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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신백질이영양증은 시각·청각·배뇨 장애, 실어증·실행증 등을 겪다 사망에 이르는 희귀 유전질환이다. 아직까지 치료제가 없어 병이 더 진행되기 전에 로렌조 오일을 섭취하거나 골수를 이식해야 한다. 로렌조 오일은 올리브오일에서 추출한 올레산과 평지씨유에서 추출한 에루크산을 배합한 혼합물로, 부신백질이영양증 환자 체내에 축적되는 긴사슬지방산 농도를 낮추는 역할을 한다. 환자들에게는 없어선 안 될 의약품과도 같은데, 국내에서는 특수식품으로 분류해 건강보험 적용이나 공적 지원 대상에서 제외되며 3년째 공급이 불안정한 상황이다. 부신백질이영양증부모모임회 김득한(50) 대표를 만나 환자들의 치료 환경에 대해 들어봤다. 그는 이 병으로 첫째 아들을 떠나보냈으며, 현재 둘째 아들 역시 같은 병을 앓고 있다.-자녀가 언제 어떻게 부신백질이영양증을 진단받았나?“처음에는 사소한 변화에서 시작됐다. 정상으로 태어나 여느 아이들처럼 건강하게 생활하다가 글씨체가 삐뚤빼뚤해지기 시작하고 사시 증상을 보이더니, 질문에 대한 반응이 늦어지는 등 이상 증상을 보였다. 동네 병원을 찾았지만 안과, 청력 검사 모두 정상이었고 ADHD로 오진 받았다. 사물 인지 저하, 보행 이상까지 겹치면서 서울 소재 병원에서 정밀 검사를 했고, 부신백질이영양증을 진단 받았다. ‘아이가 얼마 살지 못할 거다’라는 소견에 이어 둘째 역시 50%의 확률로 같은 질환을 앓게 될 거라는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다.”-현재 상태는 어떤가?“큰아이는 진단 후 약 2년을 버티다 2022년 세상을 떠났다. 시력을 먼저 잃었고 6개월 만에 보행이 어려워졌다. 이후에는 운동 기능이 거의 소실돼 침대에 누워 지내야 했다. 연하장애와 배뇨·배변, 호흡 문제까지 겹쳤다. 형의 투병 과정과 죽음을 옆에서 지켜본 둘째는 어린 나이부터 큰 공포를 느꼈고 결국 같은 병을 진단받았다. 어느 날 갑자기 시력을 잃은 뒤 ‘나도 형처럼 죽는 거냐’며 묻는 모습에 마음이 찢어졌다. 현재 둘째 역시 대부분의 신체 기능을 잃어 누워서 생활하고 있다. 3개월마다 병원에서 영양 공급용 유동식을 처방받고 필요한 검사를 받는 중이다.”-환우들이 겪는 가장 큰 어려움은 무엇인가?“부신백질이영양증은 치료제가 없다. 부모 입장에서는 언젠가 아이를 떠나보내야 하는 절망적인 질환이다. 신경학적 진행을 늦추기 위해 골수이식이나 로렌조 오일 등이 쓰이나, 골수이식은 성공률이 높지 않고 로렌조 오일은 국내에서 생산되지 않아 전량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환자들에게 로렌조 오일은 생필품이 아닌 의약품에 가깝지만 국내에서는 특수식품으로 분류돼 건강보험 급여나 정부 지원 대상에서 제외된다. 한 달에 약 150만~200만원에 달하는 비용을 전액 부담해야 하는 상황이다. 아이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는 상황이라 가족 중 누군가는 직업을 포기하게 되면서 생활고가 심해지는 가정도 많다.”-환아 부모회는 어떻게 시작했나?“1990년대 초반에 소수 환자들이 모여 시작했다. 현재는 인원이 많이 늘었다. 약 60명의 부모들이 참여 중이고, 한 가정에 한 명에서 세 명까지 환자가 있는 경우를 포함하면 전체 규모는 150명 정도다. 유전적 특성상 자녀가 확진되면 어머니 역시 보인자로 포함되는 경우가 많아 가족 단위로 관리가 이뤄진다. 환자들은 거동이 어렵고 집에서 돌봄을 받아야 해 오프라인 모임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온라인 공간에서 정보를 공유하며 소통하고 있다. 환우회 회원들의 응급상황 대응 역량이 개선되면서, 이제는 환우 가족들이 무조건 병원을 찾기보다 가정 내 산소포화도 관리 등 기본적인 대응이 가능해졌다.”