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기 힘든 고통을 표현할 때 ‘항문이 찢어지는 듯한 아픔‘이라는 표현을 쓰곤 한다. 얼마나 아프기에 그런 표현을 쓰는 걸까? 삼성서울병원 외과 조용범 교수는 “아이를 낳을 때보다 더 아프다고 말하는 여성들이 있을 정도로 치질을 가진 환자들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의 고통을 경험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실제 치질이 있어도 병원에 가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치질 수술은 매우 아프다’ ‘수술이 잘못되면 인공항문을 달아야 한다’ 등의 소문들에 겁 먹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자신의 항문을 남에게 보여야 한다는 부담감이 크기 때문이다.
지난 2004년 서울 한솔병원에서 병원을 찾은 환자들을 대상으로 처음 병원에 오게 되기까지의 시간을 조사해 봤더니 10년 이상이 약 39%로 가장 많았다. 6년 이상 10년 이하라고 답한 사람도 26%로 나타났다. 그만큼 병을 키운 뒤에야 병원에 가게 된다는 것이다. 치질은 초기에 치료하면 수술 없이도 좌욕 등 생활 습관만 고치면 쉽게 나을 수 있지만 2~3기부터는 수술적 치료가 필요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귀찮고 창피하다고 병을 숨기고 있다가는 큰 수술을 받게 될지도 모른다. 전 세계 인구의 약 70%가 앓고 있다는 치질, 그 원인과 치료법 등에 대해서 알아보자.
Chapter 1. 치질의 종류와 증상을 알아보자
치질의 정확한 뜻을 아는가? 혹시 다른 병을 치질이라고 생각하고 치질이 아닌데도 두려움에 떨고 있는 것은 아닌가? 치질은 정확히 세 종류가 있다. 치질의 종류와 증상을 알아보고 유사 증상과 구별하자.
#1. 나는 어떤 치질일까?
우리를 괴롭히는 못된 ‘치질 삼형제’
치핵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가장 많이 겪는 치질은 ‘치핵’이다. 전체 항문 질환의 약 70%를 차지할 정도로 높은 유병률을 보인다. 치핵은 항문 안쪽 혈관들이 울혈(鬱血)돼 늘어나거나 항문 바깥쪽 불필요한 조직 등이 늘어나서 생긴다. 항문에 가해지는 반복된 압력, 노화로 인한 항문 탄력도 저하, 변비, 간경화 등이 주된 원인이다. 치핵이 항문 안쪽에 생기면 통증이 거의 없다. 배변 시 치핵 덩어리가 같이 밀려나오는 경우가 많으며 출혈이 되므로 빈혈이 생기기 쉽다. 하지만 항문 바깥쪽에 울퉁불퉁 튀어나온 치핵이 있으면 생활하기 불편할 정도로 심한 통증이 생긴다. 안쪽에 생긴 치핵이든 바깥쪽에 생긴 치핵이든 여러 가지 방법을 통해 제거해 주면 쉽게 낫는다. 안쪽에 생긴 치핵 중 초기 단계인 경우 수술 없이 좌욕과 연고 사용 등으로 치료 가능하다.
치루 치핵이 항문이나 항문 바로 근처에 생긴다면 치루는 항문에서 약 1~2cm 떨어진 피부에 생기며 종기 모양처럼 불룩 튀어나온 형태를 띤다. 치루의 시작은 항문 샘 부분이 곪는 것이다. 항문 샘은 배변 시 대변이 잘 나오도록 윤활제를 분비하는 곳인데 이 곳이 청결하지 않을 경우 대장균이나 각종 세균에 의해 곪게 돼 농양이 생기는 것. 이 농양이 항문관 주변의 약한 부위를 뚫고 길을 만들어나가 긴 관 모양을 형성해 피부를 뚫고 나온다. 치루가 있으면 그 부위에 심한 통증이 생겨 앉아 있기가 힘들다. 똑바로 서 있을 때도 통증이 있어 항상 엉거주춤한 자세가 된다. 몸살이 난 것처럼 열이 나고 온몸이 쑤시기도 한다. 치루는 약으로는 거의 효과가 없고 수술로 제거해야 한다. 가만히 놔두면 암이 될 수도 있으므로 빨리 치료를 받아야 한다.
치열 항문이 찢어진 상처를 말한다. 변비가 가장 큰 이유이다. 섬유질이나 수분이 부족한 식습관, 또는 극히 적은 식사량으로 인해 딱딱한 대변이 만들어지게 되고, 이 대변이 나올 때 항문관과 주변 약한 근육 등이 찢어져 치열이 생긴다. 배변 시나 배변 후까지 심한 통증이 있으며 휴지에 묻혀 나올 정도로 약간의 피도 나온다. 처음 생겼을 때는 상처가 깊지 않다. 좌욕 등의 보존적 치료를 열심히 해주면 1주일 정도 만에 치료된다. 하지만 잘 아물지 않은 상태에서 찢어졌다 아물었다를 반복하면 상처가 점점 깊어져 궤양이 된다. 이런 경우 수술을 해야만 증상이 호전된다.
#2. 나 혹시 대장암이야?
증상으로 알아보는 치질 자가진단
출혈 선홍색 빛깔의 피가 대변에 길게 묻어나거나 휴지에 조금 묻혀 나오는 정도면 ‘치열(항문이 찢어진 것)’에 해당된다. 하지만 대변 속에 피가 섞여 나오거나 피 색깔이 벽돌 색이나 자장면 색깔을 띠면 대장 쪽에서 출혈된 것일 가능성이 높으므로 대장 내시경 등을 받아봐 암이 아닌지 확인해 봐야 한다. 또한 출혈된 피가 점액 성질을 띠거나 지저분한 분비물과 섞여 있으면 항문이 아니라 다른 기관에 문제가 있는 것일 수 있으므로 이 역시 검사를 받아봐야 한다.
