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양소 관문 '소장'… 탈 나면 도미노처럼 소화기 무너집니다" [헬스조선 명의]

입력 2020.09.21 06:30   수정 2022.12.02 15:20

'헬스조선 명의톡톡' 명의 인터뷰
'소장이식 명의' 은평성모병원 장기이식센터장 황정기 교수

 

인간이 에너지를 만들고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선 음식 섭취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우리가 섭취한 음식물을 소화하고, 영양분으로 흡수하기 위해서는 '소장'이 제대로 작동해야 한다. 소장은 장액·쓸개즙·이자액 등을 분비해 영양분을 흡수하기 좋은 상태로 만들고, 소장 점막을 통해 흡수해 혈관으로 전달한다. 만약 장질환으로 인해 소장을 대량 절제하면 음식 섭취가 어려워진다. 고농도 영양주사로도 효과가 없을 땐 결국 '소장이식'이 필요하다. 소장이식 수술 권위자인 은평성모병원 장기이식센터장 황정기 교수를 만났다.

은평성모병원 혈관이식외과 황정기 교수
은평성모병원 혈관이식외과 황정기 교수/사진=신지호 헬스조선 기자

Q. 대표적인 소장 질환은 어떤 게 있나요?
가장 흔한 소장질환은 '급성 장염'이 있지만, 소장이식이 필요한 소장질환은 일반적이고 단순한 장염은 절대 아닙니다. 최근에 많이 알려진 소장질환은 '크론병'이 있습니다. 크론병은 입에서 항문까지 소화기 전체 어디서든 발생할 수 있는 '만성 염증성장질환'으로, 주로 소장 말단부에 많이 생깁니다. 이 밖에 복부 수술 등에 의해 장이 달라붙는 '유착성장폐색증'이나 장의 소화 운동이 정지돼 음식물이 움직이지 않는 '마비성장폐색증' 등도 있습니다. 이는 주로 염증과 약물에 의해 2차적으로 발병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드물기는 하지만 소장에 암이 생기는 '소장암'도 있습니다.

어떤 질환이 원인이든, 여러 이유로 소장을 절반 이상 제거한 경우를 '단장증후군(Short-bowel syndrome)'이라고 합니다. 특정 질환으로 인한 수술 후 단장증후군이 되기도 하지만, 태어나면서 선천적으로 복벽이 파열돼 단장증후군이 생기기도 합니다.

Q. 소장 질환은 어떻게 치료하고, 어떤 경우에 이식이 필요한가요?
장염 등 급성 염증성장질환은 금식, 수액이나 항생제 투여 등으로 치료가 이뤄집니다. 심한 장유착, 염증, 출혈의 경우 외과적인 수술이 필요하기도 합니다. 크론병으로 대표되는 만성 염증성장질환은 항염증제·항생제·면역조절제·부신피질호르몬제·생물학적제제 등 다양한 방법으로 치료합니다. 단장증후군 등으로 소장 기능 부전이 있는 환자는 '경정맥영양요법'을 시행합니다. 수분, 단백질 등 필수적인 영양분을 고농도로 정맥에 투여하는 방법입니다. 경정맥영양요법으로도 영양 공급에 한계가 있다면, 다시 음식 섭취가 가능할 수 있도록 '소장이식'을 해야 합니다. 소장이식 환자의 60% 이상을 차지하는 게 단장증후군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식 환자의 조직검사 소견
황정기 교수가 이식 환자의 조직검사 소견을 가리키고 있다./사진=신지호 헬스조선 기자

Q. 소장이식 수술은 어떤 방식으로 진행되나요?
소장이식 수술은 크게 소장으로 이어진 혈관을 연결하는 '혈관 문합수술'과 장관의 연속성 회복을 위한 '장 문합수술'로 구성됩니다. 이식할 소장은 주로 뇌사자로부터 공여받게 됩니다. 우선, 공여자의 소장 전체 혹은 일부를 소장의 장간막동정맥을 포함해 적출합니다. 이후 수혜자의 복부대동맥·복부대정맥과 연결하고, 음식물이 소화될 수 있도록 장관을 연결합니다. 간·신장 이식의 경우 공여자의 장기 크기가 클수록 좋은 것과 달리, 소장 이식은 수혜자의 체중 대비 작은 것이 좋습니다. 대부분 단장증후군 환자들은 여러 차례 수술 경험으로 인해 복벽 내 공간이 작아서 소장을 채울 공간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Q. 소장이식은 다른 이식에 비해 난도가 높은 수술인가요?
소장은 '제2의 뇌'라고 불릴 정도로 1억 개 이상의 신경세포 뉴런을 가지고 있는 복잡한 기관입니다. 또한 우리 몸에서 가장 큰 면역기관이며, 음식이 직접적으로 접촉하기 때문에 외부의 다양한 면역적 환경과도 맞닿아 있는 장기입니다. 이런 이유로 인해 소장은 다른 장기보다 높은 '면역항원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따라서 다른 장기보다 이식 후 면역거부반응이 나타날 위험이 높은 수술로, 비교적 난도가 높은 수술로 볼 수 있습니다.