-환우회의 목표는 무엇인가?“로렌조 오일 수급 문제 해결이다. 비용 부담도 크지만 안정적으로 구하기 어렵다는 점도 문제다. 전량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상황인데다 제약사가 손해를 감수하며 들여오고 있어, 환자들이 원하는 시기에 필요한 만큼 공급받기 어렵다. 며칠 전에도 로렌조 오일 공급 문제로 환우회 단체 채팅방이 떠들썩했다. 미국 식품의약국 등 해외 승인 상황을 지속적으로 확인하고, 보건복지부 등 관련 기관에 지속적으로 제도 개선도 요청 중이다.”-다른 환우 부모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첫째를 떠나보낸 뒤, 아이가 아프더라도 곁에 있어준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큰 의미인지 깨닫게 됐다. 지금 둘째가 누워 지내고 있지만 함께 있어준다는 사실만으로 감사하고 행복하다. 물론 건강했을 때를 떠올리면 힘들지만 아직 함께할 수 있다는 점이 버틸 수 있는 이유가 된다. 다른 부모들도 조금만 더 함께 버텨주길 바란다.”
희귀질환최지우 기자2026/04/17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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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귀질환최지우 기자2026/03/11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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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동맥고혈압은 비정상적으로 좁아져 압력이 증가하는 희귀난치성질환이다. 폐동맥고혈압이 있으면 폐로 산소가 충분히 공급되지 않아 숨이 차고 쉽게 피로해진다. 실제 폐동맥고혈압 환자들이 15m 횡단보도를 건너려면 일반인이 60m를 전력 질주하는 만큼의 에너지가 든다. 진행성 질환이기 때문에 제때 약물 치료를 받아야 하지만, 국내에서는 필수 약제가 도입되지 않고 있다. 한국폐동맥고혈압환우회 ‘파랑새’의 윤영진 대표(53·경기도 안양시)를 만나 국내 폐동맥고혈압 환자들의 치료 환경에 대해 들어봤다.–폐동맥고혈압을 언제 어떻게 진단받았나?“2013년 퇴근길에 실신할 것 같아 119를 불렀고 근처 대학병원으로 이송됐다. 고혈압으로 오진돼 4년간 점점 상태가 악화됐다. 2017년 12월 병원에 입원했고, 결국 폐동맥고혈압을 진단 받았다. 바로 삼성서울병원으로 전원했는데, 당시엔 안정된 상태에서 숨 쉬는 것조차 힘들고 일상생활이 아예 불가능했다.”-현재 상태는?“2년 동안 약 조절, 식단, 운동을 병행하며 상태가 많이 호전됐지만, 여전히 짧은 거리를 걷거나 간단한 집안일을 하는 것만으로도 숨이 찬다. 출혈성모세혈관확장증이라는 질환도 앓고 있어 갑작스러운 대량 코피로 응급실을 찾는 일이 잦고, 겨울철에는 천식까지 겹친다. 경제활동까지 그만둬야 하는지 고민 중이었는데, 두 달 전 아뎀파스로 약제 변경 후 코피 발생 빈도와 양이 줄었다. 심폐지구력, 보행 지속 능력, 일상생활 수행력을 종합 평가하는 ‘6분 보행 검사’에서 45m를 더 걷기도 했다.”–환우회 대표는 어떻게 맡게 됐나?“‘죽기 전까지 이웃을 사랑하는 삶을 살자’는 다짐에서 환우회 대표직에 자원했다. 대표를 맡은 후 정기모임을 시작하고 임원을 구성했다. 독립성 있는 단체로 거듭나려면 필요한 자료와 도구를 갖춰야 한다는 생각에서였다. 2020년 중앙대 사회복지대학원에 입학해 2년 반 동안 공부했고 2021년부터 본격적으로 환우회 사업을 시작했다.”-대표 취임 후 지난 4년을 돌아본다면?“가장 큰 성과는 신뢰할 수 있는 정보 체계를 구축한 것이다. 