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경영의 다른 생각들!

착한 사람이 바보가 되는 병원

삼정 KPMG안근용
입력
2014-09-22

“진료시작시간을 잘 지키라고 해서 일찍 출근해요. 병원에 주차장이 부족하다고 해서 좀 멀리 떨어져 있긴 하지만 안내해 준 곳에 주차를 해요. 진료를 열심히 하라고 해서 제대로 쉬지도 못하면서 진료시간 끝까지 열심히 환자를 봅니다.

협력병원에서 의뢰가 오면 회신 잘해 주라고 해서 진료시간 후에 정성껏 회신서를 작성하고 있어요. 그렇게 하고 집에 들어가면 너무 피곤합니다. 그러다보니 가족들에게 제대로 신경도 못 써주고 특히, 애들 공부는 봐주지도 못해요. 그러니까 애들이 공부를 못해요. 그렇다고 남들보다 돈을 더 받는 것도 아니에요.

그에 반해, 설렁설렁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병원에서 뭐라고 하든 말든 진료는 자기 편한 시간에 시작하고, 걸어오기 귀찮다고 병원에서 가까운 고객용 주차구역에 주차하고, 굳이 번거롭게 회신할 필요가 있느냐며 맘에 내키는 곳에만 회신하고, 막히기 전에 출발해야 한다고 진료마감 한 시간 전부터는 아예 환자를 받지도 않습니다.

집에 가서는 아이들 붙잡고 공부시키고 그러니까 아이들이 공부도 잘해요. 그렇다고 남들보다 돈을 덜 받는 것도 아니고...... 피곤해 보이는 제 얼굴을 보세요. 요즘은 나만 왜 바보같이 살고 있나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아요.“

병원 관계자 특히 의료진과과 인터뷰를 하다보면 자주 듣게 되는 이야기이다. 나는 병원에서 하라는 대로 열심히 잘 따르는데 그렇지 않은 사람들과 별반 다를 것이 없고 오히려 바보 같은 생각이 든다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얼마나 쌓였는지 아이들 공부 못하는 이유까지 연결시킬 정도로 울분을 토하는 경우도 있다.

설렁설렁하는 사람들을 족치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설렁설렁하는 사람들만 나무라고 채근한다고 해서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인터뷰 때 이야기를 하는 당사자들도 알고 있고 이 글을 읽는 사람들도 대부분 동의할 것이다. 그렇지만 현실은 설렁설렁하는 사람들을 뒤에서 비난하는 수준에서 끝내고 만다.

그리고 ‘내가 바보지’라는 자조적인 한 마디로 마무리한다. 조직은 그렇게 서서히 무너져 간다. 정작 중요한 잘못을 저지른 사람은 따로 있는데......그렇다면 가장 큰 잘못은 누구에게 있을까?

아마도 가장 큰 잘못은 그 병원의 경영자(리더)에게 있다. 이런 문제를 야기하는 병원의 특징은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하나는 경영자(리더)가 우유부단하여 제대로 management를 못하거나, 또 하나는 제도나 규정 혹은 제대로 된 문화가 없다는 것이다.

제도나 규정을 만들 책임의 상당부분이 경영자(리더)의 의지에 달려 있다고 보면 어쩌면 경영자(리더)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것이 유일한 특징일 것이다.

사람은 주어진 환경에 나름의 방식대로 금방 적응한다. 그것은 조직이라는 환경에서 살기 위한 본능이다. 진료시작시간 지키지 않아도 자기에게 손해될 것이 없고, 업무는 대충 대충하더라도 경영진이나 의료진에게 눈치껏 적당히 맞춰만 주면 살 수 있는 조직 환경이라면 사람들은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 그런 사람들이 그 조직문화에 정상적인 사람이고, 그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이 이상한 것이다. 그래서 환경(?)에 적응한 사람들을 그냥 비난해서는 안 된다. 단지 본능에 충실했을 뿐이다. 오히려 비난 받아야할 사람은 조직 환경을 구축하지 못한 경영자(혹은 리더)이다.

진료시간을 지키지 않으면 회의석상에서 공개적으로 이야기를 하든지, 불러서 조용히 이야기를 하든지 아니면 아침마다 조회를 갖든지 모여서 청소를 하든지(실제 아침에 함께 모여서 청소로 시작하는 병원도 있다.) 어떠한 방식으로든 확실한 신호를 주어야 한다.

정해진 구역에 주차를 하지 않으면 주차금지 스티커를 붙이고 주차료를 물도록 할 수 있다. 회신서를 보내지 않으면 왜 보내지 않는지, 진료시간을 일찍 마감하면 왜 일찍 마감했는지에 대해서 묻고 합리적인 수준에서 판단하고 이야기를 해 주어야 한다.

병원에서 제시한 룰을 지키지 않으면 강하게 이야기를 하거나 그를 통제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그런데 지키지 않아도 뭐라고 하지 않고 지키지 않은 사람에게 그 어떤 손해도 없다면 그것을 지키는 사람만 바보가 되어 버린다. 경영자가 싫은 소리하기 싫다고 방관하는 거다. 그렇게 하도록 묵인하는 거다. 결국 조직 환경을 그렇게 만드는 것이다.
 
경영자는 본인이 착한 사람이 될 필요는 없다. 착한 사람들이 조직에서 잘살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우선이다. 그렇다고 나쁜 사람이 되라는 것은 아니다. 착한 사람이 살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데 더 신경을 써야 한다는 이야기이다. 싫은 소리 하지 않는다고 착한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니다. 경영자는 다른 사람의 행복에 관여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진 사람이다. 그래서 조직에서 일하는 착한 사람들이 행복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 주어야한다.

특히, 의사의 경우는 환자를 본다는 측면에서 여러 가지로 배려를 해주게 되는데 그러한 배려를 잘못 받아들어 특혜로 인식하는 경우도 있고 병원의 규정을 지키지 않는 경우도 있다. 사람이니까 그럴 수 있다. 그렇지만 그것이 병원 운영에 해를 끼치면 확실하게 이야기를 해 주어야 한다. 좋은 사람으로서가 아니라 경영자(리더)로서 이야기를 해주어야 하는 것이다.

착한 사람이 힘들어 하는 병원, 착한 사람이 바보가 되어가는 병원을 자주 보게 된다. 안타깝다. 문제의 당사자에게 직접 이야기를 해주든가, 이야기를 하기가 껄끄러우면 미리 제도나 시스템을 제대로 만들어 두든가 어쨌든 둘 중 하나는 확실히 해야 한다. 이도 저도 아닌 것은 경영자가 아니라 그냥 방관자일 뿐이다.

기고자 : 삼정 KPMG 안근용

* 본 칼럼의 내용은 헬스조선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기존의 방법만으로는 현재 고객의 니즈를 파악하는데 한계가 있기 때문에 이에 적합한 방법을 적용하는 것이 필요