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한 당신의 '가짜 치매'… 그냥 두면 '진짜 치매'로

입력 2021.02.05 17:13

우울증으로도 인지능력 저하… '세로토닌' 감소가 원인

한 여성이 메모를 뒤에 붙이고 고개를 갸우뚱하고 있다
우울증으로 인지 저하가 오는 가성 치매는 치료한다면 나을 수 있다./사진=클립아트코리아

“방금 들은 얘긴데 기억이 나지 않고, 글을 읽어도 이해가 잘 안 돼요.”
“하고 싶은 얘기가 있는데, 말로 잘 안 나와요.”

이처럼 우울증으로 치매와 비슷한 인지 저하를 보이는 증상을 ‘가성 치매’라고 한다. 치매로 병원을 찾는 사람 10명 중 4명이 가성 치매 환자일 정도로 치매와 증상이 비슷하다. 다행히 다른 치매와 다르게 회복이 가능하지만, 악화하면 다른 치매 발병 위험이 커져 주의가 필요하다.

◇가성 치매, 실제 치매보다 급격하게 증상 나타나
가성 치매는 치매 증상 군에 속한다고 볼 순 있지만, 실제 치매와는 다르다. 길병원 신경과 박기형 교수는 “치매의 정의 자체가 후천적으로 점차 진행하는 인지능력 저하 증세가 두 가지 이상 있으면서 일상생활에 문제가 생기는 걸 말한다”며 “가성 치매는 치매보다 증상이 급격하게 나타나고, 우울증 경도에 따라 인지 저하 정도도 바뀐다”고 말했다. 인지능력은 기억력, 판단력, 계산력, 언어 능력, 시공간 판단 능력, 실행능력 등을 모두 합친 것이다.

가성 치매 환자와 실제 치매 환자의 인지능력 손상은 비슷한 수준이지만, 가성 치매 환자는 실제 기억력이나 판단력이 저하됐다기보다 ‘집중력’ 저하가 원인이다. 뇌에 정보가 있지만, 집중력이 떨어져 그 정보를 인식하거나 표출하지 못한다. 알츠하이머 치매 환자에겐 겪었던 상황에 대한 단서를 줘도 기억하지 못하지만, 가성 치매 환자는 단서를 주면 그 상황을 기억해 낼 수 있다. 삼성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홍진 교수는 “치매에 걸린 게 아닐까 걱정하는 사람이라면, 상황을 판단하고 있기에 가성치매 환자일 가능성이 높다”며 “실제 치매 환자는 자신은 괜찮다고 하지만, 주변 사람들이 이상함을 감지해 병원으로 데리고 오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또 가성 치매 환자는 우울증 환자이기 때문에 인지 저하 외에도 우울감, 불안, 초조, 불면, 식욕감소 등의 증상을 동반하는 경우가 많다.

◇우울증 치료로 인지 능력 회복 가능해
가성 치매는 다른 치매와 달리 회복이 가능하다. 뇌 자체에 변형 등의 문제가 생긴 건 아니기 때문이다. 치매 환자의 60% 이상이 겪고 있는 알츠하이머 치매는 뇌에서 기억력을 담당하는 부위인 해마가 수축해 아세틸콜린이라는 신경전달물질의 분비량이 줄어들면서 인지 저하 증상이 나타난다. 반면, 가성 치매 환자는 뇌가 아닌 각성에 영향을 주는 ‘세로토닌’ 신경전달 물질 분비량이 급격하게 줄어들면서 발병한다. 박기형 교수는 “실제 가성 치매 환자의 뇌를 MRI 찍어보면 크게 문제가 없다”며 “세로토닌 분비량이 줄어들면 기분도 나빠지지만, 각성이 떨어지면서 집중력도 떨어져 인지 기능까지 저하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가성 치매 환자는 우울증 치료를 하면, 인지 능력을 회복할 수 있다. 가천대 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강재명 교수는 “우울증 약물치료를 받게 되면 세로토닌과 같은 모노아민 계통의 신경전달물질 분비량이 늘어나, 집중력이 높아지면서 인지 능력도 다시 회복된다”며 “약물치료와 함께 상담치료, 대외 활동 확장 등 우울증 자체를 치료하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고려대 안암병원 한창수 교수의 2017년 연구에 따르면 건망증을 동반한 우울증을 1년 정도 치료했더니 기억력을 포함한 인지기능이 좋아졌다.

◇방치하면 실제 치매 발병 위험 커져
회복 가능하다고 그냥 방치해 두면, 오히려 실제 치매 발병 위험이 높아질 수 있다. 우울증이 만성화되면 약제에 대한 내성이 생기고, 우울증 재발 가능성도 높아져 인지 저하 능력 회복이 어려워진다. 보라매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오대종 교수와 분당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김기웅 교수 공동 연구팀 연구에 따르면 우울증으로 인한 인지 저하가 2년 이상 만성화되거나 재발하면 6년 이내 실제 치매 발병 위험이 12배, 악화하면 46배까지도 늘어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만성 우울증은 뇌에 실질적인 타격도 준다. 강재명 교수는 “우울증이 길어지면 해마가  위축돼 회복이 어려워진다”고 말했다. 따라서 우울증으로 인지 능력 저하가 나타나는 것 같다면 하루라도 빨리 치료를 시작하는 게 좋다.

가성 치매 증상 중 하나인 무기력도 병이 악화하는 요인 중 하나다. 전홍진 교수는 “회복하려면 외부활동을 하거나 운동을 하거나 적절한 수면을 취해야하는데 보통 우울증 환자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며 “치료를 안 받고 오래 방치해 두는 환자들은 밥도 안 먹고, 누워만 있어 대사질환부터 치매까지 다양한 질환으로 악화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가성 치매 예방법… 혈관 관리, 운동, 사회활동
가성 치매를 예방법은 크게 3가지로 설명할 수 있다. 혈관 관리, 운동, 사회활동이다. 뇌 건강을 유지하려면 혈관 관리가 중요하다. 건강한 식습관과 금주, 금연해야 한다. 운동은 혈관 건강도 지키고, 우울증도 완화할 수 있는 필수 예방책이다. 운동 자체가 뇌세포를 보존하는 역할을 하고, 신경전달물질 분비량이 감소하지 않게 막아주는 효과도 있다. 유산소 운동과 근력 운동 모두 도움이 된다. 운동을 시작하는 게 힘들다면 하루 30분 걷기나 일상생활에서 좀 더 활동적으로 움직이는 것부터 해보자. 사회활동 등으로 사람과 교류하면 우울감이 훨씬 덜어진다. 강재명 교수는 “할 수 있는 만큼 직업 활동과 사회생활에 몰두하는 것이 좋다”며 “새로운 활동에 도전하거나 취미 활동을 하는 것도 뇌의 활성을 높인다”고 말했다.

실제로 핀란드에서 1260명을 대상으로 2년 동안 혈관 관리, 운동, 식습관 관리, 사회적 교류 활동을 하는 임상 시험을 진행했더니, 약물 복용 없이도 치매 발병률이 낮아지는 것을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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