생긴 지 이미 5년이 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손을 담당하는 뇌세포 일부가 뇌졸중을 일으킨 뇌혈관 때문에 제 기능을 못 해 손이 저렸던 것이다.

위 사례처럼 두통, 어지럼증, 실신 등과 같은 증 상 없이도 뇌졸중이 생길 수 있다. 뇌혈관이 막혀 뇌세포가 죽었지만 다행히 죽은 세포의 수가 적거나 부위가 중요하지 않아 증상을 못 느끼는 경우가 생기기 때문이다. 따라서 병원에서 진단받기 전에는 건강한 일반인과 어떤 차이도 보이지 않는다. 무증상뇌졸중 발생 후 어느 정도 시간이 경과한 뒤에 경미한 증상이 나타나기도 하지만, 일반 노화 증상 정도로 여기기 쉽다.

55세 이상 57% 무증상뇌졸중 관찰돼

김영인 교수가 최근 건강검진센터를 찾은 성인 287명을 대상으로 MRI 검사를 실시한 결과 40세 이상 중 29.3%, 55세 이상 중 57%에서 무증상뇌 졸중이 발견됐다. 이와 관련한 미국 연구 결과도 있다. 최근 미국 보스턴대학에서 평균 62세 2040 명을 대상으로 뇌 MRI를 분석한 결과, 전체의 10.7%가 무증상뇌졸중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중증 뇌졸중 위험성 10배, 치매 위험 2배

증상이 없다고 우습게 봐서는 안 된다. 무증상뇌졸중은 뇌 조직이 조금씩 죽어가고 있다는 증거이며, 결국 치명적인 손상을 가져오게 될 중증 뇌졸중의 예고 편이다. 김인수 과장은 “당장은 건강한 일반인과 차이가 없지만 방치할 경우 갑작스럽게 중증 뇌졸중이 찾아올 위험이 정상인에 비해 10배 높다”고 말했다. 치매 위험도 높다. 김 과장은 “운동 기능을 담당하는 혈관을 다행스럽게 피해 갔더라도 인지 기능과 관련된 혈관이나 세포에 이상이 생겼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고령자인 경우 치매에 걸릴 위험이 높다”고 했다. 국내외 연구에 따르면, 정상인에 비해 2.3배 정도 치매 위험이 높아진다.

02 이런 사람 무증상뇌졸중 주의해야

무증상뇌졸중 위험성 높은 경우 

그렇다면, 증상도 없는데 무증상 뇌졸중이 생겼 다는 것은 어떻게 확인할 수 있을까. 물론 MRI를 찍어 보면 미세하게 막힌 혈관까지 정밀하게 파악 할 수 있기 때문에 무증상뇌졸중을 확인할 수 있다. 또 각종 초음파 등으로 혈관의 이상 여부를 알 수 있다. 하지만 만만찮은 비용 탓에 한번 찍을 때마다 큰마음을 먹어야 하는 검사들을 수시로 받을 수는 없는 일이다.

우선, 전문의들은 50대 이후에 평소 이유 없이 숨이 차고 기억력이나 사고력 등이 조금씩 떨어진다면, 손발이 조금씩 자주 저린데 인근 병원에서 계속 원인을 못 찾고 있다면 무증상뇌졸중 가능성이 있으므로 검사받아 볼 것을 권한다. 신철 교수는 “50대 이후인데 고혈압, 당뇨병, 비만, 흡연 등 뇌졸중 위험인자를 갖고 있다면 정기적으로 뇌혈관 정밀검진을 받는 것이 좋다”고 강조했다.

그 외에 뇌졸중 가족력이 있는 경우, 수면무호흡증이 있는 경우, 치아가 많이 빠진 경우엔 무증상뇌졸중 위험성이 높으므로 정기적으로 검사를 받아야 한다.

