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방어군 ‘면역력’을 탐구하다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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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인이 말하는 면역력은 ‘컨디션’
일반인이 생각하는 면역력과 의학적 면역력은 의미가 다르다. 일반인이 말하는 면역력은 ‘컨디션’에 가깝다. 의학적 면역력은 ‘인체를 감염에서 보호하는 체내 방어 시스템의 가동 상태’다. 컨디션은 하루에도 몇 번씩 바뀔 수 있지만, 면역력은 일상생활 중에 거의 변하지 않는다.
많은 식품업자가 ‘면역력을 증강시킨다.’며 뭔가 사 먹으라고 우리를 유혹한다. 하지만 이는 면역력에 대한 일반인의 피상적 오해를 이용하는 상술에 불과하다. 힘들게 운동하지 않아도, 담배를 끊지 않아도, 매일 술을 마셔도, 과로에 찌들어 살아도 무언가 사 먹으면 면역력이 좋아져서 건강을 지킬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신체 내 특정한 기능을 강화시키는 식품을 먹어서 면역력을 증가시키는 것은 의학적으로 불가능하다. 면역력이 한두 가지 요소로만 결정된다면 가능할지모르나, 인체의 면역계는 호산구·림프구·사이토카인·인터페론 등 듣기만 해도 머리가 복잡해지는 수백·수천 가지 요소가 균형과 조화를 이뤄야 제대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이런 모든 기능을 동시에 강화해주는 비법이나 식품은 없다.
어떤 식품이 면역력을 증가시킨다는 주장은 과거 제대로 못 먹고 살던 시절에는 설득력이 있었지만, 요즘 같은 영양과잉 시대에는 성립하지 않는다. 물론 사람의 면역시스템에 꼭 필요한 영양소는 있다. 단백질, 아연, 셀레늄, 철분, 구리, 엽산, 비타민 A·B6·C·E 등이다.
이 중 하나라도 결핍되면 면역 시스템이 비실비실해져 감염에 취약해진다. 몸 안에 아연이 부족한 사람은 아연이 많은 굴을 먹으면 면역력 정상화에 도움이 될 수 있다. 하지만 현재 대부분의 한국인은 아연이 부족하지 않다. 따라서 정상인이 굴을 많이 먹는다고 해서 지금보다 면역력이 더 증강되지 않는다. 아연뿐 아니라 특별히 병약한 상태가 아니라면 한국인 대부분은 위에 열거한 영양소가 충분하다. 그러므로, 진부하게 들리겠지만 하루 세 끼를 골고루 먹으면 충분하다.
"면역력이 떨어진 것 같으면 보양식을 먹거나 푹 쉬려 한다 하지만 면역력은 영양과잉, 운동부족 때문에 떨어진다 . 영양결핍이 문제되는 경우는 아주 가끔일 뿐이다"
건강기능식품은 면역력 강화 효과 없어
대체로 면역력 강화를 내세우는 새로운 건강기능식품은 그럴듯해 보이는 연구 결과와 함께 등장한다. 면역 시스템의 수많은 구성 요소 중 한두 가지를 대상으로, 해당 건강기능식품 성분이 그 구성 요소의 농도 등을 변화시킨 실험 결과가 바탕이다. “대식세포의 식균 작용을 증가시켰다”거나 “사이토카인을 증가시켰다”는 등의 실험 결과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이런 실험 결과가 ‘실제로 그 식품이 인체 내에서 암세포를 퇴치하고 감염을 예방해 준다.’는 뜻은 아니다. 그렇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면역세포의 수나 활동성 등 한두 가지 면역 관련 요소가 좋아진다고 해서 전반적인 면역 시스템의 기능이 좋아지지 않는다. 과거 한 운동선수가 경기를 앞두고 면역력을 강화한다며 다른 사람의 혈액을 수혈한 적이 있다. 그는 면역력이 강화되기는커녕 과도하게 증가한 혈액량 때문에 뇌졸중에 걸렸다.
백 번 양보해서, 특정 식품이나 건강기능식품이 인체 내 면역력을 강화해준다고 치자. 면역력이 강화되면 반드시 좋은 일인가? 그렇지 않다. 균형을 잃고 증가된 면역 시스템의 활동 때문에 자가면역질환이나 알레르기질환이 생길 수 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건강기능식품은 면역력을 강화 시키지 못하기 때문에 건강기능식품을 많이 먹는다고 해서 자가면역질환이나 알레르기질환을 예방하는 것은 아니다.
사람의 면역 시스템은 쉽게 약해지지 않는다. 항암치료를 받거나, 백혈병이거나, 장기 이식 후 면역억제제를 투여하는 등의 극단적 상황이 아니라면 제대로 기능하는 아주 튼튼하고 우직한 시스템이다.
