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약 관련 사건은 자극적인 키워드로 점철돼 있다. 그러나 실제로 마약에 중독되는 사람들은 우리 주변의 매우 평범한 사람들이다. 스스로 마약을 구해 시작하는 이들도 있지만 소수다. 대부분은 친구나 연인, 직장 동료가 무심코 건넨 마약으로 시작한다. 이런 식으로 마약에 빠진 사람들 중 절반은 평생 벗어 나오지 못하는 반면, 나머지 절반가량은 마약을 끊으려고 발버둥 친다. ‘단약’ 의지가 있는 중독자들에겐 마약으로부터 벗어난 ‘선배’들의 이야기가 큰 힘이 될 수 있다. [편집자주]“20년 간 끊었던 사람도 다시 찾는 게 마약”이라며 “죽을 때까지 끊지 않는 한 완전한 단약은 없다”고 말하는 중독 경험자가 있다.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에서 만난 한창길(54)씨다. 그는 단약 6년 2개월 차다. 그는 30년 간 마약에 빠져 살다가 수감된 교도소에서 가까스로 단약의 기회를 얻고 현재는 회복상담사로서 활동하고 있다. 전국에서 마약 중독자들을 가장 많이 만나는 사람 중 한 명으로, 과거 자신과 같은 길을 걸으려고 하는 중독자들을 돕고 있다.◇7년간 참았다는 오만, 결국 필로폰까지한씨는 30년 간 중독에 허덕였다. 중학생 때는 본드와 가스였고 20대 때는 도박이었다. 1995년, 도박하다가 진 빚 때문에 도망치듯이 건너간 일본에서는 대마와 사행성 게임에 빠져 살았다. 일본에서 돌아온 뒤 마약에 손을 대지 않기로 다짐했지만 마약으로 맺어진 관계가 끊임없이 그의 주위를 맴돌았다. 친구의 권유로 대형마트 창업에 뛰어들었다가 4억 원의 빚을 지게 됐을 때도, 불법 사행성 게임장을 관리했을 때도 약을 권유받았다.빚을 다 갚고 나자 그의 삶은 어느 정도 안정궤도에 올랐다. 결혼도 하고 집도 장만했다. 7년 간 마약을 하지 않았던 스스로가 대견하다는 느낌에 사로잡혀 있을 때 다시 마약의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그는 “7년이나 참았는데 한 번 해보고 또 못 참을까 싶은 마음이 들었다”라며 “필로폰으로 수감됐다가 출소한지 얼마 안 된 지인에게 연락해 필로폰이 있느냐고 물었다”고 말했다.◇“죽음은 알았어도 ‘단약’은 몰라”마약 중독자들은 “첫 뽕은 아무리 해도 그 느낌이 안 온다”고 말한다. 처음 투약했을 때의 쾌락을 갈구하다가 전 재산을 탕진하는 사람이 많다. 한씨도 마찬가지였다. ‘한 번만 더해야지’라는 생각이 10년이나 이어졌다. 그 사이 모아놓은 돈은 다 쓰고 전세금까지 빼서 필로폰을 샀다. 아내와는 이혼했고 마땅한 일자리도 없었다. 정신차려보니 PC방에서 게임만 하고 있었다. 필로폰을 너무 자주 투약해 혀가 말려서 기도를 막아 숨이 안 쉬어질 때도 잦았다. 말린 혀는 ‘그냥 이대로 죽자’며 포기해야 원래대로 돌아오곤 했다. 혀가 돌아오면 물을 마셔야 하는데 그때 또 다시 약을 투여했다. 스스로의 상황이 비참해 공중화장실에서 목숨을 끊으려고 시도했다가, 수건걸이가 떨어지는 바람에 목숨을 부지했다.‘죽음’은 생각했어도 ‘단약’은 생각하지 못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마약을 끊었다는 사람은 듣지도, 보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그는 2017년, 교도소에 수감될 때까지 약을 했다. 교도소 안에서 만난 마약사범들도 “마약은 죽어야 끊는다”고만 했다. 한씨는 “마약방 수감자들은 출소 후 약발 잘 받으라고 운동도 열심히 하고 밥도 잘 먹는다”라며 “노인들이 다섯 번, 열 번째라고 말하는 걸 들은 뒤 내가 남은 생애 동안 몇 번이나 감옥에 더 들어올지 계산했던 순간이 선명하다”라고 말했다.그러던 어느 날, 재소자 교육의 일환으로 한 회복상담사의 강의를 들을 기회가 생겼다. 그 상담사는 스스로를 “25년 간 마약에 중독돼 있다가 15년 넘게 단약을 유지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박영덕 전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 중독재활센터장이었다. 말도 안 된다고 코웃음 치던 한씨는 세 시간의 강의가 끝난 뒤 충격을 받아 한 시간 정도 그대로 앉아 있었다고 한다.◇회복 상담사 찾아가 “살려달라”2019년에 출소했다. 그 길로 박영덕 센터장을 찾아가 살려달라며 빌었다. 그런 그에게 박 전 센터장은 세 가지를 요구했다. 연락처를 전부 지우고 병원 치료를 정기적으로 받으며 NA(자조 모임)에 참여하는 것이었다. 혼자서 뭘 하려고 하지 말라고 덧붙이기도 했다.박 전 센터장의 권유로 한씨는 사이버대학에서 사회복지학을 공부하기도 했다. 2년 정도 공부해 학위를 딴 후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의 ‘회복 지원가 양성 과정’에 참여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뚜렷한 목표는 없었다. 그런데 보조 강사 등으로 일하며 마약로 힘들어하는 사람을 도울 때마다 큰 보람을 느꼈다.그렇게 21년 5월, 첫 강의를 시작으로 한씨는 지금까지 교도소, 병원 등에서 중독자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해오고 있다. 현재 그의 연락처는 강의를 듣고 찾아온 사람들의 전화번호로 가득 차 있다.
