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이시스메디칼, 이영애와 ‘2026 덴서티 캠페인’ 공개제이시스메디칼이 배우 이영애와 함께한 고주파 리프팅 기기 ‘덴서티’ 신규 캠페인을 선보였다. 이번 캠페인은 3세대 ‘알파팁’ 출시를 기념해 기획됐으며, 개선된 전극 설계를 통해 고주파 전달 효율을 높인 것이 특징이다. 전극 면적이 넓어져 모노폴라와 바이폴라 두 가지 고주파 에너지를 보다 넓고 깊게 피부에 전달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해당 광고 캠페인은 TV와 디지털, 옥외 매체 등 다양한 채널을 통해 공개될 예정이다.■스킨1004, 글로벌 전용 ‘마다가스카르 센텔라 아젤라익애씨드 10 앰플’ 출시스킨1004가 북미·유럽·일본 등 글로벌 시장을 겨냥한 고기능성 앰플을 선보였다. 신제품은 아젤라익애씨드 10%와 유도체를 결합한 ‘아젤라익 3X 포뮬러’를 적용해 피지·각질·트러블을 복합적으로 관리하는 것이 특징이다. 캡슐레이션 공법으로 유효 성분 전달력을 높였으며, 미산성 제형으로 피부 균형 유지와 자극 완화를 동시에 고려했다. 가벼운 워터리 텍스처로 데일리 케어와 메이크업 전 단계 사용에도 적합하다.■쥬비스다이어트, 목동 팝업 성료… 1:1 상담 ‘전 타임 매진’쥬비스다이어트가 현대백화점 목동점에서 진행한 팝업스토어를 성황리에 마쳤다. 약 9000명이 방문한 가운데, ‘15분 집중 상담소’와 AI 기반 체험 프로그램 등이 높은 참여를 이끌었다. 특히 165가지 데이터 분석을 기반으로 한 1:1 맞춤 상담은 전 타임 예약이 마감되며 높은 관심을 보였다. 쥬비스는 이번 행사를 계기로 ‘초개인화 건강 관리’ 전략을 강화하고, 4월 신규 ‘바디부스팅 프로그램’을 론칭할 예정이다.■카오 ‘비오레’, 한국 진출… 글로벌 통합 캠페인 전개일본 카오의 스킨케어 브랜드 비오레가 한국 시장에 진출하며 글로벌 통합 캠페인을 시작했다. 비오레 UV를 중심으로 한 이번 캠페인은 ‘SUNLIGHT IS YOUR SPOTLIGHT’를 메시지로, 자외선 차단과 동시에 가벼운 사용감을 강조한다. 글로벌 아티스트 스트레이 키즈가 2년 연속 모델로 참여하며, 15개 이상 국가에서 동시 전개된다. 카오는 한국을 글로벌 뷰티 트렌드 핵심 시장으로 보고 아시아 및 글로벌 확장을 가속화할 계획이다.■미미박스, 성수 팝업 참여… 누니·아임미미 제품 선보여미미박스가 오는 4월 3일 서울 성수동 ‘성수 LECT’에서 열리는 연합 팝업스토어 ‘OOZE UNIVERSE’에 참여한다. 누니 립오일은 틱톡 1억뷰를 기록한 제품으로, 현장에서 전 컬러를 체험할 수 있다. 아임미미는 멀티스틱 라인업을 중심으로 다양한 색조 제품을 선보인다. 미미박스는 이번 팝업을 통해 국내 소비자 접점을 확대한다는 계획이다.■클래시스, KIMES 2026 참가… 차세대 레이저 ‘엘르레이’ 공개클래시스가 KIMES 2026에서 차세대 레이저 장비 ‘엘르레이’를 최초 공개한다. 해당 장비는 하이브리드 큐스위치 시스템과 멀티 펄스 기술을 적용해 에너지 전달 효율을 높이고 부작용 가능성을 낮춘 것이 특징이다. 이와 함께 슈링크 유니버스, 볼뉴머 등 다양한 에너지 기반 의료기기 포트폴리오도 함께 선보인다.
