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시딘 “마음의 상처까지 치료합니다”

입력 2014.08.29 15:37

상처치료제 부동의 1위

30~40년 전에는 아이들이 놀다 넘어져 팔다리에 상처가 나면 물로 피와 흙을 씻어내고 ‘빨간 약’을 발라 준다. 일본식으로 ‘아카징키’ 또는 한문식으로 ‘옥도정기’라고 부르던 소독약 머큐롬이다. 빨간 약을 바르면 상처에 딱지가 생기고 새 살이 돋을 때쯤에는 간지럽다. 40대 이상이면 간지러움을 참지 못해 손으로 딱지를 뜯어 다시 피가 난 경험이 한두 번은 있을 것이다. 그런데 1980년 후시딘이 약국에 나오면서 ‘딱지뜯기’는 사라졌다.

후시딘
후시딘
1996년 서울시가 정도(定都) 600년을 기념해 당시 생활상을 보여 주는 자료 600점을 선정해 남산 한옥마을에 타임캡슐을 묻었다. 가정상비약 함 안에 후시딘(동화약품)이 들어 있다. 이 타임캡슐은 서울 정도 1000년이 되는 2396년에 개봉된다. 많은 상처치료제 중에 후시딘이 선정된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후시딘은 국내에 처음 등장해서 지금까지 34년 동안 상처치료제 시장에서 1위를 빼앗긴 적이 한 번도 없는 부동의 히트 상품이다. 최근 조사에서는 후시딘의 소비자 인지도가 99.3% 로 나왔다. 1000명에게 후시딘을 아는지 물었을 때 ‘그렇다’는 사람이 993명이라는 얘기다. 한편 동화약품은 자사 홈페이지에 후시딘을 ‘대한민국 대표 상처치료제’라고 썼다가 과징금을 물었다.

‘대한민국 대표’라고 주장할 객관적인 근거가 없다는 것이 이유였다. 이 표현은 삭제됐지만, 시장점유율과 인지도 등을 따져 보면 후시딘이 우리나라의 대표 상처치료제라는 데 이의를 제기하기는 어렵다.

침투력 강해 딱지 위에 발라도 효과

후시딘 등장 이후, 딱지를 만드는 빨간약과 과산화수소 같은 소독약은 가정상비약 함에서 빠르게 자취를 감췄다. 상처를 물로 씻은 후 따로 소독할 필요 없이 후시딘만 바르면 딱지가 생기지 않으면서 상처가 아물기 때문이다.

피부에 상처가 생기면 황색포도상구균, 연쇄구균 등이 침투해 감염된다. 후시딘은 퓨시드산나트륨이라는 항생 성분이 주성분인데, 상처에 침투하는 세균을 잡아서 상처가 곪지 않고 아물게 한다. 표피층에 침투한 세균만 잡는 것 이 아니라, 피하지방층까지 약 성분이 전달돼 여기에 숨은 세균까지 확실하게 잡는다. 상처가 생겼을 때 바로 바르는 게 제일 좋지만 딱지가 생긴 상처에 발라도 효과 있다.

딱지를 뚫고 들어갈 만큼 약효가 강력하기 때문이다. 스테로이드 성분이 없고 부작용이 적어 미숙아나 생후 4주 이하 신생아를 제외한 모든 연령대에서 쓸 수 있다. 아이가 있는 집이라면 대부분 후시딘 연고가 있다. 긁히고 찢어진 상처뿐 아니라 여드름, 모낭염 같은 염증, 종기, 화상에 의한 2차 감염 등 다양한 상처에 두루 효과 있다.

연고 외에 다른 제형의 제품도 나와 있다. 번들거림이 없어 연고를 바르기 어려운 얼굴이나 털 있는 부위에도 쓸 수 있는 ‘후시딘 겔’, 3차원 고분자 친수성 하이드로겔 밴드에 후시딘을 발라 놓은 ‘후시딘 밴드’, 항염·항알레르기·항소양 기능이 있어 습진, 접촉, 아토피,세균간염에 의한 피부염증을 줄여 주는‘후시딘히드로크림’ 등이다.