-
마약 관련 사건은 자극적인 키워드로 점철돼 있다. 그러나 실제로 마약에 중독되는 사람들은 우리 주변의 매우 평범한 사람들이다. 스스로 마약을 구해 시작하는 이들도 있지만 소수다. 대부분은 친구나 연인, 직장 동료가 무심코 건넨 약물로 시작한다. 이런 식으로 약에 빠진 사람들 중 절반은 평생 벗어 나오지 못하는 반면, 나머지 절반가량은 약을 끊으려고 발버둥 친다. ‘단약’ 의지가 있는 중독자들에겐 마약으로부터 벗어난 ‘선배’들의 이야기가 큰 힘이 될 수 있다. [편집자주]“‘직장 생활을 잘 하는데 뭐가 문제야?’라고 끊임없이 합리화 했었다. 마약에 취한 상태에서 거래처 미팅도 나가 봤다.”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에서 만난 30대 중반 김종훈(가명)씨는 단약 2년 차다. 그는 이른바 ‘원나잇’으로 만난 여성이 건넨 필로폰을 투약했다가 마약에 중독됐다. 이후 6년 간 마약에 중독된 채 직장 생활을 이어갔다. 그러다가 수사기관에 적발되면서 법적 절차를 밟았고, 현재는 NA 모임(자조모임)에서 다른 중독자들의 회복을 돕고 있다. 그의 이야기를 들어봤다.◇처음 본 여성이 건넨 주사기… 6개월 뒤엔 스스로 구매2015년 경, 이촌동에 거주했던 종훈씨는 근처 이태원의 클럽을 자주 다녔다. 종종 처음 보는 여성과 하룻밤을 보내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여성이 난데없이 주사기를 꺼냈다. 종훈씨는 “그게 뭐냐” 물었고, 여성은 다짜고짜 자신의 정맥에 주사 바늘을 꽂아 넣더니 “해보라”며 권했다. 종훈씨는 “주사기를 보고 불법적인 일이라는 걸 몰랐다고 하면 거짓말”이라며 “술도 취했겠다, 분위기도 거절하면 안 될 것만 같아서 그렇게 필로폰을 접하게 됐다”고 말했다.처음에 종훈씨는 필로폰의 중독성이 과장됐다고 느꼈다. ‘다시 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고 그날의 일을 하룻밤 해프닝 정도로 여기고 일상을 이어나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오판이었다. 업무 스트레스로 과음한 날 불현듯 필로폰이 떠올랐다. 인터넷으로 구매처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두 시간만에 필로폰을 받아볼 수 있었다. 첫 투약 후 6개월가량 흐른 뒤였다.그 뒤 마약 투약 주기가 빠른 속도로 짧아져만 갔다. IT업계에서 일하던 그는 정해진 출퇴근 시간이 없었다. 재택근무를 하는 날도 잦았다. 때문에 마약은 주로 집에서 혼자 투여했다. 종훈씨는 “처음에는 6개월에 한 번씩 하니까 스스로 조절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며 “그러나 주기는 곧 2~3개월로 짧아졌고, 긴 연휴나 연차 전날에는 무조건 마약을 구비해놓을 정도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한 번 투약할 때 많은 양을 사용했다. 통상 필로폰은 1g씩 유통되고 0.03g을 한 칸, 즉 1회분으로 치는데 한 번에 세 네 칸을 사용했다. 그 여파로 1주일간 잠을 못 잤다. 생체리듬이 깨지는 걸 막기 위해 수면제를 복용했더니 판단 능력이 떨어져 업무를 제대로 할 수가 없었다.가장 큰 문제는 죄책감이었다. 필로폰을 투약할 때마다 ‘이번이 마지막’이라 다짐했지만 매번 어기니 죄책감이 그를 좀먹었다. 종훈씨는 “안 해야지, 안 해야지 하면서도 결국 스스로를 배신한 나를 마주하는 게 정신적으로 타격이 컸다”며 “죄책감과 더불어 불안감도 심했는데 누가 날 잡으러 오지 않을까 하는 망상 때문에 밖에 나가기도 어려웠다”고 말했다. 이어 “이런 상태에서 회복되기까지는 마약 투약 후 꼬박 한 달씩 걸렸다”고 말했다.◇친구 응원에 끊었지만 금단증상에 알코올 중독까지그러던 어느 날, 초인종이 울려서 나가보니 경찰이 서류철을 들고 서 있었다. 경찰은 마약 판매상이 검거됐는데 종훈씨 이름으로 된 입금 내역이 발견됐고, 주고받은 메시지를 기반으로 CCTV 영상을 추적하다가 그가 ‘던지기 수법’으로 필로폰을 건네받는 장면을 포착했다고 말했다. 종훈씨는 잡아뗄 것도 없어서 그 자리에서 집에 있던 주사기를 전부 제출했다. 경찰이 돌아가자마자 직장생활이 걱정됐다. 그는 “직장에서 잘리면 마이너스 통장 연장이 안 되니까, 그 돈을 한꺼번에 상환해야 할 수도 있다는 게 가장 두려웠다”고 말했다.종훈씨는 변호사의 조언대로 일단 마약부터 끊으려고 했다. 스스로를 믿을 수 없어 주변 사람들에게 범행 사실을 고백했다. 친누나, 사촌 동생, 고향 및 대학교 친구들은 물론 회사의 몇몇 지인과 매니저에게도 마약을 했다는 사실을 전했다. 마약을 또 하면 주변 사람들까지도 배신한다고 생각해야 단약이 가능할 것 같았다는 게 종훈씨의 설명이다. 그는 “일련의 상황을 들은 고향 친구가 휴대폰을 달라고 하더니 SNS 어플을 제한시키는 기능을 설치했고, 그걸 해제하는 비밀번호는 자기만 알고 있겠다고 말했다”라며 “덕분에 큰 힘이 됐던 것 같다”고 말했다.그럼에도 마약을 끊는 과정은 지난했다. 금단 증상으로 손이 떨려 수 시간 업무를 할 수 없을 때도 있었고 운전을 하는데 잠깐 동안 필름이 끊긴 적도 있었다. 대체 중독으로 알코올에 빠지기도 했다. 회식이 있어도 11시만 되면 집에 갈 정도로 술을 즐기지 않던 그가 마약을 끊고 나서는 회식이 끝난 뒤 집에 가서 혼자 양주병을 비웠다.초범이고 투약 횟수가 많지 않았던 종훈씨는 조건부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 그 뒤로 약 2년 간 단약을 유지하고 있다. 현재는 마약퇴치운동본부의 NA 모임에서 봉사활동을 하며 다른 중독자들에게 조언하고 있다.◇김종훈씨와의 인터뷰-혼자 마약 투약 후 무엇을 했나?“한 가지에 꽂혀서 그것만 했다. 예컨대 집 안 먼지에 집중하면 열 몇 시간 동안 청소만 하는 식이다. 성행위도 마찬가진데 대부분 혼자 투약했기 때문에 주로 자위행위를 했다. 머리로는 하면 안 되는 걸 아는데 몸이 그렇지가 않았다. 스스로를 보는 게 힘들었다.”-마약 투약으로 인해 무엇을 잃었나?"나에 대한 신뢰가 깨졌다. 죄책감 때문인지는 모르겠는데 자신감이 사라진 느낌이다. 이전부터 업무 스트레스 때문에 정신건강의학과에 다니고 있었는데, 마약 투약 후 지능검사 점수가 낮게 나오더라. 담당 의사는 스트레스 탓일 거라고, 다음에 다시 해보면 정상으로 나올 거라고 격려해줬지만 그럴 것 같지 않았다. 감정 기복도 심해져 일상생활이 어렵다. 현재는 조울증 약을 복용하고 있기도 하다."-마약 투약 사실을 고백했을 때 회사 매니저는 어떤 반응을 보였나?“면담에서 우선 가만히 있고, 법적 절차가 끝나면 그때 다시 얘기해보자는 답변을 했다. 인사팀에는 보고가 안 된 것으로 알고 있다. 지금 돌이켜보면 마약을 하면서도 직장을 다니고 있다는 게 오히려 문제를 키웠다. ‘어차피 직장생활 잘하고 있는데’라는 식으로 스스로 합리화 한 적이 많다. 마약에 취해서 미팅에 나간 적도 있다. 이런 상황을 끝내고 싶어서 회사 측에 말한 측면도 있다.”-단약을 이어가는 원동력이 있다면?“그동안 사람들과의 관계나 업무에 있어 즐거워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던 것 같다. 지금은 삶을 대하는 태도를 ‘돌탑’ 같은 상태로 유지하려고 한다. 너무 많이 쌓아도 안 되고 몇 개 덜 쌓아도 안 되는 그런 상태를 유지하려고 노력하는 데 단약은 필수다. 친구들, 회사 지인들, 그리고 NA 모임 같이 하는 선생님들한테 배신감을 느끼게 하고 싶지 않다. 마지막 끈을 놓아버리는 것 같다는 기분이 든다. 이걸 붙잡고 끝없이 나 자신을 일깨울 것이다.”-단약 의지가 흔들린 적은 없었나?“기소유예 선고를 받은 직후가 가장 위험했다. 사람이 참 간사한 게, 재판을 앞두고 있을 때는 약 생각이 하나도 안 난다. 그런데 법적인 문제가 해결되니까 바로 흔들리더라. NA 모임에서 중독자들의 얘기를 들어봐도 그렇다. 결국 구속될 것 같으면 자포자기하는 심정에, 기소유예나 집행유예가 나올 것 같으면 안도하는 심정에 넘어가는 것이다. 이럴 때일수록 전문 기관의 도움을 받아야 하지만 현실은, NA 모임에 참여했다가도 재판 끝나면 두 번 다시 안 나오는 사람들이 많다.”-NA 모임에서 봉사활동을 하는 이유는?“변호사의 권유로 처음 NA 모임에 참여한 뒤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 선생님들로부터 권유를 받았다. 스스로도 도움을 받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다른 중독자도 비슷하게 느끼고 있을 때 보람을 느낀다. 모임에 빠지지 않고 참여할 수 있어 단약에도 큰 도움이 된다. NA 모임 참여를 위해 목요일 오후는 아예 일정을 비우고 지낸지 오래 됐다.”-목표가 있다면?“큰 목표는 없다. 단지 지금 상태를 유지하려고 한다. 담배는 끊는 게 아니라 평생 참아야 한다는 말이 있다. 마약은 그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다. 그래서 아주 힘이 든다. 20년 단약을 했다가 ‘넘어진’ 중독자도 봤다. 그런 분들이 갈망을 못 이겨서 다시 약을 했을까? 삶을 살면서 어떤 실패로 인해 우울감이 높아졌을 때 의존 수단으로 약이 떠오른 것이라 생각한다. 앞으로 살면서 많은 일들이 있을 텐데, 지금의 안정적인 상태를 최대한 오랫동안 유지하고 싶다.”