뷰티신소영 기자 2026/03/20 14:46
화제와이슈김보미 기자 2026/03/20 14:17
정책오상훈 기자 2026/03/20 14:14
흔히 관절염이라고 하면 무릎을 먼저 떠올리곤 하지만, 우리 몸의 최저점에서 전신 체중을 지탱하는 발목 역시 관절염의 위협에서 자유롭지 않다. 특히 발목 관절염은 무릎 관절염과는 발생 원인과 양상이 확연히 달라 전문적인 접근이 필수다. 보통 무릎 관절염이 고령화에 따른 퇴행성 변화로 나타나는 것과 달리 발목 관절염, 퇴행성 관절염과 더불어 과거에 겪었던 심한 발목 골절이나 반복적인 발목 염좌, 즉 인대 손상이 적절히 치료되지 않고 방치되었을 때 40-50대 이른 나이에 발병하는 경우도 많다. 발목 관절염의 증상은 단계별로 나타나는데, 발목 관절염의 증상은 연골의 마모 정도에 따라 크게 1단계에서 4단계로 나누어볼 수 있다. 초기인 1단계는 연골이 살짝 마모되거나 변성이 시작되는 시기로, 활동량이 많을 때만 발목이 욱신거릴 수 있으나 증상을 못 느끼는 경우도 많다. 2단계가 되면 증상 빈도가 잦고 강도도 조금 더 심해지는 편이며, 3단계에 접어들면 연골 마모가 본격화되어 뼈 사이 간격이 좁아지기 시작한다. 이때는 평지를 걸을 때도 통증이 느껴지고, 발목이 자주 부으며 밤에 잠을 설치게 하는 야간통이 동반되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말기인 4단계에 이르면 연골이 거의 소멸하여 뼈와 뼈가 직접 마찰하게 된다. 보행 시 극심한 고통은 물론, 발목이 한쪽으로 치우치거나 두꺼워지는 등 육안으로도 확인 가능한 외형적 변형이 뚜렷해진다.이러한 단계 중 초기에는 주사 요법을 포함한 비수술적 치료로 충분히 조절이 가능하다. 대표적으로 흔히 ‘뼈주사’라 불리는 스테로이드 주사는 강력한 항염증 작용으로 급성 통증을 빠르게 가라앉히는 데 효과적이지만, 반복해서 사용할 경우 연골이나 인대가 약해질 수 있어 전문의의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최근 주목받는 DNA주사(PDRN)는 연골 세포의 재생을 돕고 염증을 완화하여 조직 회복을 촉진하는 데 기여한다. 손상된 인대나 힘줄을 강화하는 프롤로(증식치료) 주사는 관절 주변의 결합 조직을 튼튼하게 만들어 관절의 안정성을 높여준다.이후 치료를 제 시기에 하지 않아 관절염이 중기로 넘어가면 '관절 보존 수술'을 고려하게 된다. 단순히 한 가지 수술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절골술, 인대 봉합술, 유합술 등 다양한 수술적 기법을 복합적으로 적용하여 휘어진 발목의 정렬을 바로잡아서 환자가 발을 다시 편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해주는 포괄적인 개념이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도 시기가 중요하다. 관절염이 말기로 치달아 뼈와 뼈가 맞닿으며 갈려 나가는 상태가 되면, 사실상 치료 대안을 찾기가 어려워진다. 연골이 완전히 다 마모되어 뼈 자체가 손상된 단계에서는 아무리 정렬을 정교하게 교정하는 관절 보존 수술을 시행하더라도 뼈끼리 부딪히며 발생하는 극심한 통증을 막을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결국 말기 관절염의 최종 단계에서는 인공관절 치환술과 관절 유합술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발목 인공관절은 무릎처럼 15~20년 이상 장기간 사용하는 경우도 많지만, 관절염의 형태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 채 시행하면 불과 2~5년 만에 인공관절 해리 및 불안정성이 발생해 재수술이 필요할 수도 있다. 말기 관절염에 심한 변형이 동반된 경우, 적합한 형태로 인공관절을 하기 위해서는 동반된 변형을 과도하게 교정해야 한다. 