이전까지는 오래되거나 잘못된 정보가 많아 혼란에 빠지는 환자들이 많았는데 환자가 처음 진단받았을 때부터 참고할 수 있는 안내서를 출간하는 등 정확한 정보 제공이 가능해졌다. 환자 일상을 담은 웹툰, 질환을 쉽게 설명하는 인식 개선 영상, 식품의약품안전처와 공동 제작한 질환 홍보 영상으로 일반인 인식 개선활동도 꾸준히 진행하고 있다. 매년 폐고혈압학회에 참가하고 있으며, 국회 정책토론회 발제자로 참여했고 희귀난치성질환연합회 정책위원회에도 소속돼 있다.”-현재 국내 환자들이 직면한 가장 큰 어려움은 무엇인가?“열악한 치료 환경이다. 전세계적으로 권고되는 1차 약제 ‘에포프로스테놀’은 30년간 국내 미도입 상태며 경구약제 ‘아뎀파스’는 도입 11년이 지난 올해 6월 건강보험이 적용됐다. 현재 ‘소타터셉트’라는 약제가 글로벌 혁신제품 신속심사 약제로 지정돼 허가·평가·협상을 동시 진행 중이지만, 또 국내에서만 못 쓰게 되는 건 아니냐는 환자들의 불안이 크다. 유럽, 미국 등에서는 폐동맥고혈압이 진단되면 두세 가지 약제를 병용 치료해 환자들의 예후가 좋지만 우리나라는 하나의 약으로 시작해 3개월 후 병이 악화되고 나서야 약제를 추가할 수 있다. 40대 후반 환자가 80% 이상인 질환 특성상 필요한 약제, 병용 치료를 놓치면 가정생활과 경제활동을 하기 힘들어지며 삶이 제약된다.”-환우회의 다음 목표는?“‘파랑새 운동가이드’ 출간을 앞두고 있다. 2021년부터 시작했던 환우회 사업 중 마지막 계획이다. 폐동맥고혈압 환자는 운동 강도가 생명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가이드’라는 개념을 정립하는 게 전 세계적으로 드문 시도다. 해외 저서 ‘호흡 재활 지침’, 논문 등을 참고해 직접 강도를 달리해가며 실천해도 지장이 없는지 확인했다. 그 후, 선별된 운동만 촬영해 책으로 엮어냈다. 현재 전문의 감수를 받고 있다.”-왜 ‘파랑새’인가?“희망의 의미를 담았다. 안데르센 동화 ‘파랑새’에서 남매가 행복을 찾아 멀리 떠나지만 결국 행복은 늘 곁에 있었다는 걸 깨닫는다. 여기서 행복의 매개체가 된 생물인 파랑새에서 따왔다. 폐동맥고혈압을 진단받고 모든 것을 잃은 것처럼 느끼기 쉬운데 아직 곁에 남은 것들이 있다는 의미를 전하고 싶었다.”–같은 질환을 겪고 있는 이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폐동맥고혈압은 ‘심장암’이라 불릴 만큼 잔혹한 병이다. 경제활동의 중심에 있는 가장이 일을 중단하거나 가정활동을 하는 주부가 보호자를 필요로 하는 상황이 부지기수다. 병이 지속적으로 나빠져 절망감에 빠져 있는 환자들이 많다. 그러나 병이 있다는 게 죄가 아님을 기억하고 인생의 새로운 의미를 찾아나가길 바란다. 신약이 계속 개발되고 있으니 희망을 갖고 관리를 잘하면 수명과 삶의 질이 연장될 거라 믿는다.”
희귀질환최지우 기자2025/12/22 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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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귀질환최지우 기자 2025/10/2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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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포성표피박리증(EB, Epidermolysis Bullosa)’은 표피와 진피가 떨어지지 않도록 고정하는 7번 콜라겐이 형성되지 않아 사소한 자극에도 피부와 점막에 물집과 상처가 발생하는 유전성 희귀질환이다. 상처가 생길 때 3도 화상에 버금가는 고통이 동반된다. 손가락끼리 스치거나 바람이 불기만해도 각막이 벗겨지는 등 일상 전반에서 너무 쉽게 상처가 생긴다. 아직까지 치료제가 없어 전신 피부 및 점막에 생기는 수포와 상처 드레싱 등 대증 치료가 전부인데, 화상 환자를 위해 개발된 특수 실리콘 소재 고가의 드레싱을 사용해 경제적 부담이 크다. 