-
마약 관련 사건은 자극적인 키워드로 점철돼 있다. 그러나 실제로 마약에 중독되는 사람들은 우리 주변의 매우 평범한 사람들이다. 스스로 마약을 구해 시작하는 이들도 있지만 소수다. 대부분은 친구나 연인, 직장 동료가 무심코 건넨 약물로 시작한다. 이런 식으로 약에 빠진 사람들 중 절반은 평생 벗어 나오지 못하는 반면, 나머지 절반가량은 약을 끊으려고 발버둥 친다. ‘단약’ 의지가 있는 중독자들에겐 마약으로부터 벗어난 ‘선배’들의 이야기가 큰 힘이 될 수 있다. [편집자주]“교도소에서 10년 이상의 세월을 보내고 있는 수감자들을 마주하고는 딱 제 미래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에서 만난 이제홍(49·가명)씨는 단약 4개월차다. 그는 2020년도에 마약을 처음 접했다. 친하게 지내던 지인이 마약 공급책으로 돌변한 순간이었다. 그 뒤 1년 6개월가량을 약에 빠져 살다가 교도소에 수감됐다. 거기서 그는 가까스로 두 번째 기회를 얻고 출소 후 약을 끊으려고 애쓰고 있다.◇“호텔에서 같이 놀래?”라는 말이 마약일 줄은…이제홍씨는 2020년 어느 날, 친하게 지내던 지인으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았다. 그는 다짜고짜 “호텔에서 같이 놀자”고 제안했다. “뭐하고 노느냐”고 물어도 “와 보면 안다”는 답만 되돌아왔다. 친분이 두텁기도 했고, 젊게 사는 듯한 그 지인을 평소 동경했던 제홍씨는 호텔로 향했다.호텔에 가보니 지인은 처음 보는 여성 두 명과 함께 있었다. 그제야 지인은 “마약을 하고 있었다. 같이 하고 싶어서 불렀다”고 털어놨다. 제홍씨는 ‘당연히 안 된다’는 생각이 앞섰지만 가슴 속 깊은 곳에서 일렁이는 호기심을 부정하지 못했다. 그는 “안 한다고 말하면 해코지를 할 것 같기도 했고, 그들이 너무 멀쩡해 보여서 ‘조금은 해도 되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그렇게 46세, 비교적 늦은 나이에 필로폰을 시작했다.다음 날, 제홍씨는 지인에게 전화해 “또 해볼 수 있느냐”고 물었다. 1주일새 세 번을 더 투약했다. 그러던 찰나 경찰서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호텔에 있었던 여성 한 명이 자수를 한 것이다. 세 명은 구속됐고 초범이었던 제홍씨는 불구속 상태에서 수사를 받았다. 상황이 그렇게 되니 약물은 생각 나지 않았다고 한다. 제홍씨는 “집으로 공소장이 날아오고, 검찰 조사를 받으러 가고 재판도 받아야 하니 사태를 어떻게 해결할 지에만 온 정신이 쏠렸다”고 말했다.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이후 한동안은 ‘죄를 지었으니까 죗값을 받아야지’, ‘앞으로는 똑바로 살아야지’라고 생각하며 스스로를 채찍질했다. 그런데 한 편으로는 자신의 의지로 약을 ‘안’ 하는 게 아니라 약을 구해줄 사람이 없어서 ‘못’하는 것이라는 의심이 들기도 했다. 의심은 5개월 뒤 확신으로 바뀌었다. 약물을 가르쳐준 지인이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풀려났다는 소식이 들리자 한 달음에 그를 찾아갔다. 그렇게 다시 필로폰을 투약했다.이때부터다. 상황이 걷잡을 수 없이 흘러갔다. 제홍씨는 “또 적발되면 집행이 유예된 건까지 함께 처벌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정확히 인지하고 있었지만, 마약을 하면 모든 걱정이 뒷전으로 밀려났다”며 “약에 취해 있느라 재판에 참여하지 않은 적도 있다”고 말했다.◇‘재활 교육’ 덕분에 중독에 대한 두려움·단약 의지 생겨두 번의 집행유예 후 세 번째 적발됐을 땐 징역을 피할 길이 없었다. 1년 6개월 형이 선고됐다. 교도소에서는 같은 마약사범들과 함께 수감됐다. 일명 ‘텐뽕’이라고 불리는 노인도 있었다. 다른 수감자에게 물어보니 마약으로 10번 이상 징역형을 선고받았고, 10년 이상을 살았다는 뜻이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제홍씨는 ‘형량을 다 채우고 나가도, 다시 이곳으로 돌아오겠구나’ 생각했다. 그곳에 있던 수감자들이 그랬다.그는 “텐뽕이라 불리는 사람이 자는 걸 보면서 ‘나도 저렇게 되면 어쩌지’ 되뇌었다”며 “스스로를 중독자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 눈앞에 있는 사람들을 보면서 중독이라는 게 도대체 어떤 건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교도소에서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책을 읽는 것뿐이었다. 제홍씨는 ‘도파민네이션’이라는 책을 처음 읽고 충격을 받았다 한다. 사람이 쾌락을 추구하면 항상성을 유지하려는 몸이 고통을 선사한다는 내용이 인상 깊었다. 반대로 몸에 약간의 고통을 가하면 쾌락이 찾아올 터였다. 그는 “교도소에서는 찬 물로 샤워를 해야 하는데, 책을 읽고 나니 샤워 후 30분~1시간은 기분이 들뜬다는 걸 인지할 수 있었다”며 “호르몬 때문에 쾌락을 느낀다는 걸 배운 뒤 중독에 관련된 책을 읽어 나가기 시작했다”고 말한다.형량이 6개월 정도 남았을 땐, 운 좋게 ‘회복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게 됐다. 원래 마약류 위반으로 교도소에 입소하면 ‘재활 교육’ 수강 명령이 떨어진다. 형량에 따라 40시간부터 200시간까지 교육을 이수해야 할 의무가 주어진다. 다만 해당 교육은 실제 재활 효과보다는 형벌적인 의미가 강하다. 마약사범이 급증하자 법무부는 마약사범의 치료와 재활부터 출소 후 사회 복귀까지 돕는 ‘마약류 회복이음 과정’이라는 프로그램을 개설했다. 이 프로그램의 1기 수강생이 제홍씨였다. 그가 있던 교도소에서 그에게만 기회가 주어졌다고 한다.제홍씨는 화성직업훈련교도소로 이송돼 3개월 동안 교육만 받았다. 외부 강사들과 심리학을 전공한 교도관으로부터 전문적인 마약 재활 교육을 받을 수 있었다. 그때부터 단약 의지가 생기기 시작했다. 그는 “솔직히 교육을 받기 전까지는 ‘내가 지금 1년 6개월을 쉬고 나가는데, 마약을 다시 하면 처음 그 기분을 느낄 수 있겠지?’라는 기대감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라며 “그런데 교육을 받으면서 중독이라는 게 얼마나 무서운 병이고, 여기서 헤어나지 못하면 어떤 결과를 맞게 될지 깨닫자 두려워졌다”고 말했다. 그는 연신 자신이 운이 좋다고 말한다. 처음 필로폰을 투약했을 때 사법기관에 적발됐던 덕분에 중독에 제동이 걸렸다는 거다. 교도소에서도 회복 프로그램에 참여한 덕분에 단약 의지를 다질 수 있게 됐다. 그렇게 출소한 재홍씨는 현재 4개월 째 단약을 이어가고 있다.◇이제홍씨와의 인터뷰-출소 직후 무엇을 했나?“출소한 당일,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에서 NA 모임(자조모임)이 이뤄진다는 사실을 알고 곧장 발걸음을 옮겼다. ‘출소하자마자 왔다’고 하니까 다들 반겨주고 나를 치켜 세워주더라. 이후 꾸준히 마약퇴치운동본부에 방문하고 있다. 교도소 내에서 중독자들이 도움 받을 수 있는 기관들에 대해 안내받았던 덕분이다. 또 교육을 담당했던 사람들 모두 ‘혼자서는 약을 끊을 수 없으니 도움을 받아야 한다’고 조언해주기도 했다.”-유혹은 없었나?“출소하고 2주간 정말 힘들었다. 사실 첫 날 NA 모임에서 마약 얘기를 듣는 순간 갈망을 느꼈다. 사람 뇌가 참 신기한 게 마약을 할 수 없는 상황에서는 갈망도 없다. 교도소에서는 어차피 약을 구할 길이 없으니까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런데 출소하고 나니 바로 생각나더라. NA 모임에서 사람들과 약물 관련된 얘기를 나누다가 머리로 피가 쏠리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초여름이었는데 집에서 이불을 덮고 있어야 할 정도로 오한이 느껴졌고 손발이 떨렸다. 다행히 그때마다 병원에서 전화가 와서 견딜 수 있었다.”-마약을 처음 건넨 지인을 원망하지는 않았나?