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수 아웃도어에 쓰는 ‘좀비 화합물’… PFAS, 내분비계 교란하고 암 유발도

입력 2025.01.14 06:30

대기·토양으로 퍼지는 등 환경에도 유해한 성분

PFAS 자료 사진
그래픽=최우연
올해 패션 트렌드도 '아웃도어 의류'가 이끌 전망이다. 지난 몇 년간 아웃도어 의류와 일상복을 결합한 '고프코어' 룩이 인기를 끌었다. 크리에이티브팩토리그룹의 2526 FW 스포츠 트렌드 세미나에 따르면, 올해엔 '아웃도어 의류'가 '오피스 웨어'와 결합한다. 일명 '코퍼레이션 코어(코프코어)' 룩이 트렌드를 잇는다.

'아웃도어 의류'의 지속적인 인기 비결은 '우수한 기능'이다. 내구성이 좋은 것은 물론, 열과 바람에 강하고, 물과 기름을 모두 밀어낸다. '아웃도어 의류'를 산 사람, 그리고 살 사람 모두 주목하자. 아웃도어가 내는 기능은 주로 'PFAS(과불화화합물)'에서 유래하는데, 이 화합물의 별명은 '좀비 화합물', '영원한 화학물질' 등으로 무시무시하다. 매우 안정적이어서, 분해하거나 없앨 수 없기 때문이다. 환경에 유해할 뿐 아니라, 몸에 축적돼 내분비계 질환은 물론 암 발병 위험을 높이기도 한다.

◇체내 축적된 PFAS, 몸 곳곳 손상시켜
아웃도어 의류 속 PFAS 실상은 그린피스의 2016년 조사 결과를 통해 낱낱이 드러났다. 그린피스는 전 세계 3만 명 사람에게 가장 많은 표를 얻은 11개 브랜드 40개 제품(재킷 11개, 바지 8개, 신발 7개, 가방 8개, 침낭 2개, 텐트 2개, 로프 1개, 장갑 1개)을 대상으로 PFAS 성분을 분석했다. PFAS가 검출되지 않은 제품은 단 네 개뿐이었다.

PFAS는 알킬(탄소와 수소로 이뤄진 구조) 사슬에 불소 원자가 부착된 화합물로, 자연 상태에서는 생성되지 않는 인공 화합물이다. 물과 친한 머리와 기름과 친한 꼬리가 있어 안정적이고 내구성이 강한데, 동시에 표면 에너지가 물의 표면장력보다 낮아서 물을 튕겨낸다. 지질이 주성분인 얼룩도 마찬가지다.

PFAS의 장점은 알고 보니 엄청난 단점이었다. 내구성이 좋아 잘 분해되지 않고, 열에 강해 소각되지 않는다. 물과 기름 등 모든 용매에 녹지 않아, 성분을 분리해 제거하기도 어렵다. 사라지지 않는 PFAS가 들어간 의류를 입으면 ▲코팅이 벗겨지면서 PFAS가 노출돼 피부나 호흡기를 통해 인체로 흡수되고 ▲폐기 후 잔류 PFAS가 대기·토양·물 등 온 곳곳에 퍼져 식수나 음식물 등을 통해 인체 내로 들어온다. PFAS마다 유해도가 다른데, 특히 '긴' 사슬일수록 위험하다. 지질·단백질 친화성이 높아 체내에 더 쉽게 축적되고, 배출은 안 되기 때문이다. 그만큼 독성도 올라간다. 긴 사슬인 PFOA, PFOS 등은 ▲혈중 콜레스테롤 수치를 높이고 ▲간을 손상시키고 ▲미숙아 출산 위험을 높이고 ▲신장암 등 암 발병 위험을 높이는 것으로 연구를 통해 확인됐다.

그린피스 보고서에 따르면 아웃도어 매장 내부 공기도 휘발성 PFAS로 오염돼 있었다. 매장을 가는 것만으로도 호흡기를 통해 PFAS에 노출되는 것이다. 가천대 길병원 직업환경의학과 함승헌 교수는 "아직 흡입·피부 접촉으로 PFAS가 인체 내에 얼마나 축적되는지는 추가 연구가 필요한 분야이긴 하다"면서도 "잠재적 위험성을 고려해 노출을 최소화하는 게 좋고, 특히 어린이는 이런 화학물질에 더 민감하므로 주의해야 한다"고 했다. 사방을 통해 PFAS에 노출된 우리의 몸엔 이미 많은 양의 PFAS가 축적돼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미 2004년 미국 시민의 99.7% 혈액에서 리터당 평균 4µg의 PFAS가 검출됐다.