한국수포성표피박리증환우회 권영대 팀장(54·경기도 남양주시)을 만나 국내 수포성표피박리증 환자들의 치료 환경에 대해 들어봤다. 그의 딸은 20여년 째 선천성 수포성표피박리증을 앓고 있다.-자녀가 언제 어떻게 수포성표피박리증 진단을 받았나?“아이가 태어나자마자 코 밑에 작은 물집이 있었다. 출산 후 간호사가 이물질을 세게 닦아 생긴 상처라 생각했는데 산후조리원에 있는 동안 물집 개수가 점점 늘었다. 수족구병이 의심돼 전염 위험이 있다고 3일 만에 쫓겨났다. 이후 병원을 전전했지만 아이의 병명을 정확히 진단할 수 있는 곳이 없었다. 진단 방랑을 하던 중, 강남세브란스병원 피부과 김수찬 교수를 만나 유전자 검사를 하게 됐고 수포성표피박리증 중에서도 가장 예후가 불량한 이영양형 열성 수포성표피박리증을 진단받았다. 그때부터 수포와의 전쟁이 시작됐다.”-진단 후 어떤 치료들을 받았나?“아직까지 근본적인 치료제가 없어 생활 중에 생기는 수포에 드레싱을 하는 게 가장 중점적인 치료다. 작은 자극에도 매일 화상이 생기다 보니 하루에 두세 시간씩 드레싱을 한다. 드레싱 과정에서도 상처가 또 발생해 아이가 아파서 우는데도 어쩔 수 없이 상처 위에 붙이기를 반복한다. 의학적으로 진피와 표피 사이에 발생하는 수포는 2도 화상으로 분류되며, 이 정도 외상이 발생할 수 있는 건 화재뿐이다. 그 고통은 3도 화상에 버금가 이를 완화하기 위해 펜타닐 패치 등 마약성 진통제를 쓰는 경우도 있다. 상처가 생길 때 고통뿐 아니라 아무는 과정에서 겪는 가려움도 괴롭다. 자는 동안 아이가 무의식적으로 상처를 긁지 않도록 만져주고 두들겨주고 비벼줘야 추가로 상처가 나는 걸 막을 수 있다. 아이로부터 한시도 떨어질 수 없는 상황이라 5분 대기조처럼 늘 준비하고 있다. 수포성표피박리증은 피부와 점막, 몸 전체에 영향을 주는 병이다. 입 안이나 식도에 상처가 생기면 음식 섭취가 어려워지고 온몸에 상처가 생기고 회복하기 위해 혈류가 돌다 보니 만성 철분 부족, 빈혈에 시달린다. 심장도 일반인보다 빠르게 뛰는데 장기적으로 수명에 영향을 미친다. 피부과, 소아과, 정형외과, 성형외과, 산부인과, 내분비내과, 안과, 치과, 심장내과 진료를 정기적으로 다니고 있다.”-수포성표피박리증 환우들이 겪는 어려움은 무엇인가?“매일 생기는 상처를 감당하며 하루하루를 버텨야 하는 병인데다가 학교나 사회생활 등에 큰 제약을 겪는다. 어린이집에 보낼 나이가 됐을 때 반나절을 외부에서 생활하는 것만으로도 큰 도전이었다. 대안으로 미술학원을 알아봤지만 아이의 질환에 대해 설명할 때마다 번번이 거절을 당했다. 그러던 중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교회에서 운영하는 ‘미라클 미술 음악 교실’을 찾게 됐는데 아이를 받아들여줘 첫 외부생활을 시작했다. 학교에 입학할 때는 더 어려웠다.짧은 거리를 혼자 걷는 것도 어려워 매일 직접 등하교를 시키고 학교에 있는 시간에는 혹시 다쳤다는 연락이 오진 않을까 걱정하며 전화기를 붙들고 살았다. 중고등학교에 진학할 때는 희귀질환 환자인데도 선배정 제도에 해당되지 않아 원하는 학교에 보내기 위해 병원 진단서, 학교 진술서 등을 챙겨 교육청에 찾아가 사정했다. 그 과정에서 아이를 직접 데려오라고 요구하는 경우도 있었는데 자기가 얼마나 아픈지를 아이 스스로 증명하게 만드는 현실의 냉정함이 힘들었다. 상처에 고름이 생기고 드레싱 재료 특성상 냄새가 날 수 있어 학급 친구들에게 놀림을 받는 문제도 있다. 외모로 드러나는 질환이라 학교나 대중교통에서 ‘화상이냐’, ‘아토피냐’ 등 무례한 질문을 받는 경우도 빈번하다.”