“많이 했다. ‘왜 마약의 ‘ㅁ’자도 모르던 사람에게 이런 걸 경험하게 만들어서 인생을 망쳐놓았는가’ 수백 번, 수만 번 생각했다. 그런데 회복을 하다 보니 원망조차 재발의 요인이 될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교도소에서 교육을 받을 때 그 사람에게 마지막으로 편지를 썼다. 처음 약을 건넨 건 그 사람이지만 어쨌든 나도 마약을 끊지 않고 계속 그에게 연락했다. 그가 나로 인해 중독이 깊어졌을 수도 있었겠다는 것에 대해 사과했다.”-수감 전 중독됐다는 걸 체감한 순간이 있나?“응급실에 실려 간 적이 있다. 내 상태가 안 좋아 보인다고 어머니가 119를 부른 것이다. 혈액검사를 마친 뒤 의사가 뛰어와서 어제 뭐 했느냐고 묻더라. 혈중 크레아티닌 수치가 1000이 넘는다고. 사실 전날에 마약을 하고 운동을 했다. 평소에 푸시업을 10개밖에 못하는데 그날 100개를 넘게 했다. 그렇게 ‘횡문근융해증’을 진단받았는데 쉽게 말해 근육이 녹아버린 것이다. 5일 정도 입원 치료를 받았다. 마약 하다가 이렇게 죽는구나 싶었다.”-본인이 마약에 빠진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나?“처음에는 교도소에 수감된 걸 전부 마약 탓으로 돌렸다. 그런데 교육을 받으면서 마약은 두 번째고, 내가 마약에 손을 댄 이유가 더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문제가 생기면 그걸 해결하는 대신 회피하고 도망치는 성향을 가지고 살았다. 결혼 생활에서도 그랬고 사업을 할 때도 그랬다. 어려움이 닥쳤을 때, 제대로 해결하지 않으면 상황이 안 좋아진다는 당연한 수순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래도 사장인데’, ‘그래도 남잔데’ 따위의 자존심을 버리지 못하고, 사과하지 않으니 사업도 망하고 이혼도 하게 됐다. 이런 것들이 결핍으로 몰려와도 실패를 인정하지 않으니 술에만 의존했던 것 같다. 그 대상이 마약으로 바뀐 것뿐이었다.”-‘회복이음 프로그램’에서 깨달은 게 있다면?“삶을 돌아볼 기회를 가질 수 있었고 마약의 기전, 중독의 위험성, ‘NA 12단계’, ‘100일 작전’ 등 여러 가지를 배웠다. 그 중에서 가장 의미 있는 건 ‘회복으로 가는 가장 빠른 길’에 대한 것이다. 외부 강사들 중 상당수가 과거 중독으로부터 회복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계획을 버리라’고 설명한다. 전문가들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과정만 규칙적으로 따라하면 회복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본인의 의지로 약을 끊을 수 있다’는 말은 틀렸다. 그런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백이면 백 다시 마약에 손을 댄다.”-단약 의지가 있는 중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나?“교도소는 물론 보호관찰소 등에도 중독자들의 회복을 돕기 위한 프로그램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나도 그랬지만 중독자 입장에서는 그런 것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사법기관은 나를 잡아넣는 데에만 혈안이 돼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게 아니다. 정당한 죗값을 치르고 마약을 끊겠다는 의지만 가져라. 그러면 물심양면으로 도와주는 이들이 많다. 그게 우리나라 사법체계다. 부디 꼭 단약하길 바란다.”-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인가?“교도소에서 회복 일지를 쓰다가 출소 후 글을 써보면 좋을 것 같다는 말을 들었다. 그 순간, 대학 때 가졌던 작가라는 꿈이 떠올랐다. 어차피 약물에서 벗어나려면 이전의 삶은 다 끊어내야 한다. 이참에 꿈을 좇는 것도 좋지 않을까 싶었다. 작가이면서 중독 관련 상담과 강의를 하는 강사가 되고 싶다. 내년에 중독상담학과 대학원에 들어가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
-
마약 관련 사건은 자극적인 키워드로 점철돼 있다. 그러나 실제로 마약에 중독되는 사람들은 우리 주변의 매우 평범한 사람들이다. 스스로 마약을 구해 시작하는 이들도 있지만 소수다. 대부분은 친구나 연인, 직장 동료가 무심코 건넨 약물로 시작한다. 이런 식으로 약에 빠진 사람들 중 절반은 평생 벗어 나오지 못하는 반면, 나머지 절반가량은 약을 끊으려고 발버둥 친다. ‘단약’ 의지가 있는 중독자들에겐 마약으로부터 벗어난 ‘선배’들의 이야기가 큰 힘이 될 수 있다. [편집자주]“마약에는 수 억 원을 썼지만 가족에게는 30년 만에 처음으로 5만 원 짜리 영양제를 사줬습니다.”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에서 만난 김민준(49·가명)씨는 고등학생 때 필로폰을 사용했다. 친한 선후배들과의 '놀이'에 불과했던 약물에 거의 30년 간을 구속되다시피 살았다. 그러다가 딸의 결혼식을 계기로 약을 멀리하기 시작했고 지금은 3년 째 단약 중이다.◇본드·가스로 시작, 3년 만에 필로폰까지올해 49세인 김민준씨는 14세 때 처음 마약을 시작했다고 털어놨다. 당시 마약에 중독됐던 사람들이 으레 그렇듯 시작은 본드와 가스였다. 그러다 ‘러미날’로 넘어갔다. 김씨는 “인천에서 체육고등학교를 다녔는데 운동을 하니까 몸이 부서질 것처럼 힘든 날이 많았다”며 “러미날을 쓰니 통증이 잘 조절돼, 한 달에 이틀 정도는 운동도 하지 않고 쉬는 날을 만들어 온종일 약물을 사용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러다가 17세 때 ‘염산날부핀’이라는 환각제를 접했다. 1회용 주사기로 정맥을 통해 주입한 첫 약물이었다. 어느 날 선배가 “정말 센 것”이라며 가져온 약물을 대수롭지 않게 주사기에 넣고 몸에 주입했다. 필로폰이었다. 그렇게 돌아오기 힘든 강을 건넜다. 김씨의 머리에는 ‘참 쉽다’는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그는 “주사기를 사용한 경험이 있으니 어떤 약물이든 무섭다는 생각이 안 들더라”며 “이걸로 삶이 망가질 수 있다는 사실은 깨닫지 못했다”고 한다.고등학교를 졸업할 때 쯤 외환 위기(IMF)가 찾아왔다. 운동에 이렇다 할 재능이 없었던 그는 도피하듯 입대를 선택했다. 군대에서는 당연히 마약을 할 수 없었다. 건강한 정신이 깃드는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딸이 생긴 것도 그 시기였다. 처가에서 반대가 심했지만 딸을 낳았다. 남은 군 생활을 마저 하다가 전역했다.그는 전역과 동시에 가족들에게 “생계를 책임지겠다”고 말하고 남대문으로 향했다. 마약을 팔기 위해서였다. 마약이 어떤 식으로 유통되는지 대충 알고 있어서였다. 김민준씨는 “그때는 ‘어디 가서 취직을 하겠어’라는 마음이 컸다고 생각했다”며 “그런데 돌이켜보니, 약물과 가까워지고자 나 좋자고 갔던 거다”라고 말했다. 남대문에서 마약을 팔던 그는 사법기관에 적발돼 처음으로 법적 처벌을 받게 된다. 러미날이 향정신성의약품으로 지정된 2003년경의 일이다. 그로 인해 교도소에서 4년 가까이 징역을 살았다. 그는 교도소 안에서 ‘앞으로 약물 판매는 절대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다만 약물을 하면 안 된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고 한다.◇스스로 ‘약물 중독’이라는 사실, 3년 전에야 깨달아출소 후엔 평범한 사람들처럼 살아보려 노력했다. 자동차 부품을 만들던 공장에 취직도 했다. 그런데 스트레스가 쌓이다 보니 다시 마약이 생각났다고 한다. 김씨는 “문제를 회피하고 스스로 즐거움을 줄 수 있는 가장 빠른 방법을 알고 있다 보니, 아무런 고민 없이 자연스럽게 또 마약을 하고 있더라”고 말했다. 그 이후부터 그는 ‘마약을 구하기 위해’ 살았다. 