통증 항문 쪽에 묵직한 통증이 느껴지면 항문 혈관이 울혈(鬱血)돼 나타나는 ‘치핵’이다. 항문 주위 묵직한 통증과 함께 전신이 춥고 열이 나는 경우는 항문 자체의 병이기 보다 직장 쪽에 염증이 생겼을 가능성이 높다. 초기 단계의 치핵은 좌욕 등으로 붓기를 가라앉혀주면 통증은 금방 사라진다. 평소에는 괜찮다가 배변 시, 또는 배변 직후에 항문에 찢어지는 듯한 통증을 느낀다면 ‘치열(항문이 찢어짐)’이 있다는 얘기다. 보통은 선홍색 피가 같이 묻어 나온다.
항문 주위 부종 통증은 별로 없지만 항문 주변에 종기 같은 것이 시간을 두고 조금씩 커지면 ‘외치핵(항문주변 조직이 늘어난 것)’일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갑작스런 통증과 함께 종기가 만져졌다면 ‘급성 치핵증’이다. 급성일 경우 치료를 빨리 해주면 부종은 금방 사라진다.
Chapter 2. 치질의 치료법에 대해 알아보자
치질임을 알면서도 병원에 가기를 꺼리는 이유 중 하나는 치료법에 대한 두려움 때문. 그렇다면 당신은 치질 치료법에 대해 얼마나 정확하게 알고 있을가? 병원에서 시행하는 주요 치료법과 가정에서 할 수 있는 자가 치료법을 정리했다.
#1. 병원에서 받는 전문적인 치료법
결찰요법 가장 고전적인 방법으로 특수 고무 링 기구를 이용해 안에서 늘어난 혈관 더미인 ‘내 치핵’ 부분을 잡아 올려 묶어주는 수술이다. 묶은 부분은 피가 통하지 않아 영양분을 공급 받지 못하므로 자동적으로 죽어 없어진다. 대부분 국소마취 상태로 시술한다. 고령자의 경우 입원하기도 하지만 통원치료가 일반적이다. 한 번에 한 개씩 묶어서 4주 간격으로 시술한다. 1주일 후 묶인 치핵은 고무 링과 함께 떨어지고 1개월 정도 지나면 상처가 깨끗이 낫는다. 일반적으로 통증이 거의 없지만 외 치핵을 같이 묶거나 항문에 가깝게 묶는 경우에는 통증이 굉장히 심하다. 혈관이 터져서 출혈이 심할 때는 바로 다시 시술해야 한다. 너무 깊이 묶을 경우 균이 침범해서 패혈증이 생길 수도 있다. 종종 실이나 머리카락으로 자가 치료를 하다 병원을 찾는 경우도 있는데 굉장히 위험하므로 절대 금물이다.
자동봉합 치핵절제술 최근에 도입된 새로운 치료법으로 수술 후 통증과 합병증이 거의 없고 항문 주위 피부가 늘어나지 않아 미용 효과도 높다. 시술방법은 직경 3.3cm 정도의 ‘자동봉합기’ 장비를 항문 속에 넣어 치핵 및 하부 직장 점막을 잘라내면서 동시에 자동으로 봉합한다. 기존 수술법의 경우, 통증이 수술 후 6~8주 정도 지속되는데 반해 이 수술은 통증이 거의 없다. 3, 4기 정도의 심한 치핵도 큰 고통 없이 치료할 수 있다. 이틀 정도만 입원하고 통원치료를 받게 되며, 수술 5일 후에는 직장생활을 정상적으로 할 수 있다.
적외선 응고법 원래 지혈 도구로 사용됐던 적외선 응고기를 이용하는 치료법으로 1기 정도의 가벼운 치핵 치료에 효과적이다. 하지만 항문이 밖으로 나오거나 심한 출혈이 있을 경우 효과가 적다. 한번에 1~2초 정도로 1~5회 시술한다. 치료 후 치핵은 회색으로 변했다가 1주일이 지나면 작은 궤양이 생기고, 3~4주 후에는 거의 흔적이 없어진다. 수술이 간단하고 마취나 입원이 필요 없으며, 전신적 부작용도 없어 임산부나 인공심장 환자도 안심하고 치료할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냉동요법 액체 질소가 든 냉동치료기로 치핵을 1분간 영하 100℃로 얼렸다가 다시 1분간 영상 5℃로 녹이는 방식이다. 항문 안쪽 치핵 제거에만 사용된다. 초기에는 단순히 냉동요법만 시행했으나 최근에는 고무줄로 묶은 후 냉동요법을 쓰는 경우가 많다. 냉동요법을 받은 후 1주일쯤 지나면 치핵이 떨어져 나오며, 완전히 치료될 때까지는 4~6주 가 걸린다. 수술 부위는 심하게 붓고 분비물이 나오고 악취가 심하다. 출혈도 많고 재발률이 높다는 것이 단점이다.
레이저 치핵 수술법 ‘칼’ 대신 레이저로 치핵을 절제하거나 응고시키는, 요즘 가장 인기 있는 수술법이다. 외 치핵 치료에 주로 쓰는 탄산가스 레이저 수술법은 수술 중 출혈이 적고 항문 괄약근의 손상, 염증 발생, 통증 등이 거의 없다. 수술 과정도 비교적 간단한 편이라 인기다. 엔디야그 레이저 수술법은 모든 치핵을 제거하는 데 쓰이고 입원기간이 짧고 원하면 입원 없이 통원 치료도 가능하다. 레이저 광선이 다른 부위로 반사될 경우 그 부위가 손상될 염려가 있으므로 숙련된 의사에게서 시술 받아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