희귀질환최지우 기자 2025/09/30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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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LH(X염색체 연관 저인산혈증)는 혈중 인산염 농도가 정상보다 낮아 인을 필요로 하는 뼈, 치아, 성장 속도 등에 문제를 일으키는 유전질환이다. 인산염 농도 저하를 일시적으로 막아주는 경구용 인산염 보충제, 인 흡수를 돕는 활성형 비타민D 등이 처방되지만, 부작용으로 인해 장기 복용이 어려우며 근본적인 질환 치료는 불가능하다. 다행히 원인을 차단하는 유일한 표적 치료제 ‘크리스비타(성분명 부로수맙)’가 있으나, 이 역시 만 12세 미만 소아(성장판이 열려 있는 경우 18세 미만까지)를 대상으로만 급여가 인정돼 성인 환자들은 적용 범위 밖에 있는 실정이다. 소아 환자들도 몇 년 후 성인이 되면 같은 어려움을 맞닥뜨리게 된다.XLH 환우회 박순배(55·강원도 춘천시) 대표는 치료제가 눈앞에 있음에도 고가의 비용 부담으로 사용할 수 없는 상황에 급여화를 요구하는 국민 청원에 앞장섰다. 그러나 이듬해 급여 기준이 소아로 제한되면서 박 대표의 성인 자녀는 혜택을 받지 못하게 됐고, 현재 매달 1000만원에 이르는 치료비를 부담하고 있다. 박순배 대표를 만나 국내 XLH 환자들의 치료 환경에 대해 들어봤다.-자녀가 언제 어떻게 XLH 진단을 받았나?“첫 증상은 생후 100일쯤 나타났다. 아이에게 다리 마사지를 해주는데 한쪽이 짧게 구부러져 양 다리 길이가 눈에 띄게 달랐다. 고관절 탈구로 여겨 걷기 시작하면 괜찮아질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걷기 시작한 뒤에도 뒤뚱거리며 다리가 안으로 휘는 등 다른 아이들과 달랐다. 당시 거주하던 대전 소재 대학병원에서 검사를 받았지만, 아무 이상이 없다며 ‘요즘 부모들은 아이에 대한 걱정이 과다해 없는 병까지 찾아낸다’는 핀잔까지 들었다. 그러나 이후에도 뼈가 휘고 여전히 걸음걸이가 이상해 서울의 한 대학병원을 찾았고, 비타민D 저항성 구루병을 진단받아 2년간 치료했지만 차도가 없었다. 그러던 중 주치의가 '단순 뼈 문제가 아니라 신장에 문제가 있어 생기는 병'이라며 오진 사실을 알려줬다. 속상했지만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생각에 마음을 다잡고 신장을 전문으로 보는 교수가 있는 소아청소년과로 전원했고, 그제야 XLH 진단을 받아 인산염, 비타민D 등을 처방받기 시작했다.”-진단 후 어떤 치료들을 받았나?“20살이 될 때까지 꾸준히 인산염, 비타민D를 복용하며 지냈다. 뒤뚱거리는 걸음과 또래보다 신장이 작은 것 외에는 이상이 없어 무리 없이 학교를 다녔다. ‘성인이 되면 안정기에 접어들어 그때까지만 잘 참고 약을 먹으면 괜찮을 거다’는 주치의의 말에 20살 이후로는 괜찮으리라는 기대가 있었다. 그런데 대학 진학 후에도 걷기 힘들어하고 등이 조금씩 굽어 똑바로 눕지 못하게 됐다. 인산염 장기 복용 부작용인 부갑상선 기능 항진증을 진단받았다. 나날이 전신 통증이 악화돼 방에서 화장실까지 혼자 걷는 것도 불가능해졌다. 그렇게 3~4년간 일상생활을 멈추고 누워만 지냈다. 진단 방랑이 이어졌고 2023년 지금의 주치의를 만났다. 고심 끝에 부갑상선 네 개 중 세 개를 절제했는데 증상이 빠르게 호전됐고 혈액검사 수치 등이 좋아졌다.”-크리스비타 치료는 어떻게 받게 된 건가?“부갑상선 절제 수술 후 한 달이 채 안 돼 상태가 다시 악화되기 시작했다. 마지막 하나 남은 부갑상선에도 병이 생기면 호르몬 조절이 완전히 불가능해지면서 어떤 부작용이 생길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몸을 조금만 움직여도 뼈에 실금이 가 재채기조차 버거워했고 다리를 혼자 들어 올리는 것도 불가능했다. 기존 경구약으로는 버티기 어려워 주치의와 상의 끝에 원인 자체를 차단하는 크리스비타 주사 치료를 시작했다. 건강보험 급여가 안 되는 고가의 치료제라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집을 팔고 이사를 가면서 치료를 이어갔다. 치료 3개월 차부터 상태가 눈에 띄게 좋아졌다. 