용접공, 병원 보호사 등으로 잠깐씩 일하면서 벌어놓은 돈 대부분을 약을 구매하거나 판매상에게 잘 보이기 위한 선물을 사는 데 사용했다. 마약을 구입하기 위해 한겨울에 건설 현장에서 일용직으로 일한 적도 많았고, 인천에서 부산까지 하루에 두 번 왕복하는 일도 있었다. 그 사이 13년 간의 결혼 생활이 끝이 났다. 그 사이에 그는 우울증을 얻었고, 알코올 중독으로 담낭 제거술을 받기도 했다.그가 스스로 마약에 중독됐다는 걸 인정한 시기는 비교적 최근이다. 2019년 경, 딸이 결혼할 거란 소식을 들었다. 딸의 결혼식만큼은 맑은 정신에 가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런데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방법을 몰랐다. 생애 처음으로 폐쇄병동에 입원하기로 했다. 김민준씨는 “이전에는 ‘나는 중독자니까 재발해도 괜찮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약을 끊을 수 있다’는 식의 합리화만 했는데, 딸의 결혼 소식을 듣고는 생각이 바뀌었다”며 “폐쇄병동에 입원한 뒤부터는 의사 등 전문가들이 시키는대로만 했다”고 말했다. 비로소 약물에 항복한 거다. ‘혼자는 안 된다’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마음이 생겨야지만 진짜 단약이 시작되는 것 같다는 게 김씨의 설명이다.폐쇄병동에 1년 간 입원했던 덕분에 딸의 결혼식은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전에 약물을 복용했던 사실이 적발되면서 다시 교도소로 들어가게 된다. 그는 2021년 5월에 출소한 뒤에도 단약을 위해 도움을 받아야겠다는 생각을 버리지 않았다. 주치의의 조언에 따라 휴대전화에 등록돼 있던 전화번호의 80% 이상을 지웠다. 또 정기적으로 마약퇴치운동본부를 방문하기 시작했다. 1년 전부터는 사이버대학교에서 사회복지학과 공부를 시작했다. 그렇게 그는 3년 간 단약을 이어오고 있다. 그의 삶에서 최장 기간의 단약이다.◇김민준씨와의 대화-어떻게 지내고 있나?“3년 동안 한 거라고는 집, 마약퇴치운동본부, 병원을 왔다 갔다 한 게 전부다. 아침에 일어나면 인천의 집에서 서울에 있는 마퇴본부로 이동해 한 발자국도 안 나간다. 1주일에 한 번씩 교육이나 자조모임에 참여한다. 진료가 있는 날에는 인천참사랑병원을 방문한다. 최대한 규칙적으로 생활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몇 없긴 하지만 주변에 10년 이상 단약한 사람들을 보면, 모두 규칙적이고 반복적인 생활을 견뎌냈더라. 그들을 따라하고 있다.”-지난 3년, 단약하는 동안 위기는 없었나?“얼마 전 명절 때, 어린 시절부터 알고 지낸 친구로부터 연락이 왔다. 교도소에도 같이 갔고 징역도 대신 가자고 말할 정도로 막역한 사이였다. 그 친구 목소리를 듣는 순간 3년간의 노력은 온데간데없고 둘이서 약물을 사용했던 기억들이 막 스쳐 지나갔다. 그 전화도 마퇴본부에서 받았는데 다른 곳에 있었더라면 다시 마약에 손을 댔을 것이라는 직감이 들었다. 마퇴본부는 가족을 제외하고 유일하게 건강한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장소다. 이 관계가 나를 잡아주는 것 같다. 이따금씩 마약 생각이 난다. 다행인 것은 그 주기가 점점 길어지는 것 같기는 하다.”-중독자로 살면서 가장 후회하는 건 뭔가?“셀 수도 없다. 하나를 꼽으라면 가족들에게 못할 짓을 했다는 거다. 마약을 구하는 데에는 수 억원 이상 썼지만 모은 돈은 하나도 없었고 가족에게 해준 것도 없었다. 내가 마약하는 게 주변에 피해를 주는 건 아니라고만 여겼다. 가족들이 30년이라는 세월을 나 때문에 정신질환이 생길 정도로 처참하게 살아왔는데, 그걸 알지 못했다는 게 새삼 충격이었다. 얼마 전, 딸에게 태어나 처음으로 선물을 해줬다. 영양제였는데 5만원도 안 하더라. 그보다 조금 더 전에는 아버지, 어머니께 처음으로 밥 한 끼를 사드렸다. 역시 5만원도 안 됐다. 스스로가 비참한 기분이 들 정도로 죄스러웠다.”-마약 중독자들에게 조언한다면?“마약을 건네는 이들은 하나같이 ‘너니까 특별히 주는 거다’라는 말을 한다. 수많은 중독자들을 만나봤지만 부모나 자식한테 약을 건네는 사람은 없다. 정말 특별해서 주는 게 아닌, 마약에 중독시켜 팔기 위해 건네는 것이었다는 걸 그때 알아차렸어야 했다. 아예 시작을 하지 말아라.”-단약 가능성을 조금이라도 높이려면?“혼자 끊을 수 있다는 생각은 반드시 버려야 한다. 중독자들은 고민을 할 때에도 마약에 손을 댄다. 마약을 한 상태에서 치료가 될 지 안 될 지 고민하는 것이다. 올바른 답이 나올 리가 없다. 그냥 치료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앞뒤 재지 말고 바로 병원에 가는 게 가장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강제로라도 3개월 이상 몸에 약이 안 들어오면 올바른 생각이 조금씩 돌아온다. 스스로 노력하고 있다는 생각도 버리는 게 좋다. 같이 회복하는 사람들하고 하는 얘기인데, 하나같이 약물을 끊으려고 끊임없이 노력했다고 한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니 약물을 구하려고 했던 노력의 10분의 1도 안 된다는 데에 모두가 동의한다. 스스로 약을 끊는다는 건 불가능하다. 이런 식으로 조언하면 내가 마치 단약에 성공한 사람처럼 느껴지기도 하는데, 말 도 안 되는 소리다. 30년 가까이 마약을 했는데 3년 끊었다고 단약 성공이라고 절대 볼 수 없다. 평생 도움을 받고 노력해야 한다.”-앞으로의 목표는 무엇인가?“사이버대학교에서 사회복지학과 공부를 하고 있다. 특별한 계기가 있던 건 아니다. 단지 단약을 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해서 시작했다. 그런데 공부를 하다 보니 중독과 관련된 부분에서 내가 경험했던 문제들을 설명하고 있었다. 구체적인 목표는 아니더라도 여기서 공부해서 자격증을 딴다면 중독자들을 대상으로 상담 같은 것이라도 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
“마약 관련 기사를 보면서 ‘뭐 저런 놈들이 다 있어’ 했는데, 나중에 보면 자녀들이 마약을 하고 있는 거예요. 실제 그렇게 센터로 찾아온 부모들이 굉장히 많아요.”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 박영덕 중독재활센터장은 ‘마약 재활 전도사’로 불린다. 지난 20년간 중독재활지도사로 살면서 상담·자조 모임 등을 통해 수많은 중독자들과 만나왔다. 초범인 마약 사범들이 기소유예 처분을 받아 치료·재활에 전념할 수 있도록 돕거나 자조모임을 익명화시켜 중독자들의 참여를 유도하기도 했다. 현재는 ‘용기 한걸음 1342 마약류 전화상담센터’를 맡고 있다. 국내 최초로 24시간 마약류에 대한 전화 상담을 제공하는 곳이다.◇‘25년 중독’에서 벗어나 재활지도사로12일 방문한 상담센터에는 상담 인력 다섯 명이 근무하고 있었다. 박 센터장에 따르면 마약 재활 관련 문의 전화가 하루에 15~20건 온다고 한다. 한 달이면 약 500건이다. 약물 갈망이 심해 도와달라거나 그냥 얘기를 하고 싶어서 전화를 걸었다는 이들도 있다. 간혹 경찰서에서 전화를 하거나 죽고 싶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는데, 이렇게 어두운 이야기를 수없이 듣다보면 지칠 법도 한데 박 센터장에게 그런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지금이야 중독재활지도사지만 한때는 그도 중독자였다. 1980년대, 중학생 시절부터 마약을 투약했다고 한다. 아버지에 대한 반항심으로 본드를 흡입한 게 처음이었다. 그러다 의료용 약물로 넘어갔고 필로폰까지 투약하게 됐다. “교도소도 갔다 왔고 정신병원에 10여 차례 입원해도 약을 끊는 데 실패해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고 한 적도 있다”며 “어느 날 정신차려보니 노숙을 하고 있었다”고 말했다.그를 살린 건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노숙인의 온정이었다. 