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 많이 쓰면 피곤한 이유… '독성 물질' 뇌에 쌓여서?

입력 2022.08.18 17:00

인지 피로로 신경전달물질 글루타메이트 뇌에 축적
​과도하게 쌓이면 독소로 작용해
​집중력 저하, 충동성 강화
피로 해소하려면 숙면 취해야

열심히 공부하는 사람
일러스트=박상철
공부나 업무를 열심히 하고 나면 지친다. 머리를 열심히 썼기 때문. 팔, 다리 등 다른 부위는 두고, 뇌세포만 사용했는데 왜 몸을 일으키기 힘들까? 최근 인지 피로를 느끼면 고기능 작업을 하는 뇌 부위에 독성 물질이 쌓인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신경전달물질 과량 쌓이면 독성 물질로 작용
머리를 오래 너무 열심히 쓰면 글루타메이트라는 흥분성 신경전달물질이 뇌 전전두엽 피질에 과도하게 쌓여 독성 작용을 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전전두엽 피질은 전두엽 앞부분을 덮고 있는 대뇌 피질로, 뇌 기능 중에서도 계획, 성격, 의사결정, 사회적 행동 조율, 발화, 언어 조율 등 고기능을 담당하는 곳이다. 프랑스 파리뇌연구소(PBI) 연구팀은 정신적 피로가 왜 생기는지 확인하기 위해 실험대상자 40명을 모집해, 6시간에 걸쳐 과제를 해결하게 하고 자기공명 분광법(MRS)으로 뇌의 변화를 확인했다. MRS는 세포의 대사 과정에서 분비되는 화학물질을 확인하는 영상 촬영법이다. 연구팀은 24명에게는 더 어렵고 까다로운 과제를, 16명에게는 비교적 쉬운 과제를 해결하도록 했다. 어려운 과제로는 1.6초마다 컴퓨터에 글자를 표시한 뒤, 각 글자를 이전에 나타난 글자와 다양한 방식으로 비교하도록 했다. 나머지 그룹에는 비슷하지만 푸는 방법이 더 쉬운 과제를 줬다. 과제 동안 뇌에 쌓인 화학물질을 분석한 결과, 어려운 과제를 한 그룹은 전전두엽에 글루타메이트 수치가 약 8% 증가했지만, 비교적 쉬운 과제를 한 그룹은 수치에 변화가 거의 없었다. 어려운 과제를 한 그룹은 동공 확장 등 피로하다는 것을 나타내는 또 다른 증상이 나타나기도 했다. 삼성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안지현 교수는 "글루타메이트는 신경세포에서 나오는 전기적 신호를 다른 신경세포에 전달하는 기능을 해, 너무 없어도 인지 기능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면서도 "적당량 있으면 장기 기억을 돕는 등 좋은 역할을 하지만, 과량 축적되면 신경 세포 사이 통신을 방해하고 세포 독성을 일으켜 신경 세포를 죽이기도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뇌졸중으로 뇌세포가 죽었을 때도 글루타메이트가 과량 분비되는 것으로 확인됐으며, 과하면 치매를 유발할 수도 있다고 알려졌다. 가천대 길병원 뇌과학연구소 김영보 교수(신경외과)는 "글루타메이트뿐만 아니라 다른 신경 전달 물질도 과하게 분비되면 수용체 반응이 둔해져 이상이 생길 수 있다"며 "머리를 써 피곤하면 쉬는 등 항상 생체 조직 간 균형을 맞추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집중력 떨어지고 충동성 강해져
연구에 참여한 피티에-살페트리에르대 마티아스 페실리옹 교수는 "피로감은 뇌가 정상적 기능을 보존하기 위해 하던 일을 멈추라고 보내는 신호"라고 말했다. 피로해도 무시하고 머리를 계속 쓰면 어떻게 될까? 단기적으론 정신을 집중해 일을 진행하거나, 의사결정을 하기가 어려워진다. 적절한 의사 결정을 하려면 글루타메이트와 반대 작용하는 물질인 가바(GABA)와 균형을 맞춰야 하는데, 글루타메이트가 지나치게 많아지면 오히려 정보 전달 기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특히 충동성이 강해지는 것으로 확인됐다. 연구팀은 피로가 의사결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확인하려고 추가 실험을 진행했다. 실험 참가자에게 소액의 돈을 당장 받을지, 아니면 나중에 더 많은 돈을 받을지 선택하도록 했더니, 어려운 과제를 한 그룹에서 즉시 소액의 보상금을 받겠다는 답이 많았다. 연구팀은 "글루타메이트가 뇌에 더 쌓이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전전두엽에서 합리적인 판단을 거치지 않은 채 충동적인 선택을 하는 것으로 추정된다"며 "온종일 일을 한 뒤인 밤에 충동적 결정을 할 가능성이 있으므로, 중요한 결정은 밤에 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다.

잠 시간까지 줄이며 장기적으로 과로하면 치매 발병 위험도 커질 수도 있다. 가천대 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배승민 교수는 "자는 동안 뇌내 피로 물질이 배출되므로 제대로 못 자면 글루타메이트뿐만 아니라 다른 독성 물질도 쌓여 단기적 인지 기능이 떨어지는 것은 물론 치매 발병률도 높아질 수 있다"며 "실제로 멀티작업을 너무 많이 하면 치매 유병률이 조금 높아진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나라에는 뇌를 혹사하며 빨리 업무를 끝내는 것을 찬사하고 조장하는 분위기가 있는데, 후유증 관리가 안 된 채 장기적으로 과로하면 뇌 기능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과로하면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 수치도 올라가 만성적으로 심장, 내분비계에 영향을 줘 불안장애, 비만 등도 유발할 수 있다.

◇인지 피로 풀려면 잠 푹 자야
가장 좋은 인지 피로 해소법은 숙면이다. 실제로 잠을 자고 나면 글루타메이트 수치가 낮아진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안지현 교수는 "혈관 뇌 장벽에 뇌 속 노폐물을 청소하는 시스템이 있는데, 자는 동안 활성산소, 글루타메이트 등이 여과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고 말했다. 푹 자고 나서도 피곤하고, 기존에는 할 수 있던 양인데 못하는 등 일의 효율이 떨어졌다면 이미 과로로 뇌 기능이 떨어졌을 수 있다. 이땐 업무량을 조절하는 것이 좋다. 당장 피곤하다면 잠시간 멍때리며 인지 작업을 쉬어주는 것도 일시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다. 배승민 교수는 "잠을 잔 총시간보다 규칙적으로 자는 게 피로 해소에 더 중요하다"며 "인지 피로로 피곤하다면 잘 잘 수 있는 수면 환경을 만든 후 저녁 12시 이전에 규칙적으로 잠드는 습관을 기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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