◇신제품은 'PFAS-Free'
그린피스 보고서 발표 이후 지금까지 의류 업계에선 큰 변화가 있었다. 서울대 의류학과 이수현 교수는 "PFAS가 들어가지 않는 친환경 물질을 개발하고, 사용한 제품들이 나오기 시작했다"며 "덴마크 등 PFAS를 규제하는 국가가 늘고 있어, 지속해서 PFAS 포함 물질은 방출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전 세계적으로 PFAS를 규제하는 나라가 많아지고 있는데 덴마크, 노르웨이, 독일, 네덜란드, 스웨덴 등은 지난 2023년 PFAS 제품의 생산·사용·판매·수입 등을 금지하자는 제안을 유럽화학물질청에 제출해, 유럽연합(EU)에서 살펴보는 중이다. 덴마크, 노르웨이 등은 국가 내에서 이미 PFAS가 들어간 의류 사용을 전면 금지했다. 미국 뉴욕주에서도 올해부터 PFAS 코팅 의류는 판매가 안 된다. 프랑스도 2030년부터 보호복을 제외하고 PFAS가 들어간 의류는 제조·수입·판매를 금지할 예정이다.

글로벌 의류업계를 중심으로 PFAS가 제거된 제품을 선보이고 있다. 아크테릭스, 살로몬 등 다양한 유명 브랜드에 방수·투습 소재를 제공하는 고어텍스 현재 PFAS 함량을 극소량으로 줄인 PFAS-Free ePE 멤브레인을 개발해, 이 소재만 생산하도록 공정을 전환했다. 마무트, 하그로프스 등 주요 브랜드에서도 PFAS를 퇴출하겠다고 발표했다. 노스페이스 관계자는 "2019년부터 긴 사슬 PFAS인 PFOA, PFOS가 제거된 발수 처리 제품을 판매해 오고 있고, 그 제품들의 비중을 점진적으로 늘려가고 있다"며 "판매 중인 PFAS가 들어간 제품은 유럽 섬유 품질 인증인 오코텍스 기준에 맞춰 엄격하게 관리하고 있다"고 했다.

우리나라는 아직 PFAS에 대한 규제가 없다. 하지만, 의류업계에서 자발적으로 변화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다른 나라에서 규제가 강화되고 있고, 수출하려면 변화를 할 수밖에 없다"며 "PFAS 없이도 방수·투습 기능이 뛰어난 친환경 소재를 국내에서도 지속적으로 개발 중이다"고 했다. 국내 아웃도어 브랜드 네파는 "아르테, 써모퍼프 시리즈, 모노튜브 등 주력 상품들은 PFAS를 사용하지 않는 친환경 소재를 사용하고 있다"고 했다.

◇내가 산 아웃도어 의류, PFAS 있는지 확인하려면?
PFAS가 없는 제품이 나오고 있지만, PFAS 포함 제품도 혼재돼 판매되고 있다. PFAS 재질로 제조된 이월 상품도 회수된 건 아니어서, 중고 제품 등으로 시중에 유통되고 있다. 제품 속 PFAS 유무를 확인하는 방법은 없을까? 이수현 교수는 "성분이 있는지 명확히 밝혀야 한다는 규제는 없어서, 택 등에 기재돼 있진 않다"며 "현재 소비자가 확인할 방법은 PFAS를 제거했거나 대체한 화합물을 사용했다는 홍보 문구가 있는지 살펴보는 것뿐"이라고 했다. 주로 들어가는 문구는 'PFAS-Free' 혹은 'PFC-Free'다. PFC는 PFAS의 하위 범위로, 탄소 없이 완전히 과불화된 화합물을 지칭한다. 다만, 긴 사슬 PFAS인 PFOA나 PFOS만 제거·대체됐다고 쓰여 있다면, 짧은 사슬 PFAS는 함유돼 있을 수 있다. 짧은 사슬 PFAS도 긴 사슬만큼은 아니지만 체내 잔류 되고, 내분비계 장애를 일으킬 수 있어 유의해야 한다.

이미 구매한 옷은 관리를 잘 해야 한다. 이수현 교수는 "PFAS는 제품의 안정적인 코팅이 벗겨지면서 인체에 노출되는 것"이라며 "의류를 통해서는 조리도구 등처럼 PFAS에 직접 노출되는 게 아니라, 간접 피해가 우려되는 것이므로 의류를 잘 관리한다면 피해를 줄일 수 있다"고 했다. 아웃도어 의류는 자주 빨지 않는 게 좋다. 오염돼 세탁해야 한다면, 의류 안쪽 라벨의 관리 지침을 따라야 한다. 브랜드 소재별로 방법이 다를 수 있는데, 주로 기능성 의류 전용 세제 등으로 뜨겁지 않은 물에서 세탁한다. 통풍이 잘되는 그늘에서 완전히 건조한 후 옷장에 넣는다. 재킷 표면에 흠집이나 손상이 생겼다면 PFAS에 노출될 수 있으므로, 방수 테이프를 바르거나 전문 수선 서비스를 이용해 복구하는 게 좋다. 장기간 보관했을 때도 소재가 변형돼 PFAS에 노출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