당뇨병까지 찾아와 망가진 몸으로 누워있을 때 한 노숙인이 다가와 식판을 내밀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속으로는 ‘나는 저들과 다르다’는 마음이 있었는지 숟가락을 팽개쳤다”며 “그럼에도 계속 음식을 갖다줘서 마지 못하는 척 한술 먹자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다”고 말했다. 그 이후, 박 센터장은 스스로를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라고 여기기 시작했다. 그렇게 병원을 찾았다.단약은 쉬운 게 아니었다. 20년간의 중독은 그를 쉽게 놓아주지 않았다. ‘단약-재발’ 반복으로 5년이 지났다. 입소자 시설을 찾아갔던 게 천만다행이었다. 그는 2002년,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가 운영했던 24시간 입소자 시설인 ‘송천쉼터’에 입소했다. 거기서 2009년까지 머물며 규칙적인 생활을 되찾았고 생활지도사를 제의받았다. 다른 중독자들을 돕는 길이 열리는 순간이었다. “내 경우에는 입소자 시설에서 규칙적인 생활을 했던 게 큰 도움이 됐다”며 “지금 돌이켜봐도 마약은 혼자의 의지와 노력으로 끊어내는 게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그는 내년에 정년을 앞두고 있다. 이제는 약을 끊고 일상을 되찾아 박 센터장을 찾아오는 사람들도 제법 많아졌다. 그런 그에게 걱정거리는 ‘평범한 중독자’들이 많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과거에는 일탈 청소년, 일부 연예인들이 마약을 했다면 요즘엔 평범한 학생과 직장인이 많다”며 “이제는 마약이 일부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체의 문제라고 여기고 처벌에 앞서 치료와 재활의 관점으로 먼저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박영덕 센터장과의 대화-체감할 정도로 마약 중독자들이 늘었나?“통계를 보면 지난해 검거된 마약 사범은 채 3만 명이 안 된다고 하더라. 그런데 검거되는 인원은 실제 마약을 하고 있는 사람 중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의료용 약물이나 신종 마약까지 고려하면 국내에서 100만명 이상이 마약을 투약하고 있다고 보는 게 맞다. 마약사범은 증가했지만 마약을 투약하는 인원이 증가한지는 모르겠다. 마약은 공공연하게 있어왔다. 다만 내가 느끼는 것은 요즘에는 마약을 투약하는 사람들이 평범한 우리 주변 사람들이라는 거다.”-그렇게 많은 중독자가 어디에 있나?“숨어있다. 중독자 대다수는 혼자든 함께든 처음에는 어떤 기분 같은 걸 느껴보려고 마약을 시작한다. 그러나 나중에는 힘들고 우울해서 못 놓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가족들의 기대를 저버렸거나 또래에 비해 도태됐다는 등 현실에서 오는 실망감 탓이다. 당연히 치료나 재활에 힘써야 한다는 걸 알고 있지만 관련 시설이 부족하기도 하고 수사기관에 적발될 게 두려워 나서지 못한다.”-마약은 강력히 처벌해야 한다는 여론이 강한데?“맞다. 법을 어겼으면 처벌을 받아야 한다. 문제는 처벌 이후다. 마약을 반복적으로 접하면 뇌 기능이 파괴되기 때문에 더 쉽게 불안하고 초조해진다. 더 심한 경우에는 우울증이나 조울증이 나타난다. 마약 중독에 질병 코드가 부여된 이유다. 병원 진료가 필요하다는 말인데 치료보호기관은 활성화가 안 돼 있다. 중독재활센터나 사회 복귀를 도모할 수 있는 입소시설도 없기 때문에 단약 의지가 강한 사람도 약을 끊기가 매우 어렵다. 교도소 안에서는 마약을 하고 싶어도 못하는 거다. 진짜 단약은 사회에 나와서 스스로 마약을 하지 않는 것이다.”-처벌이 소용이 없다는 뜻인가?“처벌 이후 치료받지 못한 중독자가 다시 마약을 한다는 점에서 보면 그렇다. 전과자들이 다 비슷하지만 중독자들도 출소하고 새 삶을 꿈꾼다. 이를 위해선 노동을 통한 수입과 규칙적인 생활이 필요하다. 그런데 중독자들은 수감되기 전 약을 구하느라 돈을 다 써서 신용불량자가 많다. 출소 후 일을 하려고 해도 계좌를 개설하는 것부터 문제다. 이에 낙담에 다시 약을 하는 경우가 많다. 단순히 지원이 필요하다는 게 아니다. 입소 시설이나 직업재활센터처럼 사회로 복귀할 수 있는 징검다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지금은 교도소에서 나오면 마약 예방 교육을 몇 시간 받아야 한다는 의무만 생기는데, 이는 별 소용이 없다.”-국내에는 마땅한 입소자 시설이 없는 걸로 알고 있다.“내가 있었던 송천쉼터는 2017년에 문을 닫았다. 민간 다르크(치료 공동체)가 다섯 곳 운영되고 있었는데 지금은 김해에서 한 곳만 운영되고 있는 걸로 알고 있다. 운영상 문제들이 있는 곳도 있었지만 지역 주민들의 반대가 큰 영향을 끼쳐 아쉬운 측면이 있다.”-그 외에 또 필요한 부분이 있다면?“애초에 마약에 발을 들여놓지 못하게 해야 한다. 모임에서 중독자들과 얘기를 나누다 보면 하나같이 마약 예방 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다고 말한다. 인터넷 중독부터 술, 담배, 성폭력 예방 교육은 받아봤지만 마약 예방 교육을 받아본 사람은 찾기 어려웠다. 마약의 위험성은 인지하지 못한 채 ‘마약 떡볶이’처럼 호기심만 자극하는 단어들에만 노출돼왔기 때문에 마약을 할 기회가 주어졌을 때 주저 없이 하는 경우가 많다.”-최근 청소년 대상 마약 예방 교육이 늘어나는 추세인데?“더 일찍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과거와 달리 마약이 SNS로 유통되고 있다. 그리고 청소년들은 호기심이 많고 반항심이 강하며 SNS를 가장 많이 이용하는 세대다. 이미 SNS에서 마약 판매 관련 정보를 접해봤고 주변에 마약을 하는 또래들이 있는 상태에서 교육을 받으면 늦다. 기본적인 인격이 소양될 시점부터 교육을 받아야 경각심이 생긴다고 생각한다.”-음지에 있는 중독자들이 치료의 길로 나오려면 무엇이 필요할까?“사회의 인식이 조금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처벌이 필요하다는 건 중독자들도 알고 있다. 그런데 범죄자라는 것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 보니 치료가 필요한 환자라는 개념은 비교적 희미하다. 그러면 어디 가서 얘기도 못 한다. 한 가정에 중독자가 있으면 누가 알까 봐 감추기에 급급한 게 우리나라의 현실이다. 마약 관련 기사를 보면서 ‘뭐 저런 놈들이 있어’ 아무렇지 않게 말하지만 나중에 보면 자녀들이 마약을 하고 있다. 실제 그렇게 센터로 찾아온 부모들이 굉장히 많다. 범죄를 저질렀지만, 처벌 받은 이후에는 도움이 필요한 환자로 보고 도움을 받도록 해야 한다.그동안 마약은 조폭이나 연예인들이 하는 것으로 여겨져 왔다. 언론에서 그렇게 다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 마약을 하는 사람들은 매우 평범한, 우리 주변에서 매일 보는 사람들이다. 1~2년 교도소에서 살다 나온 다음 여생을 사회에서 살아가야 할 사람들이기도 하다. 이들을 평생 범죄지라고 낙인찍고 배제하는 것보다 치료 및 재활시켜 사회 구성원으로 살아가도록 만들어야 한다.”-앞으로의 계획은?“25년간 중독자로 살다가 20년간은 중독재활지도사로 살았다. 올해를 끝으로 정년퇴직을 하게 된다. 아직 구체적인 계획은 없지만 마약중독 상담과 재활 분야에 몸담고 있지 않을까 싶다. 특히 후배 양성에 힘쓰려고 한다. 중독자들은 중독자들의 말에 귀를 더 잘 기울인다. 중독 정도나 심리적 상태에 대해 공감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단약한 사람을 보면 ‘나도 저렇게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의 싹이 트기 마련이다. 이들이 단약한 다음 중독재활지도사가 돼서 또 다른 중독자들을 구제하는 선순환을 기대한다.”