면역력이 떨어지면 걸리는 대표적인 질병이 대상포진이다. 어릴 때 수두에 걸렸다나으면 체내에 대상포진 바이러스의 활동을 막는 예방항체가 형성된다. 예방항체의 능력은 처음에는 강하게 유지되지만, 수십 년의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떨어진다. 이때 잠복해 있던 대상포진 바이러스가 활동을 재개해 띠 모양의 피부염과 통증을 일으킨다. 바이러스가 활동하기 시작하면 면역시스템은 이를 알아차리고 활동을 재개해서 바이러스와 다시 싸워 이긴다. 그러면 통증과 피부염이 누그러진다.
병원에서 치료받지 않으면 증상이 오래가고 후유증이 심각해지지만, 대상포진 자체가 영영 낫지 않는 건 아니다. 만약 의학적 의미에서 면역력이 떨어졌다면, 면역시스템은 재 활성화되지 못하고 대상포진바이러스는 국소적 피부염을 넘어서서 전신감염을 일으켜 환자의 생명을 빼앗아 갈것이다.
면역력 강화보다 나쁜 요인 피하는 것이 우선
기본적으로 우리 몸의 면역 시스템은 ‘적절하게 작동’하고 있다. 따라서 면역력을 좀 더 강화하는 것이 아니라 면역 기능에 나쁜 영향을 주는 요인을 피하는 것이 중요하다. 면역 기능을 떨어뜨리는 주범은 육체적·정신적 스트레스다. 스트레스호르몬인 코티졸이 면역 시스템의 작동을 억제하기 때문이다. 정신적 스트레스보다 육체적 과로가 더 큰 문제를 일으킨다. 늦은술자리가 대표적이다. 술로 한 번, 피로로한 번, 짧은 수면시간으로 한 번 등 3중 스트레스를 가져온다.
육체 활동 부족도 면역력을 떨어뜨린다. 사람의 몸은 원래 하루 종일 움직이도록 만들어져 있다. 몸을 움직이지 않으면 그 자체로 스트레스가 생긴다. 영양과잉도 면역기능을 떨어뜨리는 요인이다. 현대인에게 는 영양부족이 아니라 영양과잉이 스트레스를 일으킨다. 몸에 남는 에너지는 내장비만으로 쌓이고, 내장비만은 면역 시스템을 비정상적으로 자극해서 만성적 염증 반응을 일으킨다.
아주 가끔 영양결핍이 문제가 되는 사람도 있다. 다이어트한다고 식사량을 크게 줄인 사람, 결식을 많이 하는 사람, 소화흡수 기능이 약해진 노년층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들은 종합비타민제를 먹는 것이 면역력 유지에 도움이 된다. 건강 상태가 정상인 성인에게 의학적으로 효과가 증명된 유일한 면역력 증강법은 예방접종이다. 외부 세균이나 바이러스의 공격에서 몸을 지켜 주는 확실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대상포진, 폐렴구균, 파상풍, B형간염의 예방접종은 꼭 맞는 것이 좋다. 여성은 자궁경부암백신도 맞자.

서울백병원 가정의학과 교수 서울대 의대에서 공부했으며, 보건학석사와 의학박사학위를 갖고 있다. 미국 피츠버그대학 보건대학원 교환교수를 지냈다.
서울대백병원 최다논문상을 수상했다.
올바른 평생건강 정보를 널리 알리기 위해 신문 기고와 방송 출연 등에도 적극적이다.
지긋지긋한 피부 알레르기 면역 치료법
피부는 인체 면역계의 최전방으로, 외부의 이물질이 몸속에 들어오지 못하게 막는 1차 방어 장벽이다. 피부를 구성하는 다양한 세포와 체액인자가 상호작용하면서 효과적인 면역 체계를 형성한다. 피부는 다른 장기와 달리 외부 이물질과 하루 24시간 직접 접촉하는 부위이기 때문에 그만큼 면역 질환도 많이 생긴다.
아토피피부염, 습진 등 접촉성 피부염, 원형탈모증, 홍반루푸스, 피부혈관염, 백반증, 건선 등 다양한 피부질환이 면역 기능 이상과 관련돼 발생한다. 피부 면역질환에는 스테로이드제를 널리 쓴다. 스테로이드제는 먹는 약, 주사제, 연고 등의 형태로 두루 나와 있는데 피부 면역 기능의 오작동을 억제하고 염증을 해소하는 능력이 강력하다. 하지만 부작용이 많고 오래 쓰다 중단하면 증상이 더 심해지는 리바운드 현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스테로이드제를 오래 써야 하는 경우 대신 면역조절제를 고려한다. 면역조절제는 연고형태로 쓰며, 중간 강도의 스테로이드 연고와 비슷한 효과를 내지만 오래 써도 부작용이 없다. 얼굴이나 목 등 피부가 얇은 부위에 잘 듣지만, 손·발 등 두꺼운 피부에는 흡수가 잘 안 된다. 가격이 비싼 편이다. 피부면역질환 중 건선은 엔브렐, 휴미라, 스텔라라 등 환자가 직접 주사할 수 있는 자가주사제를 쓸 수 있다. 효과가 좋고 비교적 안전한 약이다. 엔브렐과 휴미라는 류마티스관절염에도 쓰고, 스텔라라는 건선에만 쓴다.
월간헬스조선 8월호(74페이지)에 실린 기사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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