겔포스, 이제 중국인 아픈 속 달래다

입력 2014.07.28 10:23

한국인의 쓰린 속 잡아온 40년

겔포스
겔포스(자료=보령제약)

매일 늦은 밤 퇴근길에 소주 한 잔 몸에 털어 넣어야 지친 몸을 달랠 수 있었던 그 시절. 한국 남성들의 쓰린 속과 마음을 달래 주면서 함께 성장한 것이 겔포스다.

겔포스는 경제개발 시대 한국 남성들의 자화상이자 그 시절의 추억과 맞닿아 있다.
포니 승용차가 도로에 첫 선을 보인 1975년, 약국 진열대에는 쭉 빨아먹는 걸쭉한 액체 위장약이라는 생소한 약품이 처음 등장했다.

현재 매년 150억원의 매출을 기록하는 우리나라 대표 위장약 ‘겔포스’의 시작이다.

그보다 6년 전인 1969년, 보령제약 김승호 회장은 일본 제약전문지의 선진국 의약품 업계 시찰 행사에 초청돼 태어나서 처음으로 유럽 땅을 밟았다.
국내에서는 들어 보지 못한 새로운 의약품으로 눈이 휘둥그레졌는데, 그중에서도 짜 먹는 위장약이 눈길을 끌었다. 알약이나 가루약밖에 없던 시절 현탁액(미세한 입자가 물에 섞여 걸쭉한 형태) 형태의 위장약은 평생 약국에서 잔뼈가 굵은 김 회장에게도 생소했다.

병이나 종이상자가 아닌 비닐 코팅으로 1회용씩 포장돼 있어 휴대가 간편했고, 알약이나 가루약에 비해 속쓰림 완화 효과도 빨리 나타났다. 김 회장은 이 약을 우리나라에 들여오기로 마음먹고 1972년 포스파루겔이라는 짜 먹는 위장약을 보유한 프랑스 제약사 비오테락스와 기술협약을 맺어, 3년 뒤 국산 제품인 겔포스를 출시했다.

겔포스는 현탁액을 뜻하는 ‘겔(Gel)’과 강력한 제산 효과를 뜻하는 포스(Force)가 합쳐진 이름이다. 겔포스는 너무 많이 분비된 위산을 알칼리성 물질로 중화시켜 속쓰림, 더부룩함 같은 증상을 완화한다. 하지만 첫해에는 매출이 6000여 만원에 불과했다. 물약, 가루약, 알약이 전부이던 당시에 걸쭉한 약은 소비자에게 너무 생소했다.

‘수사반장’ 형사들 “위장병 잡혔어”

하지만 겔포스는 곧 폭발적인 성장을 했다. ‘잘살아 보자’가 국민적 표어였던 1970년대 중반은 근로자라면 누구나 이른 아침 출근해 통행금지 직전 귀가하던 중노동 시대였다. 1년 내내 이어지는 과로를 쓴 대포 한잔으로 날리는 것이 근로자들의 낙이었다. 자연히 위장병이 늘어났고, 겔포스는 ‘위벽을 감싸 줘 술 마시기 전에 먹으면 술이 덜 취하고 위장을 보호한다’는 입소문과 함께 날개가 돋쳤다.

4년 만인 1979년 매출액은 10억원에 달했다. 보령제약이 겔포스를 생산하기 위해 안양에 지은 6611㎡(2000평) 규모의 공장은 단일 제약공장 규모로는 국내 최대였다. 안양공장 옥상 광고탑엔 ‘겔포스’ 딱 세 글자만 걸렸다.최고의 모델을 기용해 광고도 만들었다. 당시 인기 TV 드라마 ‘수사반장’의 주인공들이 외친 “위장병, 잡혔어”는 최고의 유행어였다. 안양공장은 24시간 가동해도 공급이 항상 달렸다.

시대에 따라 변화된 겔포스 광고
시대에 따라 변화된 겔포스 광고(자료=보령제약)
중국 수출하는 국내 약 1위로 올라서

겔포스는 요즘 외국에서도 히트 상품이다. 1980년부터 수출한 대만에서는 제산제 시장의 70%를 점유하고 있다. 한때는 점유율 95%, 모방 제품 99개라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겔포스는 중국에 진출한 첫 국산 약이다. 중국과 국교 수립한 첫해부터 수출했다. 하지만 처음부터 중국에서 인기를 끈 것은 아니다. 당시 중국은 1970년대 국내 상황과 같아서 소화제는 있었지만 위장약은 필요성 자체가 없었다.

첫해 수출액은 30만, 포 분량으로 3억원 정도의 매출에 그쳤다. 중국에서는 겔포스가 전문의약품으로 지정돼 소비자에게 직접 알릴 수도 없고, 처방전을 받아도 일부 성(省)에서는 의료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약값을 모두 환자가 부담한다. 하지만, 지난 20년 동안 중국의 경제 발전, 식생활 변화, 소득수준 향상 등으로 겔포스를 찾는 중국인이 계속 늘고 있다. 매출이 중국 진출 12년째인 2004년에는 100억원을, 2012년에는 350억원을 넘겼다. 올해 겔포스의 중국 매출 목표는 500억원이다. 지금은 중국 현지에서 생산되는 국내 제약사 제품을 제외하고 가장 많이 수출되고 있다.

지구 네바퀴 감싸는 17억포 판매

2000년에는 기존 겔포스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킨 ‘겔포스엠’이 출시됐다. 알칼리 성분인 콜로이드성인산알루미늄· 수산화마그네슘, 가스를 제거하는 시메치콘 등을 주성분으로 펙틴, 한천, 인산이온 등을 섞어 위벽에 더 잘 달라붙게 해 위 보호막 형성작용을 크게 했다. 소화에 지장 주지 않도록 너무 많이 중화되는 것을 막고 위벽 세포의 재생에도 효과를 내게 했다.

또 기존 겔포스는 액체에 미세한 입자가 섞여 있는 현탁액 형태라 그냥 두면 입자들이 가라앉기 때문에 반드시 먹기 전에 충분히 흔들어야 했는데, 겔포스엠은 입자를 콜로이드(응집하거나 침전하지 않고 분산된 상태)로 유지하기 때문에 먹기 전에 흔들 필요가 없다. 콜로이드 형태로 만들면 표면적이 크기 때문에 입자의 흡착성이 커져 위벽에 더 잘 달라붙는다. 보령제약은 겔포스엠 연구개발에 4년, 임상시험에 2년이 걸렸다. 겔포스엠은 국내에서 판매되는 제산제 가운데 유일하게 조성물 특허를 받았다.

1975년 출시된 겔포스는 내년이면 마흔 살이 된다. 그동안 팔린 겔포스는 17억
포로, 한 줄로 늘어놓으면 지구를 4바퀴 감쌀 수 있다. 겔포스의 국내 제산제 일반의약품 시장점유율은 58.4%, 상표선호도는 82%, 소비자인지도는 98.2%에 이른다는 조사결과가 있다. 말 그대로 모르는 사람이 없는 약이 됐다.

겔포스는 또 한 번 도약할 준비를 하고 있다. 조만간 중국 현지에서 직접 생산하는 계획도 추진 중이다. 겔포스가 중국에서 일반의약품으로 허가받고, 국가 건강보험에 등재가 되면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최태홍 보령제약 사장은 “겔포스의 효능은 이미 세계적으로 검증이 끝났다”며 “중국 시장 확대를 위한 공격적인 투자를 계속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월간헬스조선 7월호(152페이지)에 실린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