-
마약사범 10명 중 6명은 20~30대 청년이다. 10대 청소년들의 마약 적발 사례도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법무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적발된 마약사범 3명 중 2명(64.9%)은 30대 이하다. 마약류 범죄의 ‘저연령화’ 현상은 아주 뚜렷하다. 이를 증명하듯 최근 대학 연합동아리에서 마약을 집단 투약하거나 회원들끼리 사고파는 정황이 드러나 사회적으로 충격이 일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그동안 부족했던 마약류 예방 교육의 결과가 하나 둘씩 터지고 있는 것이라 입을 모은다. 또 지금이라도 예방 교육이 이뤄지지 않으면 비슷한 사건이 끊임없이 이어질 것이라 경고한다.◇술·담배에 밀려 등한시된 ‘마약’ 예방 교육단속·처벌 위주의 마약 정책은 전세계에서 실패를 거듭하고 있다. 미국 정부는 1980년대부터 마약 단속을 강화하고 처벌 수위를 높이는 강경책을 펼쳐 왔다. 그러나 2010년, 4만 명 미만이었던 미국 내 약물 과다 복용 사망자 수는 2021년 10만명을 돌파했다. 지난해 뉴욕타임스(NYT)는 미국이 ‘마약과의 전쟁’에서 졌다고 논평하며 마약 정책의 방향을 바꿀 때가 왔다고 제안한 바 있다. 마약류 예방 정책은 처벌만이 아니라 치료·재활과 예방 교육이 함께 가동돼야 효과가 있다.국내 마약류 예방 교육은 처참한 수준이었다. 초중고등학교 안에서는 기존 흡연·음주 예방 교육과 신종 온라인 도박, 디지털 성범죄 예방 교육 등에 밀렸다. 실제로 지난해 국민권익위 실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중·고등학생들이 학교 안에서 마약류 예방 교육을 경험한 비율은 43.2%로, 음주 61.0%, 흡연 86.9%에 비해 현저히 낮았다. 이마저도 교육 횟수, 인원, 시간, 강사, 내용 등 기본적인 사항에 관한 규정이 없던 탓에 실효성 역시 없었을 것이라는 시각이 많다.세명대 경찰학과 박성수 교수는 “학교가 마약류 예방 교육만 콕 집어서 진행해야 했던 게 아니라 약물 및 사이버 중독 예방 교육을 1년에 수 시간 진행하면 됐던 것”이라며 “학교 입장에서는 인터넷이나 게임 중독에 관심이 많으니 마약류 예방 교육은 했는지 안 했는지도 몰랐던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16만8000여명에 달하는 학교 밖 청소년들은 더 열악한 수준이다. ‘학교 밖 청소년 지원센터’가 2022년 실시한 마약류 예방 교육은 단 7회, 참여 청소년은 48명에 불과했다. 아울러 대안 교육기관 193곳 중 23곳(11.9%)만 마약류 예방 교육을 실시하고 있었다. 지원센터는 예방 교육을 기초 소양 교육에 포함시키고 대안교육기관에서는 자율적으로 결정해 실시하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뒤늦게 확대하지만… 인력·교재 없어 난항청소년 마약류 문제가 심각해지자 정부는 마약류 예방 교육을 확대하며 대응에 나섰다. 관련법을 개정해 초등학교 5시간, 중학교 6시간, 고등학교에서는 7시간 이상 마약류 예방 교육을 진행하게 했다. 기존 2억 6100만원이었던 예방 교육 예산을 올해 47억원으로 확충하고 매년 유해 약물 오남용 실태 조사도 시행한다.그러나 인력과 교육 프로그램 등 인프라가 부족한 탓에 교육이 제대로 이뤄질 지는 미지수다. 현재 국내에서 진행되는 마약류 예방 교육은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 소속 강사들이 맡는다. 학교·기관 등에서 신청할 경우 강사를 파견해 1회당 40~50분 강의하는 형식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올해 전문 강사는 1320명. 지난해(664명) 대비 두 배 가량 늘었지만 전국 530만명의 초중고교생을 전부 교육하기란 여전히 부족한 측면이 있다. 게다가 국내 상황에 맞는 강사용 표준 교재와 강사 인증 제도도 없어 교육의 질이 우려되는 상황이다.전북대 약대 정재훈 교수(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 전문교육원장)는 “학교 내에서 교육을 담당할 인력도 없고 이들이 참고할 만한 교재도 없다 보니 전문 강사들이 온라인에서 정보를 찾아 학생들에게 교육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학교경찰이 마약 예방 교육을 전담하는 미국처럼, 우리나라에서도 교내 보건교사 등 예방 교육 담당 인력을 정하고 강사 맞춤형 표준 교재를 빠르게 제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교육 프로그램도 다양화해야 한다. 현재 마약류 예방 교육은 ppt 기반의 주입식 교육이 대부분이라 효용성이 떨어질 수 있다. 가상현실 기술 등을 활용한 맞춤형 콘텐츠를 개발하고, 직업 체험 공간을 활용해 어린이, 청소년에게 특화된 참여형 교육도 마련해야 한다. 박성수 교수는 “교과 과정에 찌든 학생들에게 기존의 성교육과 같은 형식적인 예방 교육은 의미가 없다”며 “가상현실을 활용해 마약의 부작용을 느끼게 해주는 것처럼 학생들이 관심을 가지고 직접 체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개발해야 한다”고 말했다.이와 관련 식약처 관계자는 “예방 교육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 웹툰 등 청소년들이 선호하는 다양한 콘텐츠를 개발하고 있다”며 “더불어 마약류 예방교육 강사 인증제를 도입해 체계적이고 전문적인 인력을 양성할 계획”이라고 말했다.◇예방 교육 받아본 적 없는 2030, ‘오락 목적’ 사용도제한적으로나마 교육을 받을 수 있는 현재의 청소년들은 그나마 낫다고 볼 수 있다. 이미 의무교육 과정을 밟은 20~30대는 마약이 얼마나 위험한지, 뇌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전문적인 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다. 이는 곧 마약의 위험성을 마주하고 인지할 기회가 없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지난해 대학을 졸업한 27세 A씨는 “마약을 하면 인생이 망가진다는 건 알겠는데 어떻게, 왜 망하는지는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가 없다”며 “곰곰이 생각해보니 살면서 마약 중독 관련 교육을 받은 적은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게다가 2030은 어렸을 때부터 마약에 호기심을 유발할만한 콘텐츠에 노출돼 왔다. 박성수 교수는 “마약사범 중 2030의 비율이 높은 데에는 마약 유통이 비대면으로 이뤄지고 마약이 저렴해지는 등 환경이 변한 것도 영향을 끼쳤지만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마약류 예방 교육이 없었다는 것도 큰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며 “게다가 지금 20~30대는 어렸을 때부터 마약김밥, 마약떡볶이와 같이 마약을 미화하는 용어들과 드라마, 영화와 같이 마약을 다룬 여러 콘텐츠 등에 노출됐기 때문에 마약에 대한 호기심이 높고 마약을 소위 힙한 것, 돈 많은 사람의 전유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이러한 탓인지 2030은 단순 오락 목적으로 마약을 사용하는 비율이 높다. 보통 마약류 관리법 위반 사례는 의료용 마악류와 연관되는 경우가 많다. 치료 목적으로 향정신성의약품을 사용하다 의존성이 생겨 약물 오남용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단, 국내에서 의료용으로 사용이 금지된 대마는 단순 오락 목적으로 사용할 가능성이 높다. 지난해 검거된 대마사범 중 20대가 41.1%, 30대는 35.1%로 4명 중 3명이 2030이었다.◇“이번 학기부터 대학에서도 예방 교육을”더 늦기 전에 교육 기관에 속해 있는 성인들에게 ‘핀셋’ 교육이라도 실시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대학생들이 대표적이다. 2023년 기준 국내 대학생 수는 236만여명이다. 20대 인구가 약 619만명이라는 점을 고려했을 때 꽤 큰 규모다. 게다가 캠퍼스는 동아리 등을 통해 젊은 세대가 마약을 접하는 새로운 통로가 되고 있다.