피부의 상처 치료제로 부동의 1위에 올라선 후시딘이 이제 마음을 치료하겠다고 나섰다. 상처난 아이의 아픔을 공감하는 엄마의 이미지를 내세우고 있다.
피부의 상처 치료제로 부동의 1위에 올라선 후시딘이 이제 마음을 치료하겠다고 나섰다. 상처난 아이의 아픔을 공감하는 엄마의 이미지를 내세우고 있다.

‘새살이 솔솔’을 누른 ‘상처엔 후~’

후시딘은 덴마크의 피부질환 전문 제약사 레오파마에서 1962년 선보였다. 우리나라에는 동화약품이 판권을 들여 국내 공장에서 생산해 출시했다. ‘후시딘’하면 경쟁 제품인 동국제약의 마데카솔이 떠오른다. 인터넷 포털에서 후시딘을 검색하면 연관 검색어로 마데카솔이 나온다.

국내 출시는 1970년에 나온 마데카솔이 오히려 10년 빠르다. 같은 상처치료제지만 후시딘과 마데카솔은 성분이 다르다. 마데카솔의 주성분은 센텔라아시아티카로, 상처 치유 과정에서 피부의 콜라겐 합성을 돕는다. 그래서 광고문구도 ‘새살이 솔솔’이다. 시장점유율은 후시딘이 50%, 마데카솔이35% 정도다.

후시딘은 출시 첫해부터 마데카솔을 제쳤는데, 여기에는 광고 힘이 컸다. ‘상처엔 후~ 후시딘’이라는 문구로 사람들에게 ‘상처=후시딘’을 각인시켰다. 나문희, 박원숙, 양미경, 이미영, 이연경, 진양혜 등 여성 연예인을 모델로 기용해 자녀의 상처를 걱정하는 모성(母性)에 호소하는 전략으로 광고를 만들었다. 후시딘의 지난해 매출은 173억원으로 동화약품 전체 매출의 8%이다.

후시딘을 처음 개발한 레오파마는 2011년 한국에 직접 진출하면서 그동안 국내에서 위탁 판매하던 제품의 판권을 모두 회수했지만, 유일하게 후시딘만 동화약품이 계속 만들어 팔게 했다. 동화약품이 상처치료제 시장을 개척하기도 했고, 국내 영업력이 상대적으로 약한 레오파마가 직접 후시딘을 팔면 동화약품만큼의 매출을 올리기 어려울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상처공감 다이어리’ 6만 명 네트워크

제약업계는 산업군 중 보수적 이미지가 강하기로 유명하다. 광고도 발랄하거나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내세우기보다는 약효에 대한 설명 위주다. 기본적으로 약은 아플 때 쓰는 제품이기 때문이다. 그런 업계 분위기에서 보면 후시딘은 독특하다. 2006년에는 당시 선풍적인 인기를 끌던 인터넷 게임 카트라이더의 레이싱 서킷에 광고를 붙이기도 했다. 후시딘을 바르고 자란 10~20대와의 지속적인 교감이 목적이었다.

최근에는 어린이와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사회활동도 벌이고 있다. 2010년부터 유소년 축구교실을 후원하고 있으며, 테디베어뮤지엄과 함께 후시딘테디베어를 만들어 홀트복지재단, 구세군 후생원 등의 복지단체에 기부하고 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도 적극 활용한다. 후시딘의 페이스북 페이지 ‘후시딘 상처공감 다이어리’는 현재 6만 명의 네트워크를 만들었다. 건강·제약·의학 관련 페이스북 페이지 중 1위다. 정보전달이 목적이 아니라 이름 그대로 ‘상처’를 주제로 한 공감의 장으로 운영하고 있다. 육아, 직장생활, 연애 등 ‘2040’ 여성의 관심사와 관련된 콘텐츠를 제공하며, ‘마음의 상처’를 소재로 한 웹툰도 연재한다.

피부의 상처 치료제로 부동의 1위에 올라선 후시딘이 이제 마음을 치료하겠다고 나섰다. 상처난 아이의 아픔을 공감하는 엄마의 이미지를 내세우고 있다.
피부의 상처 치료제로 부동의 1위에 올라선 후시딘이 이제 마음을 치료하겠다고 나섰다. 상처난 아이의 아픔을 공감하는 엄마의 이미지를 내세우고 있다.

월간헬스조선 8월호(144페이지)에 실린 기사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