휠체어 없이는 이동이 불가능했던 아이가 목발을 짚고 걷기 시작했고, 누워있을 때 매번 머리에 손을 받쳐 일으켜 세웠었는데 혼자 벌떡 일어나더라. 팔다리에 힘이 생기기 시작하면서 하루는 딸기잼 뚜껑을 혼자 땄다. 엑스레이를 찍어보니 뼈가 튼튼해지고 밤에도 통증이 없어 잘 자기 시작했다. 다시 예전처럼 평범한 일상을 되찾을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이 생겼다.”-약값이 만만치 않은 걸로 아는데?“크리스비타는 몸무게에 맞춰 용량을 증량하는 약인데, 가격이 10mL당 300만원 꼴이다. 우리 아이의 경우 몸무게가 30kg대라 한 달 약값이 1000만 원이다. 최근에는 뼈가 튼튼해지면서 걷기 시작하자 몸에 근육이 붙고 몸무게도 조금 늘었다. 몸이 좋아지는 건 분명 기쁜 일이지만 그만큼 약값이 불어나니 마냥 웃을 수만도 없다.”-환우회 활동은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2022년 크리스비타 건강보험 적용을 촉구하는 국민청원을 진행했는데 공식 환우회가 없어 혼자 목소리를 내야 했다. 주변 도움을 받아 청원을 마무리했지만 개인보다는 조직적으로 한 목소리를 내야 힘이 있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다. 아이가 국내에서도 드물 만큼 상태가 심각한 상황이었던 것도 직접 나서는 계기가 됐다. 세브란스병원 이유미 교수, 한국희귀·난치성질환연합회, 다른 XLH 환우 가족들이 적극 협조해준 덕분에 환우회가 조직될 수 있었다.”-환우회 출범 1년을 앞뒀는데?“XLH 환우들이 골절·변형이 오기 전에 치료를 시작할 수 있도록 진단·치료 시스템을 잘 갖춘 의료 환경을 만드는 게 가장 큰 목표다. 그 핵심은 성인 환자 건강보험 적용 확대다. 모든 환우들이 시기적절한 때에 필수적인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접근성 향상을 위해 노력 중이다. 지난달 24일 한국희귀·난치성질환연합회와 함께 국가인권위원회에 성인 급여 확대를 촉구하는 진정서를 전달했다. 국제적인 활동도 시작했다. 올 봄 International XLH Alliance에 가입해 17일 화상회의에서 우리 환우회와 국내 치료 현실을 소개한다.”-XLH 환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XLH는 치료가 가능한 질환이니 숨기거나 주저하지 말고 꼭 진단, 치료 받기를 바란다. 다른 희귀질환과 달리 치료제가 있는 건 큰 축복이다. 조기에 치료를 시작하면 힘든 과정을 겪지 않고 일반인과 다름없는 삶을 살 수 있다. 우리나라는 유전질환이나 희귀질환이 있으면 숨기는 경향이 있는데, 본인 잘못이 아닌데 죄인처럼 살아갈 이유가 없다. 마음을 열면 환우회를 비롯해 도움을 줄 사람들이 많이 있다. 함께 다독이며 소통하면 나아갈 수 있다.”
희귀질환최지우 기자2025/08/14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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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귀질환최지우 기자2025/07/16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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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검은색 반팔을 샀어요.”건선 환자들에게 어두운 색 반팔이 주는 의미는 남다르다. 건선은 면역체계 이상으로 피부 여러 부위에 홍반, 하얀 각질(인설) 등이 일어나는 질환으로, 증상이 눈에 띄기 쉬워 많은 환자들이 소매가 짧거나 어두운 색상의 옷을 꺼렸다. 