뇌졸중 가족력 있으면 위험성 2배

가족 중에 뇌졸중 환자가 있으면 뇌졸중에 걸릴 위험이 2배 정도 높다고 알려져 있다. 김남근 교수는 “몸속 혈관을 구성하는 유전자 모양이 뇌졸중 환자인 경우 2개가, 무증상뇌졸중 환자인 경우 1개가 정상인과 다르다는 것이 최근 연구를 통해 확인됐다”면서 “뇌졸중이 유전 인자의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 확인된 만큼 뇌졸중 가족력이 있다면 좀더 주의 깊은 관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가족 중에 뇌졸중 환자가 있다면 50대부터 정기적으로 뇌 검사를 받아 보고, 이때 무증상뇌졸중이 발견된다면 철저하게 관리해나가야 한다. 따라서 정기적인 정밀검사가 중요하다.

수면무호흡증 있으면 위험성 2.4배

잠자면서 10초 이상 숨을 쉬지 않는 무호흡 상태가 1시간에 5회 이상 나타나는 수면무호흡증인 경우에도 무증상뇌졸중 위험도가 2.4배 높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신철 교수팀이 50~79세 남녀 746명을 대상으로 수면다원검사와 뇌 MRI를 실시한 결과 뇌졸중 위험도가 최대 4.7배까지 높았는데, 이 중 무증상 뇌졸중 위험도는 2.4배였다. 신철 교수는 “고령, 고혈압, 부정맥, 고지혈증, 당뇨병, 과음 및 흡연 등 뇌졸중 위험요인을 가진 사람에게 수면무호흡 증상이 있다면, 증상이 없어도 50대부터 뇌졸중 검사를 받는 게 좋다”고 말했다.

치아 많이 빠져도 위험도 4.2배

치아 상실이 무증상뇌졸중과 연관 깊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원광대 의대 신경과 석승한 교수팀은 뇌졸중과 치매가 없는 50대 이상 438명을 대상으로 뇌 CT(컴퓨터단층촬영) 검사와 면담진료, 구강검진을 함께 한 결과, 치아가 11개 이상 빠진 사람은 5개 미만 빠진 사람보다 무증상뇌졸중 위험도가 4.2배 높다는 연구 결과를 최근 발표했다. 석승한 교수는 “만성치주염에서 시작된 염증이 동맥경화를 일으켜 뇌졸중을 일으키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03 무증상뇌졸중 이렇게 예방하고 대처하자

약물 복용으로 중증 진행 막을 수 있어

무증상뇌졸중 상태가 발견만 된다면 약물치료와 생활개선을 통해 더 심한 뇌졸중으로 진행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우선 무증상뇌졸중이 발견되면 신경과 전문의와 상의해 적절한 약물을 처방받자. 혈압약을 먹고 있는 경우라면 혈압 강하제의 용량과 종류를 바꿔볼 필요가 있으므로 주치의와 논의해야 한다. 그 외에 무증상뇌졸중을 예방하고, 대처하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하루 한두 번 낮잠 자고 일기 쓰자

생활 속에서는 충분히 휴식을 취하자. 하루 한두 번 30분 이내의 짧은 낮잠은 뇌를 쉬게 하기 때문에 도움이 된다. 일기를 쓰는 습관도 좋다. 매일 같은 시간에 하루 일을 짧게 정리하고, 또 1주일 주기로 이를 다시 정리하는 것을 습관화하면 뇌 기능이 활성화 되고, 뇌혈류가 좋아진다.

중등도 이상의 꾸준한 운동

중증도 이상 강도 높은 운동을 꾸준하게 하면 무증상뇌졸중 예방에 좋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미국 컬럼비아대학 연구팀은 뇌졸중 병력이 없는 70세 이상 노인 1238명에 대해 운동을 전혀 하지 않는 군, 골프나 볼링 등 가벼운 운동을 규칙적으로 하는 군, 테니스나 조깅, 수영 등 중등도 이상의 운동을 하는 군을 조사한 결과를 <신경학저널> 최근호에 발표했다. 이 연구결과에 따르면, 강도 높은 운동을 규칙적으로 한 그룹은 운동하지 않는 그룹에 비해 뇌졸중 발병률이 40% 낮게 나타났다. 김인수 과장은 “몸에 약간의 부담을 주는 운동이 뇌 혈류를 좋게 하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라며 “하지만 강도 높은 웨이트 트레이닝이나 마라톤 등은 혈압을 높이기 때문에 삼가고, 무엇이든지 꾸준히 하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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