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받은 ‘마취 수술’이 지구온난화 유발하고 있었다 [기후병화]

입력 2023.02.03 22:00

지구온난화
환자가 흡입한 마취제는 몸속에서 거의 대사되지 않은 채 날숨으로 배출된다. 이 흡입마취제가 대기 중으로 방출되면 이산화탄소와 마찬가지로 온실 효과를 일으킨다./사진=클립아트코리아
살다 보면 이런저런 수술을 받게 된다. 성형수술 같은 수술이 아니더라도 내시경 등 검사를 받으려 마취하는 경우도 있다. 이때 내가 받은 마취가 마취가스를 흡입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면, 나도 모르는 새 지구 온난화에 티끌이나마 기여하게 된다.

◇수술실 밖으로 배출된 ‘마취가스’가 온실작용 해
현재 수술실에서 자주 사용되는 흡입마취제는 ▲데스플루란 ▲이소플루란 ▲아산화질소 ▲세보플루란이다. 흡입마취제 대부분은 몸에 들어가도 거의 대사되지 않는다. 각 흡입마취제가 몸 속에서 대사되는 비율은 데스플루란 0.02%, 이소플루란 0.2%, 세보플루란 4%, 아산화질소 0.005%다. 마취할 때 들이마신 마취제가 거의 원상태로 날숨에 섞여 나오는 셈이다.

대기로 섞여든 흡입마취제는 곧바로 파괴되지 않는다. 오랜 시간 머물며 지구의 열이 바깥으로 빠져나가지 못하게 하는 ‘온실작용’을 한다. 자연 분해되기까지 데스플루란은 14년, 이소플루란은 3.2년, 세보플루란은 1.1년, 아산화질소는 114년이 걸린다. 이중 지구에 가장 해로운 것은 데스플루란이다. 온실가스가 특정 기간 지구온난화에 미치는 영향을 지수화한 ‘지구온난화잠재력’은 데스플루란이 2540으로 가장 크다. 그 뒤를 510인 이소플루란, 264인 아산화질소, 130인 세보플루란이 뒤따른다. 특히 데스플루란 1kg은 이산화탄소 2500kg에 맞먹는 온실효과 능력을 가진다고 알려졌다.

◇온실효과 적은 흡입형 마취제? “있지만 수술에 쓰이진 않아” 
공기 중에 방출해도 지구온난화에 악영향을 미치지 않는 흡입마취제는 없을까. 고대안산병원 마취통증의학과 김재환 교수는 “대기 중에 소량 존재하는 ‘제논(Xenon)’ 기체가 온실효과를 일으키지 않으면서 마취에도 효과적이라 알려졌다”며 “다만, 가격이 비싼데다 현재 사용 중인 흡입마취제보다 마취 효과가 뛰어나단 근거가 없어 아직은 실험실 연구에만 쓰이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로선 기존의 흡입마취제 사용량을 최대한 줄이는 게 최선이다. 지구온난화잠재력이 크고 잔존시간이 긴 데스플루란과 아산화질소는 꼭 필요한 경우에만 사용하는 식이다. 흡입마취제 대신 정맥마취제나 국소마취제로 마취하는 것도 방법이다. 김재환 교수는 “환자의 안전이 담보되는 한에선 마취행위로 말미암은 환경오염을 최소화하기 위해 의사가 노력해야 한다”며 “마취통증학과 의사뿐 아니라 모든 의사에게 자신의 의료 행위가 환자의 안전은 물론이고 환경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정확하게 파악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날숨 속 마취가스 채집해서 재사용하는 방법도
일반 마취기는 흡입마취제를 들이마신 환자가 내뱉는 날숨을 수술실 공기 중에 흘려보낸다. 이렇게 방출된 마취가스는 수술실 바닥에 가라앉았다가, 기화돼 대기 속에 점차 섞여든다. 의료기기·병원설비 전문회사 엠엠에이코리아 이장현 대표에 따르면 고가 마취기엔 환자가 내뱉은 가스를 기계로 되돌려보내 재사용할 수 있는 기능이 있다. 이산화탄소 흡착제로 날숨에 섞인 이산화탄소를 없애고, 마취가스만 선별해 환자에게 다시 주입하는 식이다. 마취가스를 재사용하면 수술에 필요한 흡입마취제의 양이 줄어들고, 결과적으로 대기 중에 방출되는 양도 준다. 경제적, 환경적 측면 모두에서 이점이 있다. 고대안산병원 마취통증의학과 김재환 교수는 “데스플루란, 이소플루란, 세보플루란은 분자구조가 안정적이라 분해가 어려우므로 최대한 재사용하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아산화질소는 다른 마취가스 보다 분해가 쉽다. 분해해서 방출하는 기술이 개발 초기 단계이지만 있다. 문제는 수술실 안에 잔존하는 마취가스를 따로 빼내는 설비가 있느냐다. 일단 수술실 밖으로 빼내야 분해를 시도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장현 대표는 “대학병원을 비롯한 대형병원 50~60%엔 배출구로 마취가스를 빼내는 설비가 있지만, 수술실이 1~2개밖에 없는 중·소형병원은 비용 부담 탓에 설비를 갖추는 대신 잔존가스가 그냥 기화하게 두는 곳이 많다”고 말했다. 현재로선 이렇게 빼낸 마취가스에 공기를 섞어 희석한 후 방출하는 방식이 주로 사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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