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방어군 ‘면역력’을 탐구하다⑤
어떤 질환을 근본적으로 치료하는 것이 가능할까? 병 걸린 상태와 건강한 상태 사이의 경계가 분명한 질환일수록 근본 치료가될 가능성이 높다. 예컨데 세균 감염이 원인인 폐렴은 세균을 제거하면 근본 치료가된다.
알레르기질환도 건강한 상태와의 경계가 비교적 명확하다. 질병을 일으키거나 악화시키는 인자가 ‘특정한’ 외부 환경 물질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알레르기질환을 뿌리 뽑지 못하는 것은 그 인자가 무엇인지 정확히 찾아내기 힘들거나, 주변에 너무 많기 때문에(꽃가루·집먼지진드기등) 100% 피할 수 없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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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해 항원과 다투는 소인이 유전되면 ‘아토피’
뿌리 뽑기 어려운 알레르기질환의 근본적 해결책이 있다면, 현재로서는 ‘알레르기 면역치료’를 들 수 있다. 알레르기질환은 우리 몸의 정상 면역 체계가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해롭지 않은 흔한 환경 항원(꽃가루·동물털·집먼지진드기 등)’과 ‘불필요하게 다투게’ 되어서 발생한다.
우리 몸을 해로운 세균으로부터 보호하려면 면역 시스템이 정상적으로 이들과 다투어야 한다. 이와 달리, 우리 몸은 오랜기간 인류와 함께 지구상에 공존해 온 해롭지 않은 환경 항원에 대해서는 다투지 않도록 진화해 왔다. 불필요한 에너지 소모를 하지 않기 위해서다. 이를 ‘면역관용’이라고 하는데, 알레르기질환은 이 면역관용이 깨져 우리 몸의 면역 시스템이 해롭지 않은 환경 항원과 불필요한 다툼을 하는 바람에 발생한다. 이런 필요 없는 싸움을 하는 소인을 유전적으로 물려받아서 생기면 ‘아토피’라고 부른다.
아토피와 알레르기질환은 지난 수십 년간 급증했다. 이는 우리나라가 발전하면서 생활환경이 ‘지나치게’ 깨끗해지는 바람에, 어린 시절 면역 시스템이 발달하는 데 필요한 ‘적절하게 지저분한’ 외부 환경에 접할 기회가 크게 줄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토피와 알레르기질환을 예방하려면 자녀가 어릴 때 자연 환경에 자주 노출시키고 항생제를 덜 쓰는 등의 노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미 발생한 알레르기질환에 대해서는 다른 대책이 필요하다. 유전적으로 물려받은 아토피는 단기간에 사라지지 않으며, 일상생활 환경에서 어쩔 수 없이 접촉할 수밖에 없는 알레르기 원인물질을 피할 방법은 없다. 예를 들어 꽃가루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은 봄철에 꽃가루가 없는 공기만 골라서 호흡할 수 없다. 결국 알레르기 증상은 재발과 호전, 악화를 반복하는데 완치를 목적으로 하기보다는 대증요법으로 약물 치료를 하게 된다.
면역관용 회복시키는 방법 100년 전에 개발돼
알레르기질환을 일으키는 환경물질에 대한 ‘면역관용’을 회복시켜 주면 근본적인 치료도 가능하다. 이를 ‘알레르기 면역치료’라고 하는데, 이 치료법은 이미 100년 전 시작되어 현재 효과가 상당히 증명돼 있다. 1911년 영국에서 알레르기 비염 환자에게 원인인 되는 꽃가루 정제물질을 수개월간 반복 주사한 결과, 알레르기 증상이 눈에 띄게 호전됐다는 연구 결과가 국제적의학지에 발표됐다. 알레르기 면역치료는 그 뒤로 계속 발전해, 현재는 여러 알레르기질환을 안전하고 효과적으로 완치에 가깝게 호전시키는 수준까지 이르렀다.
처음에는 환자에게 알레르기 원인물질을 환자에게 극미량 접촉하게 하고, 조금씩 접촉량을 증가시킨다. 이 과정에서 우리 몸의 면역 시스템은 조금씩 그 물질이 해롭지 않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되고, 불필요한 다툼을 하지 않게 변화한다. 면역치료는 대증요법과 달리 치료를 마친 뒤에도 장기적으로 알레르기 증상이 재발하지 않는 장점이 있다. 흔히 천식으로 악화 하는 알레르기 비염인 경우 천식을 예방해 주기도 한다.
현재 면역치료는 투여 방법에 따라 ‘피내주사요법’과 ‘설하요법’이 있다. 피내주사요법이 좀 더 전통적인 방법으로, 알레르기 정제 물질을 팔뚝의 피부 아래에 주사한다. 극미량에서 시작해 주사량을 단계적으로 늘리는 단계(초기 치료기)에는 1~2주 간격으로 병원에 와서 주사를 맞게 된다. 최종 목표 용량에 성공적으로 도달하면 4주 간격으로 동일한 양을 투여한다. 시간이 오래 걸리는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1~8일 만에 최종 목표 용량까지 빠르게 늘리는 ‘러시(Rush) 면역치료법’도 개발돼있다.
피내주사요법은 부작용이 생기기 쉬운 편이라서 주의가 필요하지만 효과가 우수하다. 설하요법은 알레르기 정제물질을 환자가 혀 밑에 매일 집어넣는 치료법이다. 피내주사요법에 비해 비교적 안전하며, 병원에 오지 않고 집에서 혼자 투여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치료비용은 피내주사요법보다 상대적으로 비싼 편이다.
알레르기 면역치료는 당장 치료 효과를 볼 수 있는 단기요법은 아니다. 보통 1년 정도 지나야 환자가 증상 호전을 체감할 수 있으며, 3~5년 지속적으로 치료받아야 불필요한 다툼을 아예 하지 않도록 환자의 면역 시스템이 안정된다. 과민 반응을 일으키는 ‘바로 그 물질’을 몸속에 투여하는 치료법이기 때문에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 따라서 부작용 예방과, 만약 발생했을 때 빠르게 대처하기 위해서 치료받는 기간 중 알레르기 전문의의 꼼꼼한 관리를 받아야 한다.
아직 모든 알레르기질환에서 이 치료가 가능하지는 않다. 알레르기 비염(천식), 벌독 알레르기 등에 효과가 좋다. 알레르기 비염은 이미 약물치료를 하고 있더라도 증상이 조절되지 않는 경우, 치료약이 부작용을 일으키는 경우, 환자가 약물 사용을 원하지 않는 경우 등에 면역 치료를 추천한다.
벌독 알레르기는, ‘아나필락시스’라고 부르는 심각하고 치명적인 알레르기 쇼크등이 갑자기 나타날 수 있으므로, 평소 면역치료를 통해 돌발 상황에 대처하는 것이 권장된다. 면역치료의 효과도 매우 우수하다. 최근에는 아토피피부염과 식품 알레르기에 대해서도 성공적인 면역치료 사례가 학술지에 발표되어서, 멀지 않은 장래에 면역치료 대상이 더욱 확대될 것이다.
"병 걸린 상태와 건강한 상태 사이의 경계가 분명한 질환일수록 근본 치료가 쉽다. 하지만, 알레르기 질환은 인자를 정확히 찾아내기 힘들거나 주변에 너무 많아서 치료가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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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의대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면역학과 임상양리학을 공부했다.
대한천식알레르기학회와 유럽알레르기 및 임상면역학회 등에서 활동한다.
만성기침과 천식, 음식물 알레르기, 약물 알레르기 등을 면역치료로 치료한다.
월간헬스조선 8월호(80페이지)에 실린 기사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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