이에 수술 시간이 길어지고 테크닉이 매우 복잡하며 필요한 경우 2차에 걸쳐서 수술을 진행해야 할 수도 있다. 이는 환자의 회복을 더디게 만들기에, 의료진의 판단에 따라 변형이 심한 관절염의 형태라면 오히려 관절 유합술이 더 현명한 대안이 될 수 있다.관절 유합술은 관절을 고정하는 수술이기에 기능을 포기하는 것으로 오해받기도 하지만, 실제로는 염증이 생긴 연골을 깨끗이 긁어내고 변형을 교정하여 뼈를 붙임으로써 '아플 수 있는 부위' 자체를 없앤다. 물론 유합이 잘 될지에 대한 추시 기간이 필요하고, 일상 활동에서 경사진 길이나 계단을 오를 내릴 때 약간의 불편함은 남을 수 있다. 그러나 건강했던 젊은 시절을 100점으로 본다면, 유합술 후에는 60~70점 정도의 기능을 유지하며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데 큰 무리가 없고 가벼운 운동도 가능하다. 따라서 유합술 수술에 대해서 막연한 거부감을 갖기보다, 내 상태에 가장 적합한 방식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발목 관절염 치료의 핵심은 적기를 놓치지 않는 것이다. 많은 환자가 수술에 대한 두려움으로 병원 방문을 미루지만, 초기에 적극적인 치료와 관절 보존 수술을 통해 대응한다면 말기 관절염 진행도 늦출 수 있고 인공관절이나 유합술 수술 없이도 본래의 발목을 충분히 유지하며 사용할 수 있다. 발목은 우리 몸을 지탱하는 주춧돌과 같다. 작은 통증을 몸이 보내는 마지막 경고음으로 받아들이고, 숙련된 족부 전문 의료진을 찾아 정확한 상태를 점검하는 것이 보행의 자유를 지키는 유일한 길이다.(*이 칼럼은 권오진 신세계서울병원 족부센터장 원장의 기고입니다.)
칼럼권오진 신세계서울병원 족부센터장 원장2026/03/20 11:29
1975년 4월, 캄보디아 수도 프놈펜. 도시 전체가 갑작스럽게 멈춰 섰다. 병원은 문을 닫았고, 학교는 비워졌으며, 사람들은 짐을 챙겨 거리로 나왔다. 새로운 정권이 들어섰고, 시민은 도시를 떠나야 했다. 며칠 후면 다시 돌아올 수 있다는 안내가 흘렀다. 대부분 사람들은 그 길이 결국 돌아올 수 없는 길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그 시기 캄보디아는 베트남 전쟁의 여파로 이미 크게 흔들려 있었다. 미군의 폭격으로 국토는 황폐해졌고, 미국의 지원을 받던 정부는 힘을 잃어가고 있었다. 1975년, 그 공백을 장악한 세력이 극단 좌익 무장조직 ‘크메르 루주’였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독재자 ‘폴 포트’가 있었다.정권을 잡은 그는 국가의 이름을 ‘민주 캄푸치아’로 바꾸고, 기존의 사회를 완전히 부정하는 급진적 개혁을 시작했다. 그는 이 해를 ‘Year Zero’로 선언했다. 과거를 모두 지우고, 완전히 새로운 사회를 만들겠다는 의미였다.폴 포트가 구상한 사회는 농업 중심의 완전한 공동체였다. 자본주의는 부패의 원인이며, 도시와 지식은 모두 제거돼야 할 대상이라 선언했다. 그 결과 도시 인구 전체가 농촌으로 강제 이주됐다. 이동 과정에서만 노인과 아이, 환자 등 노약자를 포함해 수만 명이 사망했다. 이후 집단 농장에서의 강제 노동과 기근, 질병으로 수십만 명이 추가로 목숨을 잃었다.이 과정에서 가장 먼저 제거된 대상은 지식인이었다. 교수, 교사, 의사, 법조인, 예술가 등 농업과 직접 관련 없는 직업군은 모두 숙청 대상이 됐다. 기준은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식이었다. 글을 읽을 수 있다는 이유, 외국어를 사용할 수 있다는 이유, 안경을 썼다는 이유만으로도 처형되거나 수용소로 보내졌다. 심지어 가족까지 연좌제로 제거되기도 했다.수용소에서는 고문과 강압적인 심문이 반복됐다. 존재하지 않는 죄를 자백하도록 강요받았고, 이후 대부분 처형됐다. 