-
마약사범이 급증하는 상황에서, 공공의 외면과 주민 반대에 부딪쳐 마약 중독자가 의존할 수 있는 재활 시설은 점점 그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갈 곳이 없어 혼자서 끙끙 앓다가 다시 마약을 하는 환자들이 많다고 지적한다.◇마약 중독자 절반이 치료 후 한 달 이내에 재범마약중독을 끊어내려면 오랜 기간 재활이 필요하다. 병원에서 입원치료를 받았든, 교도소에서 징역을 살았든 특히 지역사회로 나온 뒤 끊임없이 단약 의지를 이어나갈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곧 재발하고 만다. 약물의 종류에 따라 다르지만 통상 마약중독 환자의 50~60%는 치료 후 1~3개월 이내 재발한다. 6개월 안에 80%가 재발한다는 통계도 있다. 이러한 높은 재발률 덕분에 재범률도 높다. 경찰청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 간(2019~2023년) 국내 마약사범 중 50%는 다시 마약 관련 범죄를 저질렀다.◇‘치료 공동체’ 필요한데, 전국에 한 곳뿐재범을 막기 위해서는 환자들이 이용할 수 있는 재활 시설이 절실하다. 재활 시설은 크게 ▲함께 생활하면서 ‘단약’이라는 공동의 목표를 이루는 치료 공동체 ▲1주일에 한두 번씩 만나 대화를 나누는 자조 모임 ▲언제든 찾아갈 수 있는 상담 센터 등의 인프라로 구별된다.이중 치료 공동체가 재발을 막는 데 큰 효과를 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치료 공동체 중 가장 잘 알려진 건 ‘다르크’다. 다르크는 회복한 마약 경험자가 시설장으로서 운영을 맡고, 환자들이 공동 생활을 하며 스스로 재활치료를 하는 형태를 띤다. 통상 입소자들이 낸 월 40~50만원의 생활비와 기부금으로 운영된다. 다르크를 처음 도입한 일본의 경우, 이용자의 6개월간 단약률은 88%에 이른다는 일본 국립정신·신경의료연구센터의 통계 자료가 있다.국내에는 마약 중독자들이 입소할 수 있는 다르크가 한 곳뿐이다. 민간이 운영하는 김해 ‘리본하우스’다. 원래 민간 다르크는 경기, 김해, 대구, 서울, 인천 등 다섯 곳이 있었지만 지난해 서울, 경기에 이어 올해 1월 대구, 5월 인천 다르크가 운영을 중단했다. 공공기관인 마약퇴치운동본부가 운영했던 입소 시설인 ‘송천쉼터’는 지난 2017년 폐쇄됐다. 주민들의 반대와 센터장의 비위 의혹 등 다양한 원인이 작용했지만 근본적으로는 ‘공공의 외면’이라는 게 전문가 진단이다.을지대 중독재활복지학과 백형의 교수는 “환자가 입소해서 어느 정도 생활의 규칙을 찾고 자신의 중독 문제를 대면하는 데 있어선 다르크가 가장 효과적”이라며 “다르크 도움을 받아 단약 상태를 오랫동안 유지하는 환자들을 많이 봐 왔다”고 말했다. 이어 “그러나 대부분의 다르크가 정부 지원 없이 운영됐기 때문에 여러 문제가 불거졌던 것으로 안다”며 “국내 주거형 재활 시설 운영이 몇몇 개인들에만 의존되고 있다”고 말했다.◇“마약 중독 재활 시스템, 사법부와의 연계가 핵심”공공의 지원이 단지 재정적 지원만을 뜻하는 건 아니다. 체계적인 시스템 구축 역시 공공의 중요한 역할이다. 일본에선 90여개 다르크가 운영되고 있는데 입소자만 2000여명에 이른다. 지자체의 재정적 지원을 받는 곳도 있지만 크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만 법무부와의 연계가 활발하다. 마약류 사범들이 출소 이후에만 다르크에 입소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재판 전 피고인 상태에서도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이용자가 많으니 재정이 충당되고 또 다르크 입소자들이 마약 중독에서 회복해 교도소 등에서 교육 활동에 나서는 선순환 구조가 구축된 것이다. 다르크가 없는 국가들은 저마다 마약 중독자들이 치료 및 재활에 전념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해두고 있다. 싱가포르의 마약재활센터는 마약사범들의 강제 입소와 강제 치료를 특징으로 한다. 중앙마약청이 마약 중독자를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는 제도도 운영한다. 미국은 교정 내 치료 공동체가 잘 형성돼 있다. 마약사범이 일반 수형자들과 분리돼 재활 활동에 참여할 수 있도록 ‘치료 공동체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것이다.백형의 교수는 “마약 중독 재활 시스템이 잘 갖춰졌다고 평가받는 나라들의 공통점은 재활 시설이 교정 시설과 연계가 잘 돼있다는 것과 마약 중독자의 상태에 따라 적절한 치료 및 재활 시설을 선택할 수 있다는 점”이라며 “그런데 우리나라는 과거보다 나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법무부와의 연계는 부족하며 병원이나 교도소에서 나온 사람들이 갈수 있는 시설이 없다”고 말했다.◇자조 모임·상담 센터 증설도 불투명한 상황자조 모임이나 상담센터 등의 인프라 역시 부족한 상황이다. 환자들이 익명으로 만나서 서로의 경험을 나누고 단약 의지를 다지는 ‘NA 모임’은 현재 서울, 부산, 대구 등 대도시를 중심으로 18곳이 운영되고 있다. 과거에 비해 늘어나긴 했지만 전국에서 마약사범이 가장 많이 적발된 경기를 포함해 여전히 없는 지역이 많다.상담이나 재활 교육 등을 제공하는 마약퇴치운동본부의 중독재활센터도 마찬가지다. 중독재활센터는 낮 동안만 운영된다는 한계가 있지만 단약 교육, 직업 재활 교육 등 체계적인 재활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전국에 세 곳 있었는데 마약사범이 급증하자 올해 17개까지 늘리기로 했다. 하지만 주민 반대로 개소가 미뤄지는 등 쉽지 않은 상황이다. 실제로 서울 강동구에 개소하려던 센터는 지난 2월, 인력 채용 공고까지 낸 상황에서 주민들 반대에 부딪혀 개소가 무산된 상태다. 이와 관련 마약퇴치운동본부 관계자는 “마약사범의 70~80%가 서울과 경기에 집중돼 있어 서울 동부의 중독재활센터는 꼭 필요했는데 개소가 무산돼 안타까운 심정”이라며 “마약류 사용자가 급증하는 현 상황에서 언제든지 방문할 수 있는 재활 시설은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마약 중독자들이 회복하지 못하면 결국 그 피해는 지역사회로 퍼질 수밖에 없다. 백형의 교수는 “요즘 청소년 마약 문제가 심각한데, 투약 사실을 부모들이 아예 모르는 경우도 많다”며 “아이들이 혼자서 어떻게 해보려고 끙끙거리다가 재발하는 경우가 정말 많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마약은 주변으로 전파된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며 “공공 차원의 개입이 이뤄지지 않으면, 결국 그 피해는 언젠가 우리 가족에게 돌아올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현재 국내 증가하는 마약사범의 수를 봤을 때 어떤 형태의 재활 시설이든 절실한 상황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