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알코올 중독까지… 아동학대, 후유증이 더 크다

입력 2021.02.25 16:04

평생 트라우마로 남아… 성인 돼도 신체적, 정신적 문제 겪어

아동학대 피해 어린이
아동학대는 피해자에게 평생 트라우마를 남긴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2003년 부모의 아동학대로 늑골 골절, 췌장 파열, 신장 파열을 겪었던 4세 어린이 A는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 2021년 현재 그는 성장 장애, 당뇨병,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등으로 인한 노동력 상실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A씨의 사례는 특이한 사례가 아니다. 아동학대를 겪은 많은 이들의 현실이다.

◇성인 되어도 사라지지 않는 아동학대 후유증

소아청소년 전문가들은 아동학대가 결코 한순간의 치료로 끝나지 않는다고 강조한다. 당장의 신체 손상을 해결하고, 정신과 상담을 한다고 아동학대 피해의 상처가 완치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아주대학교 의과대학 배기수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아동학대와 방임이 장기적인 시간에 걸쳐 신체적, 심리적, 행동 문제를 일으킨다고 밝혔다. 배 교수에 따르면, 신체적 문제도 수년 후에야 문제가 드러나는 경우가 많다. 뇌의 특정 영역이 형성되고 성장하는데 아동학대가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감정 처리 핵심인 편도체, 학습기억의 중심인 해마, 감정조절 등을 담당하는 안와 전두 피질, 운동 기능 등을 조정하는 소뇌 등이 제대로 발달하지 못해 생기는 문제는 장시간에 걸쳐 문제를 일으킨다.

아동학대가 당뇨병, 폐질환, 시력 문제, 관절염, 고혈압, 뇌졸중, 만성 기관지염, 암, 장 질환 등 광범위한 질환의 발현 위험률을 높인다는 다수의 해외연구 결과도 있다.

심리 건강 문제는 더욱 크다. 학대는 피해자가 고립, 두려움, 불신을 느끼게 해 교육적 어려움, 낮은 자존감, 우울증, 관계 형성유지 곤란 등 평생에 걸친 심리적 문제로 이어진다. 아동학대 병력이 있는 성인은 그렇지 않은 성인보다 자살 시도가 더 많고, 성인이 된 이후 항우울제 치료 반응도 더 좋지 않다. 반사회적 특성이 개발될 가능성이 커져 성인이 된 후 범죄 행위가 이어질 가능성도 크다.

아동학대 피해자는 학대가 끝나도 행동장애를 보이기도 한다. 배기수 교수는 "학대피해 아동은 거래 성행위 등 불건전한 성행위를 하거나 성인 범죄로 이어지는 청소년 비행 등의 행동장애를 종종 보이며, 알코올 및 기타 약물 사용장애의 위험도 크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학대 피해자는 어릴 때 '부모에게 학대는 적절한 것'이라는 학습을 해, 아동학대의 악순환이 생기기도 한다"고 밝혔다.

◇아동학대 피해자, 장기적 지원 필수… 정책적 접근 필요
그렇다면 아동학대 피해자 치료는 어떻게 이뤄져야 할까? 학대 피해자들을 직접 경험한 전문의들은 장기적 관점의 피해아동 지원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배기수 교수는 "아동학대 피해아동의 건강지원을 위한 장기대책 수립은 시급한 문제"라고 말했다. 학대피해 아동을 위한 법과 제도가 치료보다 보호에 치중돼 발생하고 있는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배 교수는 "가정복귀 아동의 일정기간 의료검진을 의무화하고, 피해아동의 치료보장을 위한 특화병원 지정과 예산 확보, 건강 고위험 대상의 별도 관리 등 학대피해아동의 의료지원을 위한 국가적 책임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아동학대는 평생의 트라우마라고 강조한 대한의사협회 성종호 정책이사는 "영유아의 치료는 부모에게 권한을 맡기는 경향이 있는데, 영유아 검진 등을 통해 학대, 발달지연 등이 의심되는 경우 의사의 소견에 따라 치료가 가능한 환경이 조성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체계적인 아동학대 피해자 건강관리를 위해 아동학대 전담 의료기관과 의료인을 양성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삼성서울병원 박미란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우리나라는 병원마다 학대 아동 전담팀이 있으나 구성원이 모두 각자의 다른 업무가 있어 전담이 어려운 상황으로, 사건이 발생했을 때 보고 및 대책 마련을 하는 역할만 한다"고 밝혔다. 그는 "아동학대 전문의를 소아과학 세부 전문분야로 자격 인증을 하고, 아동병원에서 아동학대가 별도의 분야로 자리잡은 미국은 아동학대 예방, 조기 발견, 치료, 교육, 연구 등 측면에서 꾸준한 성과가 나오고 있음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편, 국회는 아동학대 피해아동의 장기적 건강관리를 위한 법안을 준비하고 있다.
최근 아동학대 진료기록 수사기관 제공 근거를 마련한 의료법 개정안 등을 발의, 아동학대 방지를 위한 보건의료시스템 개선 토론회를 개최한 신현영 의원의 경우 아동학대 시스템 개선을 위한 별도의 법안을 검토 중이다. 가정의학과 전문의 출신인 신현영 의원은 아동학대 예방을 위한 의료계의 역할을 꾸준히 강조해 온 바 있다.

신현영 의원실 관계자는 "아동학대 피해자 장기지원 등을 위한 보건의료 전반 시스템 개선을 위한 방안을 고심 중"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학대아동 지원 등과 관련한 법안을 추가발의하기 위해 검토하고 있으며, 곧 구체화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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