은평성모병원 혈관이식외과 황정기 교수
은평성모병원 혈관이식외과 황정기 교수/사진=신지호 헬스조선 기자

Q. 소장에 문제가 생기면 다른 장기에도 영향을 준다는 게 사실인가요?
소장부전이 있으면 수분 조절, 영양 흡수를 위해 경정맥영양요법을 시행하게 됩니다. 그러나 경정맥영양요법을 오랜 기간 유지하면 간에 콜레스테롤이 축적되고, 지방간이나 담도경화증 등이 생길 수 있습니다. 결국 소장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면 '간'까지 망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이를 '장관부전에 의한 간질환(IFALD, Intestinal Failure Associated Liver Disease)'이라고 말합니다. 또한 수분 조절이 잘 안 되면 '콩팥 기능 부전'도 발생할 수 있습니다.

Q. 소장뿐 아니라 다른 장기까지 문제가 생기면 어떻게 하나요?
소장이식은 필요에 따라 소장만을 단독 이식할 수도 있지만, 다른 장기에 이상이 생겼다면 소장과 함께 다른 장기를 함께 이식할 수도 있습니다. 간·십이지장·췌장을 함께 이식하는 것을 '다장기이식', 간을 포함하지 않고 위·십이지장·췌장 등을 함께 이식하는 것을 '변형 다장기이식'이라고 부릅니다. 다장기이식은 포도송이에 비유해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포도송이 중심을 소장이라고 보면, 중심과 연결된 여러 다발들을 한꺼번에 이식하는 것입니다. 국내 소장이식 사례 25건 중 3건은 다장기이식으로 시행됐습니다.

사진=신지호 헬스조선 기자​

Q. 소장이식 수술 후 주의할 점과 관리 방법은?
이식 후 장의 소화기능과 영양분 흡수기능이 원활하게 회복되려면 단계적 음식섭취가 매우 중요합니다. 또한 다른 장기 이식수술에 비해 거부반응도 강하게 나타날 수 있으므로 다학제 협진을 통한 관리가 필요합니다. 은평성모병원 장기이식센터는 혈관이식외과, 소아외과, 간담췌외과 등 외과 전문의를 비롯해 소화기내고, 소아과, 외과, 약제팀, 영양팀의 다학제 협진으로 환자의 회복을 돕고 있습니다. 수술 3개월 후 부터는 원활한 식사가 가능하고, 수술 6개월에서 1년 후에 장루 복원 수술을 하고 난 후에는 일반인처럼 문제없이 드실 수 있게 됩니다.

Q. 환자들에게 당부하고 싶으신 말씀이 있다면
소장이식 수술은 지난 30여 년간 면역억제제의 발달, 수술 술기의 발전, 수술 후 관리 능력 향상 등으로 큰 발전을 이뤄왔습니다. 다만, 소장이식은 여전히 장관부전 환자 중에서 경정맥영양요법이 어려운 환자를 대상으로만 시행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경정맥영양요법도 많이 발전해서 이식 없이 살아가는 단장증후군 환자도 많습니다. 단장증후군을 앓고 있다면 주치의 진료에 따라 평소 올바른 생활습관, 꾸준한 운동, 당뇨병·고혈압 등 기저질환 관리하시길 바랍니다. 평소 몸 상태를 잘 관리하면 단장증후군 증세가 악화되거나 경정맥영양요법이 불가능해져 소장이식 수술을 시행하더라도, 좋은 수술 결과와 빠른 회복을 기대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은평성모병원 혈관이식외과 황정기 교수
은평성모병원 혈관이식외과 황정기 교수/사진=신지호 헬스조선 기자
-황정기 교수는...
가톨릭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현재 은평성모병원 혈관이식외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장기이식센터장을 맡고 있다. 신장이식·췌장이식·소장이식 분야 권위자로, 미국 네브라스카 대학교 메디컬센터에서 소장 및 다장기이식 프로그램을 연수했다. 2016년부터 가톨릭대학교 외과학교실 다장기이식팀 팀장을 맡아 고난도 이식에 대한 다학제 협진을 주도하고 있다. 은평성모병원 개원 100일 만에 신장, 심장, 간, 췌장 등 주요 장기이식 성공을 이끌었다. 수도권 서북부 지역 환자들을 위한 장기이식 인프라 구축은 물론 공여자와 수혜자를 동시에 돌보는 시스템을 갖추는데 적극적으로 나서는 중이다. 이식 수술 외에도 대동맥과 사지동맥질환수술, 혈액투석수술, 혈관중재시술 등 혈관 질환 분야에서 왕성한 임상 활동을 하고 있다. 최근에는 소장이식 환자에서 신장 기능에 대한 장기 예후와 생존율에 관한 연구 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