다행히 최근 치료제가 발전하면서, 환자들도 비로소 옷 선택 제약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다만, 건선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나 의료 환경은 여전히 완성 단계에 이르지 못했다. 한국건선협회 김성기 회장은 “건선 환자들은 사회적 차별이나 편견이 가장 힘들다”며 “바이러스나 박테리아처럼 전염되는 질환이라는 생각에 건선 환자들을 보거나 닿는 것을 꺼려하는 경우도 많다”고 지적했다. 7살 때부터 40여년 건선을 앓고 있는 김 회장은 현재 한국건선협회장으로서 국내 건선 환자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그를 만나 건선 환자들이 겪는 어려움과 그간 건선협회가 이룬 성과, 향후 목표 등에 대해 들었다.-건선을 언제 어떻게 진단받았나?“7살 때 건선이 처음 생겼다. 처음에는 수두로 오인해 집에서 자가 치료를 받다가 초등학교 2학년이 돼서야 건선 진단을 받았다. 건선은 육안으로 식별하기 어려워 정확한 진단을 위해서는 조직 검사가 필요하다. 건선이 잘 알려지지 않았던 때였으나 다행히 진단해준 피부과 의료진이 건선에 관심이 많았다. 정보가 적었던 만큼 치료법도 스테로이드가 유일했다. 날이 춥고 건조해지면 증상이 심해져 9~10월이 되면 스테로이드 처방량을 늘려야 했다. 부작용으로 식욕이 늘고 피부가 팽팽해지며 붓고 얼굴 모양이 달덩이처럼 둥글게 되는 문페이스(moon face)를 겪기 일쑤였다. 피부에 반복적으로 스테로이드를 바르다 보니 피부가 약해지고 혈관이 비칠 정도로 얇아졌다. 간지러움을 도무지 참을 수 없을 때는 피부에 약을 바른 뒤 랩이나 비닐 등으로 감싸는 ‘폐쇄 포대법’을 한 뒤 겨우 잠을 잤다. 이후 치료법이 발전하면서 자외선 치료 기기 안에 들어가서 UVA, UVB 단파장을 받는 자외선 치료를 집중적으로 받았다. 그 뒤로 비타민A 유도체 계열의 먹는 약, 전신 면역억제제인 싸이클로스포린이나 메토트렉세이트 등을 처방받았다. 염증 반응을 일으키는 원인 자체를 억제하는 생물학적 제제가 출시된 후로는 치료 효과가 높고 장기 투여에도 부작용이 낮아 치료로 인한 불편함을 많이 덜게 됐다. 원래 팔 전체에 각질이 있었는데 생물학적 제제 치료 3년차에 전부 사라졌다.”-건선 환자로 살면서 직면한 어려움은 무엇인가?“사회적 차별이나 편견이 가장 힘들다. 바이러스나 박테리아처럼 전염되는 질환이라는 생각에 건선 환자들을 보거나 닿는 것을 꺼려하는 경우가 많다. 오해가 담긴 시선들을 피해 옷으로 가릴 수 있는 병변은 최대한 가리는 등 건선 환자들이 숨게 된다. 건선은 피부에 붉은 병변이나 하얗고 큼지막한 각질이 생기는 등의 증상이 나타나는데 이 각질이 쉽게 떨어진다. 그래서 두피나 얼굴 피부에 건선이 심하면 각질이 떨어진 모습이 상대적으로 잘 보이는 어두운 색 옷을 피하게 된다. 실제로 면접 때 피부가 보여 떨어진 환자, 군대에서 괴롭힘을 당한 환자 등 사회 불평등을 겪은 환자들을 많이 찾아볼 수 있다.옷으로 가릴 수 없는 특수부위 환자들의 경우에는 문제가 더 심각하다. 손등, 손발톱, 얼굴, 헤어라인 등 눈에 띄는 부위뿐 아니라 생식기 등 민감한 부위에 건선이 나타나는 걸 말하는데 최근 20~30대 젊은 환자들이 많이 늘었다. 눈에 잘 띄는 부위에 건선이 있으면 그렇지 않을 때보다 삶의 질이 훨씬 낮아짐에도 불구하고 현 산정특례 기준에 부합하지 못해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하는 실정이다. 건선 중증도 평가 기준인 PASI 10점 이상, 즉 본인 손바닥 크기 열 개 이상의 건선이 있을 때 산정특례가 가능한데 특수부위 건선이 전체 체표면 면적에 비해 크기가 작은 경우가 많은 탓이다. 사각지대에 놓인 환자들은 고가의 치료를 지속적으로 받기 어려워 증상이 심해지고 결국 사회에 잘 어우러지는 못하는 악순환의 반복에 놓이곤 한다.”
피부질환최지우 기자2025/05/27 08: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