총알을 아끼기 위해 둔기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고, 시신은 집단으로 매장됐다. 결국, 전국 곳곳에 대규모 매장지가 형성됐고, 캄보디아 전체가 지금도 악명 높은 ‘킬링필드’로 불리게 된다. 이 시기 약 4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캄보디아 인구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약 200만 명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이러한 정책은 단순한 통치 실패가 아니라, 체계적으로 설계된 사회 실험에 가까웠다. 문제는 그 기준이 현실이 아니라 이념에 있었다는 점이다. 정책이 실패해도 원인을 정책에서 찾지 않고, 내부의 적과 반체제 인사로 돌렸다. 의심은 곧 처형으로 이어졌고, 공포는 통치의 핵심 수단이었다.흥미로운 점은 폴 포트 개인의 삶이 그가 제거하려 했던 대상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는 부유한 가정에서 자랐고, 수도에서 교육을 받았으며, 프랑스 유학 경험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이러한 배경을 부정하고, 오히려 그것을 제거해야 할 대상으로 규정했다.폴 포트는 어떻게 이율배반적인 잔혹한 독재자가 되었을까. 그의 성장 과정에서 몇 가지 특징을 찾을 수 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위계와 권위가 강조된 환경에서 자라며 권위주의적 성향을 가졌고, 사회적 불평등을 경험하며 외집단에 대한 불신이 강화됐다. 프랑스 유학 시절에는 소외와 차별받는 이방인의 경험을 하며 자신과 집단을 피해자로 인식하게 된다. 이러한 경험은 이후 사회를 ‘우리’와 ‘그들’로 극단적으로 나누는 사고로 이어졌다.또한 그는 점차 의심이 생각의 중심을 이루는 편집성 성향을 가지게 된다. 내부의 동지조차 잠재적 배신자로 인식했고, 이를 제거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확장됐다. 겉으로는 온화하고 겸손한 모습이었지만, 내면에서는 극단적인 통제 욕구와 불신이 작동하고 있었다. 이러한 이중성은 절대 권력을 장악한 이후 더욱 강화되어 갔다.정신의학적으로 볼 때, 캄보디아의 ‘킬링필드’는 개인의 병리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오히려 이상주의가 절대화될 때 나타나는 사고의 경직성과, 편집성 성향이 권력과 결합될 때 나타나는 집단적 폭력이 결합된 사례에 가깝다. 개인의 공감 능력은 이념 아래에서 무력화됐고, 나와 의견이 다를 수 있는 타인은 설득이 아닌 제거 대상이 되어 버렸다.폴 포트의 집권은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1978년 베트남과의 전쟁 이후 정권은 붕괴됐고, 그는 밀림으로 도피했다. 이후에도 게릴라 활동을 이어갔지만 점차 세력을 잃었고, 내부에서도 고립됐다. 그렇지만 그는 끝까지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며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킬링필드’는 한 독재자의 범죄이면서 동시에 하나의 이념 체제가 만들어낸 결과였다. 명령을 내린 지도자, 이를 수행한 조직, 그리고 이를 막지 못한 환경이 모두 이 사건을 구성한다.이 사건은 현대사회에 여전히 질문을 남긴다. 인간은 어떻게 같은 인간을 적으로 간주하고 제거의 대상으로만 인식하게 되는가. 그리고 그 판단 기준이 편협한 이념이 되는 순간, 우리는 인간으로서 무엇을 잃게 되는가.
칼럼이광민 마인드랩공간정신과 원장2026/03/20 11: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